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롬! (2023.1025.수) 경항공기 지역 신우회 예배
전래동화 : 소가 된 게으름뱅이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아주 게으른 아이가 살았어요. 얼마나 게으른지 날마다 빈둥빈둥 누워만 있었지요. 하루 종일 방바닥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엄마가 차려놓은 밥도 귀찮아서 먹지 않을 정도 였지요. 어느 날 게으름뱅이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어요.
“얘야 ! 그만 일어나야지 그렇게 잠만 자다간 소가 된다더라.” “에이 귀찮아요 차라리 소가되면 좋겠어요.” “아니 그래도 이놈이 ! 빨리 산에 가서 나무라도 해 오너라.” 어머니는 게으름뱅이를 쫓아냈어요. 게으름뱅이는 집을 나왔어요. “에이, 어디 시원한 나무 그늘에 가서 더 자야지 하핫!” 한참을 가다보니 커다란 나무 그늘에서 누런 황소가 자고 있는 것이 보였어요. “ 하... 저 소는 참 좋겠다, 저렇게 잠만 잘 수 있으니까” 게으름뱅이는 소가 부러웠어요. 다시 한참을 걸어가자 초가집이 하나 보였어요.
초가집 마루에서는 할아버지가 나무를 깎아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지요. 할아버지 무엇을 만들고 계세요? 소머리 탈을 만들지. 그건 왜 만드시는 거예요. “이건 보통 탈이 아니야, 이걸 쓰면 소처럼 낮잠이나 자면서 살 수 있단다.” 게으름뱅이는 소머리탈이 갖고 싶었어요. “할아버지 그거 저 주세요.” “그래, 옜다.” 할아버지는 게으름뱅이에게 소머리탈을 씌워 주었어요. 게으름뱅이가 소머리 탈을 쓰자. 탈이 머리에 착 달라붙더니 떨어지지 않았어요. 게으름뱅이는 놀라서 탈을 떼어내려고 했지요. “아, 맞다 이 소가죽도 입거라.” 할아버지는 깔고 앉아 있던 소가죽도 게으름뱅이에게 걸쳐 주었어요. 그러자 게으름뱅이의 몸에 누런 털이 나기 시작했어요. 머리에는 뿔도 자라더니 게으름뱅이는 정말 소가 되었어요. “할아버지 이 탈좀 벗겨 주세요.” 게으름뱅이는 탈을 벗고 싶어 말했지만 게으름뱅이 입에서는 소 울음소리만 나올 뿐이었지요.
할아버지는 소가 된 게으름뱅이를 끌고 시장에 갔어요. “소 사시오, 튼튼하고 힘센 소 사시오!” “응? 그 소 참 튼튼하게 생겼군요, 내가 사겠소.” 할아버지는 농부에게 소를 팔았어요. “이 소는 무척 게으르다오. 말을 듣지 않으면 채찍으로 때리시오.” “아 그렇지!” “그리고 절대로 무를 먹이지 마시오. 이 소는 무를 먹이면 죽는다오.” “응? 무를 먹으면 죽는다고요? 나참 이상한 소도 다 있군요.” 농부는 소를 끌고 집으로 갔어요. 다음 날 농부는 소가 된 게으름뱅이를 아침 일찍부터 깨웠어요. “이랴! 어서 밭을 갈러가자.” 게으름뱅이가 누워서 일어나질 않자, 농부는 채찍으로 때렸어요. “아저씨 때리지 마세요. 난 소가 아니에요.” 게으름뱅이가 소리를 쳤지만, 소 울음소리만 났을 뿐이었지요. 소가 된 게으름뱅이는 무거운 쟁기를 달고, 새벽부터 밤늦도록 밭에서 쉬지 않고 일을 했어요.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농부가 채찍을 휘둘렀지요. “아야! 아야.” 게으름뱅이는 너무 아파 울었어요. 게으름뱅이가 밭에서 힘들게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농부는 게으름뱅이에게 여물을 주었어요. 게으름뱅이는 여물죽도 맛있게 먹었지요. 힘들게 일을 하니 무엇이든 맛있었어요.
“아... 날마다 일도 안 하고 게으름만 피워, 소가 되어 벌을 받는구나.” 게으름뱅이는 외양간에 누워 게으름 피운 것을 후회했어요. 하루는 밭을 갈러 가다 길에서 어머니를 만났어요. “어머니, 저예요. 정말 잘못했어요.” “다시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할게요.” 하지만 어머니는 게으름뱅이의 말을 알아 듣지 못했어요. “아니, 이놈의 소가 왜 길을 가다 말고 울고 있지? 어서 가자, 이랴!” 농부는 길을 재촉하며 게으름뱅이에게 채찍을 휘둘러어요.
