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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후 세 시 기도를 하는 시간이 되어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가는데,
2.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을 사람들이 떠메고 왔다. 그들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게 하려고, 그 앉은뱅이를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는 성전 문 곁에 앉혀 놓았다.
3. 그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구걸을 하였다.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그를 눈여겨 보고 나서, 그에게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5. 그 앉은뱅이는 무엇을 얻으려니 하고,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6.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하고,
7.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는 즉시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
8. 벌떡 일어나서 걸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행3:1-8)
1 One day Peter and John went to the Temple at three o'clock in the afternoon, the hour for prayer. 2 There at the Beautiful Gate, as it was called, was a man who had been lame all his life. Every day he was carried to the gate to beg for money from the people who were going into the Temple. 3 When he saw Peter and John going in, he begged them to give him something. 4 They looked straight at him, and Peter said, “Look at us!” 5 So he looked at them, expecting to get something from them. 6 But Peter said to him, “I have no money at all, but I give you what I have: in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I order you to get up and walk!” 7 Then he took him by his right hand and helped him up. At once the man's feet and ankles became strong; 8 he jumped up, stood on his feet, and started walking around. Then he went into the Temple with them, walking and jumping and praising God.
어느 의대 교수의 죽음학 강의를 들었습니다.
목사라면 몰라도 죽음 뒤의 일을 의사가 어떻게 알까?
용종이 있으면 수술칼로 잘라내는 사람들이 의사 아닌가?
산 사람은 잘 알겠지만.......
지난해에 난생처음 내시경 검사를 받았습니다.
의사는 제 위 안에 용종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날카로운 수술칼로 내 용종을 잘라 주었습니다.
목사인 저야 이 일을 두고도 기도 운운했을 것이지만.......
그들은 숨 떨어진 사람의 몸을 썩어갈 단백질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철저한 유물론자들입니다.
고등학교 생물책에서 배운 것입니다.
태초에 번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과 암모니아 또 이산화탄소....... 그것들이 모인 곳에 파박 내리친 것입니다.
그러자 단백질이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단세포 세균인지로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마침내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진화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이 설교는 내가 머리 싸매고 준비한 것입니다.
아이고 하나님 하면서 수없이 수정한 그 고민들도 그 단백질의 작용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냉장고에서 상했다고 버린 두부가 진화한 결과입니다.
숨넘어간 단백질 즉 시체가 영생을 누린다는 것을 의사는 어떻게 설명할까?
의사가 잘 다루는 수술칼로 영혼을 수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사의 강의가 공돌이 출신인 나에게 목사들의 설교보다 더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이 의사는 가장 먼저 유체 이탈부터 언급했습니다.
어떤 농구 선수는 넘어졌다가
어떤 골프 선수는 골프공에 머리를 맞아서
축구 선수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살아난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도 호흡이 멈추고 피가 순환을 그친 것입니다.
당연히 뇌도 그 기능을 멈춘 것입니다.
그때부터 사람 눈의 수정체도 허옇게 투명성을 잃을 것입니다.
눈은 이미 감겨있었을 것입니다.
눈이 떠 있었더라도 그에게 보이는 것은 시체실 냉동고 스텐레스 철판이 고작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기이한 일입니다.
수술대 위에 마취되어 누워있는 자신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링거가 꽂히고
이리 저리로 전선들과 튜브가 얽히고
의사와 간호사의 말들도 들었습니다.
다음에 냉동고에 누인 자신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눈물 흘리는 가족들의 말도 들었습니다.
들은 것도 본 것도 뇌는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죽었다 살아난 농구 선수가 그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정확하게 그 사실을 진술했다는 것입니다.
그랬으니 의사도 사람을 단백질로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수술칼로는 자를 수도 없는 다른 영역이 있다고 시인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유래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7.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2:7)
사람은 두 가지 재료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첫 번째 재료는 땅의 흙입니다.
두 번째 재료는 생명의 기운입니다.
썩어가는 단백질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생각도 못 했던 영적 부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체 이탈한 농구 선수 때문에 의사가 시인하게 된 부분입니다.
진화론은 인간을 구성하는 흙의 부분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설명조차 억지입니다.
