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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http://www.cgntv.net/cgn_player/player.htm?pid=1467&bit=high&vno=279
온누리 교회 서빙고 2월 20일 주일 1부 예배 41:23 ~ 01:17:22
소망을 가진 자 요한계시록 21:1~7
앤디 정 목사 (보스턴 온누리교회 담당)
지난 40일 새벽기도 때 보스턴에 눈이 많이 왔었습니다.
저희가 스노우 데이라고 해서 이틀 동안에 눈이 60, 70센티 쌓여 가지고 치울수 가 없어서
그런 가운데서도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하나님께서 2010년을 마감케 하시고
2011년을 열게 해 주셨습니다. 보스턴 교회를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족한 목회자 만나서 많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저희가 만나고 훈련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도 많이 해주셔서 계속적으로 영적으로 성숙해 질 수 있도록
여러분께서 중보해 주시고 특별히 보스턴 교회가 기도와 말씀으로 잘 세워질 수 있도록
거기에는 대한민국의 많은 대표 농구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얼마나 귀한 분이 많으신지
그분들이 정말 하나님 안에서 완전히 세워지면 보스턴하고 뉴잉글랜드하고 미국이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많이 기도해주셔서 하나님의 복음으로 지성으로 높아진 그땅이 하나님 앞에 예배의 제단으로 변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지금 이시간 통성으로보스턴 온누리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온교우가 보스턴 온누리 비젼교회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 교회를 기억하여 주옵소서 그땅 가운데 지성으로 높아진 그 모든 인간들의 욕구와 인간의 자랑들이 복음 앞에 아무
쓸 것 없는 것을 선포하면서 하나님 앞에 돌아 올 수 있는 땅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 일을 위하여
보스턴 온누리 비젼교회를 \사용하여 주시고 많은 주의 일꾼들을 훈련시켜 주셔서 그 땅이 복음화가 되고
뉴잉글랜드 지방이 복음화가 되고 전 미국이 하나님 앞에 다시 한번 무릎 끓고 엎드릴 수 있는 은혜를
저희들에게 부어 주시옵소서 오늘 거룩하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저희가 나옵니다.
하나님 듣는 귀가 있게 하여 주시고 말씀을 들을때에 주여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은혜가 저희 가운데에
부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수 년전에 아주 유명한 흑인 영화배우가 아주 센세이션한 영화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데자뷰라는 그런영화였습니다.
조지 와싱턴이라는 아주 잘 생긴 영화배우인데 그 영화를 보면 백설공주 아주 잘생긴 영화배우
스노우 컴퓨터 프로그래머 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 프로그램이 어떤 프로그램이냐 하면 자기가 서있는 시점에서
과거로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희한한 그런 컴퓨터 프로그램입니다.
그 영화의 예고편을 보게 되면 아주 굉장히 낮은 굵은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워나 아 고오? 왓츠 아 투 플리스 투 아우어즈 고우 저는 더 이상 안내려 갑니다.
드리 데이즈 어고우 하여튼 이렇게 이야기 하면서 한시간 전에 사건이 벌어지고 이틀 전에 사흘 전에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로 관심을 끄는 예고편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어딘지 모르게 지금 이시간 현 상황에서 볼 때에 정말 옛날이 좋았어! 그때가 좋았어 !
그런 표현들을 우리가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돌아갈려고 하는 그러한 회귀성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택시를 타고 서빙고로 오면서 기사분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복음을 전하면서 그분께도 동일한 질문을 던져 봤습니다.
혹 백설공주와 같은 이상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디로 돌아가고 싶으습니까? 했더니 그분은 예상 밖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자기는 동국대 근처에서 자랐고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그 근처에 있는 교회벾에 이런 문구가 있는 것을 지금 40년이 지나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교회다니시는 분이신데 그것에 보면 과거로 돌아가기 원하는 자는 소망이 없는 자다.
그런 문구가 그 교회벽에 있는 것을 예전에 본 것을 자기는 잊지를 못한데요.
그러면서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과거로 돌아 가기를 바라시는 분이 두종류가 있을 것입니다. 그분을 모시고
설교를 시켜 드려야 되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하니 과거로 돌아가고자 원하는 사람은 그 과거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현재는 너무 소망이 보이지 않아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또하나는 과거의 어떤 일어난 사건이나 어떤 결정으로 인하여서
지금 상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만약에 내가 돌아 갈 수만 있다면 그곳으로 돌아가서 그것을 좀 바꾸어서 현재 상황을
변하게 했으면 하는 그러한 간절한 마음이 있지 않을까? 라고 이야기를 하십디다.
