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라지나이트 입니다.
오늘은 성탄절 입니다. 성탄절 치고는 춥지 않은성탄이지만 오늘밤부터 추워진다니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요즘 에어로 게시판이 썰렁한데요.. 간만에 신제품 소개를 해봅니다.
지난번에 알려드린 아카데미 12월 신제품중 12530번 P-47D & F-86E "Gabreski" 제품이 출시되었습니다. 출시된지는 꽤 되었는데 게으름병때문에 이제서야 소개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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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품은 2차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 서로 다른 기체를 조종했으면서도 에이스로 등극한 폴란드 출신 조종사 Gabresk 의 기체를 재현한 제품 입니다.
Francis Stanley "Gabby" Gabreski
이차대전 유럽 전선에서 미국 격추 제 1위 가브레스키 비행훈련 열등생에서 탑에이스로...... 소속 : 미국 복무 : 이차대전 유럽전선 격추기록 : 34기 탑승 기종 : P-47 썬더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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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당시 연합군 최고의 에이스중 하나인 Francis Stanley "Gabby" Gabreski 그는 총 34기라는 격추률을 기록한 초 에이스로 이는 상대적으로 기량이 우수한 서부 독일공군의 초에이스를 상대로 전투를 벌여 기록한 경이적인 기록이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그러니 최선을 다해봐" 비행교관은 조종사 후보생인 가브레스키에게 조종간을 내주며 말했다. 가브레스키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어렵게 어렵게, 비행기를 이륙시켰고, 겨우 기초적인 비행기동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브레스키가 처음 조종 훈련을 받을 때만해도 그는 한마디로 열등생이었다. 1940년 미 육군 항공단에 소속되어, 힘든 비행훈련을 겨우 겨우 해 나가고 있었다. 훈련생 가브레스키는 정말 비행에는 소질이 없어 보이는 후보생이었다.
공중에 떠서는 겨우 수평을 잡고 비행하는 정도라고나 할까?.... 그는 첫 단독 비행을 할 때도,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포에 덜덜 떨었고, 그후로도 다른 후보생들의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악순환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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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전 작전희의중인 카브스키 (맨좌측) 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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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교관이었던 메이어는 좀 퉁명스러운 사람으로, 이런 가브레스키와 조화를 이루질 못했다. 메이어와 그의 상관 레이 워셀 대위는 가브레스키에게 "마지막 시험 비행"이라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결정을 내렸다.
"마지막 시험 비행"이란 조종사 부적격 심사로, 비행 기회를 마지막으로 한번 더 줘서, 거기서 탈락하면, 조종사의 기회를 박탈하는 어마어마한 결정권을 가진 절차였다고 한다. 1940년 9월 가브레스키는 "마지막 시험 비행"을 해야만 했고, 뜻밖에 자신이 했던 비행중 최고의 비행을 선보였다.
그 당시 지휘부의 결정은 이랬다. 가브레스키가 거의 최하 수준의 비행기술을 가진 조종사지만, 교관을 바꿔주면,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결정에서 가능성이란 평범한 동료 파일롯 정도의 수준에는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일 뿐, 그 어느 누구도 가브레스키가 유럽전선에서 미국 제 1위 격추기록을 보유하게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었다.
1940년 11월, 새로운 교관이 가브레스키를 지도하게 되었고, 그후로는 별다른 문제없이 훈련비행을 마칠 수 있었다.
소위로 임관한 가브레스키의 첫 부임지는 하와이에 있는 전투 비행단이었다. 15전투 비행단 소속 제 45 비행편대의 일원이 되었는데, 그곳의 주력 기종은 P-40기로, 이 기종은 1000 마력이상의 엔진 파워를 가진 단좌 전투기였다.
조종사들은 한달에 약 30시간씩, 5,000에서 10,000 피트 (1500미터 - 3000미터) 상공에서 비행을 했는데, 이것은 고공에서 필요로 하는 산소 마스크 장비가 없어서, 고도를 제한해야 했기 때문이다.
편대장이 갑작스런 기동이나, 선회를 하면, 신참 편대원들은 대형을 유지하기 위해, 똑같은 기동을 해야 했으므로, 매우 힘든 비행훈련이 지속되었다. 주간 훈련이 끝나면, 조종사들은 장교 클럽에 모여, 비행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 기동의 보완점들을 교환하곤 했다. 이런 대화는 서로의 비행술을 발전시키는 촉매가 되었다.
하와이에는 장교들을 위한 해수욕 해변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조종사들과 사귀길 원하는 젊은 아가씨들이 많았고, 가브레스키는 그곳에서 육군 대령의 조카딸인 케이 커크레인이라는 여자를 만나게된다. 그들이 처음 같이 밤을 지내게 내는 날이 바로 1941년 12월 6일이었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가브레스키는 화장실로 가서 면도를 하며, 자신의 여자친구를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그는 영내에서는 듣기 힘든 큰 폭발음을 듣게 된다. 건물 밖으로 뛰어나간 가브레스키는 생전 처음 보는 기종의 항공기를 보았다. 엷은 회색에 붉은 원이 그려진 문양이 태양빛에 번쩍이는, 고정식 랜딩기어를 달고 있는 뇌격기들..... 그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터진 듯한 연속적인 엄청난 폭발음을 들었다. 그리곤 이내 비행기 격납고에서 불길이 치솓았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시작된 것이었다.
미군 조종사들은 활주로로 달려가서는 아직 손상 입지 않은 전투기들을 격납고에서 끄집어 냈다. 편대장 테일러 대위는 편대원들에게 전투기 급유와 무장을 명령했다. 약 10대의 전투기가 준비가 되었고, 그중엔 가브레스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이 진주만 상공으로 날아갔을 땐, 이미 모든 군시설들이 불길과 검은 연기에 뒤덥힌 뒤였다.
