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앞에서 우리는 왜 슬픈 게 아니라 이렇게 부끄럽습니까 머리에 먹물이 든 글장이들 아는 게 좀 있다는 게 글을 남보다 잘 쓴다는 게 말을 그럴듯하게 감동적으로 잘 한다는 게 왜 이렇게 부끄럽습니까 말없이 육중한 몸매로 뒷산 숲속에 서 있는 이름없는 한 바위 앞에서 다람쥐고 토끼고 이렇게 부끄러울 건가요 어찌 다람쥐 토끼뿐이겠습니까 온몸으로 진실일 뿐인 바위의 커다란 침묵 앞에서 하늘인들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양심은 침묵일수록 진실이군요 거의 구십 퍼센트의 침묵으로 사신 당신 우리의 바위시여 당신은 지금 백 퍼센트의 침묵으로 누워 계시는군요 눈을 감으면 백 퍼센트의 양심 백 퍼센트의 신실로 서 계시는 당신이 아련히 보이는군요 조금은 수줍은 듯 너무 너무 의연하시군요 너무 너무 당당하시군요 저는 당신의 글을 한 줄도 읽어 본 일이 없습니다 몇번 동아투위 위원장이시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사람들 앞에서 말씀하시는 걸 들은 일은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한 이삼백 년 되는 고가의 기둥뿌리 아니면 대들보가 썩 좋은 일이 있을 때든가 아니면 썩 언짢은 일이 있을 때든가 아니면 썩 언짢은 일이 있을 때면 웅얼웅얼 뜻모를 소리를 내는 걸 듣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기둥도 대들보도 없는 집에서 사는 현대인들에게 당신은 그냥 마음만인 웅얼거림으로 살아주셨군요 슬픔도 기쁨도 오직 한 목소리 뜻모를 웅얼거림으로 우리의 가슴을 때리는 오직 진실일 뿐인 당신 온몸으로 진실일 뿐인 당신 앞에서 어찌 우리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이리하여 당신은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다짐하며 우러르는 우리의 하늘이 되셨군요 아니 맑은 양심으로 오늘 이 땅에는 묻히시는군요 땅에 묻혀 풀이파리들의 양심으로 다시 돋아나시겠군요
목사님 너무 저를 치켜주시네요 아무리 마지막 가는 길이라고 너무 듣기 좋은 소리 하지 마세요 목사님답지 않게 속에도 없는 겉치레 찬사 그건 양심이 아닙니다
김인한 선생 제 말이 들리지요 당신의 그 겸손이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진짜 양심입니다 당신은 너무 너무 부끄럽게 겸손하셨습니다 이제 당신은 더 이상 겸손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위는 바위면 되는 거니까요 하늘은 하늘이면 되는 거니까요 땅은 땅이면 되는 거니까요 풀은 풀이면 되는 거니까요 기둥은 기둥이면 되는 거니까요 대들보는 대들보면 되는 거니까요 당신은 온몸으로 양심이면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이제 흙으로 돌아가 조국이 되면 되는 것니까요 조국의 넋이 되어 언론의 양심으로 살아나면 되는 거니까요 언론의 시뻘건 양심 민족사의 횃불로 치솟으면 되는 거니까요 역사의 횃불로 자유와 평등, 민족자주와 통일의 다리와 대로를 은은히 비추면 되는 거니까요 전술과 전략만이 진리와 가치가 되어버린 세상에 당신은 온몸으로 일어서는 우리의 양심이면 다 되는 거니까요 그거면 다 되는 거니까요
님이여 잠들지 마소서 하루 스물네 시간 일년 365일 혹은 366일 십년이고 백년이고 천년이고 만년이고 잠들지 마소서 뜻이야 더욱 깊어졌겠지만 오직 그 웅얼웅얼하는 소리로 우리의 가슴을 밤낮 흔들어주소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가물가물 깊은 잠에 빠져드는 우리들 온몸 양심으로 눈을 번쩍 뜨게 뒤통수를 한방씩 호되게 갈겨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