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 부분
2018년 1월 10일(수) 맑음, 국립고궁박물관
아침 신문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창덕궁(昌德宮) 희정당(熙政堂) 벽화 특별전 중이라는
기사를 보고 곧바로 구경하러 박물관에 달려갔다. 특별전은 2017년 12월 13일부터 2018년
3월 4일까지다.
해강 김규진의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 1920년, 비단에 채색)과 총석정절
경도(叢石亭絶景圖, 1920년, 비단에 채색) 2점이다. 각각 195.5 × 882.9cm, 195.5 × 882.
5cm의 크기이다. 우선 첫 눈에 대작이어서 놀랐고, 다음에는 대작임에도 섬세함에 놀랐다.
이런 대작을 본 적이 없다. 이런 대작은 외국에서도 드물다.
1. 특별전 팸플릿 사진
맨 위는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이고, 중간은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
圖)이고, 그 아래는 해금강총석도(海金剛叢石圖, 김규진, 1920년, 종이에 채색, 37.0 × 335.
0cm, 개인소장)이다.
2.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 부분
만물초는 외금강을 대표하는 절경으로, 세상 만물의 모든 형상을 담았다는 데서 그 명칭이
유래할 만큼 각양의 화강암 봉우리가 모인 기암괴석군이다. 파노라마처럼 넓게 펼쳐진 화면
에는 만물초의 광활한 풍경이 부감하듯 웅장한 풍경을 연출한다. 공필과 화려한 채색을 사용
한 장식적 표현은 왕실 가족이 거하는 장소에 위엄을 부여하는 궁중 회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팸플릿에서)
3.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 부분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이 1920년에 재건된 창덕궁 회정당 접견실의 서쪽 벽화로 그린 것
이다.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만물초는 각양의 화강암 봉우리가 모인 기암괴석군으로 외금
강을 대표하는 절경이다. 세상 만물의 모양을 도두 담고 있는 것 같다는 뜻에서 그 명칭이 유
래하였다.
<금강산만물초승경도>는 7폭의 비단의 연결한 화면에 만물초의 경관을 그렸다. 첩첩이 포
개진 험준한 봉우리와 울창한 삼림이 부감하듯 펼쳐져 있고, 화면 하단에는 온정천(溫井川)
이 흐른다. 묵직하고 날카로운 바위 봉우리가 겹쳐진 골짜기 사이로 흰 안개구름이 부드럽게
감아 돌며 흐르고 있어 화면에 리드미컬한 공간감과 신비감을 주고 있다.
김규진은 어느 곳에서도 한 눈에 조망할 수 없는 만물초의 광활한 풍경을 한 화면에 조화롭
게 배치하기 위해, 전도(全圖) 형식을 취하였다. 이는 경물의 형태를 분석하여 화면을 구성
하는 조선시대 지도식 회화의 전통이다. 세밀한 필치와 화려한 채색이 주는 장식적 효과는
궁중의 회화의 특징이다.
그러나 바위와 산세를 묘사하는 특정한 서예적 필법인 준법(峻法)을 사용하지 않고, 사진과
같이 실제 바위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사생하여 그린 점에서 근대적 면모를 찾을 수 있다.
(전시회 설명문에서)
4.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 부분
5.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 부분
6.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 부분
7. 금강산만물초승경도(金剛山萬物肖勝景圖) 부분
8.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
해강 김규진은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 출생으로 7세경부터 외숙인 소남 이희수(少南 李喜
秀)에게서 서예와 한학을 배웠다. 1885년 18세 중국으로 건너가 8년 동안 중국의 승경(勝
景)과 서화진적(書畵眞蹟)을 접하며 서법과 화풍을 수련하였다. 또한 당시 상해와 북경 미
술계의 새로운 분위기를 접할 수 있었다.
1894년에 귀국하여 1896년부터 1907년까지 대한제국 궁내부에서 관직생활을 하였다. 그동
안 어린 영친왕에게 서법을 지도하였고,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워와 고종황제의 사진을 찍기
도 했다.
1907년 관직에서 물러난 후 천연당사진관을 열었다. 1923년에는 최초로 값을 정해 놓고 서
화를 판매하는 근대적 화랑인 고금서화관(古今書畵館)을 개설하였다. 그는 신문에 광고를
내어 고객 요구에 따른 휘호, 현판이나 비석 글씨 등을 주문받아 응하였다. 1915년에는 미술
교육기관인 서화연구회를 발족하였다.
김규진은 서화 전람회와 휘호회에서도 서화를 판매하였는데, 수묵으로 그린 난죽석 그림과
편액 글씨 등 대자(大字) 서예로 명성이 높았다. 김규진은 명성을 쌓아 자립하기 위해 다방
면으로 선구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았던 서화가였다.(전시회 설명문에서)
9.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 부분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이 1920년에 재건된 창덕궁 회정당 접견실의 동쪽 벽화로 그린 것
이다. 총석정은 강원도 통천군 해안가에 위치한 누정(樓亭)으로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하
나이다. 육각형 돌기둥이 해안을 따라 무리 지어 늘어선 이곳의 기이한 경치는 예로부터 여
러 사람들에게 찬미 받으며 문학과 회화의 주제로 다루어 졌다.
