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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는 ‘A, B, C가 컵을 본다는
현상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살펴본 바 있다.
※ 혹시 아직 읽지 않은 분이 있다면
그 내용부터 보고 이 글을 읽는 것이
빠른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번에는 역(逆)으로
‘컵이 사람 A, B, C를 보는 현상에 대한
이해’라는 제목으로 전과 비슷해 보이지만,
화살표가 전하고는 반대 방향인 경우를
살펴보기로 한다.
일단 그림을 보면 상식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A, B, C 가 컵을 보는 것은 수긍이 가지만,
컵이 사람 A, B, C를 본다는 사실은
공상만화에나 나올 법한 이상한 일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접하는 순간 뭔가 우리 마음이 탁 막히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람 중심으로, 개인 중심으로 세상을 수십년 동안 살아온 인류문화라는 습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습관의 잘못 되었음을 깨부수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위해 모인 것이니,
하나씩 살펴보며 바로잡기를 시도해 본다.
1. ‘컵이 A, B, C를 본다’하여도 말이 되는 이유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최종적으로 컵이 사람을 보든, 사람이 컵을 보든,
모든 것을 실제로 보는 것은 단일의식이기 때문이다.
- 만일 단일의식이 보는 게 아니라면, 컵이 사람을 본다는 말은 틀리는 말일 수도 있다.
2) 아무리 그렇다하여도 어떻게 무생물인 컵이 생명인 사람 A, B, C 를 볼 수 있냐?
-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으나, 진실은 생물과 무생물이라는 구분은 우리 관념 속에만 있을 뿐,
컵이나 사람이 모두 다 같은 하나의 생명축제에 참여한 생명이며,
그 둘 사이에는 생물과 무생물이라는 경계 또한 없는 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 단지 인간인 입장에서 생물과 무생물을 나눠놓고 보다보니,
둘 사이의 경계선이 뚜렷이 있는 듯 보일 뿐이다.
3) 만일 사람이 컵을 볼 때 사람이 진정한 행위자였다면,
즉 행위의 주체인 것이 맞다면
컵이 사람을 본다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 그러나 사람이 컵을 볼 때 그 속에 행위자가 없고,
보는 주체를 궂이 내세운다고 하여도 단일의식이 자변(自變)한 사람이라는
가상적 행위자를 통해 짐짓 행위자 같은 연기를 했을 뿐이다.
- 컵이나 사람은 동일하게 그저 차별 없는 단일의식의 자기표현 수단인 것이다.
- 그 수단의 정교함이나 특성에 따라 표현해 내는 결과물은 차이가 있을지언정,
사람이라는 자기 수단이 우수하다고 해서 우월한 것이 아니며,
또한 컵의 기능과 모습이 단순해 보인다고 해서 열등한 표현수단인 것도 아니다.
더 높은 것도 낮은 것도 아닌 둘 아닌 한 통속 일심(一心) 안의
무상무하 정등정각(無上無下 正等正覺)을 실현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컵이 사람 A, B, C 를 본다는 말을 엉뚱한 상상이라고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그래도 자꾸 엉뚱한 생각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아직 세뇌 되었던 최면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임을 스스로 보고 있을 뿐이다.
4) 단일의식은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자기 수단으로 삼아 자변으로
표현해 내고있을 뿐”
- 사람으로의 자변(自變)은 대단한 것이고, 컵으로의 자변(自變)은 열등한 것이 아니기에
실제로 문제가 된다면 시시비비(是是非非) 혹은 호불호(好不好) 등의 잣대로 비교하는
자아(개인)의 이원론적인 관념이 오히려 문제시 되는 것이지
단일의식의 입장에서는 '컵이 사람을 본다'는 사실에 대해 하등의 거리낄 점이 없다.
5) 컵과 사람 A, B, C 는 모두 가상주체이고 가상객체이다.
- 컵을 주체로 내세울 때는 사람이 객체가 되고,
사람을 주체로 내세울 때는 컵이 객체가 되어 서로 연기하며 서로를 보증하는
임시적 관계적 존재일 뿐이다.
- 사람 A, B, C 사이에도 A를 주체로 내세울 때는 B, C 가 객체 대상이 되고,
B 를 주체로 내세울 때는 A, C 가 객체였는 바,
새삼스레 컵 앞에서 사람인 A, B, C 가 졸지에 객체인 대상이 되었다고 해서
전혀 이상하게 받아들일 일이 아니다.
- 내 몸인 A는 주체이면서도 늘 타인 앞에서는 객체인 역할을 수 없이 많이 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 만일 A, B, C 는 언제나 변함없이 주체였는데, 갑자기 객체인 대상으로 돌변했다면,
그런 경우라면 좀 더 심사숙고해야할 어떤 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음을 우리의 일상 경험으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6) 컵은 컵이라는 이름과 모습의 의식이고,
사람 A, B, C 는 각각의 사람이라는 이름과 모습을 가진 의식이었다.