1942년 10월, 유럽전선으로 가길 열망하는 가브레스키의 꿈이 이루어져, 그는 영국 공군의 폴란드인으로 구상된 비행대에 보내진다. 얼마후 그는 다시 제 315 비행대로 옮겨졌고, 거기서, 새로운 전투기 스피트화이어 MK IX (마크 나인)기를 몰게 된다. 이기종은 전에 가브레스키가 탑승했던 P-40 보다 성능면에서 앞선 기종으로, 무전이 가능한 산소마스크 장비가 장착되어 있어 30,000 피트 상공에서 기동이 가능했고, 더 빠르고 더 좋은 비행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가브레스키가 스피화이어를 탑승한후, 첫번째 임무는 1943년 1월초의 일이었고, 폭격기를 호위하는 임무였다. 그러나 독일 전투기와의 조우는 없었다.
가브레스키가 처음 독일 전투기들과 만난 것은 그해 2월 3일로, FW 190 편대가 가브레스키의 편대로 뛰어들었다. 공중전이 시작되었고, 편대장은 가브레스키의 바로 앞쪽 우측에 있는 적기를 발견했고, 가장 유리한 사격 지점에 있는 가브레스키에게 발포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극도로 흥분한 가브레스키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전방에 작은 점같이 보이는 물체뿐이었고, 그는 기총사격을 해댔다.
그들이 비행장으로 돌아온 후 건 카메라(Gun camera)로 찍은 필름을 분석했고, 가브레스키는 놀라 자빠질 수 밖에 없었다. 전투중엔 작은 점 밖에 본 게 없는데, 찍어 온 필름 한 귀퉁이엔 커다란 FW 190기가 바로 자신의 오른쪽 전방에 있었던 게 아닌가?.. 바로 몇발만 쐈으면 격추시킬 수 있는 위치였다. 이 임무 후 가브레스키는 한가지 깨달은 바가 있었다. 즉 공중전에 들어가면, 마음에 평정을 찾아야 한다는 것.... 흥분하면 절대 안되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목표물이 자신의 기총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어려웠고, 적기의 거리감을 빨리 익혀야 한다고 느꼈다.
1943년 2월 27일, 그는 다시 미국 제 8 공군으로 옮겨졌고, 허브 젬크(Hub Zemke)가 비행대장으로 있는 (울프팩비행대로 더 유명한) 제 56 전투 비행대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킹스크리프 비행장에 주둔하며, P-47 썬더볼트 전투기에 탑승하게 되었다. 썬더볼트는 크기가 매우 큰 육중한 전투기였지만, 조작성이 꽤 훌륭한 기종이었다. 상승력은 약간 딸렸지만, 롤기동이 매우 빨랐고, 경이적인 급강하 속력을 가지고 있었다. 가브레스키는 P-47의 편한 조종석과 또 50 캘리버 기관총을 매우 좋아했다.
56 비행대는 그해 3월내내 훈련 비행을 했고, 독일 편대전술인 슈밤을 변형해 핑거 포(finger four)대형을 기본 편대형으로 채택하게된다. 가브레스키는 당시 대위였고, 56비행단 소속 61 편대의 B 조 편대장이 된다(한조는 9명의 파일롯으로 구성되었음).
가브레스키 편대는 1943년 4월 중순, 첫번째 비행 임무를 부여 받는다. 5월에 접어 들면서 임무의 횟수가 늘어났고, 어떤 조종사들은 격추기록을 세우기 시작했고, 운이 나쁜 파일롯들은 하나 둘 격추되어갔다. 그러나 가브레스키는 아직 격추 스코어를 전혀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5월 15일, 가브레스키는 독일의 Fw 190기를 명중시켜 손상을 입힌다. 적기를 처음 명중시킨 것이다. 그러나 내구성이 강한 Fw 190은 데미지를 입고도 가브레스키의 사격범위에서 탈출하고는 달아나버렸다.
6월 9일, 울프팩의 비행대장 허브 젬크는 가브레스키를, 61 편대의 모든 비행조를 총괄하는 편대장으로 임명하며, 소령으로 진급시켜준다. 가브레스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예상치도 못했던 이런 영예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브레스키는 나중에 자서전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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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중순 유럽주둔 울프팩 비행단의 편대장 당시의 카브스키의 모습... 1년전만 해도 비행기도 겨우 띄웠을만큼 열등생이였던 그는 1년만에 비행단 최고의 에이스가 되어 있었다]
"단 1 년전만 해도 나는.... 어떻게 날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주의력이 부족한 파일롯이었다. 그런데 이젠,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적기들과 겨뤄야하는 비행대의 편대장이 되다니...."
그는 그의 편대를 신념과 용기로 이끌어 나갔다. 그러나 격추기록은 자꾸만 그를 피해갔다. 한마디로 편대장으로서 체면이 안 서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1943년 8월 24일 드디어 가브레스키의 실망은 끝을 보게 된다. 그는 대망의 첫격추의 기쁨을 맛보게 되고, 그이후는 발동이 걸렸는지 격추 스코어가 곱절, 세곱절로 늘어났다.
- 가브레스키의 공중전 경험담
- 가브레스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공중전은 1943년 12월 11일에 있었던 공중전이었다고 한다. 그날 날씨는 매우 화창했으며, 가브레스키는 폭격기 호위 임무를 위해 자신의 편대를 이끌고 출격했다. 이륙후 몇분이 지났을까.... 그들은 북해의 차가운 바다 위를 비행하고 있었다. 편대는 고도를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기수를 쳐들고 비행하고 있었고, 11,000 피트 상공에 도달했다. 그들은 계속 목표 고도인 22,000 피트까지 올라가기 위해 상승했고, 네덜란드 해안가에 도착할 즈음, 20,000 피트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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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7를 타고 화려한 전과를 올린 카브스키의 애기의 모습 P-47은 당시 최고 성능을 가진 P-51 무스탕에비해 결코 우수한 공중전 성능을 가진것은 아니였지만 중장갑에 중무장 한 기체로 특히 저공공격에서는 더 강한면이 있어 에이스들중에서는 P-47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폭격기들과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그들이 거의 도착했을때, 가브레스키는 자신들이 호위해야 할 폭격기들이 독일의 Bf 109와 Bf 110기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독일기들은 폭격기 격추를 위해 로켓을 장착하고 있었다. 즉시 가브레스키의 편대는 Bf 110기들의 후미로 접근했다. 그러자 회피기동에 들어가려던 Bf 110기 두대가 서로 공중 충돌을 하고는 폭발해버리고 만다. 독일기들은 연합군 전투기의 출현을 모두 알게 되었고, 사방으로 산개했고, 전투대형을 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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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애기인 P-47 에 그려진 수많은 킬마크.... 그는 상대적으로 기량이 우수한 서부독일공군을 상태로 올린 전과라 더 의미가 깊다 하겠다]
미군기들은 독일기에 달려들었고, 서로 빙글빙글 선회하며, 꼬리를 잡으려고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전투기들의 엔진소음은 흡사 사냥감을 찾는 맹수의 포효 그자체였다.
