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를 묵상하면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영감이 바로 창세기에 등장하는 형제들의 관계이다. 첫번 형제인 가인과 아벨의 경우 장남인 가인은 동생을 질투해 살해하는 살인범이 되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이삭 형제를 낳았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약속의 자녀가 아니었기에 그의 운명은 부정적인 인생이 되고 만다.
이삭은 에서와 야곱 형제를 낳았다. 하지만 매사에 신중하지 못한 에서는 하나님의 은총과 거리가 먼 인생을 살게 된다. 영리한 야곱은 약속의 계보를 이어나가지만 원치않는 두여자와의 혼인을 통해 열두명의 아들을 얻었고 자신이 더 사랑하는 여인을 통해 얻은 요셉을 지나치게 편애하면서 자녀문제로 일생을 근심으로 보내야 했다.
예수님은 말세에 되어질 현상으로 형제와 형제가 불화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구약은 형제가 동거함을 하나님은 기뻐받을만한 모습이라고 칭찬하신다. 하지만 인간 세상사는 우애좋은 형제보다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형제들처럼 서로 경쟁하는 살벌함을 보여준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한자녀를 선호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형제간의 사이가 긍정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형님이 없는 내가 친형처럼 따랐던 큰댁 넷째 형님은 결혼후 나와 나눈 대화에서 오로지 아들은 하나만 낳겠노라고 하였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부모가 9남매를 낳아 제대로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얼마든지 수긍이 되고 타당하다고 공감되는 결심이었다.
나 역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지나칠만큼 동생들을 위해 희생의 삶을 살아야 했다. 다자녀를 선호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그렇게 부모의 결심속에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며 과분한 대우를 받고 자라난 자녀들은 어떤가?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는 편협된 인간으로 성장하고 말았다. 그래서 아예 자식을 낳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것을 나누기 싫어서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다자녀를 낳았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따라서일까? 심지어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아들이 없는 상태에서 아내가 죽었기 때문에 두 딸의 기상천외한 계략으로 모압과 암몬이라는 두명의 손자같은 형제를 얻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괴롭하는 것으로 일생을 보낸 자들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의 계보를 이어나가야 할 의무가 있고 사명이 있다. 그래서 더 많은 형제들을 낳아야 하고 그들중에서 야곱의 11번째 아들 요셉과 같은 믿음의 자녀를 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