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숨은 자리
대한 아침나절은 이발을 했다. 지난해 추석 무렵 이발하고 거의 반 년 만에 하는 이발이었다. 남들은 대개 한 달 한 번 하는 이발에 비하면 나는 경제적으로나 시간상으로 이득을 보는 셈이었다. 이후 이른 점심을 먹고 학교까지 걸어가 연말정산 서류를 작성 제출했다. 매년 그렇듯 나는 누군가 도움을 받아야 주민등록등본과 국세청 간소화서비스를 내려 받고 나이스 접속이 가능하다.
연말정산 서류를 마감하고 며칠 전 인쇄 제본에 넘긴 교지 가제본을 한 번 더 살펴보았다. 목차 바로 뒤 한 해 교육활동을 칼라 화보로 몇 쪽 실었는데 중첩된 내용이 발견되어 출판사 측에 전화를 넣었다. 편집자는 자신의 오류를 뒤늦게 확인하고 인쇄 제본에 들기 전 수습하겠노라고 했다. 겹쳐진 내용은 빼고 다른 교육활동 사진을 더 보태니 전체 분량은 변함이 없다는 회신이 왔다.
이후 집으로 바로 귀가해야했으나 그럴 사정이 못 되었다. 친목회 동료 가운데 한 분이 모친상을 당한 부음을 접했다. 전 교직원들에게 연락이야 닿았겠지만 방학이라 더러 시간을 내지 못할 분들이 있을 듯했다. 내라도 학교 출근한 김에 친목회 단체 조문 시간대 합류하기로 마음먹었다. 조문 장소는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파티마병원이었다. 나는 걸어서 그곳까지 갈 생각이었다.
학교에서 문상 갈 병원 앞으로 지나는 시내버스가 있었다. 나는 그걸 타지 않고 걸어갈 마음이었다. 늘푸른 전당을 거친 대원동에서 빤히 보이는 곳이라 이십 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 길로도 가질 않고 더 빙글 둘러가려고 충혼탑 곁 대상공원으로 올랐다. 충혼탑 주차장에서 문성대학 뒤 산등선 따라 걸었다. 볼에 스치는 바람이 좀 차가웠지만 걸을만했다.
대상공원은 대원동 시티세븐 골프연습장에서 문성대학 뒤 산등성을 따라 충혼탑에 이른다. 그곳에서 극동방송국과 창원과학체험관 뒤를 지난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를 비롯한 교육단지의 여러 학교는 남향에 있고 북쪽에는 창원종합운동장인 스포츠파크다. 근래 산등선 마루에는 제법 높은 2층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중앙동에서 대상공원 들머리는 창원 폴리텍대학 후문 가까운 곳이다.
내가 걸어가는 대상공원은 산등선 충혼탑에서 시티세븐 구간이었다. 평소 대원동과 반지동 주민들이 산책을 나서는 공원이다. 요즘은 시티세븐 입주민들도 가세하지 싶다. 소나무가 주종인 도심 숲이었다. 운동기구가 설치된 자리에는 추운 날씨에도 근력 운동을 하는 중년 사내들이 몇 보였다. 산등선에서 내려서니 잘록한 고개가 나왔다. 문성대학에서 공원으로 드나드는 길목이었다.
방학이라 대학은 주차장이 텅 비었고 학생들의 움직임도 없어 적막했다. 산책객이 아주 드문 솔숲 오솔길을 걸었다. 군데군데 이름이 꽤 알려진 시인들의 작품을 나무 판목에 새겨 세워두었다. 이름 하여 시의 숲길, 시의 산책로라 붙여 놓았다. 어디쯤에서 대숲을 지나니 예전 골프연습장은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나중 측면을 돌아가면서 확인해 보니 요양병원이었다.
산등선에서 절개지로 내려섰다. 세코에서 두대동으로 새 길이 나면서 산자락이 깎여나가 생태를 고려해 터널로 복개해둔 지역이었다. 주변 일대는 수목과 화초를 심어 생태 환경을 복원시켜 놓았다. 나뭇가지 사이 저만치 시티세븐 빌딩이 우뚝했다. 아까 걸어왔던 숲은 소나무 일색이었는데 이제는 아카시나무가 많았다. 낮은 봉우리에는 갈림길 이정표가 있었다. 대원동으로 내려섰다.
현대사원아파트에서 창원천을 가로지는 대원교를 지나 명서동으로 갔다. 아직 약속된 조문시간보다 일러 병원과 인접한 창원농업기술센터로 가보았다. 그곳은 농업인들에게 영농기술을 전수하는 교육장이었다. 관에서 경영하는 도심 속 비닐하우스 농장도 있었다. 비닐하우스 여러 동에는 봄날 거리 곳곳에 심을 팬지 베고니아 등 꽃모종들을 가득 키웠다. 봄은 그곳에서도 숨어 있었다. 17.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