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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반세기가 지났지만… 당신의 발차기에 아직도 가슴이 뛴다
[아무튼, 주말]
배우 이소룡 타계 50년
다시 뜨거운 추모 열기
최인준 기자
입력 2023.07.15. 03:00
업데이트 2023.07.15. 11:04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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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1940~1973)은 죽지 않았다.
쌍절곤, 복싱 글러브가 가득 쌓인 경기도 과천의 한 체육관. 작은 반지하 공간에 미트를 “팡! 팡!” 때리는 발차기 소리가 차올랐다. 이소룡이 창시한 실전형 무술 ‘절권도’를 수련하는 사람들이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아뵤~!” 괴성만 없을 뿐 상대가 방어할 틈 없이 돌진하는 스텝, 반박자 빠르게 허점을 찌르는 펀치 동작은 이소룡이 환생한 듯 날렵했다.
어릴 적 이소룡을 보고 자란 중장년들일까. 오산이다. 모두 그의 사후 태어난 2030세대, 절반 이상은 여성이었다. 한 30대 여성 회원은 “호신과 다이어트에 좋다고 해 시작했는데 지금은 이소룡의 매력에 빠져 다른 운동은 다 끊고 절권도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체육관을 운영하는 이재성 관장은 이소룡의 3대 직계 제자. “절권도는 교본, 품새, 단수가 따로 없는 자유로움이 다른 무술과 구별되는 특징입니다. 이소룡처럼 피지컬(체격)이 밀려도 큰 상대를 제압할 수 있어요. 최근 절권도와 이소룡을 배우려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지난 7일 경기도 과천에 있는 '한국 오리지널 절권도 체육관'에서 회원들이 절권도 훈련을 하고 있다. /최인준 기자
지난 7일 경기도 과천에 있는 '한국 오리지널 절권도 체육관'에서 회원들이 절권도 훈련을 하고 있다. /최인준 기자
지난 7일 경기도 과천에 있는 '한국 오리지널 절권도 체육관'에서 회원들이 절권도 훈련을 하고 있다. 벽에 붙은 사진은 절권도 창시자인 이소룡. /최인준 기자
지난 7일 경기도 과천에 있는 '한국 오리지널 절권도 체육관'에서 회원들이 절권도 훈련을 하고 있다. 벽에 붙은 사진은 절권도 창시자인 이소룡. /최인준 기자
오는 20일은 이소룡이 33세 나이로 사망한 지 정확히 50년이 되는 날이다. 살아 있다면 올해 83세. 알 파치노, 박근형이 동갑내기 배우다. 너무 이른 나이에 요절했지만 그의 업적은 누구도 넘보기 어렵다. 종합격투기(MMA)의 시초가 된 절권도를 독자 개발하고, ‘정무문’ ‘용쟁호투’ ‘사망유희’ 등 5편의 영화로 단숨에 액션의 아이콘이 된 불꽃 같은 인생이었다.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날, 진통제 복용 직후 의식을 잃고 작별 인사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무술에는 늘 진심이었다
이소룡은 용(龍)의 해인 1940년 11월 2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출생 시간도 진시(辰時·7~9시). 부모가 아들에게 지어준 이름은 진번(振藩)이었다. 중국어로 삼번(三藩)이라 불린 샌프란시스코를 우렁차게 흔드는 위인이 되라는 의미였다. 훗날 이소룡은 미국이 좁다는 듯 세계를 뒤흔들었다.
중국 전통극 배우였던 아버지를 따라 홍콩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경쟁심이 넘친 이소룡은 동네에서 싸움닭이었다. 거친 성정은 영춘권의 대가 엽문의 제자로 들어가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무도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것. 19세에 고향 미국으로 돌아가 대학(철학과)을 다녔는데 틈틈이 미국인들에게 쿵후를 가르쳤다. 그리고 스물여덟 살에 절권도를 창시했다. 미국에서 결혼한 아내 린다는 그의 제자였다.
이소룡이 액션 스타로 활약한 건 첫 주연작인 ‘당산대형’이 개봉한 1971년부터 1973년까지 3년에 불과하다. 이후 그의 딸 섀넌 리(54)가 절권도를 알리고, 아버지의 무술 철학을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대 시절 영화 배우로도 활동한 그녀는 현재 로스앤젤레스에서 이소룡의 영어 이름을 딴 ‘브루스 리 재단’을 2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장난감 쌍절곤을 들고 절권도 동작을 따라하는 ‘브루스 리 캠프’가 재단의 대표 행사. 왜소한 체격으로 인한 콤플렉스를 무술로 극복한 이소룡처럼 몸을 단련하면서 아이들이 자신감을 찾도록 돕는 게 목표다. 앞서 배우의 길을 걸어간 여섯 살 위 오빠 브랜든 리는 1993년 영화 촬영 도중 총기 오발 사고로 사망했다.