가브레스키는 3대의 Bf 110기가 편대에서 이탈해 달아나는 것을 발견하고는 P-47의 최대 장기인 급강하 공격에 들어갔다. 곧 적기를 따라 잡았고, 그중 1기를 격추 시켰다. 그러나 급하강하는 바람에 자신의 편대에서 많이 이탈되어, 정신을 차리고 난 가브레스키의 눈에는 빈 하늘만이 비춰졌다.
그는 동료들을 찾으려 이리 저리 고개를 돌리며 두리번 거리다가, 전투기들이 편대를 이루고 비행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곧 그들에게 합류하려고 접근했다. 연료도 얼마 남지 않아서 그의 마음은 급해졌다. 그런데 이게 왠걸.... 가브레스키가 다가간 전투기 떼거리는 다름아닌 독일의 Fw 190기들의 무리가 아닌가?.... 그는 다시 연료계를 보니, 도저히 기지로 귀환할 수 없는 적은 양이었다. 그는 기수를 서쪽으로 돌리고, 경제 속도로 비행을 시작했다.... 기도를 하면서....
얼마나 갔을까.... 가브레스키가 다시 연료계를 체크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3시 방향에서 한대의 전투기가 날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독일의 Bf 109기였다. 그는 이 정도의 연료로는 적기와 공중전은 무리라는 것을 알았고, 회피하려고 했다.
그런데 독일 조종사는 일대일 공중전에는 자신이 있었던지, 가브레스키에게 접근해서는 기총사격을 가하고 P-47을 위로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가브레스키는 회피하면서, 서쪽으로 계속 기수를 잡았다. Bf 109가 세번째 접근해 왔고 기총사격을 해댔다. 이번 조우로 가브레스키의 P-47은 러더에 손상을 입고 말았다.
더 안좋은 것은 엔진도 손상을 받은 것..... 엔진은 갑자기 털털거리기 시작했고, 그의 P-47기는 나선형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가브레스키는 다른 조작 없이 전투기가 움직이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완전히 기동을 상실하고 추락하는 것 처럼 보이게 해서, 독일 조종사가 격추 스코어 올렸다고 스스로 의기양양하게 돌아가게 끔 하려고.....
가브레스키의 눈속임은 몇초간은 효력이 있는듯 했다... 그런데 얼마후 독일 조종사가 추격하기 위해 다시 하강해 오는 게 아닌가?.... 와 완전히 확인 사살까지 하려고..... 그런데 다행히도 하늘이 도와, 낮게 떠 있는 구름 덕분에 가브레스키는 독일기의 눈을 피해 달아날 수 있었다. 그리고 손상받은 기체를 어렵게 어렵게 이끌고 기지로 귀환했다.
- 포로가 되는 가브레스키
-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D-day... 가브레스키는 노르망디 해안의 적전투기 스위핑(sweeping) 임무에 참가한다. 그리고 그후로 3주후 28기 격추를 달성해, 일차대전 미국 제 1위 격추기록의 에이스 에디 리켄베커의 격추기록을 추월했다. 그가 30킬을 달성하자, 지휘부는 가브레스키에게 휴가를 주었고, 그가 고향으로 떠나는 날 아침, 짐가방을 들고 귀향 준비를 하던 가브레스키는 활주로에서 이륙 준비중인 전투기들을 보고는 자신의 짐가방을 수송기에서 내렸다. "한번 더 날아보고..." 그때 그가 한말이다. 가브레스키의 전투기도 다시 무장을 했고, 출격에 나섰다.
