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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5주일 [은혜의 청지기]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에베소서 3: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반드시 일꾼을 사용하신다.
그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강제로 일꾼을 위임하여, 세워서 그를 통해, 그의 일을 이루신다.
이 땅에 어디서든지 하나님은 종을 세우셔서, 그의 은혜를 주시고, 축복하신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하는 종은 출신은 땅에서 나왔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자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우셔서 일하는 종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청지기]
주의 종은 그리스도의 청지기들이다.
청지기라는 말을 성경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에 낯설지 않다.
그렇지만, 조금 더 큰 범위에서 우리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청지기들이다.
주님의 집에서 사용받는 일꾼들이다.
청지기들이 하는 일은 그 내용상, 주인이 원하는 일이다.
주인집에서 주인이 원하시는 것을 순종해서 하는 것이다.
여기서 청지기 자신의 의지는 매우 제한되어 있지만, 전체적인 책임은 지고 있다.
왜 거기서 일을 할까.
청지기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들이 일하는 목적은 주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주인집의 번영, 유지가 목적이다.
그리고, 일하는 방법은 무조건 순종이다.
주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다.
청지기라는 개념은 성경이 쓰여질 때, 그 이전부터 있었고, 근래까지 있었던 개념이다.
지금 시대에서는 그 개념이 점차 잊혀지고 있다.
경제 형태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시대 상황에 비추어 이해하고 있다.
여기 중요한 전제가 있다.
청지기는 많은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일단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기가 하고 싶은 방법으로 하지 못한다.
고통이 따르고, 고난이 따르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결과적으로는 청지기의 일을 통해, 주인의 집안이 잘되는 것이다.
그리고, 청지기는 주인으로부터 보상을 받는다.
이것이 성경에 흐르고 있는 개념이다.
주인과 청지기의 관계는 천국에서 우리가 받는 대우를 설명한다.
우리는 천국에 가서 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머리에 제일 먼저 떠올리는 그 상이 아니다.
우리가 머리에 떠올리는 것은 영어로 하면, prize, 트로피같은 것이다.
경쟁해서 남보다 뛰어나게 해낸 상이 아니라, 보상을 주신다.
천국에서 우리가 받는 것은 보상이다.
영어로 reward다.
reward는 마땅히 받아야되는 것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사실은 피해본 것을 갚아준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이 땅에서 주의 일을 하느라 고통당한 것, 피해를 본 것에 대해서 주님이 잊지 않으시고, 갚아주신다는 바로 그 상이다.
[상이 아닌 보상]
주를 섬기느라 잃은 것에 대한 보상이다.
무엇을 잘해서, 남보다 우수해서 상을 받는 것과는 무관하다.
개념 자체가 품꾼이 열심히 일해서, 무언가를 받는 개념이다.
이제부터는 그런 차원에서 트로피를 생각하면 안될 것이다.
그런 개념이 아니라, 그동안 고생한 것을 갚아주신다고 봐야 한다.
마태복음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6: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6: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세상에서 얌체처럼 하면, 자기가 받을 것을 이미 다 받아버린 것이다.
그러나, 주의 의를 닮아가다보면 손해를 많이 본다.
인정도 받지 못하고, 남이 얌체처럼 영광을 다 가로채버린다.
그러나, 상이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마태복음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선지자를 섬기느라, 트로피를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섬기느라 궁핍해진 것에 대해 갚아주신다는 것이다.
옛날 상의 개념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성경에서 결단코라는 말이 나오면, 정말 중요하게 줄을 쳐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이다.
요한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우리는 마지막 날에 상을 받게 될 것이다.
무슨 화려한 옷, 트로피 같은 것은 따로 있겠지만, 그것보다 그동안 고통당한 것을 보상하신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 피흘린 것, 흘린 눈물을 갚아줄 것이다.
네가 수고하고, 고생한 것, 내가 잊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나를 위해 수고하라.
물론 성경에 상 자체를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단어가 다르다.
경기에서 우승하는 개념이다.
이것은 주를 위한 열심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열심히 해서, 결국 소망했던 영광의 목적을 이룬다는 차원에서 설명한 것이지, 이 두구절이 성경의 나머지를 대표하지는 못한다.
이런 예외적인 표현 때문에, 마음이 빼앗겨 성경 전체의 의미를 바꾸어서는 안된다.
이 세상에서 살던 기준을 그리스도 교회에 가져와서 여전히 쓸 수 있다고, 세상의 욕심을 부리는 것은 옳지 않다.