다시 길을 가던 게으름뱅이는 길가에 무밭이 있는 걸 보았어요. “그래 무를 먹으면 죽을 수 있어!” 게으름뱅이는 할아버지가 농부에게 한 말이 떠올랐어요. 게으름뱅이는 무밭으로 달려가 우걱우걱 무를 씹어 먹었지요. 그러자 소머리탈이 머리에서 툭 떨어지고 소가죽이 훌러덩 벗겨졌어요. “내가 다시 사람이 되었다!” 게으름뱅이는 농부에게 지난 이야기를 했어요. 이야기를 다 들은 농부는 말했어요. “뭐라고? 야.... 어서 집에 가 보거라! 어머니가 얼마나 기다리시겠니.” 집에 돌아온 게으름뱅이는 어머니 말씀도 잘 듣고 부지런히 일하는 착한 아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본문 말씀 : 누가복음 17장5-10절 새번역
사도들이 주님께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뽕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기어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다고 하자, 그 종이 들에서 돌아올 때에 ‘어서 와서, 식탁에 앉아라’ 하고 그에게 말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오히려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너는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야,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그 종이 명령한 대로 했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을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해라.”
말씀 선포 : 소가 된 게으름뱅이와 썩지 않을 씨앗
A Lazybones who becomes Cow & A Seed which will be indefectible
‘홀그레인 머스타드’라는 양념이 있습니다. 통알곡 겨자씨로 만든 소스인데 스테이크나 기타 구운 고기를 먹을 때 찍어먹는 양념으로서 2020년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 양념을 보면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겨자씨 하나가 지름 1-1.5mm 정도 됩니다. 하지만 이 씨앗이 발아하여 성장하면 최대 4-5m의 식물로서 자랍니다. 또한 그 작은 씨앗을 으깨면 자극적으로 매운 맛과 향이 나옵니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고대 세계로부터 21세기까지 겨자씨는 향신료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겨자씨는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비유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께서 여러 번 겨자씨를 빗대어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음을 성도에게 알려줍니다. 사도 마태는 예수님께서 겨자씨가 발아해서 자랐을 때 굉장히 크게 자라는 것만이 아니라 나무가 되어 그 나무에 새가 안착하고 그 땅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창조물이 안착하는 놀라운 번영이 일어나는 현상을 활용하여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이 비유 속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개념은 ‘믿음’입니다. 사람이 정말 별볼일 없이 작은 씨앗을 심었을 때 놀라운 결실을 얻을 것을 믿지 못하면 그 씨앗을 밭에 심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세상 모든 식물과 비교해봐도 매우 작은 이 씨앗을 가져가 밭에 심었을 때 엄청난 번영을 가져오듯, 성도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믿음을 이 땅에 심었을 때 엄청난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는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믿음을 이 땅에 심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영원히 썩지 않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신바벨로니아 제국에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가 절망 속에 살던 초창기 유대인에게 희망과 회복의 예언을 선포했던 두 번째 이사야 예언자는 신바벨로니아 제국을 풀로 비유하며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는 것처럼 제국도 언젠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 말씀만 영원히 서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하나님 말씀은 포로기 동안, 그리고 포로기 이후에도 전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었기에 예루살렘 건물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살더라도 괜찮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건물 성전을 건축했던 솔로몬 왕이 이스라엘 민족이 주님께 죄를 지어서 포로로 끌려갈지라도 야웨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과 건물 성전을 향하여 참회하는 기도를 들어달라는 고백을 기억하며, 자신들이 어디서든 온전히 참회한다면 주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심을 확신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주님이 전적인 은혜로 야웨 하나님과 한 가족이 된 사람으로 언약을 맺으셨기에 주님이 자기 백성이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말씀을 주셨음을 확신했습니다. 고대 유대인은 이 바탕 위에서 야웨 하나님이 다시 이 땅에 귀환하셨을 때, 영원히 변하지 않을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신들을 다시 구속하신다고 믿으며 말씀을 믿고 충성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교회는 고대 유대인의 인식을 이어받아 영원히 썩지 않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믿음을 이 땅에 심습니다.
교회가 하나님 말씀을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고 고백하는데, 이 바탕도 고대 유대인으로부터 왔습니다. 고대 유대인은 신바벨로니아 포로기를 거치며 말씀이 온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공동의 신앙고백으로 정착시켰고 더 나아가 그 말씀을 하나님 인격으로서 의인화하여 표현하였습니다. 초대 교회는 유대인이 표현한 의인화된 하나님 말씀을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다시 죽지 않으신 예수님께 적용했습니다. 이렇게 성도는 영원히 썩지 않는 하나님 말씀인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이 땅에 심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모든 성도가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선언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소유한 공동체로서 그 말씀이 가르치는 하나님 백성 다운 삶을 이 땅에 심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난 사람들답게 교회가 온전한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라고 명했습니다. 교회가 말씀을 가지고 믿음의 삶을 살 때, 온 세상에 창조하시고 구속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제사장 나라로 살아갑니다. 시편 148편저자는 사회 지위나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주님의 명을 따라서 마땅히 드려야 할 찬양을 그분께 올려드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교회가 드려야 할 찬양은 깨닫게 된 말씀대로 이 땅에 성도로서의 온전한 삶을 심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그 찬양을 받으시고 그 찬양 가운데서 온 세상이 생명을 얻는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누가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은 바로 제사장 나라답게 온전히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말씀을 가지고 성도의 삶을 심는 믿음을 말합니다. 성도는 오직 전적인 하나님 은혜로 구속받은 사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백성으로서 주인 되신 삼위 하나님께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하며 자신의 인생 전부로 섬겨야 합니다. 성도의 지금 삶은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영원히 사는 백성답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