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톱10에 대만 5개, 한국은 제로 패키지 혁명, 한국 반도체 위기[반도체 패키지 혁명](2) / 9/3(화) / 중앙일보 일본어판
패키징 업계에 20년간 종사하며 '반도체 산업의 숨은 거인들'을 쓴 최봉석 작가는 "대만은 세계 1위 패키징 기업 ASE뿐 아니라 작은 회사에서도 고객이 수십 개에 이르지만 한국 패키징 기업은 고객 한 곳에 매출의 70~90%까지 의존한다. 한국은 여러 기업이 해외 고객을 공동 유치하는 형태로 스케일 메리트를 내지 않고는 능동적 연구개발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메모리 중심, 수직계열화로 성장한 국내 반도체 업계가 수평협력에 취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소재기업 임원은 "애플용 칩 패키징 회의에는 대만의 패키징 기업인 ASE와 기판 기업인 유니마이크론, 소재 기업과 애플 본사 담당자까지 모이지만 한국에서는 하청에 지시할 뿐"이라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이 소통과 협력의 '초융합'에 실패하면서 기술의 '초격차'를 상실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 첨단은 미국, 저가는 동남아로… 빠진 한국 패키징
첨단 패키징의 핵심 고객은 엔비디아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다. 이 시장을 무기로 미국 정부는 첨단 패키징 기술을 자국에 빨아들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 주에 HBM용 첨단 패키징 생산기지를 건설하고 퍼듀대와 연구개발 협력에 38억7000만달러(약 5685억엔)를 투자한다고 4월 밝혔다. 삼성전자도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첨단 패키징 라인을 검토 중이다.
범용 반도체용 전통 패키징은 동남아시아가 강하다. 미중 갈등으로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등에 투자가 몰린다. 5월 안와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53억달러의 반도체 투자 계획을 밝히면서 설계, 패키징, 테스트 등 6만 명의 반도체 엔지니어를 양성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 반도체 패키징 시장의 13%를 차지하는 자국의 역할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미 인텔이 70억달러를 투자해 말레이시아 페낭에 패키징 시설을 운영 중이다.
첨단기술로 가는 길은 길고 전통적인 일자리는 빠져나가기 때문에 한국의 패키징 기업이 몰려드는 충청도는 지역경제와 일자리가 흔들릴 위기다. 한 패키징 기업 대표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과 정반대로 세계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병훈 포스텍 교수는 "인건비 등의 비용으로 한국의 전통 패키징 경쟁력이 사라지고 있어 첨단 패키징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패키징을 강화하려면 장소와 인력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지난달 대만 TSMC는 대만 타이난 공장을 인수해 첨단 패키징 기지로 만들겠다고 밝혔는데, 이곳은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남부과학단지와 인접해 있다. 그러나 한국은 경기 화성 용인 평택 등 기존 팹이 위치한 수도권에서는 각종 규제로 인해 클린룸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 지방에 가려면 인력 수급이 어렵다. 삼성전자가 첨단 패키징 연구진을 천안으로 보내자 상당수가 수도권 근무 경쟁업체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충남의 한 패키징 기업 관계자는 신입사원 교육에서 황야에 놓인 공장을 보고 실망해 퇴근하는 직원도 많다. 청년층이 지방에 거주하려면 개별 기업의 노력을 넘어 정부 차원의 인프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