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가 맞습니까? 21
2092년 10월 28일
모 델 명 : C-01789
제작년도 : 2047년(2030년부터 17년간 제작)
이것이 이혜민이란 존재의 정보다.
세 명의 게놈지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휴머노이드
그 세명이 누구인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한다.
- 모르는게 아니라 입력이 되지 않은거라고 말해야 하는 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혜민의 체내에는 실제적인 인간의 체액은 없다.
혜민이 일반적인 안드로이드와 다른 부분이 매우 많다.
일단 뇌가 일부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의 다른 장기기관은 없다.
C-01789...
난 너를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영혼은 뇌에서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심장에 존재하는 걸까?
물론 혜민과 비슷한 상태로 존재하는 인간도 있다.
심각한 사고사를 당했는데 장기를 배양할 시간이 없을 때나 재생할만큼 조직이 없을 때에 인조장기를 사용한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으로 태어났다.
혜민은 제작된 존재다.
내대신 생각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아니 나도 인공지능을 달고 생각하면 되는건가?
하하하
왜 이런 존재론적인 고민을 해야하는건지
난 평범한 과학도일뿐이었는데
2092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다.
세상은 온통 축제분위기다.
작년엔 나도 저 축제분위기 속에서 혜민과 함께 웃고 있었다.
하지만
난 이제 다른 세상에 존재한다.
2093년 1월 4일
CM사에 입사하기로 결정을 했다.
.
.
.
지적호기심이 분노를 이겼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은 감상적인 것과 철학적 물음만이 아니라는 것을..
끊없는 혼란속에서도 그녀가 어떻게 제작되었는지를 알고싶은 지적욕구와
내 연인이었던 세영이 제작한 혜민이 어떤 수준의 휴머노이드인지,
어떻게 만들어진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을 제어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C-01789를 내 손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열망
이제 내게는 그것만이 남아 있다.
난 뼈속까지도 빌어먹을 과학자인 거다.
그녀가 맞습니까? 22
2093년 1월 27일
"단도직입적으로 묻지요. 우리 회사에 입사하기로 한 이유는 C-01789때문입니까?"
"불행히도 과학자가 내 천직이기 때문이오"
"후, 그렇군요. 이거 받으시죠"
진욱이 내게 등기카드와 전자책 카드를 건낸다.
"이게 뭐죠?"
"C-01789에 대한 소유권입니다. 이제 그것은 완벽한 당신 소유입니다. 이제 어떻게 제작된건지 궁금하다면 언제든지 분해를 해도 되겠죠. 그리고 전자책은 어머님께서 작성하신 겁니다. C-01789 제작에 관계된 것으로 당신에게 남기신 거 같습니다. 저로써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암호로 되어 있더군요."
"혜민을 물건처럼 말하는 거 상당히 불쾌하군요"
"저한테 그것의 소유권을 주장하셨잖습니까? 인간을 소유할 수는 없지요."
저 여유만만한 태도를 더 이상 참아 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에게 화풀이로 채찍질을 하고 불로 지지는 당신은 뭐지? 세영도 알고 있었나? 자네가 혜민에게 몇 십년간 가한던 그 변태적인 성욕인지 비뚤어진 소유욕의 발현을? 설마 세영이 자네의 그런 성향을 알아서 십 몇년을 들여 C-01789를 제작한거라고 말하고 싶은건가?"
"내가 소유물을 어떻게 취급했는지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만"
"주인으로서 노예를 다뤘다는 건가?"
"난 당신의 고용주입니다. 적당한 예의는 지켜주시는게 좋을거 같습니다."
"당신이 마치 사랑받지 못한 어린애 같은 애정관과 소유욕을 버린다면 나도 노력해보지."
"처음 뵜을 때보다 상당히 달변이시군요. 그건 한진영씨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어머님이 C-01789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 때문에 그 눈물나게 대단했던 사랑까지도 의심하고 있잖습니까? 아닌가요?"
"당신과 더 말을 섞는다는게 의미가 없군, 원하는 연구에 충실해 줄테니 서로 더이상 마주치지 않길 바라네. 그리고 다시는 혜민에게 손대지 말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보게 될겁니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는 매너를 지키시리라고 믿습니다."
