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제 (坒悟齊) 의 식탁
오늘은 삼복더위 가운데 중복이다. 아침저녁은 견딜 만하지만 한낮의 열기는 숨이 턱 막힐 정도다. 모두 더위를 피해 집에 머무는지 바깥은 한산하다. 이곳 부산 기장은 바다가 가까워 바람이 불고, 사방을 산이 감싸고 있어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조금은 낮은 편이다.
우리 집에는 그동안 변변한 식탁이 없었다. 작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손님이 오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바닥에 오래 앉아 있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곳 라우어에서 지내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음식을 나누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는 식탁 하나쯤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친구 집을 아지트 삼아 모여 밥도 먹고 술도 한잔했다. 늘 신세를 지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미안했다. 마침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처럼 당근마켓을 둘러보니 마음에 드는 식탁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의 도움으로 용호동의 한 아파트를 찾아갔고, 상태가 좋은 4인용 원목 식탁을 만날 수 있었다.
구매를 결정하자 친구가 용달차를 불러 주었다. 원목이라 무게가 만만치 않았지만 무사히 집으로 옮겼다. 식탁을 주방에 놓는 순간, 익숙하던 공간이 낯설 만큼 달라 보였다. 주방은 한결 따뜻해졌고, 비어 있던 공간에도 온기가 스며드는 듯했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는 속담처럼 친구 덕분에 식탁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제는 우리 집에서도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밥을 먹고 술잔을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식탁 하나를 구하기 위해 광안대교를 오가며 더위도 잊은 채 하루가 어느새 저물어 간다.
기존에 사용하던 탁자를 치우니 공간은 훨씬 넓어졌고, 집 안도 한결 정돈되어 보였다. 이제는 늘 친구 집에서만 모이던 시간을 우리 집에서도 이어 가고 싶다. 함께 음식을 나누고, 웃음을 나누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이 공간의 이름을 '비오제(坒悟齊)'라 붙이려 한다. '비오'는 나의 세례명이자 필명이다. 섬돌을 한 계단씩 오르듯 깨달음을 얻고, 흐트러진 마음을 가지런히 다스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비오제는 단순한 주방이 아니라 마음을 닦고 사람을 맞이하는 작은 사랑방이 될 것이다.
아마 이 식탁은 나의 서재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동안 삐걱거리는 책상 앞에서 마음마저 흔들리며 글을 써 왔다. 그러나 이곳 비오제에서는 잡념을 내려놓고 글에만 몰두할 수 있을 것 같다. 가구 한 점을 바꾸었을 뿐인데 집 안의 분위기는 물론 내 마음까지 새로워졌다.
생각해 보면 식탁은 단순히 밥을 먹는 가구가 아니다. 가족과 친구가 마주 앉아 정을 나누는 자리이며, 혼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신을 돌아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앞으로 비오제의 식탁에서는 따뜻한 밥 한 끼와 좋은 이야기, 그리고 한 편 한 편의 글이 차곡차곡 쌓여 갈 것이다. 그 시간이 모여 나의 삶도 한 계단씩 깊어지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