적진영 상공에서 가브레스키는 비행장에 대기하고 있는 독일기들을 발견했다. 그는 급하강을 시도했고 지상에 서 있는 적기를 향해 기총 사격을 가했다. 그가 두번째 적기에 접근할때, 갑자기 P-47의 엔진이 급격하게 요동을 치더니만, 멈춰버리고 말았다. 그는 적진영에 동체착륙을 하게된 것이다. 가브레스키는 비행기가 멈추자 마자 전투기에서 뛰어내려 가까운 숲속으로 죽어라 달려갔다. 독일 병사들은 뒤에서 추적에 나섰다. 5일간이나 이리 저리 도망다니다가 끝내 독일군들에게 잡히고 만다. 그는 연합군 조종사들만 수용되는 포로수용소로 옮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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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찍은 미공군 소속의 가브스키의 모습 그는 한국전을 통해 6기의 미그15를 격추... 제트기로 옮겨 탔어도 그의 기량이 여전함을 보여주었다 그는 최초의 제트기기리의 공중전에서 그만의 독특한 전투기 전투 기법을 연구 발전시켜 이후 미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의 기량을 높이는데 큰 공헌을 하기도 하였다]
이차대전이 끝난 후, 가브레스키는 시험 비행 조종사로 복무하다가, 한국전쟁시 미 51 전투 비행단장으로 참전했고, 새로운 제트기 공중전의 전술 발전에 공헌했으며, 6기의 Mig 15기를 격추시킨다. (참고로, 이차대전과 한국전쟁 모두에서 5기 이상의 격추를 한 에이스는 가브레스키를 포함해 단 7명 뿐이다)
-
출처 고공출격 중에 (http://user.chollian.net/~hartmannshim/gabreski.htm)
출처 불타는 하늘 (http://airwar.hihome.com/gwp/p-47/p-47.htm) 중에서 발췌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분은 아래 싸이트에 가시면 좀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불타는 하늘 (http://airwar.hihome.com/frame2.htm)
고공출격 (http://user.chollian.net/~hartmannshim/dogframe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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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 1 개요
- 1.1 썬더볼트와 관련된 영화속 공중전 장면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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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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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7
Thunderbolt.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비행 중전차 (Flying Heavy Tank) 주력
전투기 겸 지상
공격기. 러시아 출신 개발자가 세운 리퍼블릭(Republic)사에서 제작한 전투기로 특징을 꼽으면 육덕진 몸매와 사기적인 방어력과 강력한 2,000마력의 엔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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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리퍼블릭사는 날렵한 경전투기로 설계하고 있었는데, 미
육군항공대에서 화력과 방어력 강화를 요구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M2 중기관총 8정을 장착하기로 결정을 내렸는데, 그러다보니 항공기 덩치가 당초 계획보다 커지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엔 항공기 엔진이 증가한 동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헐떡거리는 문제가 생겼다. 결국 리퍼블릭사는
프랫&휘트니사가 개발한 2,000마력의 R-2800-8 공랭식 레디알 피스톤기관을 설치하고, 아예 대형전투기로 설계를 변경하였다. 그러면서 남아도는 엔진파워는 모두 장갑을 두르는데 사용하면서 육군 항공대의 요구를 맞춰버렸다. 이런 방식은 이후 작품인
F-105를 제작할 때도 적용되어서 세계 최대의 1인승 전투기가 나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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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미 육군항공대의 요구를 맞추려다 보니 저 세 가지 특징이 나온 셈이다(…). 그 때문에 상당히 둔중하게 보이는 외모를 지녔으며, 실제로도 비행속도를 제외하면 둔한 편이었다.
영국에 처음 이 비행기를 가져다놨을 때, 영국
공군의 반응은
"님하 이거 지상공격기죠?" 전투기란 사실을 알려주자
"님 지금 장난하시나효?" 하지만 의외로 롤(Roll, 항공기를 좌/우로 뒤집는 것) 속도는 빠른지라 이것과 빠른 비행속도를 활용하면 꼬리물기에서도 위협적인 전투기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P-47 에이스 한 명이 스핏파이어와 가상공중전에서 이 성능을 활용하여 스핏파이어를 잡아버리기도 했다.
이래도 공격기라고 무시함? 깝ㄴㄴ하지만 새끈한
스핏파이어의 조종사들은 P-47을 대놓고 비웃기도 했고(특히 영국에 의용병으로 가서 스핏파이어를 몰던 미군 조종사들), 조종사중에는 심지어 탑승을 거부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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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외양은 성능과는 다른 법. 한번 썬더볼트를 탑승해 전투를 치른 조종사들은 P-47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무시무시할 정도로 무거운 저 거대한 기체가, 의외로 에너지 파이트에는 굉장히 유리했다고. 엔진 힘이 워낙 좋기 때문에 상승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저속에서 엔진힘만으로 올라가는 지속상승력이 아니라, 일단 가속을 붙인뒤 그 탄력으로 올라가는 Zoom Climb시에 강력했다는 이야기다. 미군 전투기들은 P-38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속상승력이 그저그런 수준이었던데다가, P-47은 엔진힘이 있다고는 해도 워낙에 무거운 기체라 꽤 안 좋은 수준이었다. 게다가 무게 때문에 한 번 급강하를 시작하면 그 누구도 쫓아올 수 없었던 것. 원래 급강하는 독일군의 장기였는데, 유일하게 독일이 보유한 그 어떤 전투기보다 우수한 급강하능력을 보여준 게 바로 P-47이었다. 당장 독일군의 에이스 발터 크루핀스키의 말로는 급강하하는 P-47은 '나중에 다시 보자' 하고 사라지는 악마 같았다고 한다. 영국군 파일럿 왈 "저렇게 생긴 전투기는 당연히 아래로 떨어지는 건 잘 할 수밖에!" 워낙 급강하 성능이 좋다보니 급강하중 음속에 도달했다거나 돌파했다는 말도 나돌 정도. 물론 프로펠러기는 음속근처에 도달하면 프로펠러가 추력을 만드는게 아니라 되려 항력을 만들기 때문에 급강하로 음속을 돌파했다는 것은 낭설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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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P-47은 한 번 치고 빠지는 고전적인 전법에서는 말 그대로 무적에 가까운 기체였다. 여기에 우수한 맷집과 우수한 속력, 고속 선회 능력이 괜찮은 점 등 저속 선회가 당대 전투기 중 최악급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격투전에서조차 P-47을 무시할 수 없는 기체로 만들었으므로, 사실상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이 운용한 가장 위력적인 전투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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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을 발사해서 독일군 전차의 뚜껑을 따고계시는 P-47.