섀넌 리는 타계 50주기를 앞두고 ‘아무튼, 주말’과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아버지 브루스 리의 작품을 여전히 사랑해주고, 그의 유산과 강인함을 떠올리는 분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며 “한국에도 열성팬이 많다는 사실에 감동했다”고 했다. 이소룡 유족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분명 무술인이나 배우로 계속 성장하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성취를 이뤘을 것”이라며 “평생 끊임없는 수련과 자아 실현에 집중한 분”이라고 전했다.
이소룡이 타계할 당시 딸 섀넌 리는 네 살에 불과했다. “너무 어릴 때였지만 아버지와 함께 홍콩의 영화 촬영장에 갔던 게 어렴풋이 기억 난다. 엄마도 항상 내게 ‘너희 아버지는 어떤 순간에도 최선을 다하고 진실되려 노력한 사람이었다’며 아버지를 상기시켜주셨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묻자 “그저 조용히 끌어안고 눈물을 흘릴 것 같다”고 했다.
그래픽=송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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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지 않는 추모 열기
타계 5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서 이소룡 추모 열기가 뜨겁다. ‘와호장룡’을 연출한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은 이소룡의 전기 영화 제작을 추진하고 있다. 그의 아들이 이소룡 역할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3일 미국에선 이소룡이 생전에 구상한 역사 드라마 ‘워리어’가 공개됐다. 1800년대 후반 중국계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박해를 다룬 이 드라마는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영화 투자자들에게 외면받았었다. 최근 그의 일대기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일면서 부활한 것. 배우로서 중요한 무대로 삼은 홍콩에서는 지금 ‘평범을 거부한 사나이, 브루스 리’(헤리티지 박물관)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이소룡 신드롬의 특징은 3대에 걸쳐 그를 추앙한다는 점. 극장 혹은 비디오 영화로 이소룡을 접한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에 이어 디지털로 브루스 리를 만난 MZ 세대가 바통을 이어받듯 ‘덕질’을 하고 있다. 노인이 된 현재 이소룡의 모습을 인공지능(AI)으로 그리거나 피겨를 수집하는 일들이다. 영어 강사 최은아씨는 “이소룡의 액션 연기는 현재 액션 스타들에선 볼 수 없는 날것의 매력으로 가득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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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브루스 리를 넘지 못했다”
50년 전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영화 산업이 발전한 지금, 이소룡이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이유는 결국 그의 영화에 있다. 전찬일 영화 평론가는 ”최근 ‘범죄도시’ 시리즈를 연이어 히트시킨 배우 마동석은 워낙 거구라서 누구든 바로 제압할 거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지만 이소룡은 왜소하고 마른 체형이기 때문에 덩치 큰 서양 배우들을 격파할 때 관객에게 극한의 카타르시스가 터진다”며 “당시 할리우드 영화에서 비열한 악당 역을 주로 맡은 아시아인의 이미지를 180도 바꿔놨다”고 말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연출한 유하 감독은 저서에서 “이소룡 붐에 편승해 만들어진 작품엔 양소룡·여소룡·거룡 등 ‘룡’자가 붙는데, 필사적으로 이소룡의 이미지를 재현하려 애썼다”며 “이소룡이 남기고 간 모든 이미지가 상품화됐다”고 썼다.
그의 무술 철학이 담긴 어록들은 감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를 이소룡 월드로 이끌었다. ‘연습할 때 땀을 많이 흘릴수록 실전에서 피를 적게 흘린다’ ‘나는 만 가지 발차기를 하는 사람보다, 하나의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을 두려워한다’ 같은 명언이 SNS(소셜미디어)에서 퍼지고 있는 것. ‘나루토’ ‘북두의권’ ‘원피스’ 등 인기 애니메이션에는 그를 모델로 한 고독한 무술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소룡 팬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독립영화 감독 신이지씨는 “그의 어록은 허세가 아니라 무술과 영화에 천착한 삶 자체를 보여주기 때문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며 “창, 칼이 난무했던 무협 중심 중국 영화 풍토에서 오로지 몸 하나로 감동을 준 무술의 신(神)”이라고 했다.
그래픽=송윤혜
그래픽=송윤혜
◇한국을 사랑한 이소룡
이소룡 영화가 한국에 상륙한 건 1973년, 그가 사망한 해였다. 그해 7월 27일 서울 피카디리 극장에 걸린 대표작 ‘정무문’을 보러 온 인파는 파고다 공원까지 이어졌다. 한국이소룡기념사업회는 2010년 이날을 ‘브루스 리 데이’로 정하고 매년 이소룡 관련 세미나를 열고 있다. 올해도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은 이소룡의 영화에 많은 영감을 줬다. 출세작 ‘맹룡과강’에서 로마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대련 신을 찍었던 그는 유작 ‘사망유희’에선 속리산 법주사를 무대로 삼았다. 5층 탑을 오르며 하나씩 무림 고수를 해치우는 줄거리. 연타석 흥행 이후 차기작에 대한 부담으로 괴로워하던 그는 법주사의 5층 목조건물인 팔상전 사진을 보고 무릎을 쳤다. 대부분 촬영은 팔상전을 본뜬 홍콩 세트장에서 촬영해 이소룡이 실제로 방한한 적은 없다. 1973년 겨울 한국을 찾을 계획이었지만, 시간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미국 한 바닷가에서 태권도 스승 이준구로부터 발차기를 배우는 이소룡(왼쪽). / 조선일보DB
미국 한 바닷가에서 태권도 스승 이준구로부터 발차기를 배우는 이소룡(왼쪽). / 조선일보DB
이소룡의 발차기도 한국산(産)이다. 자신보다 큰 거구의 서양 배우를 날리던 필살기인 옆차기는 태권도에서 배웠다. 미국 태권도계 대부 이준구 사범이 그의 발차기 스승. 다른 한국 무술 달인들과도 교류가 활발했다. 미국 덴버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해온 바비 김(한국명 김웅경·82)씨는 1969년 워싱턴에서 열린 무술 시범 대회에서 이소룡과 한 무대에 섰다. 바비 김은 최근 본지 통화에서 당시 이소룡의 모습을 어제 일처럼 회고했다. “발차기 동작을 유심히 보던 이소룡이 내게 와서 ‘당신의 뒤돌려차기는 일품’이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무술 동작은 누구보다 날렵했는데 사석에선 굉장히 젠틀(친절)했어요.”