이천 억분의 일의 확률인지 혹은 1조 분의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우연히 암모니아, 이산화탄소, 물....... 이 한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거기에 번개가 친 것입니다.
그것이 2,222V 이상이어도 안 되고 또 그 미만이어도 안 됩니다.
볼트 수가 더 되면 그 물질이 홀랑 타 버리고 덜 되면 그 반응이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단백질이 생겼는데 일조 분의 일의 확률로 그것이 세포막, 세포질, 미토콘드리아.......로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관되게 열역학 2법칙을 역행했다는 가정입니다.
원숭이에서 결국 사람으로!
그런데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의 경우 그런 억지 설명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당장 우리 현실에서 죽음의 건너편을 경험한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죽음 건너편에 있는데 그 나라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죽음의 이편에서!
죽었다가 다시 산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그 경험이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기에 얼마나 부족한가!
입신을 해도 천국의 어디 구석태기나 경험한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의 표현에 얼마나 많은 과장이 뒤섞여 있을까!
하지만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여 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다.
24. 그래서 나는, 너희가 너희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내가 그이라는 것을 너희가 믿지 않으면, 너희는 너희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요8:23,24)
예수님만 그 나라를 제대로 경험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죄 중에 헤매다가 죽는 수밖에!
입신의 경험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습니까?
천국 천장의 한 귀퉁이나 보고 온 일이!
의사의 유체 이탈이란 사람이 단백질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경고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설명하려다가 미문 앞의 거지를 생각한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났다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를 통해서 딴 세상이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 사람에게 부활이 불가능한 것이 진리겠지만 딴 나라 하나님은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딱 한 번 그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신학교를 들어가지 얼마 전이었습니다.
정릉 이층집.
제 머리맡으로는 큰 창문이 있었습니다.
베개에 머리면 대자마자 잠드는 제가 한 달여를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이 유리창을 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느 현대 작가의 그림에서 본 그대로 였습니다.
시계가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엿가락처럼 늘어진 마귀가 유리창 틀을 넘어서 내게 스며 왔습니다.
그 순간입니다.
나는 내 방의 지붕에서 벌떡 일어나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검은 물체를 향해 내가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니 귀신아 나가라!
당시 저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쩌고 하는 것이 정말로 유치하게 들렸습니다.
예수 이름으로와 열려라 참깨와 무슨 차이가 있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내 머리가 벼개에 닿다 하면 그대로 잠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박 집사님도 얼마 전 그 고백을 하셨습니다.
뇌수술을 앞두고 몸에 마취 주사가 꽂히는 순간입니다.
집사님의 영혼이 몸에서 이탈하는 경험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집사님은 내가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도 못 했다며 당황했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였든지 천사였든지 그 호소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다시 회복되셨다는 것입니다.
그 경험이 특별했던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저도 몇 번 들었습니다.
그 때 민 집사님도 수술을 받았습니다.
알러지 때문에 마취 주사를 맞지도 못하고 수술을 받은 경험입니다.
마취 주사를 안 맞았으니 수술칼로 배를 가르고, 쓱쓱 수술 가위에 살이 잘리는 소리도 들었을 것입니다.
의사와 간호사의 대화소리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려움 없이 수술을 잘 감당했다고 간증했습니다.
제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난 일들을 나열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영적인 현실이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총 교인은 신혜 신지를 합쳐서 열세 명입니다.
그 중에 유체 이탈을 두 사람이 고백한 것입니다.
또 한 분은 다른 나를 경험했다고 최근에 고백했습니다.
내 지식을 가지고 다 아는 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활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그 부활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한 앉은뱅이가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일어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퇴화된 다리뼈에 철심을 박아 넣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다음 6개월 재활 치료를 했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그는 성전을 향하는 사람을 향해 한푼 줍쑈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성전을 향해 뛰어갔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찬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과연 무슨 일을 했는가?
1. 오후 세 시 기도를 하는 시간이 되어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가는데,
1 One day Peter and John went to the Temple at three o'clock in the afternoon, the hour for prayer.
유대인들은 시간을 정해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오후 세 시가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그 시간에 정해진 성전으로 간 것입니다.