망할 자식
저런 이야기를 지 비서 앞에서 대놓고 들어도 얼굴빛은 커녕 눈빛 하나 변함이 없다니...
정말 세영의 아이가 맞는 건가?
아니면 제왕학을 배운 것들은 다 저런건가?
혜민이 그 날 내게 쏟아낸 고백인지 진실인지는 참 대단했다.
진욱은 어릴 때는 그렇게 혜민을 싫어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잘 따랐다고 했다.
세영이 항상 연구에 바빠 어린 시절의 진욱을 혜민이 거의 돌봤다고 한다.
다만 진욱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서 혜민이 안드로이드이고,
자신이 애정과 신뢰를 가진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에 상당히 거부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거기에 항상 연구에 바쁜 세영은 진욱을 거의 혜민과 가사로봇에게 맡기다 시피 했고,
진욱보다는 혜민의 상태에 더 관심이 많았고...
진욱은 그런것들에 점점 불만이 쌓이면서 그 표출을 처음에는 로봇에게 좀 짖굳은 장난을 하며 괴롭히는 것으로 했지만, 10대 초반에 이루어진 테스트에서 CM의 운영진 후보로 뽑히면서는 세영이 자신보다 더 신경쓰는 존재인 혜민에게 풀기 시작을 했다는 거였다.
제왕학을 배우면서 인간적인 면보다는 이성적인 면과 회사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그런것들이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로 작용했고, 그것들이 결국에는 폭력적인 성향으로 나타난거 같다는게 혜민의 말이었다.
세영이 인간인 진욱보다 피조물인 혜민에게 관심을 보인 건 과학자로서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린 진욱은 그런 것들 때문에 과학자들을 끔찍이도 싫어하게 된 거 같다.
결국 진욱도 피해자인지 모른다.
그녀가 맞습니까? 23
2093년 1월 29일
진욱이 건내준 전자책의 암호는 의외로 쉽게 풀렸다.
나와 세영이 처음 만난 날과 우리의 이니셜을 딴 조합으로 되어 있었다.
YS2016HJ0305twoyoung
우리가 곧잘 쓰던 패스워드였다.
세영과 내가 처음 만난 건 2016년 3월 5일이었다.
세영은 그 당시 생명공학과의 신입생이었고,
그녀가 입학한 과에 우리 어머니 외사촌동생이 교수로 재직하고 계셨다.
내 공부를 봐주던 선생이 급작스레 유학을 떠나게 되어 내 튜터를 찾던 어머니는 자신의 외사촌 동생께 부탁을 하셨고,
당시 고등과정 5학년(지금의 고등학교 2학년이다.)이던 난 수업이 끝나고 어머니의 호출로 집으로 급하게 돌아오게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집에 들어섰을 때 못보던 신발이 있었다.
거실을 들여다보니 어머니와 함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저 사람이 새로운 튜터인가보다는 생각으로 인사나 하려고 거실로 들어섰다.
인사를 하기 위해 그녀를 본 순간 내 운명은 시작되었다.
거실에 앉아서 어머니와 차를 마시며 내내 조용히 웃고 있던 그녀
벽에 걸린 수묵담채화속에서 막 빠져나온 것 같이
- 원래 그 자리에 존재했던 것같이 조화를 이루던 그녀
얼빠진 사람처럼 자신을 쳐다보던 날 보고 잔잔한 미소를 보여주던 그녀
그 날의 세영은 참 아름다왔다.
어머니 옆에 앉아서 같이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생각도 할 수 없었고,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각인되는 것은 오로지 그녀의 동작,
귓가에 스며드는 것은 그녀의 언어,
머리속에 떠 오르는 것은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것뿐...
같이 책을 고르러 나와서도
그녀가 이끄는 대로 카페에 들어가 차를 마시면서도
내 상태는 변함없이 정지되어 있었다.
그녀가 묻는 말에 그저 고개를 끄떡이거나 가로젓거나 하는 반응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난 그렇게 세영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몇일이 지나도 난 그녀에게 접근할 방법을 쉬이 찾을 수 없어서 계속 고민을 했다.
