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안중근 장군!
그가 총부리를 겨눈 것은 단지 이토 히로부미뿐이었을까?
이삭빛시인
영웅, 안중근 장군!
그가 총부리를 겨눈 것은 단지 이토 히로부미뿐이었을까?
이삭빛시인
안중근(安重根, 1879년 9월 2일 ~ 1910년 3월 26일)장군(의사) 순국 기념일, 113(2023)주기를 맞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되새겨 본다.
이 말은 독립운동가 신채호, 윈스턴 처칠이 한 말로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는 준엄함을 일깨우는 의미이다.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지만, 일제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혀, 말할 수 없는 치욕의 날들을 견뎌야만 했던 일제 치하 35(1945 - 1910)년, 지금까지도 단절됐던 역사는 일제의 잔재를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백암 박은식 선생이 한국통사에서 언급한 내용처럼 다시 한번 역사의 정신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역사는 신(神)이오, 나라는 형(形)이다’라는 말로 ‘언제고 다시 만들어질 수 있는 형체보다는 정신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는 ‘역사만 잊지 않으면 망한 나라도 다시 세울 수 있다’는 뜻으로 새로운 자세로 유비무환 정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
과거, 우리 민족이 일제에 의해 일어났던 전쟁처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전투기를 집결시키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지금 일어나서는 안 될 전쟁이 우리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에 회심의 일격을 가할 것이라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는 기사를 접하며, 다시 한번 우리 민족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되묻게 한다.
또 지역 간 대립과 정치적 싸움 및 권력다툼은 국가가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며, 올바른 역사의식은 천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필자는 안중근 장군 전주기념관(대표이사 강동호, 관장 노상근, 원장 김영붕)명예관장으로 ‘시와 역사’를 통한 인문학 교육강사(시인)로 노상근관장님(현석 시활동가)과 함께 교육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의 정신과 역사 정신은 우리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창의적인 인문학적 사고를 지니게 만든다.
이에 인문학적 사고는 작은 씨앗 하나에도 생명을 불어넣게 만들며, 그 정신은 생명이라는 통로를 통해 깊게 숨 쉬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언어 하나도 허투로 다뤄선 안 된다. 이에 우리 민족의 일제치하 '을사보호조약'과 '한일합방'이라는 언어를 사용해 왔는데 무엇이 '보호'라는 말인가? 강압에 의한 치욕적인 조약을 우리가 조약 명칭에 '보호'라는 언어로 사용할 수 있는가? 사용해 선 당연히 안된다.
그리고 '을사조약'이 아닌 '을사늑약'이라고 불러야 한다.
'늑약'은 강제로 억눌러서 이루어진 조약으로 을사년에 일어난 치욕의 조약을 의미한다. '한일합방'이라는 명칭도 '합방'의 의미가 나라가 합쳐졌다는 일제의 입장에서 불리던 명칭으로 경술년의 나라의 치욕(국치)이라는 '경술국치'로 명명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중근 장군에 대한 명칭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난 1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안중근 의사’라는 호칭을 써 왔다. 당연히 의사도 맞다. ‘의사((義死))’는 직위나 계급을 뜻하는 일반 호칭이 아닌 ‘존칭’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다만 안중근 장군은 하얼빈 의거 이후 일제법정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신분을 일관되게 '대한의군 참모중장 독립특파대장 안중근'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하얼빈 특공작전을 지휘한 총책임자라는 의미다.
안중군 장군은 법정 최후진술에서도 개인 자격이 아닌 독립전쟁 중에 조선 원흉의 상징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이니 자신을 만국공법(국제법)에 의해 포로로 대접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제법정은 사냥개 취급하며 격하시키고 사형을 선고했다.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장군은 순국직전, '위국헌신 군인본분' (爲國獻身 軍人本分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 이라는 글을 남기고 역사의 형장으로 사라졌다.
안중근 장군은 대한민국에서 전 세계에 일본의 잘못을 알리고, 일본을 벌한 의사(義士)로 추앙받고 있는 영웅으로서 항일 운동가 가운데 가장 많이 칭송되는 위대한 독립운동가이다. 일제에 고통받는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을 품고, 일본의 침략을 이끌던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하는 의거를 행한 것이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존경받는 영웅, 안중근, 그가 총부리를 겨눈 것은 단지 이토 히로부미뿐이었을까?
질문을 던지며, 필자의 ‘아들(딸)을 위한 서시’를 안중근 장군 후세인 필자를 포함, 우리 모두에게 이글을 바친다.
아들아, 아들아/아들아, 아들아//
삶을 꽃처럼 살아라/바람의 친구도 되어주고/봄의 싹으로도 돋아나/흙과도 하나 되는/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되/가장 자유롭게 살아라//
영혼이 맑아서/그 누구도 넘볼 수 없되/오직 사랑으로 뛰어나서/하늘보다 푸르고/태양보다 뜨거운/열정으로 살아라//
이는 네 희망이 길을 안내해 줄 것이다/수십 번 넘어져도 넘어지지 않았던/첫 마음으로 일어서라//
아들아, 아들아!/세상은 네 마음이 지배할 것이다/발밑에서 돋아나는 간절한 사랑으로 살아가라// - ‘이삭빛의 아들(딸)을 위한 서시’ 전문
이 시(詩)는 특별히 필자에게 깊은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의 평화정신을 세계에 알린 시인의 성지, 시와 숲길 공원 내에 일제에 항거한 한용운, 윤동주시인 등을 모신 항일 민족시인 추모분향단이 위치한 곳에 필자의 시가 선정되어 시비로 설립됐다.
이에 세계평화가 이뤄지길 기도하는 글로서 이 시를 올리며, 안중근장군의 정신이 세세토록 함께하길 기원하며 끝을 맺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