이 정해진 시간의 기도를 종교적 숙제로 여긴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숙제를 못 마치며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없는.......
성경에 정해진 시간에 기도했던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먼 이방땅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 다니엘은 그 나라에 고위 관리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끌려온 포로의 출세를 시기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관리들은 이 다니엘을 제거할 음모를 꾸몄습니다.
7. 이 나라 정승들과 대신들과 지방장관들과 고문관들과 총독들이 모두 의논한 바가 있습니다. 임금님이 법을 한 가지 만드셔서, 금령으로 내려 주시도록 요청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법은, 앞으로 삼십 일 동안에, 임금님 말고,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간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자 굴에 집어 넣기로 한다는 것입니다.(단6:7)
정해진 기도를 하나님 종교 숙제로 여긴 사람들이 태반이었던 모양입니다.
생명 걸고 기도했던 사람은 다니엘이 유일했던 듯싶습니다.
그래서 호랑이 굴에 빠진 사람은 다니엘뿐이었던 같습니다.
다리오 왕의 금령이 있기 전까지 모든 유대인들의 기도가 똑같은 줄 알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역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발걸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그들은 달랐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2.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을 사람들이 떠메고 왔다. 그들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게 하려고, 그 앉은뱅이를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는 성전 문 곁에 앉혀 놓았다.
2 There at the Beautiful Gate, as it was called, was a man who had been lame all his life. Every day he was carried to the gate to beg for money from the people who were going into the Temple.
태어나면서부터 성전 미문 앞의 그 자리는 앉은뱅이의 차지였습니다.
앉은뱅이는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성전 앞은 구걸하는 자리!
그는 나면서부터 그 때까지 성전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아왔던 것입니다.
그들은 성전에 기도하러 왔습니다.
그 때마다 그들은 제 경건을 과시하며 깡통에 돈을 넣어주었던 것입니다.
교인들은 내 깡통 채우는 사람!
그리고 그가 나면서부터 이 일을 위해서 봉사하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교회는 그를 그 자리에 떠메고 와서 앉혀 두었던 것입니다.
교회 사역은 나를 떠메다가 성전 앞에 앉혀두는 일!
그는 나면서부터 그 돈으로 저녁이면 짜장면을 사 먹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3. 그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구걸을 하였다.
3 When he saw Peter and John going in, he begged them to give him something.
성령 받은 베드로와 요한 역시 성전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 두 사도 역시 대대로 내려오던 유대 전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되어서 성전을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앉은뱅이 눈에 베드로와 요한도 다른 사람과 다를 것 없었습니다.
차이가 있었다면 그들이 더 누추해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거지가 이 두 사람에게 똑같은 것을 구했던 것입니다.
깡통을 채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의 진정한 다른 의미가 있었습니다.
17. 예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막11:17a)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뜻이 무엇인가?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그를 눈여겨 보고 나서, 그에게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 They looked straight at him, and Peter said, “Look at us!”
성령을 받기 전의 베드로도 그 자리를 지날 때 그 깡통에 돈을 넣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령을 받은 후 거지에게 다른 요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을 보라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의 경험은 베드로를 거듭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로 다른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베드로는 이제 사람들을 다른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깡통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짠맛을 내겠느냐? 그러면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리니,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숨길 수 없다.
15.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됫박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16.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마5:13-16)
성령을 받은 사람은 타락한 심령의 부패를 막을 것입니다.
또 교회와 사회의 불을 밝힐 것입니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없다면 발에 밟혀버릴 것입니다.
그것은 거름으로도 못 쓸 것입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위해 서로 눈이 마주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신경은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선교는 선교 헌금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은혜받는 자리는 목사가 설교할 때 목사 침이 튀는 교회 앞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는 교인에게 침 튀어서 미안했다고 용서를 빌 것이고 교인들은 또 용서해야 할 것입니다
그 교제가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온라인인지 전선을 거쳐 모니터의 목사가 목청을 높여도 목사의 침이 튀지 않습니다.
거기에 교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선교는 오프 라인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상처를 만져주어야 하는 교제
함께 울고 웃어야 하는 교제는 필수적입니다.
거기에 웃고 우시는 예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5. 그 앉은뱅이는 무엇을 얻으려니 하고,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5 So he looked at them, expecting to get something from them.
