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사랑의 치유 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철호 목사
본문: 전 12:13~14
제목: 하나님을 경외하라!
하나님이 가장 아끼고 찾으시는 사람은 바로,
주인 되신 그분의 이름을 높이고 경외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을 항상 바라보며 그분의 광대하심을 묵상해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사람들의 양심을 속박하시며,
방백들의 심령을 꺾으신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엄하게도 하나님이 자기와 같은 줄로 안다.
기도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구하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지혜의 근본이자 경건함의 근원이다.
기도로 부귀를 구하는 사람도 있고 지식을 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간절히 구해야 한다.
-토마스 왓슨,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중에서
경외라는 말은 히브리어로“야레 yareh”라고 합니다.
“야레 yareh”란 말의 뜻은 (두려워하다, 공경하다, 귀를 기울이다.)라는 의미와 함께
“말을 듣고 순종하여 행한다.”라는 뜻으로도 해석을 합니다.
신 4:10절에서 하나님의 종 모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라”라고
그렇습니다.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에게 몸을 주신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람의 분분인 것입니다.
공경한다는 말은 효도와 동의어입니다.
공경하고 효도 하라고 하니까 좋은 집, 좋은 옷,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라는 뜻이 아니라
부모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부모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공경과 효도입니다.
여러분도 익히 아시다시피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몸을 주신 부모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국적과 인종을 넘어 하나님께로 생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은 사람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며,
그리고 삶으로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 사람으로서 분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시는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지음 받은 피조물들의 본분인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으로 구원 받은 우리가 하나 알아 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공포와 같은 두려움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출 20:20절에서 모세는 이렇게 기록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 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그렇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범죄를 짓지 않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는 출 19:12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그리고 출 19:12절에서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아담의 후손은 모두가 죄인입니다.
이러한 죄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모세는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 것이 바로 경외입니다.
이는 마치 범죄자가 멀리서 오는 경찰관이나 또는 싸이렌을 울리고 자기 쪽으로 오는
경찰차를 보면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밖에도 구약 곳곳에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는데
이 중 몇 구절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신 4:10절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는 율법을 들을 때 생긴다. 라고 하였으며,
시 111:10, 잠 1:7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 된다. 라고 하였으며,
잠 14:27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생명의 샘이다. 라고 하였으며,
사 33:6절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사람의 보배가 된다. 라고 하였으며,
시 22:22~23절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인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 103:13절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신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기자는 행 10:2~35절에서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와 구제를 한 고넬료를 소개 하면서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이다.
이러한 고넬료를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라고
그리고 바울은 고후 7:1절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을 온전히 이루게 된다. 라고 하였으며,
빌 2:12절에서는 아래와 같이 권면 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현대어 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구원 받은 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옳은 일에 더욱더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지극한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일에는
손을 대지 마십시오!”라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도 익히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신 유일신이십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는 창세기 1:1~2절에서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라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라는 말씀의 원 뜻은 알을 품다. 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어미 새가 새 생명의 탄생을 열망하며 알을 소중히 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지음 받을 사람의 삶의 터전을 조성하시기 위해 깊은 관심으로
포근하고 소중하게 돌보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셨습니다.
창 2: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그렇습니다.
생령이 된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 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하신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영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영적인 단절 사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인류 대표적인 죄인이 되었고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가 죄인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죄인이 된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영 앞에 설 수 없으며 볼 수도 없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시편 14:1절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 도다.”라고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여러분!
인간의 속성은 자신들의 눈에 보이고, 자신들이 느끼는 것만을 믿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생각입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 세상에는 존재 하는 것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은 보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인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 합니다.
생명 유지 활동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산소가 그것이며,
그리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전기나 전파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산소가 있다는 것은 이 땅에 살아 있는 생명을 통해서 증명이 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나 전파 등은 라디오, TV 같은 것을 통해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이는 다른 표현으로 사람은 눈에 보이는 물질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 하신 하나님의 영(말씀)의 인도함으로 산다는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사시는 여러분!
