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죽음의 허상에서 벗어나라
08/29화(火)히 2:14-18 /고전 15:29-34
“일생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히 2:15)
오늘은 조금 무거운 주제인 것 같지만, 꼭 알아야 할 죽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죽음은 실제입니다. 그런데 죽음의 공포를 무력화시키면 죽음은 내게 허상이고, 일상일 뿐입니다. 이런 은혜를 모르면 죽음은 최고의 공포로 다가옵니다. 사르트르는 ‘죽음 후에 인간은 없어지고 해체된다. 천국 지옥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정작 죽음을 앞두고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다 괴물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죽으면 끝이다’ 실존주의 사르트르의 사상입니다.
죽음 후에는 놀라운 실체가 있는데 마귀가 그 뚜껑을 덮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죽음을 인식합니다. 죽음이 다가오면 번뜩번뜩 지옥의 세계가 열립니다. 죽음은 실제이지만 죽음의 공포를 해제시키면 죽음은 일상이 됩니다. ‘죽음은 천국으로 가는 출입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죽음은 오히려 주님을 만나는 즐거움이 됩니다.
사망에는 힘, 권세가 있습니다. 사망을 이기면 사망은 허상이 됩니다. 만일 핵보다 더 큰 무기가 생긴다면 핵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사망보다 더 큰 것을 소유한다면 사망은 무력해질 것입니다. 사망을 무력하게 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 자녀들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겪으시고서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멸하시고 또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히 2:14-15) 죽기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사망 권세에 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람은 병으로 죽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결정적인 생명줄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병은 도구일 뿐입니다. 영혼은 영원합니다. 죽음의 종노릇하던 우리를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해방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죽음을 체험하고 부활하심으로 마귀를 멸하셨습니다. 결정적으로 죽음을 강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자아를 찾으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납니다. 마귀를 멸하셨다는 것은 그가 하는 일을 무력화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어떻게 죽음을 무력화시키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죽음 저편을 보여주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무력화시키셨습니다.
인간이 죽음이 두려운 것은 죽은 저편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본주의 사상은 ‘죽음 후에는 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죽음이 무섭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음 저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계 21:4). 영원한 실제의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세상이 괴로운 것은 눈물이 나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는 하나님이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천국은 영원한 기쁨의 나라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을 체험함으로 죽음에 대한 실제 공포를 없애주십니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을 죽어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우리는 부활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롬 6:5). 한 번 죽었다 살아난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죽고 사는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죽노라’ 이것은 십자가에서 나의 자아가 죽는 체험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와 연합하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십자가 도(道)가 최고의 무기입니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게 함으로 죽음을 무력화시킨 것입니다.
죽음을 체험하기 전에 여기서 자아가 죽는 것을 체험하면 실재적인 죽음이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최고의 기쁨은 주님과 사귐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와 있다는 것은 이미 천국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고 병에서 해방이 됩니다.
And...
주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십니다. 이것은 그림자에서 실상을 찾게 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꽃이 있습니다. 이 꽃은 시들면 사라집니다. 그래서 꽃은 그림자입니다. 꽃의 원형은 천국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림자를 보고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있습니다.
이 땅의 삶은 그림자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그 원형은 천국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림자를 보고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형이 있는 천국이 실제라면 그곳에 가는 것을 즐거워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안개와 같다’ ‘꿈만 같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 세상이 실제가 아니라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자에서 실제의 세계로 넘어가는 과정이 죽음입니다. 마치 누에가 고치를 벗어나야 나방이 되어 날아가듯 원형이 있는 천국은 반드시 육신의 껍질을 벗어야만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계신 곳이기에 사모하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어지는 것이 참 자아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삶은 참 자아를 찾아가는 삶이고, 이것이 구원(salvation)입니다. 인간의 실제 목적은 진정한 나를 찾는, 실제의 삶을 찾는 구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죽음은 일상의 과정일 뿐입니다.
몇 해전에 유방암을 앓다 세상을 떠난 집사님 생각이 납니다. 참 열심히 사신 분 이었습니다. 철없는 남편과 시집살이 시키는 시어머니 사이에서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게임에 중독된 남편 대신 가장 노릇까지 했습니다. 왜 유방암에 걸렸는지 알 것같았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이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며 남편과 시어머님을 용서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병이 치유되고 잘 사시길 바랐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집사님은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더는 살기를 바라는 대신 자신이 세상을 떠날지라도 남은 가족들이 하나님을 잘 믿기를 바라는 소원뿐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영정사진을 카톡 대문에 올려놓고 “먼저 하나님 앞에 갑니다”라고 써놓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소천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먼저 떠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날마다 죽음과 부활을 체험할 때(내가 죽고 예수가 사는 체험) 죽음의 공포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됩니다. 고난을 육체에 채운다는 것은 날마다 죽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질 때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날마다 내가 죽고 주님이 살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지므로 죽음의 허상에서 벗어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십자가 전달자
https://youtu.be/Xe6M-y9HHc8?si=9JV9tyi4bQ7SeP2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