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가장 핫했던 음식, 삼각김밥
삼각김밥
참치나 불고기 따위를 안에 넣은 삼각형 모양의 김밥. 가공식품 형태로 제공되는 패스트푸드의 하나로 편의점에서 판다.
1. 주먹밥, 쥔밥
삼각김밥은 일본의 주먹밥인 오니기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오니기리는 헤이안 시대 무사들이 볶은 밥이나 말린 밥으로 만든 주먹밥을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다녔던 데서 유래했죠.
여기에 쌀밥이 운반 과정에서 흐트러지거나, 먹을 때 손에 묻지 않도록 김을 한 장 둘렀습니다.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금과 식초를 넣고, 속 재료 역시 매실장아찌나 다시마 간장조림처럼 짠 음식을 넣었죠.
오니기리는 지역별로 모양이 조금씩 다릅니다. 삼각형뿐만 아니라 사각형, 원형 등이 있죠. 그중에서도 삼각형은 에도시대의 에도(도쿄)에서 유행했던 스타일입니다. 19세기에는 흰 쌀밥으로 오니기리를 만들고, 2차 세계대전 후 대중화되었습니다.
오니기리라는 명칭은 일본어로 ‘쥐다’라는 뜻을 지닌 니기루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쥔밥’같은 거죠. 우리나라의 주먹밥과 작명 센스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네요.
2. 편의점, 핵심은 김
오니기리가 편의점에서 팔리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요. 1971년 일본 최초의 편의점인 ‘코코스토아’에 진열되었다는 설과 1978년 일본 세븐일레븐에서 최초로 판매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설에 의하면, 1971년 코코스토아라는 편의점에서 오니기리가 판매가 이루어졌으나 유통과정에 눅눅해진 김 때문에 맛이 없었고, 이로 인해 매출도 부진했다고 합니다. 이를 해결한 것이 1978년 일본 세븐일레븐이라는 설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필름 포장으로 김이 밥과 분리되어 포장되는 필름 포장 방식을 개발한 것이었죠.
이를 계기로 매출은 수직 상승하고, 새로운 맛의 오니기리가 속속 개발됩니다. 참치마요도 1983년에 등장하는데요. 참치마요는 등장하자마자 인기였다고 하네요.
3. 우리나라에서는 10년간 팔리지 않던 삼각김밥
우리나라에 삼각김밥이 편의점에 들어온 것은 1989년 5월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내에 들어선 코리아세븐 1호점부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소공동 롯데백화점 지하 식품부에는 오니기리를 판매하는 매장이 있었는데요. 세븐일레븐은 해당 업체로부터 납품받아 점포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하죠.
삼각김밥은 우리나라에서 판매된 지 10여 년 동안은 별다른 인기가 없었는데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편의점의 포지셔닝이 애매했다는 것이었는데요. 작은 구멍가게들과 경쟁하기에는 물건의 가격이 비쌌고, 고급 상점 이미지를 가지고 가기에는 초기 편의점의 청결이 잘 관리되지 않았던 것이죠.
게다가 삼각김밥은 맛과 식감이 유지되기 위해 20’C의 온도에서 관리되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5-10’C의 주스 선반에 놓여있었다고 합니다. 초기의 롯데 코리아 세븐에는 롯데 상품만 진열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는 가격이었습니다. 당시 식당에서 밥 한 끼가 3천 원 정도였는데 삼각김밥은 900원이었죠. 이러한 현실 때문에 삼각김밥은 매장당 하루에 1~2개밖에 팔리지 않았다고 해요.
4. 한국 삼각김밥의 아버지 등장
이러한 삼각김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1998년 한국 코리아 세븐 사장으로 부임한 혼다 도시노리의 공이 컸습니다. 그는 편의점의 주력 상품을 삼각김밥으로 보고, 취임하자마자 맛과 가격, 유통 등의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가장 먼저 손을 봤던 것은 참치마요인데요. 이전에도 일본의 참치마요를 벤치마킹한 한국의 참치마요 제품이 존재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일반적인 마요네즈를 사용한 터라 맛이 달랐죠. 일본의 마요네즈를 사용하면 되긴 했지만, 원가가 너무 올라가 버린다는 문제가 있었는데요. 혼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맛이 오래가는 한국산 업체용 식초, 수입 액체 달걀 등을 찾아내며 문제를 해결합니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삼각김밥의 핵심은 김입니다. 한국산 김과 일본산 김도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산 김은 두께가 일정하도록 건조한 판형 김이지만, 한국산 김은 섬유질을 남겨 두께가 고르지 않으면서 딱딱한 식감을 즐기는 형태이죠. 그리고 소금과 기름으로 양념 된 조미김이 대부분입니다. 코리아세븐 전사의 고심 끝에 조미는 한국식으로 하면서 식감은 한국과 일본의 좋은 점을 합친 김을 사용하기로 합니다.