라디오, TV 같은 것을 통해 전기나 전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영 또한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전기나 전파를 어떠한 장치를 통해 볼 수 있듯이
영이신 하나님을 보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드러내는 사람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요일 4:12절에서 요한은 아래와 같이 권면을 합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여러분!
경외라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은 겸손과 순종과 사랑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하나님을 경외 한다는 것은 사랑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인다는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인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 산다는 뜻으로
전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므로 경외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면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시는 여러분!
아담의 후손들의 속성은 자신이 누구로 부터 구속 받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갓난아이가 두 발로 걷고 그리고 말문이 열리면 자신의 의지대로 살려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려 머리가 커지고 세상을 알면 부모에게 간섭 받지 않으려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머리가 커지고 세상 물정을 알 때가 되면 부모의 곁을 떠나 살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눅 15:11~32절은 탕자의 이야기입니다.
그 중 12~13절입니다.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예수님의 이 비유는 이런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간섭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아 보겠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을 사는 모든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들 마음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우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한번 생각 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왜!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떠나 살고 싶어 하는가를 말입니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분명히 계시기 때문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강한 부정은 곧 긍정이라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왜 하나님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은 계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알기 때문에 자기 자신 안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간섭을 피해 떠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시는 여러분!
하나님을 없다고 하는 사람은 사람의 모양을 한 짐승이라고 저는 말합니다.
분명히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우주 만물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 사람도, 하나님에 말씀이 싫어서 멀리 떠난 사람도
그리고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 날 수는 없습니다.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나서 절대 살 수 없습니다.
섭리라는 말은 이치에 맞게 다스림을 받는 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은 각자 이치에 맞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하나님의 다스림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계시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의 하나님 경외란 마음과 정성과 뜻과
그리고 생명을 다하여 예배 하는 것이 경외라는 단어가 주는 뜻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 경외란 말은 무섭고 두려운 말일 수 있으나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악으로부터 구원 받은 우리에게 있어서
경외란 말은“하나님께 예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죄를 짓고 죄가 드러날까 봐서 숨어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은 무섭고 두려운 신일 것이나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사시는 여러분!
여러분이 누군가 정말 사랑 한다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함부로 행동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누군가 정말 사랑 한다면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설 때에 두렵고 떨립니다.
다시 말씀드려 이런 뜻입니다.
사랑 하는 사람 앞에 설 때 흐트러진 모습으로 서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설 때는 머리와 옷차림을 단정하게 할 것이며,
그리고 말과 행동 또한 삼가서 할 것입니다.
고전 13장을 사랑장이라고 합니다.
저는 13:5절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한다면 무례히 행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경외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도 자신이 사랑하는 하나님 앞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과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그리고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고 삼가 조심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경외하는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 아버지로 몹시 사랑을 받고 아버지를 사랑하며 살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새총을 몹시 갖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던 소년이 새 총을 갖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처음에 새 총을 고정 된 나무나 바위를 향해 쏘았습니다.
그러던 소년은 차츰 움직이는 물체를 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소년은 마당에서 먹이를 먹으며 돌아다니는 거위를 발견 하고
그 거위를 향해 새 총을 쏘아 보기로 하고 작은 돌을 주워 거위를 겨냥해 쏘았습니다.
그런데 소년이 쏜 새총에 거위가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장난으로 한 번 쏘아 보았는데 그만 거위가 맞아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소년은 덜컥 겁이 나고 무서웠습니다.
소년은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이야기를 할까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소년은 아버지께 꾸지람 들을 것을 생각하니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다행이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소년은 다시 한 번 보는 사람이 있나 없나 살피고 난 후 거위를 뒤뜰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뒤뜰에 파져 있던 웅덩이에 거위를 던지고 보이지 않게 흙으로 잘 덮었습니다.
아직 까지 다행이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숨어서 지켜 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자기 집에서 일하는 하녀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지켜 본 하녀는 소년에게 자신의 말을 잘 듣고 따르지 않으면
자기가 본 모든 사실을 소년의 아버지에게 말 하겠다고 협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하녀는 자신이 해야 할 온갖 힘든 일들을 소년에게 시켰습니다.
