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가요 2탄 : 가요계의 원-히트-원더 톱20
가요계의 원-히트-원더 1편 본문 중에서-새삼스럽게 ‘원-히트 원더(One-Hit-Wonder)’에 대한 설명 자체를 길게 할 생각은 없다. ‘짠’하고 등장해 노래 하나를 히트시키고 사라진 가수.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를 했던 노래든,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밤의 대통령’ 노릇을 했던 노래든, 대중들에게 노래 하나 달랑 남기고 훌쩍 떠난 가수들이다. 그 가수들 가운데 아직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이들이 있다. 어떻게 그런 노래를 남기고 그렇게 갑자기 잊혀졌을까, 하는 의문과 지금은 무얼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하는 가수들 말이다.
‘어떤 가요: 우리 곁에 잠시 머물다 사라져버린 가요계의 원-히트-원더 톱20’는 바로 그런 가수들을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한 기획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결코 폄하의 뜻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둔다. 수십 년 동안 나타났다 사라진 수천, 수만의 가수들 가운데 사람들의 기억 속에 단 하나의 노래라도 남기고 추억을 남긴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니까. 결국 이건 음악 듣는 재미를 위한 글이다. 노래들을 추리고 오랜만에 다시 들으면서 나 자신부터 즐거웠고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중략>
10. 황규영 - 나는 문제없어 (1993)
보통 가수들이 노래 제목을 따라간다는 속설이 있긴 하지만, 가끔씩은 거꾸로 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황규영은 행복전도사처럼 주문을 걸듯 "나는 문제없다"는 '통큰 자신감'을 전파했지만, 두 번째 앨범부터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큰 문제가 발생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여전히 "이 세상 위에 내가 있고, 나를 사랑해주는 나의 사람들"도 있었지만, 두 번째 앨범부터 그는 "많이 힘들고 외로"워졌다.
9. 박준하 - 너를 처음 만난 그때 (1992)
문화방송의 드라마 [무동이네 집]를 통해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건 손지창도, 김은정도 아니었다. 무동이는 더더욱 아니었다(무동이는 [전원일기]의 노마보다도 존재감이 없었다!). 바로 드라마 삽입곡을 부른 박준하였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노래의 인기도, 박준하의 인기도 함께 올라갔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는 [무동이네 집]의 종영과 함께 무동이만큼이나 빨리 잊혀졌다. 몇 년 전 그는 동시대에 활동했던 김민우, 박정운, 조정현과 함께 추억마케팅 성격의 공연을 하고 앨범도 발표했지만 거기서도 존재감은 가장 작았다. 그건 결국 히트곡 수의 차이였다. (여담으로, 이 곡을 만든 이는 김성호다. 그는 10위에 있는 '나는 문제없어'와 이 노래, 그리고 더 아래 순위에 자리하고 있는 노래를 만든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였다. 이 노래들뿐 아니라 자신의 노래인 '김성호의 회상'을 비롯해 다섯손가락의 '풍선', 박성신의 '한 번만 더', 박영미의 '나는 외로움 그대는 그리움' 같은 수많은 좋은 노래들을 만들었다. 그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좋은 작곡가였다.)
8. 박정수(소리창조) -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 (1991)
이 노래는 곡도 곡이지만, 가사만으로도 레전드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설령 내가 꼰대 같아 보인다 해도, "홑이불처럼 사각거리며 / 가슴 저미는 그리움 쌓이고 / 세상이 온통 시들었어도 / 깊고 고요한 / 그대 품에서 잠들었으면 / 잠시라도 잠들었으면"이란 가사를 반복해서 읽고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요즘의 "니가 날 원하는 대로 삐리뽐 빼리뽐 / 아아아아아아아 삐리뽐 / 에에에에에에에 빼리뽐 / 아아아아아아아 삐리뽐"이란 가사를 이해해주긴 힘든 일이다. "홑이불처럼 사각거리며"라는 아름다운 모국어와 "삐리뽐 빼리뽐"이라는 외계어 사이의 괴리감은 지구와 명왕성의 거리만큼이나 멀고 크게 느껴진다. 귀로 들을 때도 어처구니없었지만, 이렇게 직접 글로 적고 보니 더 링딩돋는다.
