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중엽의 실학자이자 지리학자였던 청담 이중환은 그의 저서인 택리지에서 "남한강이 젖줄처럼 흐르고 있는 여주는 일찍이 대동강변의 평양, 소양강변의 춘천과 더불어 나라 안에서 가장 살기 좋은 강촌으로 손꼽힌다." 라고 표현했다. 많은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주의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고 쌀과 도자기와 땅콩을 특산물로 자랑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멋스러운 고장" 여주에 대한 옛 학자의 표현이 결코 빈말은 아닌 듯하다.
신륵사
신륵사 경내 중심부인 극락보전. 극락보전의 정문 위에는 나옹대사가 직접 쓴 것이라고 전해오는 ‘천추만세千秋萬歲’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고, 앞에는 조선 성종 대에 건조된 다층석탑(보물 제 225호)이 있다.<사진제공·문화재청>
여주하면 곧바로 신륵사가 머리에 떠오른다. 주로 산속에 있는 여느 사찰과는 달리 물가에 자리 잡고 있어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사찰이다. 남한강변 봉미산 자락의 고즈넉한 숲속에 있는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조선 성종 때에는 영릉의 원찰이 되어서 왕실의 지원을 받기도 했는데, 강변의 절벽 위에 벽돌로 쌓은 탑이 있다 해서 "벽절" 이라 불리기도 했다. 벽돌로 쌓은 이 다층전탑(多層塼塔)은 완성된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전탑으로 유명하다.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 아래로 한강이 굽어보이고 강 건너 멀리 평야를 마주하고 있는 경치 좋은 바위 위에 이 전탑이 세워져 있다.<사진제공·문화재청>
신륵사 조사당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그의 스승 무학대사와 인도 스님인 지공대사, 그리고 고려 말의 고승인 나옹선사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조사당 안에는 세 대사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고 앞 마당에는 태조 이성계가 심었다는 오래된 향나무가 있다.
신륵사 조사당. 조사당은 절에서 덕이 높은 승려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건물이다.<사진제공·문화재청>
조사당 뒤편의 돌계단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독특한 형태의 부도를 하나 만나게 된다. 고려 우왕 때인 1379년에 만들어진 나옹선사의 석종형 부도인데 옆에 있는 석종비 뒷면에 새겨진 진당시는 목은 이색의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릉(英陵, 세종대왕릉)
여주 영릉의 전경
여주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소인 영릉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세종대왕과 왕비 소헌왕후가 합장되어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의 왕릉 가운데 가장 전형적인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데 정문 근처에 있는 세종관에서는 덕망 있고 인자한 모습으로 그려진 세종대왕의 어진도를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운보 김기창 선생의 작품이기도 하다.
여주읍 능현리에는 일제에 의해 "민비" 라 불리던 명성황후의 생가가 자리 잡고 있다. 고종의 첫 부인이면서 순종의 어머니인 명성황후가 열여섯 살 되던 해까지 살던 집이다. 오랫동안 일반 민가로 남아 있었으나 현재는 완전히 복원작업이 끝나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생가 근처에는 명성황후 기념관이 있으며 생가 앞에는 "명성황후탄강구리" 라는 고종의 친필이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영월루 迎月樓
누마루에 올라보면 숲속에 파묻힌 신륵사의 대가람이 한강변에 바라보이고, 여주팔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영월루는 말 그대로 "달맞이하기에 좋은" 아주 고풍스런 누각으로 남한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마암 절벽 위에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다. 본래 이 누각은 여주군청 청사의 정문으로 이용되었던 것인데 지난 1925년에 지금의 자리에다 옮기고 " 영월루 " 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누각에 오르면 확 트인 강줄기뿐만 아니라 멀리 봉미산 자락에 살짝 걸려 있는 신륵사가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여주읍에서 영월루로 올라가는 길에서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하리 3층 석탑과 창리 3층 석탑을 만날 수 있다. 이들 석탑들 의 제작연대는 대략 고려시대 중기 또는 말기로 추정하고 있다.
목아불교박물관
최근 들어 여주의 새로운 여행 명소로 등장한 곳은 목아불교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불교 목공예가인 목아 박찬수 선생에 의해 지난 1993년 6월에 문을 열었다. 설립자인 박찬수 선생은 1989년 전승공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고 1996년에는 목조각장 분야의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현재 목아불교박물관은 3층의 불교조각상실을 비롯해서 2층의 공구전시실, 1층의 기획전시실, 그리고 지하의 영상실 등으로 꾸며져 있다. 많은 유물 가운데 특히 3층에 있는 법상과 2층에 있는 500나한상이 눈길을 끈다.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6,000여 점의 유물 하나하나가 모두 귀중하겠지만, 이 두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정말 이것이 사람 손으로 만든 것인가"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박물관 앞뜰은 전체가 야외조각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이곳에서는 미륵삼존불을 비롯해서 삼층석탑, 비로 자나불좌상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연못가에 앉아서 옛 서울대 문리대 건물에서 나온 적벽돌로 지었다는 박물관 본관 건물을 감상할 수도 있다. 물론 전통찻집에 앉아서 박물관 앞뜰을 바라보며 대추차, 또는 솔잎차의 은은한 향을 음미할 수도 있다.
고달사지
고달사지 전경.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된 고달사에는 석조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모두 고달이라는 석공이 만들었다고 전한다.<사진제공·문화재청>
여주 읍내에서 북동쪽으로 20km쯤 떨어져 있는 고달사지 역시 여주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 가운데 하나다.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때인 764년에 창건되었다. 고려 때 이르러 서는 왕실의 도움을 받아서 크게 사세를 확장했던 큰 사찰이다. 그러나 지금은 애석하게도 언제, 어떤 일로 폐사가 되었는지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고달사지 석조불대좌.<사진제공·문화재청>
고달사지에서 만사 제쳐놓고 반드시 찾아봐야 할 유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국보 제4호 부도와 보물 제8호인 석조불대좌다. 고달사지의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부도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넉넉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걸작이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 기법과 안정감 있는 건축미가 단연 압권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주인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단지 신라 경덕왕 때 입적한 원감대사의 부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석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받침대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석불대좌는 언뜻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물건" 임을 짐작케 하는 대작이다. 지금 남아 있는 받침대만 가지고도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 제작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 있는 석불대좌 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다운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여행정보
- 주소 :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 신륵사
- 문의 : 031-885-2505
영릉(세종대왕릉)
- 주소 :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 산83-1
- 문의 : 031-885-3123
영월루
목아불교박물관
- 주소 :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이문안길 21 학예연구실
- 문의 : 031-885-9952
고달사지
- 주소 :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동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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