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예찬은 하지 않겠다 이미 청춘을 겪어밨고 나는 법정노인이 되었다 목화를 만난. 그해는 용두산공원 근처. 꽂꽂이를 배우러 갔고 목화는 남자랑 열애중이였다 7년만에 만난거 같다 나도 모르게. 반가워서 쌍ㅡㅡㅡㅡ하는 순간 빛의 속도로 다가와 내게 입틀막을. 하였다
저 남자는 내 이름이 쌍련인거 모른다 아ㅡ마따 니는 목화잖아
우린 유쾌하게. 헤어졌고 매주 토요일 저녁 꽂꽂이하는. 장소를 목화는. 내가 문을열고 갈때까지 남자의 팔짱을 끼고 손을. 흔들었다
40대에. 이른 우리는 홈 커밍데이 소식을 받았고 설레는 마응 으로 동창회 갔었다 우리의 목화는 세월이 주는 푸근함으로 넙대대하고 푸짐한 중년여성이였고 쌍커풀 수술을 해 눈매는 또렸해 졌다 그런데 김 목화가 아닌 김 젬마 나보고 하는말 아무리. 목화라 해도 학교를 떠난 사회의 냉혹함은 ㅎ ㅎ 결혼식장서도 본명 신혼여행 제주도가는 비행기 탑승전 주민등록증에도 김 쌍련이라 천주교에 귀의 세례명이 젬마였다
그때는 안되고 지금은 된다?
어쩌면 그때는 되고 지금은 안된다
살아가는 일은 녹녹치 않지 지금은 누구의 할머니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름 단발머리 소녀들은 흰머리 소녀로 버거운 시간을 버틴. 거룩한 헌신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