그 두가지 표현을 다 들여다 보면 현재에 충분한 만족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뜻이지요.
어쨌든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현재 보다 과거가 좋았기 때문에 아니면 현재를 좀 바꾸기 위하여서 안좋았던 그 과거로
다시 돌아가는 그 두가지 양상이 나타나겠지요.
그런데 사실 우리가 과거에 그 멋있었던 곳 또 기사 분이 이야기 했던 아버지가 계셨던 그 푸근한 마음 아주 넓었던 그집을
나중에 성장을 해서 가보니 저희가 살았던 집이 그대로 있는데 그집이 그렇게 작은 줄 몰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면 우리 기억 속엔 그것이 아주 멋있지만 사실 돌아가서 보면은 굉장한 실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거 밖에 안되었어 !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계십니다.
천국에 계십니다.
우리 삶 가운데 계십니다. 우리를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권면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성도들은 소망을 가진 자들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서
소망을 가진 자들에게 나타난 특징은 과연 어떠한 것이 있을까? 그것을 한번 하나 하나 살펴보고자 합니다.
20세기 전유럽에 가장 최고의 지성이라고 이야기 했던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이셨죠..
씨 에스 루이스 그 교수님이 쓴 책중에 크리스천 게일이라는 책에 이러한 유명한 문구가 있습니다.
엠 헤븐 유 어어드 드루유 인 엠엔 어드 앤 갯 유 니더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천국을 소망하십시오. 그러면 이땅 살아가는 동안에 지구가 살아질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아주 힘든 모든 땅이
사라지게 될것입니다. 이 땅에다가 초점을 맞추싶시요 이것도 저것도 안됩니다. 그 지성이 저희들에게 전해주신 말씀이
동일하게 우리가 신앙을 가진 소망을가진 세상사람들과 다른 그러한 모습을 해야 된다라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천국을 표현하는 구절들이 이곳 저곳 있습니다.
에스겔서 1장에도 보면 하나님의 그보좌 천국에 대한 그러한 묘사가 있는데 읽어보면 참 어렵습니다.
저도 읽어보면 잘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바뀌는게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읽다보면 놀이동산 가는 듯한 그러한 느낌이 듭니다.
박사과정에 들어가게면 에스겔서 1장 공부를 거의 한 학기정도 하지요. 구약전공하는 사람들로 굉장히 어려운 본문입니다.
그런데 또다른 본문은 고린도 후서 12장에 바울이 천국으로 끌려 올라가서 하나님의 보좌를 보고하는 그러한 장이 있지만
그렇게 많이 속시원히 설명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 전체에서 우리가 오늘 볼 수 있는 요한계시록 21장하고 22장은
아주 자세하게 우리가 소망하고 있는 우리가 영원토록 하나님의 전에 거할 그곳에 대한 설명이 조목 조목 나와 있습니다
.
특별히 1절에서부터 7절까지의 말씀을 한번 보면서 소망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이렇구나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다시 한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그러한 은혜가 우리에게 부어지기를 원합니다.
1절과 2절을 여러분과 함께 한절씩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요한계시록 21:1~7
1.그리고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2. 또 나는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자기 남편을 위해 화장한 신부처럼 준비돼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1절과 2절을 볼 때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으로 인하여 그것에 이끌림을 당하며 사는 사람의 모습은
1절과 2절에 분명히 나타납니다. 어떠한 사람이 있는가 물론 요한 계시록을 기록하게 된 사도 요한이지요.
또한 사도 요한이 환상 가운데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천국 환상 가운데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한 하나님의 전에
하나님임재 가운데에 예배하면서 사는 그러한 모습들이 본문 나타나 있죠 첫 번째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그사람은 보는
사람입니다.
1절에 보게 되면은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2절에 보게 되면은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마치 예비된 신부가 내려오는 것처럼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늘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가지 않고 믿음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을 보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소망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결혼 날짜를 정해놓고 신랑 신부가 그날을 기다립니다.
아직 결혼식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을 아주 고대하면서 예배하는 듯이
우리가 늘 보는 신랑과 신부들의 모습입니다.