당시 한국에는 삼각김밥의 판매 수량이 적은 탓에 김을 감싸는 시트를 국내에서 생산하는 곳이 없었습니다. 번거롭게도 일본에서 수입한 시트에 삼각김밥용으로 자른 한국산 김을 수작업으로 끼워 넣어 출하하고 있었죠. 이렇게 되면 인건비 문제 이 물질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혼다는 김 시트 전자동 포장기를 찾아내 국내에 도입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2000년에는 경기 용인에 100억 원을 들여 한국 최초의 유통 가공 센터인 롯데후레쉬델리카를 준공했습니다. 여기에 협력업체 원가 절감 협상 등을 더하며, 900원이었던 삼각김밥의 가격을 700원으로 낮추게 됩니다. 2001년의 일이었습니다.
5. X세대의 새로운 먹을거리, 삼각김밥
삼각김밥의 개선을 모두 마친 세븐일레븐은 2001년 본격적으로 홍보에 들어갑니다. 매장 앞에 광고판을 세우는 것은 당연하고, 편의점 업계 최초로 2억 원을 투자해 TV 광고를 방영하죠. 이 CF에서는 “먹는 것도 패션이다.”라는 카피로 삼각김밥에 신세대의 먹거리라는 이미지를 씌우고 있죠. 실제로 CF 이후 ‘삼각김밥을 까는 법을 아느냐, 모르느냐’로 신세대를 구분한다는 말이 있기도 했었다고 하네요.
TV 광고 한 달여 만에 삼각김밥 매출은 2배로 뛰었고, 반년도 지나지 않아 컵라면을 제치고 편의점 음식 매출 1위에 오르게 됩니다. 1998년 매장당 1~2개 팔리던 세븐일레븐의 삼각김밥은 2000년 말에는 전 매장의 하루 주문량이 5천 개가 되었고요. 2001년 5월에는 1만 개를 넘어서고, 2001년 7월에는 코엑스 매장에서만 2096개, 영등포 매장에서만 1,500개가 팔리게 되었죠.
2002년에는 한일월드컵에 간편하게 먹기 쉬운 삼각김밥이 응원전의 먹기리로 부상하며 인기를 이어갔죠.
6. 김치만 들어있는 삼각김밥?!
삼각김밥의 붐이 일었던 2001년. 삼각김밥의 대표 상품은 참치마요, 참치김치, 숯불구이소고기, 김치불고기, 소고기고추장볶음, 닭고기고추장볶음, 돼지고기양념불고기, 전주비빔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보기 쉬운 제품들이죠. 역시 근본이 가장 오래가나 봅니다.
그 외에도 한 달에 하나꼴로 새로운 상품이 제작되었는데요. 그중 가장 충격적인 제품은 김치만 들어있는 삼각김밥이었습니다. 일본의 매실장아찌를 보고 만든 것이었지만 당연히 잘 팔리지 않았죠. 이외에도 일본에서 인기 있었던 매실장아찌, 연어, 매콤한 명란젓, 명태알, 다시마 등도 한국에서 판매되었는데, 역시나 모두 사라졌습니다.
마치며
삼각김밥을 조사하면서 느낀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한 개인이 주도적으로 시장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구나 하는 점이고요. (물론 혼다 도시노리가 대기업의 사장이었기에 가능했을 수도 있지만요) 또 하나는 현지화의 중요성입니다. 일본의 삼각김밥 상품들이 우리나라에서 전부 실패하고, 어설프게 현지화한 김치 삼각김밥도 실패하는 것을 보며 외국인이 음식을 현지화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겠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김도 마요네즈도 전부 현지에 맞게 다시 만들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역시 김은 바삭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눅눅한 김은 참을 수 없죠.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첫댓글 제가 막 직장 다니던 시절, 삼각김밥은 정말 핫했습니다~
너무도 간편하면서도 비싸지 않게 한끼를 해결할수 있었던게 장점이었던듯 합니다.
아침에 잘 못 일어나서 게을렀던 저는 일어나자 마자 후다닥 나가서 편의점 들러 이거 한개 얼릉 집어먹고 버스를 타며 출근하는게 거의 매일의 일상사였던듯 합니다. 정말 추억 돋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