- 그러니 의식 사이에 가상 주객이 바뀌는 일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름과 모습사이의 주객전환이나 변화에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측면에만 기울어져 있었음을
새삼 보게 된다.
- 단지 얼마 전 글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인간중심 중독증에 빠져있는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잠시 ‘컵이 사람을 본다’는 무생물 의인화 표현에 잠시 이질감이 느껴졌을 뿐이다.
2. '컵이 A, B, C를 본다하여도 말이 되는 이유'는 살펴 보았으니,
이제는 그림을 보면서 그 이면에 숨겨진 내용들을 좀 더 살펴보자.
1) 단일의식은 컵을 통해 A, B, C 라는 사람을 자기자각하고 있다.
- A, B, C 를 보는 것은 사실상 컵도 아니며, 컵의 영혼(개별영혼은 없음)도 아니며,
단지 단일의식의 자기자각이다.
- 여기서 컵에 대해 개별영혼 없음을 궂이 언급하는 이유는 존귀해 보이는 특정 물질이나
동식물 등에는 정령(영혼?)이 있다고 생각하고 믿는 측면도 있기에
그런 것은 도무지 있지 않다는 취지에서 언급하는 것임
- 단일의식은 컵을 통해 A, B, C 를 보고 있으므로, 컵은 단일의식의 통과수단이 되어주고 있다.
- 만일 여러 개의 컵이 사람 A를 보았다고 가정하면, 역시 조금씩 다른 컵의 특성대로
단일의식은 다른 뉘앙스로 A나 B, C 를 보는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2) 컵은 단일의식의 ;
- 대변인/ 대리인/ 중계인 역할 담당
- 단 컵은 사람처럼 말을 하는 대변인이 아니고,
사람처럼 남의 임무를 대신해 주는 대리인이 아니며,
사람처럼 중계 역할을 수행하는 그런 중계인은 아니다.
- 그러나 컵은 나름대로 비언어의 몸짓으로 무상하게 변하는 자신을 드러내어
사람이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고유의 변화를 조용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국 컵은 단일의식의 다른 표현수단으로 고유 역할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 컵이라는 것이 고유한 컵의 역할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無有定法),
만일 컵의 고유의 역할이 물을 담는 기능이라고 가정 한다면,
컵은 물을 담는 기능을 통해 사람이라는 단일의식 수단이 물 먹기에 용이하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며, 사람이 컵보다 똑똑하니까,
컵이 하는 그런 역할은 중요하지도 않고 별것 아니야 라고 상상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컵이 자유의지가 없으며, 가상적 주체인 것인 A, B, C 역시 자유의지가 없는
가상주체라는 면에서는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 컵은 자신이 가상임을 알 때, 단일의식 선택만이 단 하나의 자유의지가 될 수 있다
사람은 똑똑해서 자신이 가상임을 들어서 알기도 하지만,
개인이 나서는 동안은 가상임을 자주 놓치곤 하는 어려움을 보이지만,
컵이야말로 언제나 자신이 무아인줄도 모르면서도 자연속에서 무아적 존재로 존재하기에
이미 비이원성이라는 단일의식의 품 안에 늘 있어왔다고 볼 수도 있다.
- 컵은 인간처럼 다양한 이원성을 구사하지는 않는 성질이지만,
인간처럼 다양한 이원성의 구사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양극단의 공포를 경험해야 하는
그런 어려운 일도 없으며, 평범한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늘 조용히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다.
- 강독에서 배운 바의 표현을 빌리면 컵은 ‘재미없는 천국’에 속해있다는 생각을 해보게된다.
3) 단일의식이 컵(존재)을 통해 A, B, C를 보는 일과,
A, B, C에 대한 앎(의식)은 동시에 일어난다.
- 쌍생 쌍멸(雙生 雙滅), 컵이나 사람이나 모두 하나의 의식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 존재와 앎에는 선후가 없으며 동시에 일어나므로 일동시(一同時)
- 존재(세계) = 앎(의식), 즉 세계 = 의식
- A, B, C가 먼저 있고 난 다음 컵이 A, B, C를 나중에 보는 것(X)
사실 엄밀히 이야기 하면 이 문장의 말 자체가 성립 되지 않음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A, B, C를 보고 아는 것(자각)은 단일의식이 하고 있는 일이지,
컵이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일의식 자신이 보고 자신을 자각하는 현상인데,
먼저 있는 것을 나중에 본다는 그 말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 일 것이다.
- 가상 주체 컵이 본 가상 객체 A, B, C 는 있는 듯 하나, 실재 있음은 아니다.
