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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예배 말씀 녹화를 못해 올리지지 못했습니다.)
[2021년 7월 25일, 성령강림 후 제9주]
[*. 성경, 찬송가를 준비합니다.]
*.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2021년 7월 25일, 성령강림 후 제9주입니다. 함께 인사 나누고 예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
예수님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
성령님 안녕하세요, 평안합니다. ~
*. 다 함께 조용한 기도를 함으로 성령강림 후 제9주 주일예배를 시작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지난 한 주간 주님의 은혜 가운데 지켜 주시고, 오늘 거룩한 주일 맞이하여 예배 가운데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온 몸과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주님 기뻐 받으실 신령과 진정의 예배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배 가운데 임재하셔서 영광 받아 주시고, 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죄와 허물이 사함을 얻게 하시고,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힘과 능력과 위로와 소망을 얻게 하옵소서. 예배의 처음부터 나중까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였습니다. 아멘.
*. 찬송가 14장 (주 우리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성시교독은 시편 145:10~18절입니다. 한 절씩 교독합니다. (성경)
10 여호와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하리이다
11 그들이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업적을 일러서
12 주의 업적과 주의 나라의 위엄 있는 영광을 인생들에게 알게 하리이다
13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14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는도다
15 모든 사람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16 손을 펴사 1)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
17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
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 함께 기도합니다. (데이비드 애덤, David Adam)
(영상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신 분을 위한 기도문입니다)
세상의 빛이여,
우리 삶 깊은 곳에 들어 오소서.
어둡고 감춰진 곳들로 들어오소서.
우리 기억의 창고에서 거니소서.
과거의 숨겨진 비밀들을 들으소서.
우리 존재의 매우 깊은 곳을 헤아리소서.
침묵의 시간들을 통해 임재하시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빛으로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오늘 나눌 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서 3:14~21절입니다. (성경)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 특별 찬양- 499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
*. 말씀 선포: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1. 들어가는 말
오늘은 성령강림 후 제9주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성령, 믿음, 사랑”입니다. (자세히 보면 삼위의 지평입니다. 성부와 성자의 지평에 믿음과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제에서 조금 더 나가면, ‘성령으로 속사람을 강건케 하고, 믿음으로 마음에 그리스도를 모시며, 사랑으로 삶 속에 드러낸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를 토대로 세 가지 기도문을 만들어 봅니다. 1)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사랑으로 제 삶에 드러냅니다. 아멘. 2)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제 마음에 모십니다. 아멘. 3)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제 속사람을 강건케 합니다. 아멘. 이 세 기도문을 새기는 것으로 오늘 말씀을 나눕니다.
2. 아버지라 부르는 바울
지난 주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각성하신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임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자녀)이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니, 곧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ref. 로마서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늘 ‘아버지’라 부르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떠나시고 나서 초대교회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자연스럽게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조금 어색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깨달음이 아직 그들에게 무르익지 못한 까닭입니다. 결국 예수님 제자들의 초기 행적에서 하나님에 대한 호칭은 아버지에서 다시 하나님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에 대하여 언급하신 아버지란 호칭은 사도행전 1:4절과 7절에 나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1:4), 그리고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1:7)”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관련하여 아버지를 언급한 부분이 2:33절입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2:33)” ‘아버지’라 부른 사도행전의 이 세 구절은 모두 예수님과 관련한 하나님의 호칭입니다. 그리고 이 외에는 사도행전에서 하나님을 부를 때 안타깝게도 ‘아버지’라는 호칭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라고 부를 뿐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복음의 핵심을 놓치지 않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바울의 중요한 공적 중의 하나가 됩니다. 갈라디아서 4:6입니다. “너희가 아들(자녀)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8:6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에베소서 4:6입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처럼) 바울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아버지’ 앞에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예수님의 깨달음에 대한 바울의 놀라운 성찰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교회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풍성하고 영원무궁할 것을 말하면서, 세 가지를 (자녀로서) 아버지께 기도 드립니다. 이 세가지는 삼위의 지평 속에 그 역할을 나타내는데, 성령의 지평, 곧 성령으로 인해서 네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케 되라고, 성부의 지평, 곧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네 마음에 모시라고, 성자의 지평, 곧 사랑을 네 삶 속에서 드러내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믿음, 그리고 성령의 순으로 그 내용을 살펴봅니다.
