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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날 특집 시 모음> 고경숙의 '부부학 개론' 외 + 부부학 개론 하릴없이 공원 벤치에 앉아서 사람구경도 식상해지면 발 밑에 킁킁대는 개들 좀 보라지. 삐적 마른 놈 눈만 불뚝한 치와와는 영락없이 제 주인 닮았고 긴 털 멋있는 콜리는 외제차 타는 도도한 주인처럼 격이 있어. 시장 바닥에 떠도는 똥개들은 술판 기웃대며 거나한 딱 제 주인이지. 모처럼 부부간에 의기투합했는데 지나가던 이웃 할머니 우리보고 부부가 닮아서 잘 살겠다네. 저 화상보다 내가 한 수 위인 줄 알았는데 우린 코끝에 검댕 묻은 두 마리 똥개였나 봐. 여보야,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 사랑한데이- 깨갱 깽 깽 신소리 마레이- 깨갱 깽 깽. (고경숙·시인, 1961-) + 부부 은사시나무가 온몸으로 비를 맞고 서 있다. 그 옆에 나도 온몸으로 비를 맞고 섰다. 그렇게 우리는 은사시나무가 되었다. (정가일·시인, 1952-) + 부부 꼭 그만큼의 거리를 두는 철로는 모퉁이를 돌 때면 하나가 되는 뒷모습을 보인다 (정영선·시인, 부산 출생) + 어떤 부부 - 동병상련(同病相憐) 몇 해 전부터 아내는 관절염을 호소해왔다. 나도 올해부터 오른쪽 정강이 관절을 앓고 있다. 우리는 만난 지 사 반세기만에야. 아픔을 같이 느끼는 비로소 부부가 되어가고 있다. (김시종·시인, 1942-) + 부부 당신 나 되고 나 당신 되어 기둥 같이 부여안고 서로에게 힘이 되고 서로에게 의지하고 지치면 손잡아 주고 아프면 안아 주며 때로는 눈감아 그리워하고...... (곽정숙·시인) + 부부 남남끼리 서로 만나 한 뜻, 한 몸을 이루고 좋은 일도 궂은 일도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쉬운 일도 힘든 일도 서로 나누어 가지는 그래서 잡은 손 놓지 않고 험한 세상 나란히 보듬고 아끼며 끝날까지 사랑하며 인내하며 함께 가야하는 결코 촌수를 잴 수 없는 무촌 (오정방·재미 시인, 1941-) + 부부란 나로 사는 것이 아닌 너로 살아서 나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낯을 살리는 옷매무새로 찬바람을 막기도 부끄러움을 가려주기도 하는 방패막이로 사는 앞단추처럼 그렇게 그렇게 살아내는 것입니다 (오영록·시인, 1959-) + 부부 두 줄로 늘어선 철길 한쪽 눈으로 바라본다. 두 줄이 어깨동무하고 가다가 하나가 되어 눕는다. 토라져 돌아앉은 그대 한쪽 눈을 감고 바라본다. 비로소 감은 눈 속으로 들어와 웃는 얼굴로 하나가 된다. (이재봉·시인, 1945-) + 부부요(夫婦謠) 부부란 열 살 줄은 서로 뭣 모르고 살고, 스무 줄은 서로 좋아서 살고, 서른 줄은 눈코 뜰 새 없이 살고, 마흔 줄은 서로 못 버려서 살고, 쉰 줄은 서로 가엾어 살고, 예순 줄은 서로 고마워서 살고, 일흔 줄은 등 긁어 줄 사람 없어 산다. (한국 민요) + 부부 그 신비 우연이라 하지 말자 그와 그는 필연이었다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에 만나 하나가 죽어야 하나가 사는 넘어질 듯 넘어질 듯 오뚝이 잘 다듬으면 보물 던지지는 마라 위험한 폭탄이다 (하영순·시인) + 너와 나는 돌아도 끝없는 둥근 세상 너와 나는 밤낮을 같이하는 두 개의 시계바늘 네가 길면 나는 짧고 네가 짧으면 나는 길고 사랑으로 못 박히면 돌이킬 수 없네 서로를 받쳐 주는 원 안에 빛을 향해 눈뜨는 숙명의 반려 한순간도 