천국을 소망하면서 천국을 바라면서 천국을 소망하는 그 이끌림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여기 나타나는 말씀중에서 1절과 2절에 나타나는 “새” 라는 단어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21장과 22장을 묵상하면서 참 감사 한 것은 바로 이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
새롭게 하노라 그 새롭다라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보통 영어로 새롭다 하면 뉴라는 단어를 씁니다.
뉴, 새롭다 네오스 여기 나타나는 단어는 그 단어가 아니예요.
뉴라는 단어는 옛날것에서 부터 시간이 흘러서 그것이 변해서 새롭게되는 것을 뉴 라고 합니다. 시간이 연결이 되는 것을 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하니님께서 모든 천국을 소망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그 하늘과 땅은 다른 종류의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이 단어는 전혀 지난 것과 상관이 없는 시간과도 전혀 상관이 없는 카이로스라는 전혀 새로운 단어를 사용을 하면서
우리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신 것은 이 땅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비상조차도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하늘입니다, 새로운 땅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보게되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이 지나 같으니 보라 뭐가
되었다 새 것이 되었다 바로 동일한 단어입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우리에게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이 있고
우리가 새롭게 변화하고 새로운 거처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영원토록 거하는 그러한 소망을 가지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죠.
마태복음 5장 8절에 보면 마음이 청결한 자, 마음이 깨끗한 자 하나님을 본다고 이야기 합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은
이땅 가운데서 지저분한 이세상에 연연하지 않고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소망하는 그 소망 하나 때문에 하늘로부터 날아오르는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그곳에 내가 신부로 들어가는 것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그 새 하늘과 새 땅을 얼마만큼 갈망하고 열망하면서 오늘 하루를 살아 가십니까?
3절에 보겠습니다. 3절 여러분과 같이 읽습니다. 시작
3. 그리고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실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
두 번째는 듣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많은 소리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을 끌고 우리의 이상과 우리의 모든 이념을 세우려고 하는
많은 우리들을 깨려고 하는 소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귀가 열려있지만 들리는 모든 소리를 우리는 받으면서 세상을 살아 갈수가 없습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새 하늘과 새 땅을 소유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들의 두 번째 특징은 듣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으로 시작해서 말씀으로 마치는 사람입니다.
혹 이 가운데에 생명의 삶으로 묵상하는 것으로 하루를 사시는 분 계십니까?
새우깡 가지고 매일 같이 사는 아이를 본 적 있으십니까?
한 10절 되는 그 말씀을 가지고 더 말씀을 사모하고 더 말씀을 사모하고 여러분 삶 가운데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장을 열어주시는
새소망이 어디있는지 말씀을 더 여러분들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2월 중순 쪼금 지났습니다 혹 여러분 올해 시작할 때에 성경을 몇독 하리라 포기하신분 빨리 성경을 집어 들고
다시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 오십시오. 말씀을 들을때에 보좌에서 나오시는 하나님의 생기있는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의 영혼은 채워집니다. 우리의 부족함은 채워집니다. 우리의 좌절은 살아질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지금 오늘 주신 본문말씀은 그 당시에 굉장한 핍박 가운데 있었던 교회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21세기에 살지만 우리의 관심을 끌고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 앞에 향해 나아갈려고 하지만
우리의 시선을 끌려고 하는 많은 소리들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성경이 우리를 양으로 표현했겠습니까 양은 어떤 동물입니까?
양은 방향 감각이 전혀 없지요 자기 음식 못 찾아 먹지요. 들에 소를 풀어 놓으면 먹을 풀, 못 먹을 풀 구별하지만 양은
그거를 구별하는 능력이 선천적으로 없습니다.
대장 양이 가면 그 뒤를 따라가서 대장 양이 떨어지면 떨어지나보다 하고 다 따라가는 양이 아주 희한한 동물이죠
양들이 그런 동물이지요 양이 살아 남는 것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소원하며 소망하며 살아갈때에 우리가 바른 길로 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이었습니다. 동일하게 3절 하반절에 보게 되면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실 것이요 3절 하반절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 함께 함께 함께 3번 나옵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장막을 너무너무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마치 그들 가운데 거했던 것처럼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교회 중심의 사람입니다. 교회가 내 삶 가운데 중심입니다. 왜 ? 하나님의 예배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혹 예배를 오늘 아침에 드리러 오신 분이 있다면 여러분 지난 일주일 동안 여러분이 행한 그 행위가 예배입니다.