3. 사랑, 믿음, 성령
3-1. 사랑: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사랑으로 제 삶에 드러냅니다.”
17b-19절입니다. “…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랑은 이 땅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가장 근본이 되는 덕목입니다. 나무의 삶이 건강 하려면 뿌리가 땅에 견고하게 박히고 터가 굳어져야 하듯, 그리스도인의 삶이 행복하려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삶 속에 깊이 뿌리내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의 경지를 깨닫고 모든 성도들과 함께 충만한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은하계 안에는 우리가 사는 태양계가 천억 개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주 안에는 천억 개의 태양계를 담고 있는 은하계가 또 수천 억 개가 있다고 합니다. 과연 하나님 창조하신 이 우주의 크기를 가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나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의 경지가 이와 같음을 깨닫고, 우리의 삶에서 그 사랑을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계명이며,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3:34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리고 요한복음 13:35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더 나아가 사랑은 우리의 허물도 덮어줍니다. 베드로전서 4:8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자신을 드러내듯이, 하나님의 진리는 사랑으로 이 땅에 이렇듯 드러나는 것입니다.
사랑과 관련하여 네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1) 사랑을 더럽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을 더럽히는 사람은 사랑을 자기중심적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인 것 같으나 오히려 사랑을 더럽히고 맙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오히려 괴로움을 더해주는 사람입니다. 2) 사랑을 말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 자체가 말에 있지 않음에도 실천이 말을 못 좇아가는 경우입니다.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목사, 선생, 강연자 등)이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3) 사랑에 의지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으로 사랑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한 발 더 나아가면, 4) 사랑 그 자체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이며, 우리가 바라보아야 이상(archetype)이 됩니다.
사랑의 기도문을 만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사랑으로 제 삶에 드러냅니다.” (세 번 반복합니다.)
3-2. 믿음: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제 마음에 모십니다..”
17a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믿음은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가장 근본이 되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이릅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 속에 모신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하는 가르침의 의미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때/그곳’이 아니라 ‘지금/이곳’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나에게 있는 ‘지금/이곳’보다는 ‘그때/그곳’을 동경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마치 시골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하고, 도시 사람들은 시골의 자연적인 풍경과 삶을 동경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저 아프리카 오지에 사는 사람과 문명이 발달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이승과 저승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볼 때 저승이지, 저승의 세계에 가면 곧 이승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두가 다 ‘지금/이곳’이지, ‘그때/그곳’은 개념적으로만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태복음 5:3)”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을 가난하게 한다는 것은 욕망을 내려 놓게 하고, 현존(現存), 곧 현재 자신의 참 모습을 보게 하여 ‘지금/이곳’에 만족하게 합니다. 곧 하늘 나라(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이곳’에서 심령을 가난하게 하면 천국인 것이고, 심령을 가난하게 못하면 지옥인 것입니다. 이를 좌우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의 기도문을 만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제 마음에 모십니다…” (세 번 반복합니다.)
3-3. 성령: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제 속사람을 강건케 합니다.”
16b입니다. “…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
성령은 우리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하는 가장 근본적인 것입니다.
우리 몸의 내부는 뼈와 근육, 신경이 있고, 오장육부가 있고, 피와 땀같은 수분이 있고, 아홉 구멍이 있어 각종 분비물이 나옵니다. 머리 속은 뇌와 신경, 뇌수로 차 있습니다. 이런 부분도 속사람이라면 속사람입니다 만은 사실, 속을 헤집고 들어가 보면 보이는 부분이 됩니다. 이런 속사람의 부분을 강건하게 하는 것은 그와 연결된 겉 부분을 잘 운동해 주면 됩니다.