윤서와 선림이에게 상담을 해도 뾰족한 방법을 찾기는 힘들었다.
2093년 2월 2일
전자책에는 진욱의 말대로 혜민, C-01789의 제작과정에 대한 상세한 기록들이 실려 있었다.
더불어 혜민에 도너들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나왔다.
세영 자신의 유전자를 사용했다는 것은 나오는데 다른 두 사람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자신외의 두 사람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었다.
2023년에 내가 잠들었으니 7년후인 2030년에 혜민을 제작했다는건
같이 연구하던 안드로이드와 클론에 대해서
내가 냉면에 들어간 후에도 혼자서 계속 연구를 해왔다는 이야기다.
또한 회사차원에서의 연구가 아니라 개인적인 연구로 진행을 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CM은 다른 회사보다는 연구에 상당히 긍정적인 회사였는데...
C-01789를 상용화시키고 싶지 않았던 걸까?
그렇다면 연구 결과만을 발표했으면 됐을 터인데 그녀는 어떤 논문도 내지 않았다.
나와 같이 연구한 것들이기에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던 걸까?
세영은 무슨 생각으로 휴머노이드를 만들었던 걸까?
난 그녀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도저히 그녀의 생각을 가늠할 수가 없다.
그녀가 맞습니까? 24
2093년 2월 27일
내 생일이다.
어제 저녁부터 주방에서 분주하던 혜민은 근사한 아침상을 차려주었다.
“진영씨, 생일 축하해”
“고마운데 생각없어. 연구실에 일찍 가봐야 해”
혜민의 상심한 표정
그녀가 정성스레 차린 아침
기쁘지 않다
슬프지도 않다
하지만
내 안에 이 감정은 무엇인가
차 안에 울려퍼지는 재즈보다 더 혼란스럽다.
내 개인 연구실로 들어가 컴퓨터를 키고 메일을 확인한다.
생일답게 여기저기서 축하메일들이 와 있다.
낯선 이드레스에 제목은 “축하”
클릭해 보니 진욱이 보낸 메일이다.
- 생일 축하 드립니다. 선물이 점심때쯤 댁으로 배달 될 겁니다. 마음에 드시면 좋겠군요 -
눈물나게 고맙다는 빈정거림을 담아 답신을 보내려다 관뒀다.
사람들과 부데끼는 자체가 피곤하다.
연구실에서 휴머노이드에 집중하는 시간이 가장 편하다.
윤서와 선림이를 만나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 와 보니 서재에 진욱이 말한 선물이 와 있다.
불투명 강화 플라스틱 케이스를 개봉하니
무릎을 감싼 채 앉아 있는 안드로이드가 있다.
웜홀 인터내셔녈의 섹스용 안드로이드다.
웨이브가 적당히 들어간 갈색빛이 도는 긴 머리
새하얀 피부
조금은 고집스러워 보이는 붉은 입술
차가워 보이는 얼굴
굴곡이 아름다운 가는 허리
B컵 정도로 보이는 가슴
육감적인 몸매
세심한 배려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지나친 관심이라고 해야할까?
젠장...
이제는 화도 나지 않는다.
물을 마시려 냉장실 문을 여니 직접 만든 것 같은 cake가 보인다.
혜민이 만들어 놓은 음식들이 냉장고와 온장고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숨이 막혀 온다.
서재에 들어가 진욱이 보낸 안드로이드를 각성시킨다.
그것은 금색 눈을 가지고 있다.
눈빛이 맘에 들지 않는다.
그것의 눈에 입술을 갖다 대자 곧 눈을 감고 손은 내 등을 안는다.
가슴을 거머쥐자 낮게 한숨을 흘린다.
서서히 파고 들자 조금씩 내 몸짓에 맞추어 움직인다.
나의 몸짓이 격렬해지자 그것의 반응도 휘몰아친다.
그것의 신음소리가 손짓이 날 연주한다.
2093년 3월 2일
주초의 일과인 연구진들의 아침 화상회의가 끝나자 진욱에게서 호출이 들어온다.
연결하자 유들거리는 진욱의 얼굴이 보인다.
