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 참 잘 쓴글입니다만 몇가지 기본전제를 깔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글은 박창화의 "화랑세기"의 기록을 이용하여 쓴글입니다...
당연히 화랑세기를 사료로 인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가지 함정이 있습니다...아시다시피 박창화가 남긴 유고는 화랑세기 뿐만이 아닙니다...
몇십권의 역사관련 유고를 남겼습니다...그것들이 다 소설이라고 학계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화랑세기를 읽을때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그런 부분은 소위 "상장돈장"이라는 신라 골족의 가계도를 보면 많은 부분이 이해 됩니다...이글은 화랑세기만 보고 상장돈장을 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볼때는 화랑세기를 볼때 최소한 상장돈장을 참고하지 않으면 엉뚱한 길로 새기 쉽다는 점이 문제입니다...물론 "화랑세기"만 믿을 수있고 다른 것들은 믿을 수없어 자료로 사용 할 수 없다는 태도도 가질 수 있는 문제입니다만 그렇게 되면 박창화의 스탠스도 아니고 완전히 사료로 인정 못하는 스탠스도 아닌 어쩡쩡한 입장에 서게 됩니다...
이글도 상장돈장을 참고 하지않아서 생긴 오류가 발견되는 군요...
김흠운의 처가 요석공주라? 어디 그런게 있습니까? 삼국사기에 나온거는 대왕의 반자(半子)란 구절 뿐입니다...이반자란 단어를 사위로 볼수도 있지만 가까운 손아래 친인척이란 뜻도 되는거 아닐까요? 그리고 요석공주가 부인이라는 구절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무열왕의 이름모를 공주가 요석공주 뿐이었겠습니까?
상장돈장을 보면 김흠운의 가계와 혼맥이 자세히 나옵니다...
김흠운의 정처는 선광(김유신의 딸입니다) 즉 김흠운은 무열왕의 사위가 아닌 김유신의 사위이죠...
그리고 신목태후는 선광이 낳은 딸이 아니라 김인문의 처인 배금과의 사통관계에서 낳은 딸입니다...
이쯤되면 이글의 기본전제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것이 되버렸다는거 아시겠죠? 화랑세기를 사료로 이용하더라도 좀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고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 생각해보아야 할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상장돈장이란 책은 없고 박창화가 사료의 내용을 보고 이해를 쉽게하기 위해 본인이 그린 것이란 추측입니다...당연히 오류가 있겠지요. 그런데 삼국사기는 오류가 없습니까? 내용상 합리적이지 않거나 말이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지요? 저는 아직까지 사소한 오자 탈자말고 심각한 오류는 상장돈장에서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거꾸로 아시면 알려주시지요?
아달라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사서는 일정한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죠. 누구 이벌찬, 누구 품주을 삼았다등등... main stream에 나오는 왕과 친족들의 계보는 사서를 보고 작성할 수는 있으나.. 상장돈장은 그 계보를 벗어나는 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사서에는 메인에 벗어난 인물들이 나오지가 않죠. 그러므로, 남겨진 계보도를 보고 그냥 배낀 것입니다. 사서는 그 나름대로의 한계성이 있어요.
화랑세기를 위서가 아니라고 단정할 때 기존의 역사인식 체계가 무너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존 역사학계가 식민사관의 잔재를 버리지 못한 상태에서 고답적인 연구자세에 머물러 있다면 결국 어떤 진서도 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닐지요. 다소 혼란이 오더라도 재인식의 기회로 삼고 겸허하게 수용하여 객관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상장돈장도 부분 오류가 있다는데..그런게 있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상장돈장이란 책은 없고 박창화가 사료의 내용을 보고 이해를 쉽게하기 위해 본인이 그린 것이란 추측입니다...당연히 오류가 있겠지요. 그런데 삼국사기는 오류가 없습니까? 내용상 합리적이지 않거나 말이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지요? 저는 아직까지 사소한 오자 탈자말고 심각한 오류는 상장돈장에서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거꾸로 아시면 알려주시지요?
글쎄요...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굳이 힘들게 노가다를 해가며 사료를 보고 작성할 가능성은 적다고 봐요. 계보를 만드는 일은 피곤한 일입니다. 남겨진 계보도를 보고 빼겼겠지요.
아달라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사서는 일정한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죠. 누구 이벌찬, 누구 품주을 삼았다등등... main stream에 나오는 왕과 친족들의 계보는 사서를 보고 작성할 수는 있으나.. 상장돈장은 그 계보를 벗어나는 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사서에는 메인에 벗어난 인물들이 나오지가 않죠. 그러므로, 남겨진 계보도를 보고 그냥 배낀 것입니다. 사서는 그 나름대로의 한계성이 있어요.
그리고 오해를 할지 몰라서 사족을 단다면 저는 아직 화랑세기에 대해 확고하게 김대문의 것이다 아니다 확신이 없습니다...뭐 절대 조작이 아니다란 감은 들지만 확실한 진본이란 증거는 없다는거 아직까지는 인정해야 할 듯 합니다.
화랑세기가 진본이라고 발힐려면 일본쪽에서 공개해야 하는데... 언제 그렇게 될지는 모릅니다.
화랑세기를 위서가 아니라고 단정할 때 기존의 역사인식 체계가 무너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존 역사학계가 식민사관의 잔재를 버리지 못한 상태에서 고답적인 연구자세에 머물러 있다면 결국 어떤 진서도 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닐지요. 다소 혼란이 오더라도 재인식의 기회로 삼고 겸허하게 수용하여 객관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