독일공군 역시 썬더볼트를 꽤나 난감한 상대로 평가를 했었는데, 어지간한 독일공군기보다 고공성능이 우수했기 때문이다. 썬더볼트는
터보수퍼차져라는 것을 사용했다. 터보슈퍼차져는 수퍼차져(과급기)의 일종으로, 엔진에서 나오는 고온고압의 배기가스를 재활용하여 공기를 압축하여 공급하는 물건이기 때문에 희박한 고공에서 효율이 높으며 출력도 비약적으로 커지는 효과가 있다. 덩치가 커지는 것이 단점이지만. P-47이 비슷한 R2800 엔진을 사용하는 F6F나 F4U 보다더 훨씬 덩치가 큰 것도 이 터보수퍼차져 탓. 고급 차량중에 '터보'라는 것이 달렸다는 것도 대부분이 터보수퍼차져가 달렸단 말이다. 이것은 본래 크기 때문에 폭격기에 쓰던 물건이나, 전투기 중에는 드물게 썬더볼트도 채용했다. 본래 썬더볼트가 맡은 주 임무는 고고도로 비행하는 폭격기를 호위하는 고고도 전투기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은 2차대전 이전에
제트엔진 및
가스터빈 연구를 하다가 어렵다보니 때려치고 대신 폭격기의 고고도 비행을 위하여 이 터보수퍼차져를 연구했다. 덕분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제트엔진기술이 뒤처졌던 반면, 고고도를 비행하는 폭격기용 터보수퍼차져 기술에서는 꽤 앞서있던 편이라 양산되는 전투기에도 이 장비를 달아줄 수 있었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것처럼 독일의 급강하전술을 엿먹일 정도로 뛰어난 공중전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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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다 썬더볼트를 가장 격추시키기 힘든 전투기로 평가하기도 했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너무 날렵해서 맞추기 힘든 것이 아니라 아무리 때려도 끄덕않는 그 놈의 사기적인 맷집 때문이었다. 덕국에 티거가 있다면 쌀국은 P-47이 있다. 오오 역시 공군!
독일 조종사의 증언에 따르면 분명히 독일 전투기가 먼저 사격을 가하고 엄청난 수의 명중탄을 기록했는데,
탄환이 먼저 바닥나고 썬더볼트는 여전히 비행하고 있었다(…)거나,
미군 조종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너무 얻어맞아서
엔진이 반쯤 정지됐는데 자력으로 귀환했다거나, 격렬한 전투를 마친 후에 귀환해서 확인했더니
피탄자국만 세 자리 수가 되더라는 이야기는 썬더볼트에겐 거의 '일상'이나 다름없었다고 하니 말 다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든든한 출력과 충만한 맷집 그리고 빠른속도로 선회력을 커버한다는것은 일본의
제로센과는 정 반대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셈이다.
근데 이쪽은 워낙 병맛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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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더볼트의 내구성을 증명하는 유명한 사례로는 1943년에 미 육군항공대 파일럿 로버트 S. 존슨이 겪은 사건이 있다. 편대를 유지하며 비행하던 중
Fw-190 포케불프의 붐앤줌 공격에 의해 20mm 기관포에 피탄당해서 엔진 실린더 일부가 통째로 날아가 화재가 발생하고, 캐노피 일부가 깨지고 오일이 튀어서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다가, 파편에 부상까지 입었고, 탈출하려고 해도 캐노피까지 열리지 않는 상태로 기지로 귀환하던 중에 또다시 다른 포케불프의 기습을 받았다. 한마디로 말해 전투불가에 그냥 고정표적인 상태. 그래서 존슨은 조종석 패널에 발을 지탱해서 캐노피를 열어보기도 했고, 깨진 유리 사이로 뛰어나갈 생각도 해 봤지만 전부 허사. 캐노피가 고정되어 열리지도 않았고, 창틀이 애매하게 가려버려서 낙하산을 들고 뛰어내릴 수도 없었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물론, 유리는 다 깨지고 얼굴과 앞쪽 윈드쉴드는 오일 범벅이라 정상적으로 조종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
정상적 조종이 불가능하였으므로 포케불프가 3번에 걸쳐 정확히 조준하여 근거리에서 쏟아부은 20mm와 7.92mm 기관포탄을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나 썬더볼트는 수백 발의 탄막을 그대로 맞고도 기지로 귀환했다. 게다가 이 당시 공격기는 이때까지 무려 66기를 격추시킨 독일군 에이스 에곤 마이어로 역시 떡장갑을 자랑하는 미군 중폭격기를 공격할 때 12시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실천한 사람이다.
무적귀환 돋네게다가 이 당시 썬더볼트를 발견한 포케불프의 파일럿은 한 번 일제 사격을 퍼부은 뒤 로버트 존슨 옆으로 다가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는데, 이 때는
넌 그래도 죽었어 라는 의미였다. 로버트 존슨은 그 표현이 독일군이 포기한 것이라 생각했으나 독일군은 한 차례 더 공격을 가했고 정말로
탄을 모두 소모하자 로버트의 옆으로 날아가 날개를 흔들어
더러운 성박휘색히 경의를 표하고는 그대로 날아가 67번째 격추 기록에 실패했다. 즉
Fw-190의 공격을 두 번이나 앉은 상태로 얻어맞았다는 의미. 로버트는 간신히 착륙 후 자기 기체에 난 총알자국을 세어보았는데, 기체 한쪽에만도 20밀리 21개와 더 작은 구멍(7.92 mm) 200개 정도 센 뒤에 질려서 포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훗날 유럽전선 미군 에이스 2위(27~28대)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히스토리 채널의
실전최강 전투기 대전에서도 재현되었다.
나중에는 독일 전투기들과 마주치면 아예 정면공격을 걸었다. 보통 공중전에서 헤드온은 제아무리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기피하는 전술이지만, 워낙 맷집이 사기적인데다 8정의 중기관총이 동시에 뿜어내는 총알의 카페트 덕분에 독일 전투기들은 정면에서 공격해오는 P-47을 상대할 수가 없었고, 어쩔 수 없이 헤드온 상황을 피하기 위해 선회를 한다면 이미 방어기동에 들어가는 입장에 처해지는 것이라 독일 전투기 조종사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골치아픈 상대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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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덴 대공세에서도 P-47의 맷집은 증명되는데, Y-29비행장 상공에서 난전중에 독일군
Bf109 두 대 에게 일격일탈 공격을 당해 오른쪽 날개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던 상황에서도 기동이 가능했으며, 도리어 꼬리를 잡아 두 대중 하나를 격추시키고, 나머지 하나는 아군
P-51 무스탕이 처리해 버리는 어이없는 상황도 발생했다.