김규진은 희정당 벽화를 그리기 위해 이미 여러 번 방문했던 금강산을 다시 찾아 스케치하였
다. 특히 총석정 경치를 그리기 위해 배를 타고 나가 바다 쪽에서 바라본 장관을 사생하여 이
그림의 초본에 해당하는 <해금강총석도>를 제작하였다.
<총석정절경도>는 같은 시점에서 총석정 전경을 담은 <해금강총석도>나 총석정 사진과
비교하면, 우측 총석 일부를 생략하고 좌측에 여백을 두어 바다와 하늘을 넓게 그렸다. 또 총
석 사이의 간격은 좁히고 높이를 과장하였다. 비단 8폭을 이어 만든 큰 화면에 수평 구도로
경치를 펼쳐내어 장대함을 연출하고, 총석의 수직적 높이를 강조하여 바로 앞에서 총석을 올
려다보는 듯한 현장감을 자아낸다.
그물망처럼 그린 물결과 총석 표면에 찍은 녹색 점, 청록색 안료로 칠한 언덕의 표현에서는
전통적인 청록산수화풍이 엿보인다. 그러나 색조 대비를 통한 바위 질감의 사실적인 표현과
과감한 구도에서 김규진의 새로운 시도를 볼 수 있다.
(전시회 설명문에서)
10.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 부분
11.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 부분
12.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 부분
13. 총석정절경도(叢石亭絶景圖) 부분
14. 정선, <총석정>, ≪신묘년 풍악도첩≫
17~18세기, 비단에 채색, 37.8×37.3cm, 국립중앙박물관
금강산도(金剛山圖)의 전통
신비로운 절경으로 유명한 금강산은 보살이 거하는 불교의 성지이자 신비의 수양처로 오랜
세월 추앙받으며 다양한 문학과 미술의 주제가 되어왔다. 금강산도는 고려시대엔 예배도(禮
拜圖)로, 조선 중기 이후 기행사경도(紀行寫景圖)로 많이 그려졌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의 주요 소재로 다양한 형식과 화풍의 금강산도가 등장하는데, 정선(鄭
敾, 1676~1759)은 금강산 그림의 전형을 창출하였고 김홍도(金弘道, 1745~ ?)는 정조의
명으로 금강산에 가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근대의 금강산도는 서국적 사생 풍경화로 변모
하게 되는데 신․구화법이 혼합된 김규진의 <총석정절경도>와 <금강산만물초승경도>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전시회 설명문에서)
15. 김규진, <총석정도>
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개인 소장
총석정 일대에 높게 솟은 돌기둥을 클로즈업하여 그린 작품이다. 돌기둥과 물결, 돌기둥 사
이로 보이는 산의 윤곽선 등을 표현한 필치와 채색기법이 회정당 벽화 <총석정절경도>와
거의 유사하며, 벽화가 제작된 1920년 또는 조금 뒤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는 7언 시를 적고 “만이천봉주인(万二千峰主人)”이라고 자호하였다.
(전시회 설명문에서)
7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奇石怪岩千萬叢 기이한 돌과 바위 천만 겹이니
自然彫琢出天工 자연스러운 조탁은 하늘이 빚어낸 것이로다
應是龍宮建築後 응당 용궁을 지은 후에
更將餘者積波中 남은 것을 저 파도 속에 쌓은 것이리라
16. 김하종, <환선구지망총석도>, ≪해산도첩≫
19세기, 비단에 먹과 채색, 29.7×43.3cm, 국립중앙박물관
17. 김홍도, <총석정도>, ≪해산도병≫
18세기, 종이에 먹과 채색, 91.4×41.0cm, 간송미술관
화제(畵題)의 내용이다.
禹斧之鑿耶 우왕의 도끼의 깎았는가,
秦橋之駕耶 진나라 다리의 받침인가
非此非彼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라
但是化翁多事 다만 이는 조화옹이 하는 일이 많아
發其靈奇 그 신령스럽고 기이한 재주를 피워냈네
18. 김규진, <천하기절>
20세기 초, 종이에 먹과 담채, 개인 소장
만물상 입구에 위치한 삼선암(三仙巖)을 선면(扇面)에 그린 작품이다. 건조하고 가는 필치
로 기이하게 솟은 형태의 바위를 묘사하고 녹색이 살짝 도는 옅은 먹으로 선염하였다. ‘천하
기절(天下奇絶)’이라는 제목을 쓰고 좌측에 ‘금강산을 그려 구옥주인에게 준다(爲金剛飴龜
屋主人)’라고 썼다.(전시회 설명문에서)
첫댓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이네요^^
대단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