여러분 삶 가운데 거룩한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여러분들이 다 이끌고 오늘 이 자리에
코푸워 워십 공동예배로 오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예배이지요. 예배 중심의 삶 바로 그것이 소망하는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예배가 얼마나 뜨겁습니까? 6시 50분에 우리가 찬양하며 일어날 때 여러분의 마음이
어느 정도까지 심장이 뛰셨습니까? 조금 더 일찍 와서 이 자리에서 내가 더 은혜받고 하나님의 모든 은총을 담아서
내가 사망가운데 승리하리라는 열망이 어느 정도 여러분 가운데 계셨습니까?
소망을 가진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보는 사람이요 듣는 사람이요 예배가 그 인생가운데에 하나님의 성소가
마치 구약에서 하나님의 성막이 진중에 있슴으로 인하여서 모든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텐트를 치면 텐트 밖에 나와서
눈 앞에 제일 먼저보이는 것이 하나님의 성막이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에 그 주변에 이상한 몰골을 하고 여러분 보셨죠...
태어나면서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고 이상한 옷을 입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아갔던 나실인이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인생 가운데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며 나실인으로 세워주셔서
주변에 계시는 분들에게 아직 신앙이 약한 분들에게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사는 하나님을 소망하며 사는 사람이
바로 여러분이다 라는 것을 보여 주셔야 합니다.
텍사스에 살때에 군용개를 훈련시키는 것을 한번 본적이 있습니다.
케이 나인이라고 경찰견 훈련 시키기도 하고 군대에서 사용하기도 하는 개 훈련소였는데 거기서 개가 몇 주동안 훈련을 한 다음에
졸업식하는 그러한 시간이 되어서 이 개들을 마지막 테스트를 합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시험을 그동안 수주동안 훈련을 받았던
개들이 통과를 잘했느냐 잘 습득을 했느냐가 제일 마지막 이 시험에 달려 있었습니다. 조련사들이 수주동안 훈련했던 그 개를
고삐를 잡고 있습니다.
일렬로 10마리의 개들이 서 있습니다. 반대편에 문이 열립니다. 문에서 다른 조련사가 바케스같은데 뭘 들고 오는데 개들은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압니다. 뭐겠습니까 아주 국물이 줄줄 흐르는 굉장히 맛있는 고기가 그곳에 들어있습니다.
개들이 난리입니다. 혼도 뺍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이 고개를 어떻게 돌려야 할지 정신이 없습니다. 10마리 정도의 개들이 서있는
가운데서 조련사가 이쪽에 서서 시험을 시작하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이 그 바게스에서 고기를 꺼내서 개들이 서있는
그 앞쪽으로 한20미터 앞으로 고기를 던집니다.
그 고기가 날라가는 동안에 이 개의 몸에 있는 아드레날린이 난리를 하겠죠. 정신이 없어서 개들이 정신이 혼미해 지는
그러한 상황인데 그 고기가 공중을 날라서 땅을 딱 칩니다.
바로 그 순간에 졸업하는 개는 나머지 졸업하지 못하는 개는 한번 꿀어야 되는 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제가 놀랐습니다.
제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개를 보고 은혜를 받은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훈련 받은 개가 고기가 땅바닥을 치는 그순간에
무엇을 보는가?
주인을 봐요
고기를 보는게 아니라 주인을 봐요 주인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달려나가서 먹을까요 말까요 주인만 보고 있는 것이죠
그날 졸업하지 못한 개들은 이렇게 고개를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뭐 몇몇 개들은 난리가 났고 하나님을 소망하면서 사는 소망이 이끌어주는 그러한 삶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보는 사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 봅니까? 노우
믿음으로 봅니다. 말씀을 듣습니다. 예배 가운데 그가 서 있음을 알아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에 항상 거하기를
소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4절 말씀 저와 함께 다시 한번 읽습니다. 시작
4절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며 더 이상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이나 우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을 것이다.
이는 처음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4번째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천국을 소망하기 때문에 애통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의로 인하여서 영혼을
애통하게 생각하면서 복음을 증거해야지 믿음으로 살아야지 슬퍼하는 그러한 거룩함이 삶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전도를 해야지 하는 그런 열정 가운데서 나를 보내주십시오 하나님 소망하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 무릎 끓는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4절에 보면 애통해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다 위로해 주시는 말씀 가운데에 눈물을 닦아 주신다는
말씀이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는 때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 제가 흘린 눈물 아세요. 제가 당한 상처를 아십니까 하나님
제가 얼마나 속이 문들어 졌는지 아십니까?