그야말로 리분 전성시대의 징벌기사 P-51 무스탕이 개발되기 전까지 제공전투와 폭격기 호위도 담당했었는데, 연료를 만땅으로 채워도 독일 영토 근처까지도 못가는 항속거리로 인해서 연합군의 항공작전에 수많은 애로사항을 꽃피웠다. 외부연료탱크를 채택해서 항속거리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 때는 이미 무스탕이 실전배치된 뒤였다. 결국 무스탕이 최대속도도 더 빠르고, 선회성능도 좀 더 좋았으며 결정적으로
값이 더 쌌다. 대신 고고도 비행성능만은 터보수퍼차저를 단 썬더볼트가 더 우수했고, 무스탕은 연료탱크가 기체 전반에 걸쳐 있었기에 연료 잔량에 따라 비행 특성이 달라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종합적으로는 무스탕이 더 낫다고 판단되었으므로 폭격기 호위 및 독일 전투기 사냥에 투입되었는데 효과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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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제공전투에는 꾸준히 참여하였는데, 이 때문에 무스탕만 운용하는 부대와 썬더볼트만 운용하는 부대 사이에는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고 피튀기는 격추 경쟁이 펼쳤다고 한다. 물론 서로 조종하는 전투기에 대해서
디스질하는 건 기본이었다(…). 특히 유명한 것은 제4전투비행대(P-51)와 제56전투비행대(P-47)간의 혈투. 전투비행대 총 격추수가 둘이 비등하였다. 참고로 제4전투비행대는 한국전당시 F-86을 몰고 한반도에서 싸왔으며, 제 56전투비행대는 현재
주한미군 소속으로
대한민국에 주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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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로는 지상공격 임무의 비중이 늘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무스탕을 투입했더니 지상 포화에 냉각계통에 피탄당하고 엔진과열로 뻗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스탕 뿐 아니라 수냉식 레시프로 전투기면 냉각계통에 피탄시 과열로 뻗는 것은 공통적인 단점에 해당한다. 어쨋든 지상공격에는 무스탕이 의외로 취약하다는 점을 입증했기 때문에 그동안 보여준 썬더볼트의 사기적인 맷집과 생존성을 높이 평가받은 것이었다.
역시나
어지간한 지상포화는 잘근잘근 씹어드시면서 쑥을 재배하는 포스를 보여주었는데, 연합군의 지상진격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미 육군의 가장 우수한 기갑 장비(tank weapon)가 P-47이었다는 발언이 있을 정도다.
참조. 독일군은 썬더볼트와 영국군의 타이푼 전폭기를 야보(Jabo)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전폭기의 독일어인 Jagdbomber(전투 폭격기)의 약어다.
P-47의 위력을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 영토로 진격하던 미군 보병부대가 독일군의 토치카에 가로막혀 발이 묶였다. 통신병은 아군 전투기를 호출했지만, 날아온 것은 단 한 대의 P-47... 이 P-47을 향해 독일군 진지에서 기관총이 불을 뿜었지만, P-47은 유유히 날아다니면서 기관총과 로켓을 퍼부어 독일군 토치카를 별로 힘들이지도 않고 쑥대밭을 만들어버렸다. 이 광경을 보던 미군 병사들은 "우왕굿 우와, 굉장하다! 저 비행기만 있으면 우린 베를린까지 한걸음에 갈 수 있겠다."며 기뻐했다. |
이런 활약상으로 한 P-47조종사는
"자네들은 정말 굉장한 일을 해냈어. 자네들만 나타나면 적군의 포화가 울러퍼지다가도 금새 멈추니 말일세.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겠네."라고 씌여진 감사편지를 받기도 했다.
이런 활약상 덕분에 그 이름은 제공 전투기가 아닌 지상 공격기
A-10이 물려받았고, 선대의 명성에 한점 부끄럼 없는 활약상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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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P-47은 초반부터 전쟁에 투입되어 전쟁 후반까지 잘 써먹었던지라 미군이 생산한 단발 전투기 중에 가장 많은 숫자가 생산되었다. 하지만 대전이 종전된 후 급격하게 퇴역해서 해체된지라 현재 남아있는 숫자는 무스탕보다 적다.
P-47의 활약은 유럽전선에서의 활약만 잘 알려져 있으나, 태평양에서도 많은 활약을 한 편이다. 특히 P-47 최후기형인 P-47N은 연료탑재량을 크게 늘려서
사이판에서 일본을 폭격하러 가는
B-29 호위임무에도 나섰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는 P-51이나 F4U 대신 이 전투기가 미군 전투기로 나온다. 초기에서는 P-51이 등장하려 했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인하여...
P-47이 더 쌈박하게 보여서라나 뭐라나... 그러니 당연히 아무리쏴도 안터지지영화
멤피스 벨에서는 반대로, 원래라면 이 전투기가 폭격기 부대의 호위 전투기로 등장해야 했으나
P-51 머스탱이 대신 등장한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어른의 사정 탓.
그런데 이 쪽의 어른의 사정은 훨씬 설득력이 높다. 장비가 없는데 어쩌라고...