상을 받는 것에 대해, 내가 활약하여 영광받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우리가 받게 될 것은 이 땅에서 심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고난을 심는다.
고통, 아픔, 손해, 피해를 심는다.
이것이 우리의 열매다.
죄인이 돌이켜서, 맺은 것, 열매.
여기에 대해서 주님이 보상하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태복음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마태복음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태복음 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신앙생활은 고난을 피할 수 없다.
주의 의를 닮으려다 보니, 악한 존재들과 경쟁할 때, 아픔을 많이 겪는다.
그러나, 끝까지 의를 위해 섬긴 것, 애쓴 것을 갚아주신다.
선하신 하나님의 의를 사랑하고, 찬양하는 삶이 그리스도의 삶이다.
그러다보니, 고난도 많이 겪는다.
그러나,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네 상이 크리라.
지금은 당하는 것 같아도, 너에게는 상이 있다.
믿음의 인생은 의를 위해 손해를 많이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보상은 반드시 있다.
이를 위해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다.
종을 먼저 부르셨고, 모든 그리스도인을 부르셨다.
[종으로 부르심 & 믿음으로 부르심]
고린도전서 3: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고린도전서 3: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주의 종도, 모든 그리스도인도 각각 부르시지만, 모두 보상이 있다.
요한계시록 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그러나, 주의 종과 일반성도와 다른 점도 있다.
주의 종은 하나님이 강권으로 부르신다.
일반성도는 강제성이 없다. 믿음의 소식을 듣고, 의지를 자기가 바꾸어야 한다.
자기 의지로 와서, 주의 일을 돕는 자다. 이들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
더 높은 일, 하고 싶은 일 취사선택해도 된다.
고통이 싫으면 관두어도 된다.
자기 믿음으로 와야 한다.
반면, 주의 종은 거절할 수가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자기 자유가 없는 것이다.
고생길인데,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의 강권으로 붙잡은 자는 자기가 마음대로 못한다.
차이가 있다.
주의 종들은 적어도 주의 명령에 순종하기 때문에, 그런 부르심에 대해 순종하는 것에 대해 주님이 좋게 봐주시길 바란다.
우리가 주의 종을 특별히 대우하는 것은 사실 그 뒤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의심이 가더라도, 일단 높이는 것이다.
진짜 그 뒤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높이는 것이지, 종 자신이 높아진 것이 아니다.
바울은 이렇게 악한 자신도 부르셨다고 한다.
갑자기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잘났다고 할 수 없다.
사도들, 그 다음세대의 주의 종들은 하나님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일을 시키지만, 나머지 성도는 각자 믿음으로 다가와서, 자기의 의지를 믿음 아래 내려놓고, 자기 의지를 주께 드리며 섬겨야 한다.
이것도 희생이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의 삶은 모두 희생이라고 함부로 단정지어서도 안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엄청난 기쁨이 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자주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원래 하나님의 뜻은 모든 성도들이 주의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돕는 것이다.
인간의 욕심을 버리고, 주의 교회에 함께 모여서, 교회를 위해 자기를 드린다.
손해 안보고, 남는 시간에 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눈물이 그렁그렁한 섬김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큰 직분을 행해서, 영웅이 되면, 하나님이 좋게 보신다고 오해한다.
자기만 좋은 것이지, 하나님은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자세히 보라.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의 구속 사역에 자신을 희생하여 사용될 뿐이다.
그런 과정에 억울함도 많이 겪을 것이다.
억울함을 겪지 않으려고 하니까, 나중에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로 변해버리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희생을 작정하고 해야 하는 본질을 잊고, 그저 욕심만 두고, 큰 것만 노리다보니, 세상에서 하듯, 교회에서도 남을 쓰러뜨리려고 한다.
그렇게하더라도, 일단 크게 되면, 과거의 잘못은 커버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괜찮지 않다.
이 사람은 보상은 없고, 최고 무서운 형벌이 있을 뿐이다.
복음의 원리를 역행했기 때문이다.
기도만 근사하게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속지 않으신다.
우리가 교회에서 할 일은 전체를 잘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임무에 나도 참여하여, 나를 희생할 것을 각오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의 삶은 교회를 통해 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잘되시도록 자기를 드리는 것이다.
계산하지 않고 자기를 드린다.
이런 본질을 잊어버리면 안된다.
