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많이 부족한 제가 감히 글을 쓴다는 것이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앞선다.
하지만 저와 같은 소망을 가진 분들이 계신다면 부족하지만 작은 힘이라도 되고자 하는 생각에 이 글을 쓴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연금술사 중에서-
공부를 하면서 힘들 때 마다 제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 볼 수 있게 해 주었던, 지금은 제가 가장 좋아하게 된 글귀이다. 위의 말처럼 온 우주가 소망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힘든 과정을 훗날을 생각하면 그 만큼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전문대학 졸업 후 편입을 준비하다.
내 인생에 있어서의 가장 큰 전환점은 편입 학원을 다닌 것이었다. 전문대학 졸업반 시절에 뚜렷하게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선 편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편입 학원에 등록하였다. 그 후 그저 편입을 위한 공부만 하였다. 시간이 흘러 편입원서를 쓰게 되었을 때 원하는 전공이 없던터라 그냥 비슷한 계열로 원서를 썼다. 한 학교에 원서 접수를 하고난 후 문법을 가르치시던 송수찬 선생님께 학습질문을 하다 진로에 대한 상담을 받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내가 가려던 과를 졸업한 후에 무엇을 할지 생각해 봤는지를 물으셨다.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막연히 편입만을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졸업 후 까지 생각하기엔 편입이 일차적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그 때 선생님께서 의 약대 편입에 대해 언급하셨다. 의약대의 경우 학사편입인 경우가 많으므로 관련학과를 졸업 후 시험을 보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 이였다. 또한 이와 같은 예로 약대로 편입한 후 조교를 하고 계신 분을 불러 상세히 설명을 해주도록 하셨다. 그 자리에서 나온 후 한 동안은 정신이 얼얼하였다. 단순한 편입만을 생각했던 나에게는 또 하나의 길이 던져 지면서 혼란이 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의사 또는 약사가 된다는 것은 생각을 해 본 적도, 상상을 해 본 적도 없었으며 문과 공부를 해 온 나로서는 겁부터 날 일이였다.
또 다른 새로운 결정을 하려다 보니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의 의견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였고 대부분은 반대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였다. ‘이과계열?? 수학, 과학..?!’ 나와는 거리가 있는 얘기였다. 머릿속에서 계속 뱅뱅 돌았다. 하지만 약사? 의사? 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구미가 당기는 일 이였다. 우선은 겁부터 나기 시작했으며 그 길이 얼마나 힘들고 긴 시간 일지 알고도 남았지만 나에게 큰 결심, 또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는 것에 기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결정을 한 내 자신에게 놀라고 걱정이 앞섰다. 힘들 것 이란 걸 알지만 그 뒤에 달콤한 결실도 알기에 우선 화학과로 편입을 결정하게 되었다.
어려운 전공, 무작정 외우기만 하다.
편입 후 처음 학기는 정말 너무 힘들었다. 내가 지금껏 배우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공부였기에 더 힘들었고, 처음으로 실험을 하던 날은 실험도구를 보며 도대체 저건 어디다 쓰는 것일까 하며 감조차 잡기 힘들었다. 수업을 들을 때도 무엇이 중요한지 알기가 쉽지 않았고 교수님께서 하시는 말씀도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교수님이 하신 말씀을 모두 받아 적으며 수업을 들었다. 또 시험을 볼 때는 이해하기 어려우면 무작정 외웠다.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고 나니 아주 조금은 화학이란 공부가 이런 거구나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 학기가 더 지났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의대 편입 공부를 해야 되는 시간이 왔다. 처음에는 막연히 약대 편입을 생각했지만 사람 마음이 간사한 지라 더욱 더 큰 꿈을 갖게 되어 약대보다는 의대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커졌다. 하지만 부모님을 제외한 주위 사람들에게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기 보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춰질 지, 혹 내가 괜한 호기를 부리는 것으로 보이진 않을 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의대편입으로 출발
그래도 내 뜻대로 4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의대 편입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학교 공부를 하면서 편입 준비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공부를 한다는 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더 힘이 들었다. 가장 힘이 들었던 것은 공부 자체보다는 자신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또 남들에 비해 뒤처진다고 생각하는 학벌에 대한 내 자신이 가진 열등감을 이겨내는 것이었다. 학원을 다니면서 자꾸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감을 잃어갔다. 시험 기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했다. 시험 날짜들이 다가오고 하나씩 하나씩 시험을 보기 시작 했다.