출처 엔하키미러 싸이트 (http://mirror.enha.kr/wiki/P-47%20%EC%8D%AC%EB%8D%94%EB%B3%BC%ED%8A%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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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rth American F-86 Sab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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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서 초반에 압도적인 공중우세를 보이며 공산군을 몰아내는데 큰 전과를 올리던 미공군은 1950년말에 갑자기 나타난 후퇴익의 은빛 제트기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았다. 이때까지 한국상공에서 아무런 저항 없이 활동하던 미공군의 주력기인 F-51 머스탱이나 F-80 슈팅스타는 훨씬 속도가 빠르고 날렵한 이 공산진영의 전투기에게 적수가 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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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기체에 대출력의 엔진 그리고 긴 후퇴익 과 강력한 무장으로 대표되는것이 미그기의 특징이다]
이것이 바로 소련이 야심차게 선보인 비밀무기 미그-15였다. 미그-15의 등장으로 미공군의 항공작전은 일순간 주춤하면서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미군에게는 다행히도 실전에 배치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신예 F-86 세이버가 있었다. 불타는 하늘의 Great War Planes... 이번에는 미그-15에 맞서 한국상공에서 혈투를 벌였던 창공의 명검 F-86 세이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 명검의 탄생 *
2차대전의 최우수 전투기로 자타가 인정하는 P-51 머스탱을 개발했던 노스아메리칸사는 미공군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2차대전이 막바지에 이를무렵 미국에서도 제트전투기의 개발붐이 일고 있었는데, 노스아메리칸사 역시 곧 다가올 제트시대에 머스탱의 뒤를 미공군의 주력 전투기를 개발하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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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P-86의 시험비행 장면, 후퇴익의 날렵한 외형이 특징적이다. ]
이 차세대 전투기는 XP-86이라는 명칭으로 1944년 5월부터 설계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설계는 엔진만 제트엔진으로 변경했을뿐 기존 프로펠러기의 기술을 활용하여 주익이 직선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유럽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후 독일로부터 여러 가지 항공기술이 입수되었고 특히 연합군에게 충격을 주었던 Me 262 제트전투기에 적용된 후퇴익의 기술이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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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Me 262는 완전한 후퇴익기는 아니었지만 독일의 항공기 개발자들이 생각해낸 후퇴익의 이론은 프로펠러기보다 훨씬 속도가 빠른 제트전투기에게는 매우 적합한 것으로 보였다. 노스아메리칸사의 수석기사였던 L.P 그린이 진두지휘하던 항공기술팀은 독일로부터 넘겨진 후퇴익의 기술을 분석하여 자신들이 개발중이던 신형 전투기에게 적용하기로 했으며, 이로인해서 직선익을 채택한 다른 회사의 경쟁기인 P-80 슈팅스타나 P-84 썬더 전투기보다 실용화가 늦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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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86A의 조종석, 프로펠러기에 비해서 계기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
그러나 노스아메리칸사가 후퇴익을 선택한 것은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다. 후퇴익은 고속 비행시에 날개의 각도가 뒤로 주어져 저항이 감소되고 그만큼 더 속도를 얻을 수 있어 제트 전투기에게는 매우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속 비행시에는 후퇴익이 양력의 감소를 초래하므로 비행이 불안정해지는 단점이 있었으며 이로인해 이륙시나 착륙시에는 다른 기체들보다 받음각을 더 주어야 안정적인 비행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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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10월 1일, 드디어 최초의 XP-86이 창공으로 날아올랐고, 이로서 창공의 명검 세이버가 새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세이버의 비행성능은 예상대로 매우 훌륭해서 고속비행시에는 매우 안정적이었고 최초의 3기는 엘리슨사의 J35 엔진을 장비하고 있었으나 추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더욱 강력한 GE사의 J47엔진을 채택하여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게 되었다. 그리고 1948년 4월 26일 세이버는 전속력으로 급강하하면서 음속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룩했는데, 이것은 제트 전투기로서는 사상최초의 쾌거였다. 그러나 이런 고속비행은 조종간의 반응을 둔하게 만들기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모든 조종면을 유압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방식을 채택하여 고속비행시에도 조종성을 유지하도록 했다.
한국의 하늘로!
1948년 6월 11일 미공군은 기존의 전투기 표시기호였던 P (pursuit)를 F (fighter)로 바꾸도록 하였으며 이로 인해서 세이버의 양산형은 F-86A로 명명되게 된다. 1949년 2월 최초로 실전배치가 시작된 F-86A형은 기체의 전반적인 구조는 XP-86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지만 엔진이 보다 강력한 J47-GE-5로 변경되었으며 이후에는 더 향상된 J47-GE-7을 장비하게 되었다. 무장은 기수에 집중되어 기수의 양측면에 2차대전당시 미공군기에 장착되어 맹활약한 12.7mm 기관총 3정을 배치하여 총 6정이 장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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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86의 기수에 정렬된 12.7mm 기관총, 2차대전에서는 맹활약했으나 제트시대에는 화력이 좀 빈약하다는 지적이 있어 후에 20mm 기관총으로 대체한 F-86F도 잠시 등장했었다. 그러나 20mm는 탄약 휴대량이 적이 조종사들이 선호하지 않았다고 한다. ]
세이버의 실전배치는 다급하게 이루어졌는데, 이는 역사적인 라이벌인 미그-15의 등장에 따른 것이었다. 1950년 11월 1일, 중국공군의 도색을한 미그-15가 갑자기 출현하여 미공군의 F-51 편대를 위협하는 것을 시작으로 미그-15기들은 조직적으로 출현하여 미공군의 항공작전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이미 지상에서도 중국군이 인해전술로 UN군을 밀어붙이기 시작한데다가 하늘에서마저 주도권을 빼았길 위기에 처하자 미공군은 다급하게 신예기인 F-86 세이버를 극비리에 한국전쟁에 투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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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86A의 모습 F-86 은 후퇴익과 최신 제트엔진 그리고 정교한 조준이 가능한 신형 조준기 등이 탑재된 새로운 개념의 제트전투기였다]
