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
- 故 황호열 선생의 구술을 바탕으로
이미숙
아주 오래 전 해남 땅 끝은 바람소리도 갈매기 노래 소리도 파도가 다 먹어치워 자주 적막했더래
봄여름가을겨울봄여름가을겨울
어느 해던가 바다만 바라보고 있기 지루하여 암수 산봉우리 한 쌍이 몰래 유랑을 떠나보자 했다는 거지 한량처럼 반대의 반대의 반대쪽으로 아무 간섭 없이 가령, 필연이라거나 우연이라거나
화순 곡성 장수 들러 이슬이며 별빛마저 밀어내는 토란잎들 휙휙 지나 진안, 새벽녘 물 길러 나온 여인이 마침 그걸 본 거야
어, 저기 산이 걸어가네.
말을 한 사람도 말을 들은 산도 서로 놀라 여인은 이고 온 물동이를 놓쳐 떨어트리고 산도 그만 거기,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는 거지 그 때 데리고 나온 능소화도 심장에 콱 박혀 화들짝 피어난 거고
해남 땅에 구르는 돌이랑 마이산에 박힌 돌이랑 같은 이유를 알겠지 말馬처럼 귀를 바짝 세우고 소문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지만 아마 되돌아갈 수는 없을 거래 산이 또 어디로 가려나 눈여겨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아졌거든
내 몸에 물고기가 산다
이사할 때 키우던 물고기를 버려두고 왔다 그러니까, 통째로 옮기기에 집이 너무 크고 무거웠다 넙다리네모근 안쪽에 새로운 물고기 키운다 붉은색이었다가 며칠 지나 파래졌다 온몸을 헤엄쳐 다녔다
더블 사이즈 침대 끝에 아찔하게 걸터앉아 잘 익은 바나나를 먹다 까매진 손톱으로는 치어를 낳았다 물고기 위로 흰 눈이 내리고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었다 네 계절이 다 있었다
살갗의 첫 물고기를 본 후부터 모든 사물이 감각으로 느껴졌다 뾰족 지붕 위에서 나뭇잎들 사이에서 바람 지나는 골목마다 유영하듯 흐르는 물고기 떼
종일 뒤척이다 저물녘 냇가 물 밖으로 힘껏 날아오르던 물고기들은 모두 은빛으로 반짝였다 물고기들은 다 은빛인 줄로만 알았다 햇비에 속았다
내 맘 알겠어? 몇 번이고 기꺼이 헛말에 베인 적 있다 나를 보호해주던 세계의 옷을 벗어던지고 맞는 최초 그리고 최후의, 버려두고 온 색색의 물고기로 맞는 통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