제 눈을 쳐다보라니 앉은뱅이에게 그런 요구는 처음이었습니다.
그 특별한 요구를 듣고 그 거지가 이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본 것입니다.
거지는 두 사도의 요구가 하도 특별해서 제 집 집문서를 내 깡통에 넣어주려나? 했을 것입니다.
이 앉은뱅이는 지금 성령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으로부터 나면서 그 때까지 기대했던 것을 그대로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나면서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다른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기대를 바꾸라는 것입니다.
사람 눈이 서로 마주칠 때 그 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 깡통이 필요 없습니다.
앉은뱅이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나버릴 것입니다.
은과 금이 필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이면 되는 것입니다.
6.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하고,
6 But Peter said to him, “I have no money at all, but I give you what I have: in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I order you to get up and walk!”
*자기 소개
베드로는 거지 앞에서 먼저 자신 소개부터 했습니다.
자신은 깡통에 채워줄 동전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거기 앉아 있던 거지보다 더 거지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름답게 평가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물론 그가 그 거지에게 줄 것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이라는 인격과 나라는 인격을 통해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요구를 받아들이실 때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전능하신 분이 나의 기도를 들으실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하나님께 이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기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요구를 들으신 것입니다.
그 사건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의 무엇을 보고 베드로의 기도를 허락하셨겠습니까?
목이 쉬도록 외치라는 둥
온정신을 집중하라는 둥
방언하라는 둥
갈멜산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기도가 그들의 신에게 통하지 않자 그들이 했던 행위입니다.
28. 그들은 더 큰소리로 부르짖으면서, 그들의 예배 관습에 따라, 칼과 창으로 피가 흐르도록 자기 몸을 찔렀다.(왕상18:28)
이런 짓을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상황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제물 옆으로 도랑을 파고 물을 가져다가 부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기도하자 제물에 불이 붙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신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은과 금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내 사람이라고 여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요구하자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 일의 중요한 것은 어떤 종교 기술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삶이 노상 하나님을 인정하느냐는 것입니다.
*부정 = 내게 없는 것
베드로의 기도문은 아주 짧았습니다.
먼저 강력한 부정을 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상과의 부정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딴 여자를 숨겨두고 제 아내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가장 먼저 자신은 그 깡통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밝힌 것입니다.
깡통이 거지의 우상이었습니다.
7.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는 즉시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
7 Then he took him by his right hand and helped him up. At once the man's feet and ankles became strong;
8. 벌떡 일어나서 걸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
8 he jumped up, stood on his feet, and started walking around. Then he went into the Temple with them, walking and jumping and praising God.
*내게 있는 것 = 예수의 이름
기도의 사전적 의미입니다.
기도 : 신이나 절대적 존재에게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빎
사람들이 제 손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두고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 손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두고 전능자에게 비는 것입니다.
그 분이 그 요구를 받아들이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일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성령 받기 이전의 베드로가 있습니다.
그 때 그는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신다면 거기까지 따르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한 하녀가 지나가면 한마디 던지자 자신의 정체를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그것을 세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그는 닭이 울자 함께 울었습니다.
그런 그가 성령 하나님을 받고 딴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성령을 받고 예수의 이름이 하나님의 현재임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자 앉은뱅이 벌떡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에게 거지 깡통이 무슨 의미를 갖겠습니까?
부활을 이야기 하려다가 이 말씀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한 의사가 죽음 후를 말했습니다.
그는 먼저 유체 이탈을 언급했습니다.
죽은 사람에게 어떻게 생명으로 다시 부활하는 일이 있을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일로 세상의 모든 앉은뱅이를 일으키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일어나는 것을 통해 딴 세상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그 딴 세상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열린다는 것입니다.
부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일을 교회가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거지 깡통 채워주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거지를 떠매다가 교회 앞에 앉히는 일.......
성령은 받고 그 하나님의 현재를 이 죄인의 땅에 드러내야 합니다.
그 일은 부활의 소망에 기인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제 목숨까지 내어놓은 순교를 택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십자가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세상 부정에 야합하는 일은 그 나라의 소망이 없는 결과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종교 고백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현재를 이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