초초한 합격자 발표
그리고 1차 발표. 정말 초조했다. 합격 이였다. 한 군데가 아닌 내가 시험을 봤던 여러 학교들의 1차 발표에 내 이름 세 글자가 합격자 명단에 있었다. 물론 이것이 최종 합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은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면접을 보고 최종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며 불안과 기대를 오가며 하루를 일 년처럼 보냈다. 결과는 모두 낙방이었다. 앞이 캄캄하였다. 태어나서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며 준비해본 일이 처음이었고 이렇게 절실했던 적도 없었다고 생각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먼저 부모님께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 지 눈물만 계속 흘렀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 지, 과연 이 길이 내 길인지 해도 해도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생각들로 합격자 발표가 나고 2월 한 달은 너무나 힘들게 지냈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으며, 그저 멍하니 하루하루를 보냈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지내다가는 정말 아무 것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처음에 다짐했던 대로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기로 결심했다. 이번에 합격하지 못한 것은 더 좋은 일이 있기 위해서 잠깐의 시련을 겪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 다지고 학원에 갔다. 이번에는 의대 편입이 아닌 의학전문대학원으로의 진학을 위해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의대 편입보다 과목도 많고 요구하는 조건도 까다로웠다. 또 다시 한번 겁을 먹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의대 편입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심하고 또 다시 결심했다.
다시 의학전문대학원에 도전하다.
3월이 되어 본격적으로 의학전문대학원에 가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공인영어성적을 요구한다. 때문에 두 달 동안은 8월에 있을 MEET 시험 준비와 토플 공부를 병행했다. 다행히 토플 점수는 입학하기에 무난한 점수를 받아서 5월부터는 본격적으로 MEET 시험만 준비할 수 있었다. 편입에 비해서는 과목도 많고 문제 유형도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나였다면 여기 까지 일을 크게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며 이제껏 힘들었던 생각을 되돌아보면 포기하는 말이 부끄러웠다. 이번 역시 가장 힘든 것은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고, 또한 떨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갖지 않는 것이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실패 후에는 또 다른 실패를 할 수 도 있다는 두려움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떨어지면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실현해 나가면 된다는 것을 이번 일들을 통해서 깨달았다. 따라서 두려움은 가질 필요가 없는 것 이였다. 이런 생각을 가지니 편입을 준비할 때와 비교해서는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공부하기도 수월했다. 시간이 흘러 MEET 시험을 보고 점수가 나왔다. 또 다시 원서 접수를 하고 면접을 봤다. 시험을 보고 떨어져서 울던 기억은 아직 생생한데 어느덧 시간은 쏜살 같이 흘러가 또 다시 시험을 준비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이번에는 지난 번 결과를 기다릴 때보다 더 떨렸다. 최종 합격을 기다리는 2주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머릿속에는 과연 합격 이라는 단어를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 나에게 합격이란 두 단어는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등 너무나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복잡했다.
드디어 최종 합격자 발표가 났다. “합격”이라는 두 글자가 눈에 들어 왔다. 정말 꿈만 같았다. 잠시 멍하니 컴퓨터를 보며 영화처럼 지금까지 준비하면 힘들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TV에서 기뻐서 우는 사람들을 보며 의아해 하던 내가 그 기뻐서 나온다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한동안 혼자서 합격의 기쁨을 충분히 맛본 후 부모님과 친구들 그리고 그 외에도 너무나 고마우신 분들에게 합격소식을 알렸다. 간절히 바라던 소원이 성취되었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제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한 동안은 합격의 기쁨만을 생각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