※원곡은 온라인 서비스 불가하여 영상으로 올려 드리는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7. 장현철 - 걸어서 하늘까지 (1993)
1990년대는 최민수의 허세가 통하던 시절이었다. [걸어서 하늘까지] 역시 '싸나이' 최민수를 중심에 놓고 만들어진 드라마였다. 최경식과 신대철이 함께 만든 이 노래는 최민수 특유의 '가오'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드라마 속에서 이 노래가 처음 울려 퍼졌을 때, 이 노래가 히트할 거라고 모두가 예상하지 않았을까? 그만큼 노래의 임팩트는 강했다. 1990년대는 드라마 주제가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다. 이 노래를 비롯해서 [질투], [마지막 승부] 등의 주제가들이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 가운데서 굳이 이 노래를 고른 건, 다른 주제가들이 '표절'이라는 부끄러운 과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표절 시비가 일면 교묘하게 그 부분만 고쳐서 다시 부르던 부끄러운 시절이었다. 그런 편법으로 주제가를 불러 인기를 얻었던 어떤 가수는 지금도 행사를 뛰며 그때의 노래를 부끄럼 없이 부르고 다닌다. 격노할 일이다. 이래선 공정사회를 이룰 수가 없다구!
6. 육각수 - 흥보가 기가 막혀 (1995)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나, 가요제를 통해 나온 노래들은 태생적으로 대부분 원-히트-원더일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요제를 통해 나온 수많은 노래들 가운데 대표곡으로 '흥보가 기가 막혀'를 고른 건은 이 노래가 그나마 최근의 가요제 노래들 가운데 가장 인기 있었던 노래기 때문이다. 이제는 학예회 수준으로 전락한 (대학)가요제지만(실제로 지금의 가요제가 학예회보다 수준이 높다고 할 만한 근거는 뭐가 있는가?), 1995년 당시도 위상이나 인기가 몰락해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육각수의 노래는 신선했고, 팀 이름처럼 깐깐했다. 강병철과 삼태기와 홍서범('김삿갓')의 뒤를 잇는 '민속 그루브'라는 세간의 평가는 어느 정도 농이 섞여있는 표현이기도 했지만 또 그렇다고 마냥 농담으로만 치부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노래에 담긴 코믹한 이미지를 탈피하려 했는지, 데뷔 앨범에서 '다시'란 발라드를 들고 나왔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다시'는 주영훈이 만든 괜찮은 발라드였지만 그런 '시리어스'한 분위기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기엔 '흥보가 기가 막혀'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마치 주영훈이 부르는 발라드 같았다.
5. 벅 - 맨발의 청춘 (1997)
'맨발의 청춘'만큼 생명력이 긴 댄스곡이 또 있을까? 발표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이 노래는 아직까지도 여기저기서 많이 들린다. 특히 운동 경기의 응원곡으로는 '아파트'나 '그대에게'의 위상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곡의 절정부에서 "와다다다다다" 하는 부분은 그곳이 경기장이든, 나이트클럽이든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다. "와다다다다다"에서 알 수 있듯 약간의 ‘싼티’가 이 노래의 매력이기도 한데, 노래방에서 좀 더 ‘날티’ 나게 부른다면 누구나 붐이 될 수 있게 해주는 마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물론 노래 시작 전 "나인티나인티나인"을 외쳐주면 더욱 좋을 것이다.