일본인 가라테 고수 역할로 ‘맹룡과강’에 출연한 스턴트 배우 황인식(83)은 홍콩에서 이소룡과 가깝게 지냈다. “이소룡은 홍콩에서 영화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미국 국적 때문에 동료 배우들은 그를 친구로 대하지 않았어요. 홍콩 구룡반도의 한식당에 이소룡을 데려가 그가 좋아하는 갈비를 먹으며 무술 이야기를 즐겁게 나눴죠.”
◇죽음 둘러싼 미스터리
이소룡과 아들 브랜든 리 부자(父子)는 시애틀의 한 공원묘지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 이소룡의 장례식날에는 액션 스타 스티브 매퀸과 척 노리스가 운구했다. 매퀸은 이소룡에게 무술을 배웠고, 노리스는 영화에서 호흡을 맞췄다. 공식 사망 원인은 뇌가 붓는 뇌부종인데, 사인을 둘러싼 루머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소룡이 의식을 잃은 곳이 자택이 아닌 여배우 팅페이의 집이었기 때문. 불륜, 마약 중독뿐 아니라 중국 삼합회에서 보낸 암살자가 살해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근거 없는 추측이 난무하다 보니 과학자들도 나서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제 학술지에는 ‘신장에서 과도한 양의 물을 배설하지 못해 사망했다’고 주장하는 논문이 실렸다. 당시 과도한 훈련으로 약을 달고 살던 이소룡이 체내 수분량 조절에 필요한 나트륨 수치가 극도로 낮아지며 뇌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위키피디아
홍콩에 있는 이소룡 동상.
/위키피디아 홍콩에 있는 이소룡 동상.
다행히 최근 이소룡의 부인 린다 여사가 인터뷰에서 루머(소문)에 대해 일축하며 죽음을 둘러싼 논란은 조금씩 잦아드는 모양새다.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여전히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뼈 있는 당부다. 팩트보다 루머에 경도되는 이 시대에 던지는 이소룡표 ‘아뵤~!’ 기합 같다.
최인준 기자
최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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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삭
2023.07.16 05:46:24
노란색 운동복과 쌍절곤을 유행시킨 // 이소룡의 영화들은 이전과는 전혀다른 // 새로운 영화장르로 길이 기억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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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바우네
2023.07.15 23:39:05
'섀넌 리는 타계 50주기를 앞두고''타계 5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서 이소룡 추모 열기가 뜨겁다'(?) '일 년을 단위로 돌아오는 돌을 세는 단위'는 '주년(周年)', '사람이 죽은 뒤 그 날짜가 해마다 돌아오는 횟수'를 '주기(周忌)'로 나타낸다. '출생'은 '주년', '사망'은 '주기'로 했으면 좋겠다. 즉 '타계 50주년'이 아니라 '타계 5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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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바우네
2023.07.15 16:56:08
'어릴 적 이소룡을 보고 자란 중장년들일까'(?) 40~50대 이상은 '중장년'이 아니라 '중노년'이라 하기 바란다. 서른에서 마흔 안팎의 나이를 '장년(壯年)', 마흔 살 안팎에서 50대까지를 '중년(中年)'이라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장년(壯年)[명사]사람의 일생 중에서, 한창 기운이 왕성하고 활동이 활발한 서른에서 마흔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중년(中年)[명사]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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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8한
2023.07.15 17:48:48
주년은 주기를 포괄한다. 노년은 70대 이상이다. 하루종일 별 설득력없는 지적질에 소일하는게 참 안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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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
88한
2023.07.15 20:11:24
하루종일 수퍼,슈퍼, 구청, 구, 넌센스, 난센스, 음식, 요식 단어 찾아가며 기사마다 기자와 언중을 가르치려고 헛수고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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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88한
2023.07.15 20:09:06
타계 50주년 맞는 표현이다. 쓸모없고 근거없는 지적이다. 오히려 타계 50주기가 소위 겹말이다. 그러나 쓰고 싶은대로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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