1950년 12월 13일 최초로 한국에 도착한 F-86A는 제4 전투요격 비행단에 배치되었으며 미그가 출몰하는 압록강 이남의 지역으로 출동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리고 12월 17일 세이버편대가 미그가 출몰하는 북쪽의 미그통로 (MiG alley)로 출격했다. 이들은 미그-15기들을 유인하기 위해서 F-80 슈팅스타의 비행대형과 무전방식을 사용하면서 비행했으며, 이 유인전술을 성공하여 곧 여러대의 미그-15가 이들을 공격해왔다. 곧이어 F-86 조종사들은 미그-15에대해 전혀 물러섬이 없이 맞대응을 했고 치열한 공중전끝에 부르스 힌턴 소령이 미그-15를 격추시키는 쾌거를 올렸다. 그러나 이날의 전투는 이후 2년간 한국상공에서 벌어질 세이버와 미그의 처절한 공중전의 서곡에 불과한 사건이었다. 이후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황해도 이북의 미그통로에서는 제공권을 장악하기위한 양측의 주력전투기인 세이버와 미그-15가 피비린내나는 혈투를 벌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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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이북부터 중국 국경까지 이르는 빨간 부분이 유명한 미그앨리로 구소련군과 종공군의 조종사들이 기량을 뽑내던 지역이다 1952년이후 최신의 F-86 세이버 전투기와 2차대전중의 에이스급 조종사들이 대거 투입되면서 이곳에서 미국은 1:80 이라는 대전을 기록하기도 한다]
* 지속적인 개량
미그-15와의 공중전이 계속되면서 F-86A의 후속 개량형인 F-86E형이 배치되기 시작하는데 이 형은 수평미익의 엘리베이터를 없애고 아예 수평미익 전체를 가동식으로 바꾼 것으로 이른 바 'all flying tail'이라고 불리는 방식을 사용한 것인데, 이는 고속 비행시에 기동성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이 수평미익의 변화를 제외하고는 겉에서 볼 때 A형에 비해서 별차이가 없는 것 같으나 내부적으로는 혁신적인 개량이 실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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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비행장에 주기중인 F-86E 세이버들의 모습이다. ]
그것은 기존에 사용되던 자이로식 조준장치를 대폭 개선하여 레이더와 컴퓨터를 이용한 거리측정식 조준장치를 장비한 것인데 최대 1300m의 거리에서도 조준사격이 가능했다고 한다. 이것이 미그-15와의 공중전에서 큰 이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 조준기의 등장으로 인해서 프로펠러기에 비할 수 없는 고속으로 공중전을 벌이는 제트시대에의 공중전에서도 미공군 조종사들은 보다 먼거리에서 정확하게 적기를 조준할 수 있었다. 이 조준기는 A형의 후기생산분 47대에도 장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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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제16 전투요격 비행단 소속의 F-86E이다. 본 기체는 비행단장이었던 에드워드 헬러 중령의 기체로서 그의 이름을 딴 HELL-ER BUST X라는 노즈아트가 장식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전자장비를 제외한 기체 자체의 전반적인 비행성능에서는 미그-15쪽이 더 우위에 있었다. 미그-15는 9000미터 이하의 고도에서 F-86E보다 기동성이 약간 떨어지는 점 말고는 고고도에서의 기동성과 상승력, 실용 상승한도에서 F-86E를 상회하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F-86 조종사들은 2차대전을 경험한 베테랑이었던데다가 우수한 조준기를 사용하여 미그-15에 대한 공중전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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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김포에 주둔하고 있던 제334 전투요격 비행단의 도널드 맥린 대위의 기체이다. 탬프테이션이라는 특색있는 노즈아트를 장식하고 있다. 기수 끝단의 검게 칠해진 부분이 신형 레이더 주준기가 장비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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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한국전선의 제51 전투요격 비행단 25 전투요격 비행대 소속의 F-86E형이다. 동체와 주익의 노란색띠는 이 기체가 한국전선에서 활동중인 기체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공중전에서 앞서고 있다고해도 이런 비행성능의 열세는 미공군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이런 보고서를 접한 노스아메리칸사는 즉시 개량작업에 들어갔으며, 미그-15를 확실하게 압도하기위해서 엔진을 더욱 강력한 J47-GE-27로 장비하였도록 했다. 이에 더해서 기체의 운동성을 높이기 위해서 주익 앞전의 슬랫을 폐지하고 주익의 끝부분을 3인치 연장하고 앞부분을 6인치 길게 설계했는데, 이런 주익의 변화는 주익의 면적을 증대시켜 기동성을 현격하게 향상시켰으며 결국 중고도 이상의 고도에서도 미그-15에 비해서 전혀 뒤지지 않는 성능을 가지게 되었다. 이 주익은 조종사드로부터 '6-3 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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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86F형으로 MiG Mad Marine이라는 별명을 가진 기체로 제25 전투요격 비행단의 존 글랜 소령 탑승기이다. 그는 훗날 우주비행사를 거쳐 상원의원으로 선출되기까지 한다. ]
이 개량형은 F-86F형으로 명명되었으며 곧장 한국전선으로 배치되어 F-86A와 E를 대체하고 미그와의 대결을 위해서 미그통로로 출격했다. 이후의 전투는 거의 일방적으로 전개되었으며 미그-15에 대해서 거의 10:1의 격추교환비를 자랑하게 되었다. (물론 이 기록은 전적으로 미공군의 주장이며 최근에는 이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러시아측의 반론이 나오고 있지만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볼 때 전반적으로 F-86이 미그-15에 대해서 압도적인 전과를 올린 것은 분명하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F-86의 우수한 성능에 더해서 2차대전에서 풍부한 실전경험을 쌓은 우수한 조종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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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한국공군 곡예비행팀에서 활동중이었던 F-86F형이다. 현재의 한국공군 곡예비행팀인 블랙이글의 도색과 비교해보면 비슷한 전통이 이어져 오는 것이 느껴진다.]
North American F-86E Sab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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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류 | 1인승 전투기 |
동 력 | 제네럴 일레트릭 J47-GE-13 (추력 2359kg) |
최고속도 | 시속 1099km |
상승속도 | 분당 1580m |
항속거리 | 1498km |
무 장 | 기수 - 12.7mm 기관총 6정 |
실기체에 대해 좀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2. 내용 및 특징
제품구성은 2000년대 초반 출시된 72스케일 P-47D 형과 F-86F 세이버가 1+1 구성으로 들어있습니다.
1990년대중반부터 아카데미는 끝임없이 신제품을 출시하게 되는데 72 스케일 P-47D 썬더볼트 역시 그런 제품중 하나였습니다.
비록 동스케일의 제품중 결정판은 타미야 제품을 들어주고 있지만 아카데미의 P-47 제품 역시 저렴한 가격대비 뛰어난 품질로 명품으로 불리우는 제품중 하나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