4. 최호섭 - 세월이 가면 (1988)
[로보트 태권브이]의 주제가를 불렀던 소년은 성인이 되어 '세월이 가면'이란 명곡을 들고 나타났다. 음악가족 출신답게 작사는 형인 최명섭이, 작곡은 동생인 최귀섭이 해준 노래였다(최명섭은 대학가요제가 낳은 명곡인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를 만들기도 했다). 누구네처럼 예산을 몰아주지 않아도 되는 의좋은 형제였다. 막내 최희섭은 야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다(물론 뻥이다). 1988년에 참 많이도 듣고 불렀던 노래다. 그 시절이 아름다웠던 이유는 '세월이 가면'처럼 모든 세대가 함께 듣고 부르는 노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정석의 '사랑하기에'나 조정현의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같은 노래들이 모두 그런 노래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전통은 1990년대 초중반을 끝으로 맥이 끊겼다. 그리고 최호섭의 가수 생활 역시 성대결절로 인해 얼마 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3. 임종환 - 그냥 걸었어 (1994)
1994년에 한국에 처음 들른 외국인이 있다면 그는 한국을 자메이카의 뒤를 잇는 '레게의 나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김건모의 '핑계'와 임종환의 '그냥 걸었어'로 이어진 레게 리듬에 수많은 이들이 흐느적거렸다. 그 가운데 임종환의 성공은 더 극적이었다. 임종환은 오랜 무명의 시간 끝에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곡을 만든 김준기는 벗님들 시절부터 꿈꿔온 레게의 대중화를 임종환을 통해 이뤄냈다. 하지만 '거리를' 걸은 건지, '전화를' 걸은 건지 헷갈려 하는 동안 영광의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버렸다. 이후 계속된 실패 끝에 이민을 가기도 했던 그는 올해 5월, 45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2. 김지연 - 찬바람이 불면 (1990)
지금 30대 정도의 남자들은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 출연하던 이미연이 당시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그리고 '청순가련'이란 말은 오직 이미연을 위해서만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심지어 그때는 코도 커 보이지 않았다. 김지연의 '찬바람이 불면'은 온전히 그런 '미연甲'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였다(이 노래 역시 앞에서 언급한 김성호가 만들었다). 극중에서 이미연이 슬퍼할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슬퍼하면서 밥을 먹을 때나, 이미연이 등장하는 장면에선 어김없이 이 노래가 흘러 나왔다. 이미연이 연기한 캐릭터와 이 노래의 인기는 1980년대식 낭만의 마지막 절정이었다.
※원곡은 온라인 서비스가 불가하여 가장 원곡에 가까운 곡으로 올려 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이범학 - 이별 아닌 이별 (1991)
이건 정말 미스터리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까맣게 잊혀질 수 있을까? 이 노래를 부를 때의 인기와 '몰래카메라'의 임팩트는 대체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이듬해 발표한 2집의 '마음의 거리'가 안 좋은 노래도 아니었다. '이별 아닌 이별'의 작곡자인 오태호가 다시 만들어준 '마음의 거리'는 대중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감성 발라드였다. 거기에 외형적으로 키도 훤칠하고 성격도 착해 보이는 훈남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범학에게 남겨진 건 '이별 아닌 이별'과 '새발의 피'뿐이다. 대체 왜? 몇 년 동안이나 이유를 생각해봤지만 뚜렷한 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PD수첩]과 [그것이 알고 싶다], [추적 60분]의 피디들이 힘을 합친다면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있을까? [세상에 이럴 수가]가 더 적합한 건 아닐까? 이건 어쩌면 신의 영역일 지도 모르겠다. tvN의 심령 솔루션 프로그램 [엑소시스트]라면 이 미스터리를 해결해줄 수 있을까?
첫댓글 1990년대 전후의 노래가사말은...요즈음의 노래가사말보다...깊이도 있고.함축성을 가진 노래말이라 여겨지네요.
부드럽고도 은유적인 가사말이...공감이 됩니다.
곡마다...클릭해보세요. 아름다운멜로디와 가슴울리는 노래말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