쉴 틈이 없는 너와 나는 영원을 똑딱이는 두 개의 시계바늘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부부 차가운 세파에 얼음처럼 굳어져서 어찌할 바 몰라 하다가도 당신의 미소 앞에 눈 녹듯 녹아 내리는 내 가슴은 어찌 보면 너무도 철없는 아이 같지만 한세상 살아가는 길목에서 서로 만나 화를 낸들 무얼 하며 속절없이 고집한들 무얼 하겠소 하늘 연분으로 맺어져 한 지붕 아래 살아가면 속정까지 다 들어 어찌 보면 먼 듯 느껴지는데 당신도 고운 얼굴 주름살지고 내 검은머리 하나 둘 잔설이 내리기 시작하고 자식들도 우리들만큼 커가고 어찌 보면 우리는 닮고 또 닮았소이다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부부 허리 굽은 할머니 숨 헉헉 지나갔다 허리 굽은 할아버지도 또 헉헉 지나간다 잽히면 죽일 겨 딱 저만큼의 거리를 두고 숨 가쁘게 달려온, 저 거리距離의 팽팽한 긴장이 칠순의 노구를 달리게 하고 내가 놓을까 당신이 놓을까 두렵게, 때로는 안쓰럽게 그렇게 팽팽하게 건너온 생生이었을 것이다 (최을원·시인, 경북 예천 출생) + 고무신 두 짝처럼 아버지 밥상 펴시면 어머니 밥 푸시고 아버지 밥상 치우면 어머니 설거지하시고 아버지 괭이 들고 나가시면 어머니 호미 들고 나가시고 아버지가 산밭에 옥수수 심자 하면 옥수수 심고 어머니가 골짝밭에 감자 심자 하면 감자 심고 고무신 두 짝처럼 나란히 나가셨다가 나란히 돌아오시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서정홍·시인, 1958-) + 자반고등어를 생각하며 시장에서 금슬(琴瑟) 좋은 부부 같은 자반고등어 한 손을 사왔다 겹쳐있던 몸을 떼어내니 움푹 패인 흔적들이 여기저기 함께 절여졌던 세월만큼 깊게 패여 있다 무엇엔가 눌려도 서로에게 뿐이 줄 수밖에 없었던 그러나 다 받아 안은 서로의 상처 시퍼런 속 다 파내고 더 이상 아픔 없는 사랑이 되었다는 말이 입안을 뱅뱅 맴돌지만 말할 수 없었다 금슬 좋다는 말도 아프다 저녁 식탁에 앉아 있는 남편의 등 뒤에서 내 등지느러미를 재어본다 (이성이·시인) + 조개껍질은 녹슬지 않는다 조개껍질은 녹슬지 않는다. 당신과 나 우리가 되어 방축포 모래밭에서 주워 온 이야기들은 녹슬지 않는다.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무화과 꽃처럼 아픈 아내야, 내 술잔 속의 바다가 넘쳐 그 모래밭에 숨겨 놓은 우리들의 발자국을 지운다 해도 그때 그 노래는 지워지지 않는다. 내 몸이 녹슬어 부서진다 해도 내 마음은 당신의 가슴에 뭉쳐 다시는 다시는 흩어지지 않는다. 내 가슴에 고인 당신의 아픔이 이제는 우유 빛 진주가 되어 내가 떠나도 녹슬지 않는다. (박석구·시인, 전북 임실 출생) + 만파식적(萬波息笛) - 남편에게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 같이,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간격을 지키면서 외롭지 않게, 외롭지 않으면서 방해받지 않고, 그렇게 사는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두 개의 대나무가 묶이어 있다 서로간에 기댐이 없기에 이음과 이음 사이엔 투명한 빈자리가 생기지, 그 빈자리에서만 불멸의 금빛 음악이 태어난다 그 음악이 없다면 결혼이란 악천후, 영원한 원생동물들처럼 서로 돌기를 뻗쳐 자기의 근심으로 서로 목을 조르는 것 더불어 살면서도 아닌 것같이 우리 사이엔 투명한 빈자리가 놓이고 풍금의 내부처럼 그 사이로는 바람이 흐르고 별들이 나부껴, 그대여, 저 신비로운 대나무피리의 전설을 들은 적이 있는가?...... 