"한박사님, 좋은 아침입니다"
"아직은 박사가 아니죠"
"논문이 패스된걸로 들었는데요"
"별걸 다 아시는군요"
"참 선물은 맘에 드셨습니까?"
"유회장, 그 선물의 의도가 뭐죠?"
"C-01789를 안기는 껄끄러우실거 같아서 보낸겁니다만, 맘에 안드시면 다른 모델을 고르셔도 됩니다"
"지나친 배려로군요, 고맙다는 말은 해야 하는 겁니까?"
"하하하, 맘에 드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잠시 화상창을 노려보다가 컴퓨터 화면으로 돌리고 C-01789b의 메인칩 프로그램에 매달린다.
몇 일만 더 하면 프로그램은 완성이다.
세영
70년의 간격을 따라잡겠다.
그 후에 네가 내준 숙제들에 해답을 찾으리라.
그녀가 맞습니까? 25
2093년 4월 3일
집에 들어가지 않은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혜민을 보는게 여러가지로 고통스럽다.
집에 있을 때마다 내 목을 내가 조이는 기분과
해초들이 끊임없이 발목에 엉켜 빠져나갈 수 없는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 같은 불쾌함
그런 것들을 견디기 힘들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세영의 생일이자 혜민의 제작완성일이다.
작년엔 혜민에게 언제나 옆에 있겠노라고 말했었다.
세영에게 언제나 함께하겠노라는 말을 지키지 못했던 것처럼...
이제는 지켜줄 수 없는 말이 되어버렸다.
아니 지킬 필요가 없는 말이 되어버린건가
세영이 힘든 시간을 보냈던 만큼 혜민도 힘든걸까?
혜민은 왜 고통받는걸까?
메모리 된 것들을 지워버리면 편할까?
모든 것들이 의문투성이다.
혜민은, C-01789는 자율적인 사고가 가능하다.
날 사랑한다던 말들은 자유의지였을까?
프로그래밍된 말들이었을까?
세영이 내게 하고픈 말들이었던걸까?
아니면 혜민이 감정을 배운걸까?
혜민의 칩들을 열어 보지 않는 한은 풀릴 수 없는 의문점이다.
난
그녀를...
그 사고방식을...
그녀를 구성하는 모든것을...
알고 싶다.
2093년 5월 16일
내가 계속 집에 들어가지 않자 혜민은 내 옷가지들을 연구실로 보냈다.
건강 조심하라는 메세지와 함께
그녀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C-01789라는 걸 알면서도
나와 같은 인간으로 느껴진다.
거기에 미안함까지...
이런 느낌이, 감각이 싫다.
진욱이 보낸 WHS-101같이 확실히 안드로이드라고 느껴진다면 지금처럼 마음이 무겁지 않을거다.
2093년 5월 21일
C-01789b 세 가지 타입이 모두 완성됐다.
전원을 넣고 떨리는 마음으로 각성하기를 기다린다.
세 개가 전부 눈을 뜬다.
타입 중 하나인 C-01789b SE(second EVE)는 혜민과 똑같이 제작되었다.
혜민의 제작일지를 보면 간뇌와 대뇌피질 중에서는 두정엽만이 인간의 것으로 존재한다.
나머지는 인공장기와 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수가 없으니 뇌사를 일으킬 일이 없고,
전두엽이 인간의 것이 아니니 뇌졸증을 일으킬 염려도 없는 것이다.
SE는 실험군이다.
뇌는 내 유전자를 사용했다.
내 체세포 중에서 조직이 큰것을 이용해 배아 복제를 하고 태아단계까지 배양을 해서 간뇌와 두정엽을 SE에게 이식했다.
두번째 타입 - 즉, 첫번째 대조군인 C-01789b Alpha는 뇌 이식 단계에서 간뇌와 대뇌피질 전부를 이식했다.
세번째 타입 - 두번째 대조군이 C-01789b beta는 인간의 뇌를 없애고 제작했다.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까?
인간과 흡사한 휴머노이드가 될것인가
아니면 그저 프로그래밍 된 데로 움직이는 안드로이드에서 끝날런지는 나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