속을 뒤져도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고, 느낌 혹은 정신 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에너지, 혹은 기(氣)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으로 우리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하려면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합니다. 첫째는 전체를 통찰해야 합니다. 속과 겉, 나와 타자, 나와 온 우주 만물 등등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부와 성자의 두 지평을 통찰해야 합니다. 둘째는 성령의 하시는 일로, 그 두 지평, 곧 겉과 속, 나와 타자, 나와 온 우주 만물의 연결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 연결점은 합일(合一)을 향해 가는 첫 걸음이 됩니다. 셋째는 둘의 연결 속에서 찾은 합일(合一)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는 많은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성령의 기도문을 만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제 속사람을 강건케 합니다.” (세 번 반복합니다.)
4. 훈련
앞의 세 가지 기도문을 놓고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케 하는 훈련을 해 봅니다.
첫째,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힙니다) 숨을 깊이 들이 쉬며 두 눈을 두 눈썹 사이 뒤(송과체)로 모으며 뒤로 당겨줍니다. 마치 새총을 당기듯이 당겨줍니다. 둘째, 숨을 깊이 내 쉬면서 두 눈썹 사이 뒤로 당겨진 눈을 한 곳에 집중하며 풀어줍니다. 마치 당겨진 새총을 한 곳을 타깃으로 하여 쏘는것과 같습니다. 이 동작이 숙달되면, 두 눈(새총)을 뒤로 당길 때 기도문을 하나를 외우고, 한 곳에 집중하여 풀어줄 때(새총을 쏠 때에) 아~ 멘하고 마무리 합니다.
[*. 1)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사랑으로 제 삶에 드러냅니다.” / (아멘)
2)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제 마음에 모십니다..” / (아멘)
3)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제 속사람을 강건케 합니다.” / (아멘) ]
(*. 여기서 숙달되어 조금 더 나아가면, 한 기도문과 한 기도문 사이에 예수님의 여러 말씀이나 행적들을 마음 속에 새기면 좋습니다. 사랑의 기도문을 할 때는 사랑과 관련된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믿음의 기도문을 할 때는 믿음과 관련된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성령의 기도문을 할 때는 성령과 관련된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떠올려 함께 묵상하면 더욱 좋습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랑, 믿음, 성령의 기도문으로 각각 10분씩 혹은 20분씩 반복해서 기도합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 전체에 삼위 하나님의 은총이 깃들 것입니다. ”
5. 나가는 말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가르침, ‘하나님의 자녀’를 놓치지 않았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기도의 내용도 복음의 3박자를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속사람을 강건케 할 것과,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모실 것과,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하나님의 크고 넓은 사랑을 삶의 자리에서 드러내라는 기도입니다.
본문에 맞춘, 세 개의 기도문을 몸의 훈련에 담아 해 봅니다. 새총을 당겼다 쏘는 것처럼, 눈을 안으로 당겼다 (한 초점에) 풀었다 하면서 각 10분씩 혹은 각 20분씩 기도합니다.
1)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사랑으로 제 삶에 드러냅니다.” (아멘.)
2)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제 마음에 모십니다..” (아멘.)
3)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제 속사람을 강건케 합니다.” (아멘).
삼위 하나님의 은총이, 의식 혹은 무의식 속에, 여러분 온 몸과 마음과 영혼 가운데 깃들게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나라 온전히 누려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찬송가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찬송가 50장 3절 부르며 헌금합니다. (찬송가) / *. 헌금 기도합니다. (#. 헌금은 따로 잘 보관했다가 교회에서 예배할 때 함께 봉헌합니다)]
*. 헌금 기도합니다.
예배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예물을 정성껏 모아 주님 앞에 드립니다. 이 땅 위에 주의 나라 세워가는 거룩한 사역을 위해서 온전하고, 아름답게 쓰이는 예물 되게 하시고, 귀한 열매 맺어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예물에 담긴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헤아려 살펴 주셔서, 주님의 뜻 가운데 응답 받게 하옵소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주의 성령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저희 있는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찬송가 335장 (크고 놀라운 평화가)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