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떤 퀴즈프로그램에서 이런 문제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를 맞춘 젊은이는 1000만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문제인즉, "홍어가 발효될 때 요소가 화학변화를 일으켜 생성되는 물질로 독특한 냄새를 내기도 하며, 고대 이집트 태양신의 이름에서 유래된 이 물질의 이름은 무엇인가?"
몇 년전 아이들에게 똑같은 문제를 제시하며 고대 태양신의 이름에서 유래된 암모니아며 중생대 표준화석인 암모나이트에 대해서도 한참 이야기해 주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저는 본의아니게 어제의 마른하늘 날벼락을 핑게삼아 홍어자랑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절대 과장이 아니었답니다.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펼치니 임금님 수랏상이 되고도 남았으니 말입니다.
바다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제주도 어느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저는 8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육지라는 곳에 이르러 기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맛보았던 오묘한 맛의 홍어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입안 가득 퍼지는 불쾌한 향내음에 재빨리 입을 헹구었건만 잠시 시간이 지나자 나도 모르게 다시 젓가락이 옮겨가며 익숙해졌던 홍어입니다.
홍어는 뼈가 드러나도록 두텁게 썰어놓은 회도 별미지만, 미나리며 각종 야채를 넣고 새콤 달콤 무친 회무침 또한 별미중의 별미입니다. 전라도 사람들은 진짜 홍어의 참맛은 삼합에 있다고들 합니다. 삼합, 그러니까 세가지가 합해졌다는 의미인데 홍어와 돼지삼겹살 그리고 묵은 김치를 이르는 말이랍니다. 여기에 걸쭉한 막걸리 한사발을 더하면 그야말로 "홍탁삼합"이 되는 것입니다.
발효시킨 홍어찜은 날것보다는 덜해도 가스는 여전해서 코를 탁 쏘는 맛은 여전합니다. 삭힌 홍어를 갖은 양념하여 다른 물고기 찜을하듯이 뭉근하게 쪄서 내는데 살과 뼈를 모두 함께 먹을 수 있습니다. 잔뼈가 많이 들어있는 지느러미께는 마치 중국요리의 샥스핀처럼 부드럽고 아작거리는 맛이 그만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고춧가루와 마늘을 듬뿍 넣고 자박자박 끓인 홍어국은 코끝을 쏘는 매운맛과 시원한 국물 맛을 자랑합니다. 맵고 지린 홍어탕을 땀 뻘뻘 흘리며 먹으면 몽둥이 찜질을 당한듯 욱신거리는 감기 몸살이 흔적이 없이 사라지게 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홍어탕은 그 특유의 독성 때문에 보통의 야채는 모두 흐물흐물 녹아 버립니다. 이른 봄 파릇파릇 돋아난 보리순을 넣어 홍어탕을 끓이면 보리순은 보리순 대로 부드러워져서 입안에 씹히는 맛이 제대로 살아나고, 구수하면서도 톡 쏘는 홍어내장의 절묘한 참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언젠가 평촌 먹자골목의 어느 홍어집에 들어갔는데, 눈에 번쩍 띄는 메뉴판의 세글자, 홍어탕이 보이는 것입니다. 얼마나 반갑던지 같이 간 사람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홍어탕을 주문했더니 주인아줌마 묻는 말 "어느정도 삭힌걸로 해드릴까요?"라며 묻습니다. "입천장 델 정도로 탁 쏘는 최고로 삭힌 걸 주세요" 했더니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자리를 옮겨 앉으라고 합니다.
옮긴 자리는 환풍기 바로 밑, 그렇게 탁쏘는 홍어탕은 시키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다른 사람들 생각에 그나마 환기가 조금 나은 곳으로 옮겨주는 것이랍니다. 8명의 일행 중 그나마 홍어회정도는 다 먹을 수 있다고 하여 삼합도 시키고 무침도 시켜주며 홍어탕 먹을 생각에 가슴이 들떠 있었습니다.
