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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회(UR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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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시, 낭송시 스크랩 ‘우리詩’ 12월호의 시와 백량금
홍해리洪海里 추천 0 조회 196 14.12.13 05:08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겨울이 되어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백량금 열매가 익었습니다.

 

눈이 잘 오지 않는 서귀포 해안쪽에도

빨강으로 물들었습니다.

 

이것들은 아무래도 남쪽 태생인 모양이지요?

겨울을 기다려 그렇게 익는 걸 보면,

 

이제부터 서너 달 동안

더러는 그냥 매달려 있다가 봄비가 내리면

열려 있는 채로 뿌리가 돋고 싹이 틉니다.

 

읽다 접어두었던 ‘우리詩’ 12월호를 꺼내

시 몇 편을 골라 같이 실어봅니다.

 

 

♧ 시소증후군 - 김경선

 

그가 중심을 놓쳤다

균형을 잃고 세상을 놓쳤다

뿌리째 뽑혀

팍팍한 모래바람처럼 떠돌다

변두리 놀이터에 껌처럼 눌어붙어 있다

놀이터를 안방인 듯 꿰차고 앉아 있다

누구도, 등 떠밀지 못한다

이젠 소주병과 낡은 가방 하나가

그의 중심이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돌아갈 수 없는 저녁,

홀로 삶의 무게를 저울질하느라 속울음이다

자신의 언어를 찾지 못하고

독한 소주 냄새로도 영역표시를 할 수 없을 때

 

그는,

허리가 끊어지도록 중심을 지키는 게 상책이라 믿는다

민원으로 각서를 몇 번이나 썼다는 그,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기우뚱 현기증을 호소한다.

 

바람이 혀를 차고

구름이 늙은 부모를 기억해내는 동안

그가 바닥을 향해 눕는다

자꾸 소주병처럼 기울어진다.

 

세상의 중심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중얼거리다

중심이 너무 멀어 아득하다고 하다가

이내 눈빛이 흔들린다

끝내 중심이 되지 못하고

새벽마다 공사장 기초공사를 하며

실종된 중심을 현상 수배한다.

   

 

♧ 등이 가렵다 - 김명기

 

버림과 비어 있음의 경계선은 어디쯤일까

 

요즘은 자꾸 등이 가렵다

뒤꿈치 치켜들고 몸을 비틀며

어깨 너머 허리 너머 아무리 손을 뻗어도

뒤틀린 생각만 가려움에 묻어 손끝에 돋아난다

 

나와 내 몸 사이에도

이렇듯 한 치 아득한 장벽이 있다는 것이

두렵고 신비스럽다

 

빛과 어둠,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 정수리 어디쯤

죽음에 이르러야 열리는 문이 외롭게 버티고 있는 것 같고

때론 소슬바람에도 쉬 무너질 것 같은 그 무엇이

내 안 어딘가 덜컹거리고 있다

 

등이 가려울 때마다

등줄기 너머 보이지 않는 길들이 그립다

 

 

♧ 고요의 소리 - 나석중

 

외딴 숲 속 길

무심으로 혼자 걸어가면서

돌 위에 돌 올려놓고

고요 위에 침묵을 올려놓는다.

 

돌 위에 돌

고요 위에 침묵

이걸 적막강산이라 부르는가

 

숨 한 번 크게 들어 쉬고

가만가만 고요의 소리 재운다

고요의 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금 간 술항아리 - 김명자

 

술에 장사 없다드니

주색에 곯은 사내 곁에서

덩달아서 주색에 골몰했네

병이 들어 금이 가기 시작했네

더 이상 술을 담을 수 없네

사내의 완력을 견디지 못하고

뒤안에 주저앉았네

분가루는 더께로 변해 꿈꾸는 일조차 힘이 드네

겨울바람 소리만 이명처럼 들어왔다가

흔적도 없이 따나갈 뿐이네

   

 

♧ 도끼 - 김현주

 

세상에는 도끼가 많다

날만 세우고 사는

이 도끼가 누군가의 희망의 모가지를 치고

저 도끼가 누군가의 희망의 모가지를 치고

또 누군가의 희망의 모가지를 치는

이유를 가진 도끼가 너무 많다

너도 나도

변명의 긴 자루를 가진

도끼 한 자루씩 가지고 산다

방어가 아닌 공격이 되어버린

   

 

♧ 까치집 한겨울 - 송문헌

 

하늘을 향해 치솟은

신갈나무 어깨 위에

허물어질 듯 낡아

뼈대만 남은 누옥이 종일

몸을 움츠리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떠나간 식구들이 혹여 돌아오려나

쌓인 눈의 무게를

온몸으로 버티어 견디느라

얼어붙은 뼈 마디마디 욱신거려도

허물어질 순 없다고

   

 

♧ 주포항 - 이사랑

 

물때도 모르고

고동이나 줍자고 나섰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방파제까지 파도가 너울너울

손에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었다

물고기 떼를 몰고 파도가 렁출렁출

춤을 추며 들어오고 있었다

 

다들 어디로 갔나?

 

술 따르던 주모도 없고 술집도 없는

술항개포구

 

그 호리병에 막걸리가 가득 담겼으므로

나는 돌머리해변에서 낮술을 마신다

벌컥벌컥 바다를 마신다

 

해당화 피고 내 얼굴도 피고

   

 

♧ 어두운 봄날 - 홍해리

    -치매행 致梅行 ? 69

 

우주가 가볍게 떨리더니

드디어 양수가 터지고 있습니다

 

땅속에서 씨앗들, 파릇파릇

불처럼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비린내 나는 산 것들마다

황홀한 꽃길 열겠다고 야단입니다

 

생살 터지는 아픔도 아름답다고

난리가, 난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렇지 않는 것은

봄이 와 꽃 피는 것도 모르는 사람,

 

하나, 내 곁에 있습니다

해서, 이 봄이 마냥 어둡기만 합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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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12.13 14:06

    첫댓글 가슴아린 시들 잘 읽었습니다
    시소증후군..소주병처럼 자꾸 기울어진다
    등이 가렵다에 이렇듯 나와 내
    몸사이에도 한 치 아득한 장벽이 있다는 것이 두렵고 신비스럽다

    금 간 술항아리도 명작이고요
    송문헌 시인님 홍해리 시인님것도 있군요

    우리시 12월호 옹골진 시 들 참 많이 실렸습니다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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