.
본문에 보면 원문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눈물방울 하나 하나 닦아주신다. 에브리 싱글 드럽 티어스
눈물 방울 하나 하나 하나님께서 닦아 주신다 하나님의 위로가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위로가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없습니다. 종교나 문화나 인종이나 그 어떤 것도 그 모든 인간사를 들여다 보면 그곳에는 눈물이 있고
애통과 슬픔과 병과 죽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소망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내가 하나님을 너무나 사모하기 때문에
애통해 하는 모든 눈물들을 닦아 주시는 분명함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게되면 천국을 그렇게 소망하며 살았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 믿음의 선조들의 기록들이 나와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한 사람은 천국 때문에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애통하는 것도 기쁨으로 비록 그들이 삶의 끝부분에 가서
자기가 기도하고 받았던 것을 믿지 받지 못하였지만 그러나 그것을 받은줄로 살았던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혹 삶 가운데 기도 응답이 더디 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애통해 하는 가운데에 하나님이 여러분
인생가운데에 만족과 위로와 눈물을 닦아 주실 그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붙들고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신부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와서 이렇게 이야기 할 것입니다.
신랑 안 와! 신랑 죽었데 ! 변심했데 ! 널 버렸어 ! 거짓말이야 ! 나랑 같이 이세상으로 가자 !
예날부터 뭐 세상이 달라 지는게 뭐가 있냐? 세상이 당신 위로해 줄게 ! 믿는 거 다 헛거야 !
우리를 얼마나 많이 꾀는 그런 소리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애통을 혹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분들의 영혼을 안타까워 하면서 애통해 하는 그러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6절,7절 저와 여러분이 함께 읽습니다. 시작
6절 그는 또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며 시작과 끝이다.
내가 목마른 사람에게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줄 것이다.
7절 이기는 사람은 이것들을 상속할 것이며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
5절 말씀을 보게되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보좌에 앉으셔서 보아라 내가 만물을
예전에 본 것 전혀 상관없이 새롭게 해 아래 새것이 없죠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해도 없기 때문에 새것이 있습니다.
진짜 새것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만드시면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기록하여라!
이 모든 것을 기록하여라 성경에 이와 같이 이렇게 누구에게 기록하여라 라고 하신 것이 18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중 12번이 요한 계시록에 나타납니다. 바로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에 마지막 나오는 이것을 기록하라 라는 말씀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지금 환상을 통하여서 보여주고 계시면서 지금 그것을 열심히 받아 적고 있는 사도 요한에게 이거 분명히 기록하여라
라고 하신 것은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뭐가 중요합니까? 5절에 이 말들은 신실하고 참되다
예언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우리에게 주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얼마든지 예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합니다.
그러면서 6절 말씀에 5번째 등장하는 특징이 있는데 목마른 사람입니다.
천국에 있는 사람,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아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온 사람의 특징은
목마른 사람입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생명수 샘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주시겠다
목마르겠다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 갈증이 있다는 뜻이지요.
세상은 자기 자신의 갈증을 다른 세상의 모든 방법으로 그것을 해결을 하려고 시도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목마른 자에게 주시는 생명수로 우리는 갈증을 해결해야 하는 천국사람인 것을
계시록 21장 6절 말씀에서 저희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이땅 가운데 공생애 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마태복음 5장에 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소금의 특징이 많이 있지요. 그러나 소금의 가장 주된 역할은 사람을 갈증나게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지금도 근동 지방에 가게 되면
목자나 양치는 사람이 소금 주머니를 가지고 다니죠 자기도 먹고 양도 일부러 먹입니다. 몸은 물이 필요한데 머리가 물이 필요한 걸
모릅니다. 그래서 자동으로 몸이 갈증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소금의 역할입니다.
그당시 방부제, 방부제 있었죠! 그렇지만 요즘처럼 소금을 흔하게 쓸 수 없었습니다.
로마 군병들이 월급을 제때 못받았는데 월급을 소금으로 받았습니다.
소금이 얼마나 귀한 엘라먼트인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나아가서 생명수되신 예수그리스도를 갈망하고
목말라하는 사람들로 만들라 하는 뜻입니다.
하늘을 소망하는 사람은 그냥 그저 크리스챤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이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만나는 사람들 마다
복음을 증거함으로 여러분이 어깨를 부딪힘으로 그사람으로 예수님을 갈망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시는 이유입니다.