이와 다른 이야기를 누구도 할 수 없다.
이런 그리스도의 원칙에 우리가 서 있다.
이렇게 하여, 주님이 받기에 합당한 교회가 되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날의 육신의 만족이 아니라, 시간을 벗어난 영원한 미래에 영원토록 보상받는 자들 되자.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주님이 약속하신 보상을 받자.
에베소서 3: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지난주, 주의 일로 갇힌 나, 바울은...
하면서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이제 다른 어조로 말을 이어간다.
사도 바울의 사도적 위치에 대해서, 의심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이 있는 한, 계속 진행해봤자 의미없겠다고 하여, 전환하여, 말을 이어간다.
나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끼어있다. 그가 나를 그분안에 가두어두셨다.
이것은 너희 이방인들을 위해서다.
내가 갇힌 것은 너희가 얕볼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나는 그리스도에게 갇혀 있다.
내가 갇힌 것은 너희를 위한 것이다.
이것이 지난주의 포인트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자기에 대해, 스스로 사도라고 하고 있다.
[계시받도록 세우신 종]
바울은 예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부르셨다.
그래서, 그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자기 목자의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개인이 자기 욕심으로 있는지, 그 뒤에 하나님이 계신지 알아야 한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일을 의심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나, 의심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너희를 위한 섭리가 내게 임한 사실을 아느냐?]
나는 너희가 이미 들어알고 있는 바, 확신하고 있다.
에베소서 3: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내게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이 임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느냐.
경륜이라는 원어의 뜻은 청지기 직분, 경영이라는 뜻이 있다.
은혜의 청지기 직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이렇게 번역하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청지기 직분을 주셨음을 너희가 들어서 알 것이다.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사도로 세우신 사실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청지기는 주인을 위해, 집안의 모든 일을 다루는 자들이다.
청지기가 주인의 집 농장을 잘 운영하고, 가축도 잘 돌보고, 농작물도 관리하고, 종들에게 일을 나누어주고, 다 관리한다.
전체를 감독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것은 자기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주께서 택하여, 직분을 주신 것이다.
디모데전서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왜 은혜의 경륜이라고 했을까.
청지기직을 주신 것 자체가 은혜다.
또, 문법적으로 은혜를 전하는 청지기라는 의미도 있다.
로마서 15: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로마서 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자기는 은혜 받았는데, 할 일은 이방인들을 구원시키는 것이다.
자기 뒤에 있는 거역할 수 없는 그분의 위력에 대해서 항상 쫓기고 있다.
고린도전서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린도전서 9:17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하나님의 힘으로 자기를 몰고 갔음을 느끼고 있다.
나는 싫다고 해서 일을 거절할 수 없다.
고린도전서 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래서, 청지기다.
사실 모든 신자들이 다 청지기다.
주님은 우리 모두를 청지기 같은 일을 하도록 부르셨다.
베드로전서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바울은 하나님이 내게 직분을 주셨음을 알라고 말한다.
나는 하나님이 세우신 너희들의 매니저다.
주님은 주의 종들을 통해, 모든 것을 통일할 날을 재촉하신다.
골로새서 1:25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본문은 단순히 직분이 아니라, 은혜의 직분을 강조하고 있다.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은혜]
그는 직분 자체가 은혜를 나누어 주는 자다.
자기는 직분을 받은 것이 은혜이지만, 하는 일 자체가 은혜를 나누는 일이다.
고린도전서 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그래서, 일 자체가 은혜의 직분이다.
로마서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로마서 15: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바울은 자신을 위해서 일하지 않았다.
주의 종들이 자기를 위해 일하지 않듯, 자기 성도를 위해 일했다.
그들은 자기 성도를 위해 강제로 세우신 자들이다.
그들은 고난을 피할 수도 없고, 억울함을 갚으려고 애를 쓸 수도 없다.
하지만, 은혜를 중재하는 자다.
은혜는 바울에게 주어졌는데, 이방인을 위해 일하고 있다.
나는 하나님이 쓰시는 청지기다.
오늘날도 이 원칙을 벗어날 수 없다.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는 이런 관계다.
은혜와 축복이 흘러들어와야 한다.
순종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많이 받기 바란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지 않으면, 섬길래야 섬길 수 없다.
천국을 이미 소유한 자가,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내어주었어도, 맥없이 쓰러지는 교회가 되지 말고, 승리하는 교회, 하나님의 보상을 받는 교회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