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말씀 묵상 / 고린도전서 12:18~25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18절의 말씀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적용해야 할 믿음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서 우리를 지금의 모습과 가능성을 가진 사람으로 만드셨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잘하는 일은 바로 그 일을 나에게 맡기셨다는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 내가 잘 하고 싶어 하는 영역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가능성이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관심갖고 있는 영역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고 싶어하는 영역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을 행하는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단순히 호기심이나, 나의 즐거움이나, 아니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통해서 사랑을 베풀어 주어 서로 도움이 되도록 하는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을 잘 분별하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분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세상을 이해하면서도 너무 단편적으로 이해하여 편견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런 편견은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비난하거나 혐오하는 태도로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하셨을까요?
그 해답은 24,25절을 보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을 고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점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세우시는 목적입니다.
이것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가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여셨고, 우리도 그 길을 따라서 이 세상을 조화롭게 하여 서로 돌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돌보아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내 옆에 두신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들을 돕기 위해 내게 주신 능력과 재능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것을 깨닫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세상을 좀 더 사랑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