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商周) 시대 갑골문과 금문 이후 후한 시대에 이르러 채륜이 종이를 서사(書寫)의 재료로 완성하기 이전까지 사람들은 어떤 재료에 글씨를 썼을까. 대나무와 나무가 핵심적인 재료였다. 이를 간독(簡牘)이라 한다. 간독은 죽간(竹簡), 목간(木簡), 목독(木牘)이라고도 한다. 죽간은 대나무를 세로로 쪼개어 바깥부분을 다듬은 뒤 글씨를 썼고, 목간은 나무 조각에 쓴 글씨이며, 목독은 목간보다 조금 더 넓은 나무판에 쓴 문장이나 편지를 말하는데 합쳐서 간독이라 한다.
한나라 허신은 ‘설문해자’에서 간(簡)은 대나무를 재료로 하고 독(牘)은 나무를 재료로 한다고 하였다. 지금까지 발견된 대부분의 간은 대나무로 만들었고 독은 나무판이기 때문에 죽간과 목독으로 구분하여 부르지만 죽간, 목간, 혹은 간독으로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죽간이나 목독에 남아있는 글씨를 간독서예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책(冊)이라고 읽는 한자도 죽간에서 나왔다. 책을 뜻하는 한자 책(冊)의 갑골문과 금문은 죽간이 4, 5개의 세로 선으로 되어 있고, 둥글게 한 바퀴 묶은 가로 선은 죽간을 연결하여 묶은 노끈의 형태인데 여러 개의 죽간을 노끈이나 소가죽 끈으로 묶은 상형성이 엿보인다. 현재의 책과 과거의 책의 형태는 사뭇 다르지만 간독에서 비롯된 오랜 전통을 지금의 종이책이 계승한다는 상징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중국의 간독은 1930년 호남성 장사의 전국시대 묘에서 발견된 이래로 현재까지 각지에서 찾아낸 간독이 수십만 점을 넘어선다. ‘중국목간총람’에는 1900년 이래 2021년 연말까지 중국에서 출토된 총 274종의 약 50만매에 달하는 목간에 대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간독작품 몇 점을 살펴보면, ‘신양초간(信陽楚簡)’은 1957년 하남성의 전국시대 초나라 묘지에서 나왔다. 내용은 고대의 문장으로 죽은 사람에게 보내는 물건을 기록하였다. 학계에서는 춘추시대 후기와 전국시대 초기의 죽간으로 보고 있다. 대전(大篆) 및 예서의 필획과 결구가 동시에 드러나는데 후대 결구와 장법에 영향을 끼쳤다. 이 초간에서는 전서에서 예서로 변화하는 과정을 알 수 있으며 초나라 고유의 죽간서풍이 살펴진다.
최초의 목독인 진나라의 ‘청천목독(靑川木牘)’은 1979년 사천성 전국시대 진나라 묘에서 출토되었다. 길이 46cm, 넓이 2.5cm 녹나무 판의 앞면은 3행 121자, 뒷면은 4행 33자이다. 전서에서 예서로 거의 진행된 서체로 납작한 예서의 형세에 상형성이 남아있다. 예변(隸變)시기를 전국시대 중기로 끌어 올린 이 목독은 전서와 예서도 아닌 고예(古隸)로 보고 있다.
갑골문이나 금문에 비해 간독은 비교적 다루기 쉬운 서사재료였지만 부피와 무게는 골치덩어리였다. 진시황이 하루 보아야 할 공문서가 한 섬이 넘었다고 하니 무게와 부피를 줄인 서사재료의 필요성은 해묵은 과제였다. 춘추시대에 이미 간독 대신 비단을 사용하였는데 비단 위에 쓴 글씨를 ‘백서(帛書)’라고 한다. 한나라 시대 한 필의 비단이 여섯 섬의 쌀값과 비슷하였다는 기록을 볼 때 일반인의 서사 재료로는 간독이 많이 사용되었고 왕공이나 귀족 등 특별한 계층에서는 비싼 비단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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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퇴3호묘 출토 백서노자 갑본. 비단에 글씨를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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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이 서사의 재료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는 증거로는 ‘묵자(墨子)’에 “비단에 적어서 후세의 자손에게 전하였다”란 문헌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춘추시대에 백서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73년 호남성 장사 마왕퇴(馬王堆) 3호 한묘(漢墓)에서 비단에 쓴 백서노자(帛書老子) 두 종이 발견되었다. 노자 갑본은 463행으로 1만3000여자나 된다. 서체는 전서로 세로획이 가볍고 뾰족한 것이 특색이며 글씨는 예서에 가깝고 크기도 다르다.
이와 같이 서사재료는 무게는 가볍고 부피는 적으며 휴대는 편리한 쪽으로 바뀌었다. 간독서예는 넓게는 상나라 시기인 기원전 13세기부터 위진남북조 시기인 4세기까지 1700년 동안 이어졌다. 오늘날 수많은 간독의 보고에서 문자의 맛을 찾아내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닐까.
서라벌신문 기자 / 2023년 04월 20일
첫댓글 고운글
서예이야기
감사합니다
고운하루 되세요
감사 합니다
좋은날 되세요
고운 장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