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환]시로 듣는 세상이야기
(26)한식날
한식날
정재명詩
아빠에서 아버지가 된다는 건
소리없이 울줄 안다는 것
삶의 벼랑
두 손으로 펄펄 노 저으며 아버지는
억센 팔뚝 같은 웃음을 곧잘 날리셨다
내가 아버지의 너털웃음 속에
웃음보다 더 큰 울음이 숨죽였음을
알았을 무렵,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다
내 가슴에 아버지는 오래오래 살아 계셨다
.........
아버지 끌어안고 저녁 노을 같은,
붉은 을음을 소리 없이 쏟는다
-정재명시집 『끝 눈에 반한 사랑』 (위드북스, 2004)
[감상노트]
언 땅이 풀리고 언덕과 들판에 새순이 돋을 무렵 사람들은 저마다 그리움을 품고 선산을 찾는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떠나신 아버지를 찾는 일은 사랑의 기억을 더듬어 새로운 발돋움을 하기 위함이리라. 아름다운 기억이란 현실에서 보이지 않을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법. 한식날 아들의 손을 잡고 선친의 묘소를 찾는 화자는 생애의 벼랑위에 윤회(輪回)의 붉은 노을을 맞으며 웅켜 진 울음을 풀어 놓는다. 우리는 더러 떠난 이를 통해 우리의 눈길과 발길이 어디를 향해야 할지 깨닫기도 한다. 한식날 선친을 성묘하는 일을 수동적 의례이거나 민간신앙 담론으로 해석하기보다, 그리운 기억을 다시 되짚어 가족의 사랑과 천륜의 의미를 찾아가는 따뜻한 만남의 자리로 바라볼 수 있음을 시인은 노래하는 것이다.
-김윤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