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기간 동안
당하다보면 알게된다
곧이곧데로 교과서적인 성향을 가진사람일지라도
문 단속을 엘지창틀로 열리는 곳곳마다
안방에도 여닫는 문마다 고리를
어느 한군데 허술하게 틈을준곳이 없는데도 들어와 흉악한짓을 한다
좋은데 머릴쓸생각은 못하고 남을 해칠생각에만 골몰해
그렇게 문 단속을 하는데도
머리칼둔 인간으로선 선을넘는 애비에미둔자라면 할짓이 못되는
다 일거수일투족 다 내 행동방향을 알고있으니 방에 잠깐 낮잠자고있을때도
들어와 모자안에 소독약인지 뭔지 독한 가루약을 뿌려
샤워할때도 들어와
모지를쓰면 가려워 가려워 또 모지안에 뿌렸군 라고 뿌려둔자를 저주하며
머리를 감으면 와르르 머리칼이 빠저 수채구멍으로 물 내릴때마다 둥둥 떠 다닌다
모지를 쓰지않으면 챙피할정도로 머리칼이 빈약해
저 자식들은 년인지번갈아 드나드는지 뿌려대는걸 좋아해
집안곳곳마다 회색먼지뭉탱이를 하루도 거르지않고 널부러저있으며
청소할때마다 속으로 저주를 내린다
타다남은 재를 좋아해 대한민국이던
세계 어느나라던 산불을 포함해 원인모를 화재가 빈번한건가
물샐틈없이 문단속을 하는데도 집안에 있을때도
틈을노려 어찌들어오는지
그런자들 과거전생때부터 그 웃대 조상때부터 그런짓으로 생을마감할때까지
과거생에 하던짓을 버리지못하고
어찌 생각함 가엾슨 자들이기도 하다만
동정의 가치는 없다
녹색 즉 나뭇은색 잠바는 세탁을해도해도 빠지지않는 소독약냄새
앞베란다 창틀에 옷마다 수두룩 묶어두고 바람에 빠질거라 생각하며
어제 거두어들여 뜨거운물에 담구어두었는데 빠질지모르겠다
오랜지 면티에는 앞 부분에 검은 잉크색같은 칠해놓아 그래도 입는다
밝고 환한색을 좋아하는 내가 밝고 환한색마다
흉칙한짓으로 못입게하니
검정색옷은 푸른색옷은 절대절대 소독약으로 못입게만들지않는다
다 나열할수없는
내집에서 내집에 들어와 흉칙한짓을 거르지않는
47년동안
훨씬 전부터이겠지만
내위로 언니가 갑자기죽고
내가 들어섰다고 엄마게서 말씀해주셨던
뜻을 헤아리지못하고 들었던
그 말씀를 하신 엄마의 속내를 헤아려보면 가끔씩
내 존재가
악행을 멈추면 생각키도 끔찍한 당했던 일들
수면위로 떠 오르지않게
악행을 멈추는게 좋지않겠는가
인생 막가파로 그런짓으로 세월을 보내기엔 그런짓으로 세월을 허비하기앤
그대들인생이 가엽지 아니한가
나로인해 이익을 맛본 그대들로선 멈출수없는
거창에서 대구로 이사하면서 비산동에서
아버지게서 친척아제와 동업해 직조공장을 인수해 운영할려던차에
그 시기에 친척아제 맏아들 나이가 20살이라던가 갑자기 행방불면돼
결국 직조공장을 동업할수없게되었고 끝끝내 찾지못했다고 행방을 모른다고
들었다
그 아제 내 기억에도 또렷이 기억되고있는
내 나이 10t살이었고
서부국민학교 2학년으로 전학왔었다
내 기억 9살때부터 기억이 나는데 거창용암국민학교시절부터 기억이 난다
내 인생 통틀어 근심걱정없이 보낸시기이기도 할것이다
아랫채엔 베틀이있어 엄마가 긴 베틀을 발로서 베틀을 짤태 내가 옆에붙어 구경하다 잠든적도 있는것같고
큰나무밑에서 동네사람 다 모여 밤에 휘추를한다며 엄마 치마자락을잡고 따라다니던일
마당아래로 내려가면 방아가 있어 방아를 찧을때 나도 방아틀에 올라가겠다고 했던일도 가물하게 기억에 저장돼있다
가제를잡든일 학교갖다오는길에 실개천을건너 진달레만발한곳으로
바구니를들고 쑥을캐러다니던일 털털이나물이라는것도 요즘은 시장어디가도 구경할수없는
내게있어 추억을 소환해도 즐겁고 아련하고 선물같던 시기이기도하다
옆집에 살던 아제는 엄미의 친척이던
엄마의 친척들은 다 체구가 크고 우람하다
외 할아버지도 키가 훨 크시고
그 아제 맏아들 생사를 수소문하느라 다른덴 신경쓸 여력이 안됐을태고
방이 4칸이던가 마당이 널찍한 아버지게선