마침내 보리순 쫙 깔린 홍어탕이 한냄비 가득 나오는데 그 향 또한 일품입니다. 모두들 그걸 어떻게 먹냐며 슬슬 피하는데 협박, 회유 온갖 방법을 다 써가며 결국 모두에게 한 숟가락씩 먹이고야 말았습니다. 얼굴을 찡그리며 뒤돌아서더니, 잠시 후 모두 홍어탕에만 달라 붙습니다. 그 후로 그 때 같이 간 우리 일행 모두는 홍어탕 매니아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까운 들에 나가 보리라도 뜯을 수 있다면 한토막 남은 홍어라도 넣고 얼큰하게 탕이라도 끓여보고 싶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다음 마른하늘 날벼락 치는 날에는 어제보다 더 기대할만한 뭔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같이 참석해주신 드라큘라백작님(적당히 익어 먹기가 딱 좋은 김치를 준비해주신), 처음으로 우리집을 찾아주신 안드레아 방장님, 아침부터 횟거리에 소라, 홍합, 개불까지 사고, 손질까지 모두 다 하신 법고형님, 그 법고형님을 도와 일찍 오셔셔 저보다 더 많은 일을 하신 왕남형님, 조금 늦게 오셨지만 언제나 우리의 날벼락에 사시미칼을 차고 나타나셔셔 깔끔한 사시미를 내어 주시는 세료자형님, 두근두근 떨리는 가슴으로 열무김치와 총각김치를 준비해준, 그래서 그걸로 모두 함께 비빔밥을 먹게 해준 푸우님, 로롱커와 맥주를 비롯한 모든 주류일체를 제공해 주신 플로라님, 엄청 바쁜 하루를 보내고 조금 늦었지만 미리 소고기를 보내준 jackie언니, 마무리 입가심을 위해 갸날픈 몸매에도 불구하고 레몬(맞나?) 1박스를 들고 찾아 온 유니야님(그러고 보니 유니아님은 개근상 받아도 되겠다요)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Special thanks to power queen!
어제의 자리가 있을 수 있도록 어마어마한 양념과 육류일체, 그리고 든든한 머슴(ㅎㅎㅎ 도망 가는 중 =3 =3 =3)까지도 보내주시고도 아이들때문에 참석하지 못하신 왕비님께는 개인적으로 감사의 표시를 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어쩔 수 없는 사정때문에 참석 못하신 분들의 부러움과 질시의 눈길을 피하고자 사진은 공개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정 궁금하시면 마른하늘 날벼락 맞아보면 그 맛을 아니까요. 여러분 모두 사랑합니다. 꾸벅
첫댓글 늘 오프까페에 아낌없이 내어주는 그 넉넉한 인심에 감사하네... 덕분에 조금은 늦었지만, 맛나게 잘 먹구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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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러님들..오랫만에 뵙는분들... 넘 반가웠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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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언니 덕분에 양념 맛나게 잘 먹었고.. 두루두루 준비하신 님들..제가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했습니다. 다음에 언제 다시 모임이 있다면 그때 많이 도와 드릴께요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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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남은 것은 김치밖에. 계속 모아두었다가 다음에 또 풀겠습니다.
워매 ....그날저녁 방구끼너라 정신없었구먼...완전 폭죽소리ㅘ 같아음다.....
그 방구냄새 끝내줬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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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방구는 대체 어떨까나
비야
고생 많았다 
다음엔 장소를 바꿔볼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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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날씨도 풀리고하니 슬슬 야외
를 준비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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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야, 어디든 괜찮은데....ㅎㅎㅎ 산이나 한번 가십시다.
계절도 계절 이니만큼 ~단체 나들이도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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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꼭 오세요. 아니다, 후이바오 단체 번개 한번 하면 5차까지는 거뜬한데. 후이바오팀들 뭉쳐보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