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왜 이렇게 오랜만이예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예전에 내가 아주 좋아하는 편집자가 있었다. 잡지사에 있다가 독립해서 출판사를 차릴 때까지는 서로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소식이 뜸해지더니 몇 년만에 다시 연락이 왔다. 한달음에 달려가 만날 정도로 반가웠다.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는 동안 그동안 자기가 살아온 얘기를 시작했다. 5년 반 동안을 ‘투 잡’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편집자가 투 잡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의 질문에 그가 대답했다. “닭 팔았어요.” 한 가정을 책임진 가장인데 출판사에서 번 돈으로는 도저히 생계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치킨 대리점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침에 출판사로 출근해서 책 만드는 일을 한 다음 4시에는 다시 치킨집으로 출근했다. 그 때부터 오토바이 배달을 시작하면 새벽 1시에 가게 문을 닫았다. 일 년에 딱 두 번 명절날을 제외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배달을 다녔다.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다 서너 차례 차와 부딪쳐 무릎수술도 받았다. 배달이 한꺼번에 밀릴 때는 학교 다니는 아이까지 동원해서 일을 도왔다. “그래도 내가 원하는 책을 만들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자신이 만든 책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좋은 책이었다. 잘 만든 책이었다. 누가 봐도 감탄할만큼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귀한 책이었다. 이런 책을 만들고 싶어서 그는 5년 반 동안 몸이 망가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아이들도 다 커서 큰 돈 들어갈 일은 없을 것 같아 보름 전에 가게를 정리했단다. 오로지 책 만드는 일에 전념하고 싶어서였다. 가게 정리 후 열흘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만 했다. 그리고 지난 주부터 필자들한테 연락하기 시작했단다. 진짜 행복한 일을 시작한 것이다. 김경민의 작품 <여행을 꿈꾸는 자> 속에는 설레임이 담겨있다. 여행을 떠나면 찍게 될 똑딱이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그녀는 빙그레 웃고 있다. 그녀의 일상이 남루할 지라도 그녀의 생활은 꿈이 있어 탱글탱글할 것이다.
김경민, <여행을 꿈꾸는 자>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친구 중에 김경민의 작품 속 여인처럼 사는 사람이 있다. 경주에 살고 있는 그녀는 문화해설사가 직업이다. 그녀는 1년 내내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모은다. 그리고 그 돈으로 1년에 한 번씩 해외답사를 간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고 했던 어느 광고 문구처럼 그녀는 떠나기 위해 열심히 산다. 퍽퍽한 일상에 파묻혀 허덕이며 살고 있을 때 두 팔을 벌리고 차를 타고 떠나던 광고속의 여인은 모든 여인들의 로망이었다. 로망이지만 어느 누구도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데 그녀는 당당히 그 문구대로 살아 간다. 그녀를 보며, 나도 그녀처럼 1년에 한 번씩 떠나는 여행비를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리라 다짐했었다. 그 때부터 먼 길을 떠나는 해외여행이 시작되었다. 나는 앞으로도 부지런히 여행비를 모아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녀처럼. 조선시대에도 여행에 미친 사람이 있었다. 정란(鄭瀾:1725~1791)이라는 사람이다. '창해일사(滄海逸士)' 또는 '창해'라는 호를 사용한 그는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대동강에서 금강산까지 조선 천지를 누비고 다니며 전문여행가로 살았다. 사대부 출신인 그가 ‘과거시험을 통한 입신출세’라는 정해진 코스를 버리고 험한 대장정에 오르게 된 것은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지금이야 한비야같은 스타가 출현해서 전문여행가가 환영받는 시대지만 조선시대에 사대부가 전문여행가로 산다는 것은 매우 일탈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는 남들이 정해 놓은 틀 속에 억지로 자신의 인생을 우겨 넣고 싶지 않았다.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생생한 삶의 진실을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서른살부터 이십여년간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며 자기가 꿈꾸는 삶을 살았다. 김홍도가 그린 <단원도(檀園圖)>에 정란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정란은 강세황, 김홍도, 김응환 등의 예술가들과 친분이 두터웠는데 이 그림은 그런 교유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수양버들 늘어지는 싱싱한 날에 정란과 강희언이 단원 김홍도의 집을 찾았다. 김홍도는 조선 제일의 화원으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고 관상감에서 근무하는 강희언 역시 그림에 재주가 있었다. 36살 단원은, 백두산과 금강산을 다녀온 57살 정란에게 좌장 자리를 권하며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다. 그 곁에서 강희언이 부채를 부치고 있다. 검은 수염을 기른 정란이 지금 신나게 자신의 여행담을 얘기하는 중일 것이다. 이 그림은 4년 후에 정란이 김홍도를 다시 찾았을 때 옛 기억을 회상하며 그렸다고 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꿈을 먹고 산다. 지금 당장 처지가 힘들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겠다는 꿈. 그 꿈이 있는 한 우리는 웃을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책을 만들기 위해 투 잡을 가졌던 편집자나 여행을 가기 위해 1년 동안 돈을 모으는 친구,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편견에도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갈 수 있었던 정란처럼 꿈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나도 꿈 좀 꾸며 살아야겠다.(조정육) 김홍도,<단원도>, 종이에 연한 색, 135×78.5cm, 서울 개인장
*이 글은『좋은 생각』2011년 3월호에 실린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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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정육의 행복한 그림읽기 원문보기 글쓴이: 조정육
첫댓글 꿈과 바램을 위해 노력하는 멋진 분. 여행을 꿈꾸는 이의 얼굴에 기쁨이 충만합니다.ㅎㅎㅎ 저도 떠나고 싶네요.^^()
한번 시작하기가 어렵지 시작을 하고 나면 그리도 쉬울수 없는게 여행이요 공부인가 합니다 ㅎㅎ 좋은 생각에 좋은 글과 그림이 실렸고 우리 카페에도 봄여행을 준비할 마음을 일으키시는군요()()()
()()()
ㅎㅎ 무진당님 덕분에 그림 속 이야기 여행(^^)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기쁨!!
< 단원도>의 정란은 살아 움직이는 견문록(!) 역할을 하고, 김홍도와 강희언에게
부러움과 존경을 받으며, 그들의 감수성을 참신하게 자극하였을 것 같아요.
그동안 문명의 발상지와 성지 순례...다양한 문화의 나라들... 여권에 도장찍을
공간이 별로 없을 정도로 한동안 여행에 심취하면서, 어느 날 문득 인간의 삶에
관한 다양성과 동질성이 함께 느껴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소망은 세월이 흘러~ 산타 ㅎㅎ 할머니가 되어,~ 인연 있는 아이들에게
선물과 함께 여행다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관세음보살()()()
오늘은 지인으로 부터 좋은생각 3월호 받았는데의 필자에 조정육님 (미술사가) 이름이 보여 무지 반갑고
이
책을 통해 보는 글은 또 다른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