마지막 7절에 보게 되면은 이기는 사람이 하늘의 소망을 가지게 되는 천국소망의 사람들입니다.
이기는 사람들 요한일서 5장 5절에 보면은 요한일서도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요한이 쓴 서신서입니다. 그것에 보면은
이기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정의를 내려 놓았습니다. 요한일서 5장 5절을 보면 세상을 이긴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라고 사도요한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사람 특별히 요한계시록에 와서
2장과 3장까지 연결이 될 때에 이기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이러한 축복을 주신다고 예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생명나무를 주신다 두번째 사망을 고통받지 않게 지나가도록 하신다 숨겨진 만나를 주신다.
새로운 이름이 적힌 흰돌을 주신다. 나라를 다스릴 권세를 주신다.
새벽별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주신다.
흰옷을 입고 생명책에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내가 그의 이름이 거론될때에 “으흠” 내가 동의를 한다.
하나님의 이름과 새이름을 새겨서 바로 당신을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으로 삼아주겠다.
누구에게.... 이기는 자에게
우리에게 여러분들에게 이기는 자에게 여러분 3장 21절에 그것이 완성이 됩니다.
이기는 자에게 마지막 클라이막스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요한계시록 3장 21절에 이리 오너라 내가 앉아있는 이 보좌에 같이 앉자!
누구에게... 이기는 자에게 소망을 가지는 자에게 예수님께서는 함게 나라를 다스리자고
우리로 하여금 보좌에 앉도록 앉혀주는 명예가 소망을 가진 사람에게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소망은 어떤 소망입니까 ?
예수님을 믿는 천국을 가는 것은 어떤 가정에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일대일로 예수님을 만나서 은혜가운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 죽으신 것을 붙드는 것이
바로 그 믿음이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보혈로 계속하여서 자기 옷을 경건하게 빨아 입는 사람이
바로 그 도성으로 들어가는 이기는 사람입니다.
사탄이 전략회의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넘어뜨릴까?
속여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지 못하도록
이 세상에 연연하며 살다 천국가지 못하도록 어떻게 할까 저희들이 작전회의를 합니다.
앞에 앉았던 사탄졸개가 손을 들면서 서로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나가서 할께요..무슨 방법이 있느냐?
네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그것이 무엇이냐?
제가 나가서 세상에 이렇게 전하겠습니다.
뭐라고
데어 이즈 노 헬라 지옥이 없다라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나가서 사람들에게 지옥이 없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은
세상 사람들이 보고 지옥이 없어 그럼 나 아무렇게 살다가 지옥을 안갈 수 있네
음 그래 아무렇게 살지 뭐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사탄이 생각을 해보니 괜찮은 아이디어 같기는 한데
그래도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보담은 지옥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그거는 안좋다.
두 번째 사탄 졸개가 손을 들면서 두목 저한테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무슨 아이디어냐? 제가 나가서 이렇게 이야기 하겠습니다.
데어 이즈 노 헤븐...천국이 없다. 라고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사람이 천국이 없으면 아무렇게나 뭐 사는 거지 열심히 사는 것이나
천국이 없으면 큰 손해 보는 것도 없네 라고 생각을 하면서 아무렇게나 살지 않겠습니까?
사탄이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도 별로 좋은 아이디어 같지는 않다.
다른 뭐 획기적인 거 없냐?
아주 조그마한 사탄의 졸개가 손을 들면서 제안을 합니다.
저한테 기가막힌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제가 세상에 나가서 이렇게 외치겠습니다.
네.천국있습니다. 데어 이즈 헤븐 지옥도 있습니다. 데어 이즈 헬
근데 데어 이즈 노 허리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그때 이후로 사탄이 지금도 그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급할 거 뭐있느냐?
아주 건강한데 뭐 주님께서 나중에 보내주시면 되지
노
하나님이 저희에게 허락해주신 일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들은 데어 이즈 노 허리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가 서있는 자리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의 눈으로 보고 주와 함께 동행하고
믿음으로 애통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목말라 하고
환란 가운데서 소망가운데 이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천국을 소망하는, 이기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 가운데
주님 뵙는 그날까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이 아침에 주신 말씀으로 저희가 다시 한번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소원하오니
저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넉넉한 이김을 허락하셔서
저희로 하여금 세상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정복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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