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행5:41)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영국의 뛰어난 비평가이자 수필가인
체스터어튼(Gilbert K. Chesterton)은, {행복}에 대해서
이런 내용의 글을 남겼습니다.
"행복은, 슬픔보다 진지하고, 슬픔보다 절실하다.
그저 가볍고 재미있는 일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은,
행복의 깊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진정한 행복은
경박한 웃음이 아니라, 진지한 노력이기 때문이다."
언뜻 어느 수필가의 비논리적인 글처럼 보여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것이 우리가 흔히 경험하게 되는
{인생의 역설(逆說:아이러니)}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팔복을 가르치실 때에도,
이렇게 역설적인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3절과 4절을 보십시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이어지는 6절 말씀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여기 산상수훈에 사용된 {복이 있다}는 말은,
우리가 말하는 행복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과연 어떤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사람과 애통하는 사람,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것은 역설적인 진리의 교훈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하나님
밖에 도와주실 분이 없음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애통해 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된 자신의 불의를
슬퍼하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서는 것을 소망하여,
다른 사람을 돕고 수고하는 "성실한 마음"입니다.
행복을 추구하며 사십니까?
행복을 소망하며 사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의를 소망하며사십시오.
위엣 것을 바라는 마음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가운데,
하늘의 일을 소망하며 사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