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이 맞을 것이오 / 최종호
“인자 사진 찍는 거 질렸지요? 내가 그럴 줄 알았당께요. 아무도 안 찍은 거 봐요잉.” 지지난 주, 홍도를 유람하는 도중에 웬만한 기암괴석을 보고도 반응을 보이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적어지자 입담 좋은 안내자의 말이다. 처음에는 너도나도 휴대폰으로 풍경을 담기에 바빴다. 시간이 지나자, 차츰 셔터를 누르는 사람이 줄어들다 끝나갈 무렵에는 심드렁해졌다.
당일 일정은 아침 식사를 하고 홍도를 한 바퀴 돈 다음 열한 시에 흑산도로 가는 쾌속선을 타는 것이다. 밥을 먹고 짐까지 챙겨 부두로 나갔더니 벌써 길게 줄을 섰다. 대부분 나이 지긋한 노년층이라 그런 것 같았다. 서둘렀다고 생각했는데 꼴찌에 가까웠다. 웃음이 나왔다. 유람선 네 척 중에서 우리가 탄 배가 마지막이다. 2층에는 앞에 선 사람들이 자리를 잡아서 아래로 내려갔다. 1층은 배 난간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아 불만스러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출발하자마자 시끄러운 엔진 소리에 섞여 안내 방송이 나왔다. “손님들이 탄 배가 4호 유람선이어라우. 섬을 한 바꾸 돌아 지자리로 와야 정박해 있는 쾌속선이 흑산도로 떠날 것인 게 걱정은 붙들어 매시오잉.” 사투리를 투박하고 걸쭉한 목소리로 쏟아냈다.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이어라우. 곧 있으면 홍도의 제 1경 남문바위가 나오는 디 시간을 충분히 줄 텡께 서두르지 말고 마음대로 찍으시오. 내가 장담을 하는 디 찍어놓기만 허제 집에 가서는 다시 안 볼 것이오.” 관광객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모두 웃었다.
남문 바위 근처에 다다르자 속도를 줄였다. 2층으로 올라갔더니 사람들로 분빈다. 가히 절경이었다. 파도 때문에 흔들리기는 했지만 여기저기서 홀로, 연인끼리, 삼삼오오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가까운 곳에서 먼저 떠난 유람선이 뱃머리를 바위에 대고 있었다. 사진 찍기 좋은 장소일뿐더러 파도를 막아주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우리 차례가 왔다. 안내자의 말대로 꽤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처음에는 서로 먼저 찍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많았으나 시간이 지나자 갑판 위에는 텅 비었다.
다녀온 지 2주가 흘렀지만 아직도 홍도의 절경이 눈에 선하고 입담 좋은 젊은이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하지만 그의 예언대로 남문바위 주변의 빼어난 풍경을 담은 사진은 아직 열어보지 않았다. 그 곳은 이제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친구 부부와 쌓은 추억도 서린 곳이기에 가끔 감흥을 되새기며 찾아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는 한 장이라도 더 열심히 찍은 보람을 찾을 수 있겠지.
그나저나 조만간 이삿짐을 풀면 묵혀두었던 앨범을 들추어봐야겠다. 40년 전, 밀월여행하면서 사진 한 장 남겨두지 않을 리 없을 텐데 기억조차 없어서 궁금하다. 그 당시 홍도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을 찾으면 보물을 찾은 듯 기쁘겠지. 그 속에 풋풋한 연인이 미소띠고 있을 테니까!
첫댓글 밀월 여행의 주인공이 사모님이어서 정말 다행이어요. 하하. 좀 아쉽기는 하지만서도요. 홍도 유람선 안내하시는 분 멘트에 혼자 실실 웃고 있습니다. 너무 재밌어요. 그 분 한번 보고 싶네요. 명언입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선생님 글 읽으며 궁금해지네요. 홍도. 멋진 여행이셨겠어요.
그러니까요. 정말 말씀을 재밌게 잘 하시네요. 홍도를 한 번 가봐야 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흑산도 옆 섬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 홍도를 여러 번 가봤네요. 정말 절경이 많아요.
하하하! 재미나는 홍도 소식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