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설악산 철쭉제 다녀온 뒤 경쾌한 봄 분위기를 노래에 담았습니다”
설악가 2절을 작사한 이정훈씨의 후배 허재형씨.
이정훈씨가 만든 ‘설악가’는 산악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산노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산
설악산에 대한 산꾼들의 애정이 잘 표현된 덕분이다. 이 곡은 원래 1969년 설악산에서 일어난
‘10동지 조난사고’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장중한 노래였다. 하지만 ‘저멀리 능선 위에 철쭉꽃 필
때에’로 시작하는 2절 가사는 이정훈씨의 후배 허재형씨가 썼다고 한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허재형(65)씨는 이정훈씨의 중동고산악부와 고령산악회 2년 후배로 어릴
때부터 막역하게 지낸 형제 같은 산악인이다. 설악가를 만들 때도 서울 청진동 이정훈씨의 집
뒷방에서 함께 기타 줄을 튕기며 음을 맞췄다. 누구보다 이정훈씨를 잘 알던 그에게 우리나라
산꾼들이 사랑하는 국민 산노래 ‘설악가’ 탄생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정훈씨의 중동고, 고령산악회 후배
‘설악가’는 1969년 2월 14일 한국산악회 해외원정등반 훈련단이 설악산에서 눈사태에 휩쓸려
10명이 사망한 비극적인 사건을 접하고 이정훈씨가 그해 가을 즈음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연세대학교를 다니며 고령산악회에서 활동하던 이정훈씨는 구조대로 현장에 투입됐다.
하지만 그가 천불동계곡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고가 일어난 지 한참 뒤였다.
“제가 고3이었으니까 정훈이 형은 졸업하고 2년쯤 지난 때였을 겁니다. 사고 소식이 전해진 뒤
구조대로 가야 한다고 급히 떠났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서 설악산을 가려면
꼬박 하루가 걸렸어요. 속초를 거쳐 비선대에 도착할 즈음 달이 떴고, 정훈이 형은 거기서 10동지가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에 무척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습니다. 그때 느낀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두려움을 떠올리며 가사를 먼저 썼고, 기타로 대강 음을 맞춰 설악가의 초안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노래로 완성된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난 후였어요.”
책상 서랍 속에서 잠자던 설악가는 이듬해 봄 이정훈씨와 허재형씨가 제1회 설악산 철쭉제를
다녀온 뒤 다시 깨어나게 된다. 예전에 만들다 만 추모곡 생각이 난 이정훈씨가 악보를 꺼내
음을 다듬고, 허재형씨가 2절 가사를 써서 붙여 하나의 완벽한 노래로 탄생하게 된다.
“애초에 설악가는 무척 느리고 무거운 노래였습니다. 사고를 당한 10동지를 추모하는 곡이니
당연했지요. 하지만 즐겨 부르기에는 너무 무겁다는 생각에 제가 정훈이형에게 ‘1절이 겨울이니
봄, 여름, 가을 사계절 가사를 붙이면 좋겠다’고 제안했어요. 그랬더니 ‘네가 한 번 만들어봐’
하더군요. 그래서 철쭉제를 다녀온 기억을 살려 곧바로 2절 가사를 썼습니다.”
허씨는 봄을 노래한 2절에 이어 여름과 가을 이야기를 담은 3절, 4절까지 쓰려 했다. 하지만
당시 산악계 선후배들에게 물어보니 너무 길게 가면 늘어지니 2절로 끝내자는 의견이 많았다.
이것이 설악가의 가사가 2절로 끝나게 된 연유다.
“정훈이 형이 쓴 1절과 제가 쓴 2절은 완전히 상반된 내용과 분위기를 담고 있어요. 1절이
허씨는 요즘 사람들이 부르는 설악가를 들어보면 처음과 달리 일부 변질된 부분이 있다고
“설악가가 사람들 앞에서 처음 공개된 것은 1971년 이대여자대학교 사범대학교 산악부 하계
고된 산행을 끝낸 후라 그랬는지 너무들 감동하더군요. 특히 후렴구 ‘잘 있어라 설악아 내 다시
설악가는 1970년에 탄생해 50년 가까이 된 옛 노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생명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