외따로 살면서도 더불음 같이 죽순처럼 광명한 아이는 자라고 악보를 모르는 오선지 위로는 자비처럼 서러운 음악이 흘러라...... (김승희·시인, 1952-) + 통일 당신, 당신보다 내 먼저 죽거들랑 우리 아이들에게 내 곁에 함께 합장하여 당신 묻어 달라 부탁하소 난, 내보다 당신 먼저 죽으면 우리 아이들에게 당신 곁에 함께 합장하여 날 묻어 달라 부탁할 터이니 (정세훈·시인, 1955-) + 메기탕 먹는 부부 말이 없다 집에선들 말이 있는지 메기탕을 먹는 부부는 열심히 메기 뼈를 바르고 커다란 뚝배기를 휘휘 젓는다 좀 더 매웠으면...... 그래, 좀 더 매웠으면...... 그들이 나눈 말은 고작 두 마디 남자는 연신 약간 비뚤어진 입을 실룩거리고 여자는 이제 오렌지빛깔의 루즈가 벗겨진 입술을 하아하아 거린다 비록 먹기 위해 사는 일이라지만? 비록 살기 위해 먹는 일이라지만? 부디 메기탕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장안사까지 와서 부디 두 마디를 나누기 위해 장안사까지 와서 부디 계곡의 끝과 끝까지 들어찬 돗자리나 구경하면서 부디 녹음된 염불(念佛)이나 스피커를 통해 들으면서 좀 더 매웠으면 좋을 메기탕이나 먹어야 하는 것이라면 사는 게 조금은 쓸쓸하다는 생각을 하며 약수터 산장(山莊)의 처마 끝을 바라볼 때에 웬걸 우리 식탁 메기탕이 도착하였다 앞에 앉은 그와 나는 애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본다 그래, 조금만 더 매웠으면...... 맞아요, 조금만 더 매웠으면...... ......우리가 나눈 말은 고작 두 마디 (홍수희·시인) + 맞벌이 부부 동요를 틀어 놓고 아내는 새벽차를 탔다. 어둠이 채 열리기도 전에 비둘기호 첫차는 세상 밖으로 떠난다. ㅡ 아이와 나 잠자리를 한가로이 구르며 씩 웃던 돌박이 아이 낯익은 고독에 깨어 혼자서 소꼽놀일 하고 그 소반에 나물을 얹어 아침을 먹고 나도 또 세상 밖으로 떠난다. ㅡ 아이만 남는다. (윤순찬·시인, 경북 청도 출생) + 부부 쌈 부부라고 어찌 일심동체일 수만 있으랴. 보일 듯 말 듯한 서운함과 껄끄러움까지도 억수같이 퍼붓는다. 부부라고 어찌 사랑의 말만 나눌 수 있으랴. 쌍불 켠 이마에 독설까지 대나무 가르듯 찢어 댄다. 고성과 바가지 깨지는 소리 밤이 이슥해짐에 냉전의 골도 깊어 간다. 상처 나아 격렬한 관심의 어둠 개면 새 아침 동트고 정성스런 식탁엔 다정한 눈길 오간다. 이웃 부끄러워 어쩌나 했는데 다시 살아난 부부 중독증에 뜰 앵두나무도 피익 웃고 있다. (강신갑·시인, 1958-) + 비 오는 날의 부부싸움 아침부터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휴일에는 그리움이 촉촉이 젖어오지만 열린 입은 조심해야 합니다 돈 없이 갈 데도 없는 처지에 입 한번 잘못 놀리면 아이들 앞에서 다투다가 망신만 당합니다 서로가 최고의 선으로 살아가지만 언제나 쪼들리며 사는 것에 쌓이는 스트레스가 저기압으로 폭발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부부싸움 잘못된 행동이 원인이 아닙니다 말꼬리가 불씨 되어 타오르는 것입니다 (김내식·시인, 경북 영주 출생) + 이런 부부로 살게 하소서 당신이 직장을 그만두던 날 내가 일터 찾아 출근하던 날 우리 부부가 해야 할 일과 책임이 바뀌어졌음을 서로 인정하며 현실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부부로 살게 하소서 당신은 일 가는 나를 배웅하며 오늘도 힘내 하면서 손 흔들어 주며 