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5일(월) 15시경 휴대폰으로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생전 처음보는 번호였습니다. 지역번호가 064로 시작하는 번호 였습니다. 전화를 받았더니 대뜸 그럽니다.
"변창기씨? 나는 제주 경찰서 보안계 김00 경사입니다"
제주? 그 먼 곳의 경찰님께서 울산에 사는 내게 무슨 볼일 때문에 전화를 다 했을까요? 그 경찰님이라 주장하는 분은 내게 이런 질문을 뜬금없이 퍼부어 댔습니다.
1)지난 2003년 12월 16일 카페 개설 이유가 뭐냐?
2)지난 2008년 9월 4일 북한 찬양 노래를 불특정 다수가 보는 카페에 올린 이유가 뭐냐?
그러면서 제주 경찰서까지 와서 진술서 쓰라더군요. 직장 다니는 사람이 어떻게 거기까지 가냐고 갈수 없노라 하니까 그럼 진술서를 써서 등기 우편물로 보내라 했습니다. 진술서엔 학력,직업,하는 일, 가족관계, 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적고 어느 사이트서 어떻게 알고 퍼 올렸는지 제 3자가 이해 할수 있게 상세히 설명하여 보내라 했습니다. 진술서 작성후 여기저기 손도장 찍고 주민증 사본과 등초본 각 1부씩 첨부해서 보내 달라 했습니다.
그날밤 나는 시간을 내서 그 문제의 카페를 바로 폐쇄 해버렸습니다. 골치 아파서요.
지난 2003년 말 다음에 카페를 하나 개설 한적이 있었습니다. 카페를 만든 이유는 제 관심사와 취미 등에 대해 여러 자료와 글을 올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이어 노무현 정부도 들어 섰으며 평화 기류를 타고 남북관계가 많이 호전 양상을 띄었습니다. 남한 가수가 북한 가서 노래도 하였고 대통령도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이어 북한 예술단도 남한에 와서 공연을 하였습니다. 반갑습니다란 노래가 유행을 탈 정도로 인기가 있었지요. 난 북한 노래가 참 참신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노동자 생활을 하고 국내서 가장 큰 노조가 있는 회사에 다니다 보니 자연히 노동가에 관심이 생겼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피엘송닷컴'과 '민중 가요'란 사이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민중 가요에 보니 북한 노래도 많이 있고 듣던 노래도 있길래 무심코 복사해서 내 카페에 퍼올렸습니다. 민중가요와 노동가도 함께 복사해서 올려 놓았지요. 그 중 경찰님은 북한 노래에 대해 트집잡고 늘어진 것입니다.
가정불화와 회사 일로 피곤해서 보내라는 진술서를 안보내고 있었습니다. 아니, 사실은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요즘 사기 전화가 많잖습니까? 그 분이 경찰 맞는지 어떻게 장담 할까요?
그러던 중 지난 10월 12일(월) 16시경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일주일 시간을 주었는데 진술서 왜 안보내냐고 하더군요. 여러가지 바빠 못보냈다고 하니까 그러면 자신이 가까운 경찰서로 갈테니 그리와서 진술서를 쓰라고 하더군요. 그게 다 나를 배려해서 그런다나요? 내 생각엔 배려가 아니라 반 협박 같던데 말입니다. 그렇게 통화한 시간을 보니 20분이나 되었습니다. 그날은 야간조라 잠들어 있던 중에 전화를 받아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빨리 전화를 끊고 싶어 알았다고 조만간 진술서 등기 우편물로 보내겠노라고 말하니 전화를 끊더군요. 뜬금없이 전화로 진술서 요구 받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 했습니다. 그래서 오기가 발동했고 '내용증명서'를 보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내용증명서 |
수신: 제주도 제주시 알아 1동 산 00번지. 지방경찰학교내 보안0계 김00 경사님
발신: 울산시 동구 동부동 쟁골길00 번지 변창기
<문서로 보내주세요>
1. 귀하께서 2009년 10월 5일(월) 오후 3시 42분경 느닷없이 휴대전화로 '진술서'를 요구해 왔습니다.
2. 요즘 보이스 피싱이니 뭐니해서 사기 전화가 기승을 부려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중인 바
3. 신빙성이 의심되어 귀하가 전화로 한 '진술서' 요구는 거절하는 바입니다.
4. 따라서 귀하께서 정히 발신자에게 진술서가 필요하면 요구서를 공식 문서로 보내 주세요.
5. 제 3자가 봐도 공감 할 만한 6하 원칙이 필요하며 반드시 헌법 몇조에 의거하여 왜 진술서가 필요한지
밝혀 주세요.
*추신 - 귀하는 담당 차원서 진술서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발신자는 자칫 이번 일로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가정파단까지 갈 우려가 있으므로 매우 신중을 기하지 않을수 없는 처지를 이해 바랍니다. |
위와 같이 내용증명서를 작성하여 봉투에 주소를 적고 넣은후 우체국에 가서 보내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긁어 부스럼 만드는게 아닌지 두려웁기도 했습니다. 힘있는 경찰과 힘없는 소시민이 싸워봐야 힘있는 경찰을 이길 소시민은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우체국 앞까지 갔다가 그만 돌아서고 말았지요. 대신 진술서를 그 경찰님이 작성하라는 대로 해서 등기 우편물로 보내 주었습니다. 지금, 나는 진술서에 대한 그경찰님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