하녀는 주인집 아들인 소년에게 산에 가서 나무 줍는 일을 시키기도 하고,
그리고 추운 날 멀리 있는 샘에 가서 물 떠 오는 힘든 일까지도 시켰습니다.
그렇습니다.
소년은 주인의 사랑 받는 아들이지만 순간의 잘못 때문에 자기 집안일을 하는
하녀 종노릇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년은 그 날 이후 하녀의 협박에 의해 하는 힘든 일도 일이였지만 소년이 힘 든 것은
혹시라도 하녀가 아버지께 말이나 하지 않을까 하는 늘 불안한 마음과 두려움 마음,
그리고 더욱 힘든 것은 사랑하는 아버지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없다는 것 이였습니다.
소년은 그 날 이후 아버지의 얼굴을 똑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아버지의 눈치만 보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피해 다니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용기를 내어 아버지 방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울면서 자신이 저지른 잘 못을 모두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화를 내실 줄 알았던 아버지는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소년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아들아 사실 나는 너의 모든 일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알고 있었단다.
이 아빠는 네가 나에게 와서 모든 일을 고백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라고 하면서
아들을 품에 안으시고 등을 두드려 주시면서 그 동안 마음고생 많았지 라고 하시면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아들을 용서를 하여 주었습니다.
아버지께 모든 것을 고백하고 용서 받은 소년의 마음에 평안과 자유가 찾아왔습니다.
이제 소년은 더 이상 불안해 할 필요도 없었고 하녀 일을 대신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소년은 아버지와 예전의 관계를 회복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년의 고백으로 손해 본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그 집 하녀였습니다.
그동안 소년의 약점을 잡아서 자신의 종으로 잘 부려 먹었었던 하녀였습니다.
사탄 마귀가 바로 하녀와 같습니다.
사탄 마귀는 끊임없이 전에 우리가 저지른 죄들을 들먹이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인류의 시조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는 불순종의 범죄를 저지른 후
그들은 벌거벗은 부끄러움을 가려 보려고 넓은 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 가려 보았으나
얼마가지 않아 곧 말라 부스러지고 말았습니다.
창세기 3:7~8절입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광경을 지켜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나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께 나가 자신의 잘못을 자백하기 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가려 보려고
나뭇잎으로 부끄러움을 가리고 하나님의 눈을 피해 숨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시던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찾아 가십니다.
하나님을 경외 하시는 여러분!
우리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창세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정함을 입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가
예수님 이름으로 죄를 자백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용서를 하여 주십니다.
요한 사도는 요일 1:9절에서 아래와 같이 권면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우리에게 말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라고
다시 말씀드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행위와 그리고 모든 은밀한 일들을
선악 간에 심판을 하신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일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외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158회를 강조 하였고 신약에서도 13회를 강조 하였습니다.
이성이 없는 인간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듯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는, 호흡이 없는 인형에 불과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려 하나님의 경외함이란 자신이 어디서 왔다는 것을 아는 것,
자신의 근원, 자신의 정체성 문제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 하시는 여러분!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에게 경외함이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순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순종은 아래와 같습니다.
빌 2:5~8절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라고
결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일이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것이며,
이 경외함이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행위이며,
이 경외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행위이며,
이 경외함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거룩한 행위이며,
이 경외함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하는 거룩한 행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 하시는 여러분!
입에만 있는 경외함은 경외가 아니며,
입에만 있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며,
입에만 있는 순종은 순종이 아니며,
입에만 있는 겸손은 겸손이 아니며,
입에만 있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경외 하나님 예배, 하나님 말씀에 순종, 하나님 앞에서 겸손, 하나님 사랑,
이 모든 것은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 나타나는 행동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위와 같은 역사가 없다면 이는 무늬만 기독교인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현대판 바리새인, 사두개인, 율법사, 서기관들인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행동하시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라면 예수로 인해 오신 성령님의 역사로 인해
역동적으로 행동하는 신앙생활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며,
이것이 곧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일이며,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의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
즉, 기독교의 복이 임한 줄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러한 복이 임하시기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jykch2002, 2019, 7, 7
惟爺 金 鐵 鎬 牧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