임시적으로 컵에게 있어 보인다는 상상을 가상인 인간이 하고 있는 것일 뿐
(컵은 그렇게 상상하는 기능 조차 없고, 일심이 자각중인 것이 그렇게 표현되고 있을 뿐)
- 컵도, A, B, C 사람도, 모두 실체가 없는 임시 가상적 설정이다
(알맹이 없는 것들의 임시적 모둠이기는 동일)
- 임시적 모둠은 없던 것이 생겨난 것이므로 반드시 사라진다
(시작 있는 것은 반드시 끝이 있음: 생멸상임)
- 단일의식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낼 방도가 없으며, 반드시 가상 주객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때로는 컵을 통해 사람을 보고, 또 사람을 통해 컵을 보기도 한다.
예를들어 면벽수행을 10년 한 수행자의 입장을 살펴보면, 수행자는 자기 개인이 두문불출 하며
10년 동안 눈감고 면벽을 했다고 생각 할 수 있지만,
개인의 동기가 희박해진 진실의 입장에서 본다면
벽 또한 10년 동안 수행자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는 말도 틀린 말이 되지 않는다.
물론 전부 가상 속의 일이고 실제는 단일의식의 자각 하나일 뿐이겠지만~
- 이렇게 살펴보다보면 '사람을 통해서만 컵을 볼 수 있다' 라는 동안의 전도몽상에서
서서히 탈출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된다
(실은 이미 탈출되어 있어 옴짝달싹 갈 곳도 딱히 없지만~)
- 단일의식은 컵과 사람을 포함한 삼라만상이라는 다양한 자기 표현수단이 모두 다 차별없이 소중할 뿐,
꼭 그 수단이 사람이기를 고집할 당위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 한편 별도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단일의식과 가상주체가 따로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사실은
늘 기본 대 전제되고 있음에 늘 유념이 필요(A=A, A≠B)
4) 단일의식은 의식인 컵이라는 가상 개별화 필터를 통해,
의식인 A, B, C를 스스로 자기 자각하고 있으므로
“의식이 의식을 의식한다”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 단일의식은 가상 개별화 필터가 활성화되게 하여 컵이 A, B, C를 보게 하는 근원이다.
5) ‘컵’이 A, B, C 를 볼 때는 ;
- 단일의식이 사용하는 모든 이용 수단인 물질체(전5식), 아스트랄체(6식),
멘탈체(7식)가 동시에 작동한다
- 즉 3개의 개별화 필터가 작동되고 있으며, 단 컵은 사람처럼 잠에 들거나 깨는 기능은
없으나, 여전히 필터교체 시에는 필터 사이에 있는 바르도 스위치가 작동할 수도 있다.
물질 몸을 가진 인간이 바르도 상태에 있을 때 아스트랄 이나 멘탈 비물질로 나타나는
아스트랄세계나 멘탈세계의 모습은 바로 컵과 같은 물질도 바르도 상태일 때 가상으로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 컵 앞에 놓여진 A, B, C는 3개의 필터(멘탈세계/ 아스트랄세계 /물질세계)를 거쳐
화신으로 나투어진 사람이므로 A, B, C 는 이미 삼계(三界)를 머금고 있음이다.
- 컵과 사람 A, B, C 사이에 경계선은 없으며, 분리된 적 없는 단 하나의
의식만이 불생불멸로 있는 실체(實體)이고 실재(實在)이다.
3. 후기
지난 번에 살펴본 단일의식이 A, B, C를 통해 컵을 보는 일 보다는
컵을 통해 A, B, C를 보는 일이 훨씬 더 낯설고 어려움이 느껴지게 되지만,
후자의 이해를 돈독히 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면, 나아감 없는 한걸음으로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니, 여러 번 들여다보며 스스로 엄밀히 따져본다면,
밥통 스피커님이 귀뜸 해 주신대로
“우리가 오로지 사람일 뿐이라는 강한 느낌을
약간이라도 옅어지도록 완화 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무쪼록 단 하나의 생명축제를 온전히 이해하는데 일조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용이 다소 길어져 읽는 이들에게 불편을 주는 줄 알면서도
간결하고 짧은 글로 올리지 못한 이유는,
우리의 평소 상식과는 너무도 상반되는 이야기가 일관되는 내용이여서
간결한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많다보니, 그런 점을 착안해서 길어졌기에 양해를 구합니다.
혹시 위의 내용 중 잘못된 이해로 인해
표현이 애매하거나 수정 되어야 할 틀린 부분이 있다면 지적 바라며,
다 같이 재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일도 좋아 보입니다.
지적되는 부분은 추후 수정해서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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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앞글에 대한 선생님의 귀한 의견, 이에 답한 은하수님의 추가글 모두 감동입니다. 또 한편의 멋진 단일의식 자기자각 ^^
벗님~
기쁨과 찬탄과 환희의 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_( )_
은하수님 질문과 밥통님 답변으로 더욱 선명해지는군요~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