당당하게 사는 삶 잔잔한 마음으로 책 읽으며 지나온 삶 반성하며 성격을 온순케 하며 가정의 노동을 이해할 줄 아는 마음으로 따끈따끈한 밥상에 된장찌게 끓여내는 자상한 남편이 되는 삶이었으면 나는 그 동안 당신이 얼마나 힘들게 경제적 삶을 이끌어 왔는지 몸소 체험하며 돈을 헤프게 쓴 지난 세월 회개하면서 당신의 힘든 사회생활이 어떤 것인지 깨닫고 당신의 과거를 이해하면서 이제 늙어서 일 해야하는 고생을 담담히 받아 행복으로 승화하는 온유한 아내로 가정 지키는 삶 살았으면 우리 부부의 삶은 바뀌었을지라도 부부 사랑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현실의 환경 속에서 더욱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랑으로 평생을 함께 하는 잉꼬부부로 생을 마감하는 아름다운 부부로 살 수 있었으면 서로 사랑하는 맘으로 남은 생 살았으면 (함영숙·시인, 하와이 거주) + 부부 세상에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부가 어디 있으랴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못 살 것 같던 날들 흘러가고 고민하던 사랑의 고백과 열정 모두 식어가고 일상의 반복되는 습관에 의해 사랑을 말하면서 근사해 보이는 다른 부부들 보면서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옛사랑을 생각하면서 관습에 충실한 여자가 현모양처고 돈 많이 벌어오는 남자가 능력 있는 남자라고 누가 정해놓았는지 서로 그 틀에 맞춰지지 않는 상대방을 못 마땅해 하고 그런 자신을 괴로워하면서 그러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귀찮고 번거롭고 어느새 마음도 몸도 늙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아 헤어지자 작정하고 아이들에게 누구하고 살 거냐고 물어보면 열 번 모두 엄마 아빠랑 같이 살겠다는 아이들 때문에 눈물짓고 비싼 옷 입고 주렁주렁 보석 달고 나타나는 친구 비싼 차와 풍광 좋은 별장 갖고 명함 내미는 친구 까마득한 날 흘러가도 융자받은 돈 갚기 바빠 내 집 마련 멀 것 같고 한숨 푹푹 쉬며 애고 내 팔자야 노래를 불러도 열 감기라도 호되게 앓다보면 빗 길에 달려가 약 사오는 사람은 그래도 지겨운 아내, 지겨운 남편인 걸 가난해도 좋으니 저 사람 옆에 살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하루를 살고 헤어져도 저 사람의 배필 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시든 꽃 한 송이 굳은 케이크 한 조각에 대한 추억이 있었기에 첫 아이 낳던 날 함께 흘리던 눈물이 있었기에 부모 喪 같이 치르고 무덤 속에서도 같이 눕자고 말하던 날들이 있었기에 헤어짐을 꿈꾸지 않아도 결국 죽음에 의해 헤어질 수밖에 없는 날이 있을 것이기에 어느 햇살 좋은 날 드문드문 돋기 시작한 하얀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다가가 살며시 말하고 싶을 것 같아 그래도 나밖에 없노라고 그래도 너밖에 없노라고 (최석우·시인, 경기도 가평 출생)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
첫댓글 보낸사람 : 어린왕자의 들꽃사랑마을 운영자
보낸날짜 : 2011년 5월 23일 월요일, 11시 13분 21초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