가게에 마당엔 나무가 산더미같이 쌓여저 나무가게를하셨다
그때 가게에 팔던 오징어를 키가 큰 외할아버지게 갖다드렸는지
외할아버지가 엄마게 말씀하시더라고 엄마게서 말씀해주셨다
세월이 훨씬 지난후에야
그렇게 잘 되던 가게가 밤새 몽땅 다 털린 아무것도 남아있지않는
경찰이 드나들고 내 기억에도 고스란히 저장돼 있는
얼마후 또 가게에 물건이차고 활기가 돌즈음
또 밤새 몽땅 다 털린
결국 나 혼자 내당동 엄마친척집 뒷간방에 이모와 둘이
밥을 먹은 기억이 없는 이모는 가끔씩 들리고
어느날 아지매가 저녁을 먹으러 오라해서 가서 먹었다가 죽을뻔한 기억 아직 남아있다
요즘사 급체에 걸려을거라는 생각이든다
학교가 내 유일한 삶의터전이고 내 삶의 원천이었고
친구들이 담인션생님이 내게 유일한
집으로 돌아올땐 골목길이어서 길을잃어 밤늦게까지 헤메다 헤메다 그 공포스러움이
극에 달했었는지 요즘은 드물게 꿈속에서 재현돼지만
어느시기엔 그 꿈을꾸고났을땐 잠을자지못하고 서러워 눈시울이 젖었을꺼다
요즘 아니 꽤 오래전부터 가끔씩 생각할때가있다
왜 아버지엄마게 내 신상에 관한 견디기힘든 일들을 단 한번도 예기하지않고
행복한척만 했을까
남편에게도 딸 출산할때의 고통스런 과정이라던가
혼자 감내했을까
남편생각만하면 먹먹하고 쓰라린심정이란 단어로 부족한 어떤 단어로도 부족한
오늘 밤꿈에 내가 선생이되어 집집마다 가정방문하는 꿈을꾸었다
20대에 곤색투피스를 입고 학교앞을 지나치노라면
새로 부임한 선생이냐고 그 학교선생이 물은적도있고
선생이미지라고 들은적도 있다
가정방문하면서 내 손에 장지갑을 들고있었는데
꿈속에서도 크기가 줄어던 지갑으로 바뀌어저있어 속으로 언제 바꿔치기했지 라고
아들이 미국한달있을때 갈색 장지갑을 명품에속한 흰색장지갑과 두개 사왔는데
갈색장지갑 손에닿는 감각이 서늘해 마음에 들던
절도짓가저가고 크기가 줄어든 지갑으로 바꿔치기 당해
그나마도 방콕대사관까지 가게만든 쓰리당해 동남아 여행때
나만큼 주민증사진 자주 찍은사람드물거다
지갑을 그 마큼 많이 쓰리당했다
내집에 악행을 아직까지 계속하고 절도짓에 맛들인
내게 붙어 이익을챙기는것들
아버지게서 대구에서 새로집을짓고 방 6칸짜리 새집에서
육순잔치를 하실때 나도 서울에서 아들딸 데리고 내려왔을때
시어머님 종아리사촌작은어머님 초청해서 떠들썩하게 장구치고 북치고 노리판이 벌어졌을때
누가 밖에서 보자고 하더라고 나가보니
작은어머님게서 즉 사촌시동생 재환어머님되시는 잔어머님게서 여자한분과 같이 계셨다
그 당시도 예외없이 스트레스에 결혼하고부터 내 맑은정신으로 산적이 없는것같다
고향 성주작천이던 어디 중요한 외출할라치면 나보다 만저알아채고 후줄근한
값나가는 옷이던 뭐던 다 절도짓가저가고 추례한 옷으로 바꿔치기해
대구던 고향성주던 친구자녀결혼식이던
당연히 그 잔어마님을 초청했어야 했는데 시골에 계시니 초청못한것같고
잔어머님게서 돈 이자가 밀려서 받으로왔다고 해셨다
지금정신같았음 손잡고 안내하며 잘오셨다고 안으로 모셨을탠데
또 그때 빚이 있다는걸 처음알았고 6부로 이자가
6부로 빌린이자 결혼예단으로 잔어머님 아는대가있다고 같이간
서문시장 한복원단상가에서 잔어머님 하자는데로 그당시 독일비로도가 유행이라며
여러벌 시댁에 형님두분포함해 잔어머님 두분 포함해 결혼예단으로
나도 한벌
잔어머님 하자는데로 내 한복도 꽂무늬있는 한복도 있는 여러벌
독일비로드 꽤 비싼가격이었을꺼다 그 당시
아버지게선 고령중학교선생 중매한 친구분의 며느님이라던가
서문시장에서 크게 포목점한다고 그곳을엄마와 같이가길 원하셨지만
한복 다 바꿔치기당해 입을한복이 없어 마음에드는
결혼전에 엄마와같이가 명절다가올즈음 공단 흰색저고리와 봉견청색치마 맞춰서
그때 봉견이 한복원단중에서 제일비싸다고했다
추석에 친구경희도 색동한복입고 놀러와 같이 사진관에가서 사진찍었던 지금도 그 사진은 있을것이다
그 한복을 입을려고 찾아봐도 절도해가고 가짜로 갖다논 후출근한 입을수가없어
폐백드릴때 입었던 한복마저도 절도짓 원단이 다른 후줄근한
딸 유치원졸업식때 독일비로드 한복입고
군장교들도 있는데
후줄근한 보라색으로 얼마나 챙피했는지
단체사진찍을때도 학부모들 밝고 화려한한복차림에 나혼자 후줄근한 보라색 독일비로드 한복
챙피해서 지금생각해도 창피하다 그 사진 지금도 있을꺼다
사진속에는 아래위 검정색으로 생각만해도 챙피하다
한복이란 한복 다 버리고 진짜는 절도짓 가짜로 갖다논
단 한벌도 남겨놓지아니하고 다 버렸다
6부로 빌린돈 짐작컨대 그 한복에단으로 든돈
남편게서 빌리셨을거다 이자6부로
빚도 구실일태고 초청밭지못한 그래서 오셨을거라는
세월이 한참흐른후에야 잔어머님이 많이 섭섭하셨을거라는
고향에 들렸을때 잔어머님 생각이 많이 났었다
육순잔치 한창 무르익었을때
잔어머님 만나고 들어와서 조금있다 빠자작소리가 크게 났었는지
아니면 딸 울음소리에 뛰어갔는지 기억이 희미한데
딸이 부엌에 쓰러저있어 위를보니 천장이 뜷려저있었다
급히 택시를타고 응급실에가니 아무이상이없다한다
그때 딸나이 5살쯤 되었나
시어머님게서 아들이 무거운정종을끌며 시어머님게 주더라고 시어머님 기뻐하시던모습이 선하다
그때 아들나이를 셈해보니 딸 나이가 5살쯤된것같다
그 어린 나이에 어찌 지붕위를 올라갈수있었으며
그 당시만 해도 작은오빼 모든일이 잘되던 시기였던것같고
아버지 환갑하실때도 작은오빠가 꽤 부담한것같고 바로 이웃에살고있었는데
엘지 그때는 금성 총판전자대리점을 열고있었다
내가 아버지육순잔치에 내려왔을때 가봤는데
가게 가득 냉장고며 티비며 세탁기가 가게를메우고있었다
절도짓해간것들 해악을끼친것들 내 글 다 읽고있는것 안다
세월이 지난후에야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 잘되던 전자총판가게가
밤새 깡그리 싹 다 털렸다는걸
아버지 환갑치르고 바로 얼마후
차도 많이 다니는 도로인데
이층에서 작은오빼식구들 생활하고있었는데
절도짓에 맛들인자들 맘만먹으면 못할짓이 없다
일일이 털어놓지못하지만 참 인간쓰레기들이다
그 짓에 맛들이면
남편5년동안 부었던 재형저측이며
젊은청춘 다 받처 군퇴직금으로 산 삼성동 진성여고앞 성보상가
다 열거할수없는
깜깜한걸 좋아해 허긴 밝은덴 범죄현장이 명료해지니 깜깜한걸 좋아하는걸 당연하겠지만
왜 남의집에다 깜깜한걸 강제하느냐는거지
내 집 티비 예사로 깜깜이가 된다
외부기기가 뭐라뜨며 오늘또 깜깜이가 됀 티비
밤 꿈에서도 구멍숭숭뚫린 까만연탄불이 활활타다 꺼저버리고
바스러저 재만 남아있는 꿈도 꾸었는데
꿈을꾸고 하나로마트달력을보니 토끼날이라고 적혀있는데
어제는 범날이라고
오늘 절대절대 토끼날아니다 물론 어제도 범날이 아니고
달력마저 거짓으로 찍는 대한민국
티비에든 사회곳곳에서 벌벌떨며 속으로
온갖 단어로 비위밪추는것들
똥물이 튈까봐 몸 사리는거지
나 죽으면 좋을것같지
아니면 더 울겨먹을게 하나 줄게되니 아쉬워 할거니
단어를 내 적은데로 두어라 아버지 적었는데
아바지로 바꾸어놓고 챙피함도 염치도 모르는 인간쓰레기들
절도질로 생계를 꾸러가는 대한민국을 망쪼로만드는 쓰레기들
북가좌동 만화가게 열였을즉
시어머님게서 오셔서 시어머님게 만화가게를 맡기고
시장에 다녀오게되었는데
그 사이 만화를 새로들어온 연재되는 전화번호도 이름도 적지않고
시어머님게 전화번호와 이름을적고 빌려주는거라고 몆마디한게
세월이 흐른 두고두고 마음에 맺혀 마음에 꽉 박혀
오늘도
손자와손녀가 보고싶어 그 무거운 걸음하셨을거라는
내가 할머니가 되고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