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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은 생애 꼭 하고 싶은 일, 10선 강 성 희
이태 전, 형제회 모임에서 제주도를 여행 할 때의 일이다. 우리 나이 또래로 보이는 남녀 무리들이 위에는 새빨간 저고리 , 밑에는 검정 바지나 치마를 입고 여자들은 머리에 기생들이 쓰는 전모를 쓰고 떼를 지어 다니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어디 예술 단체에서 공연을 하러 왔나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일정이 우리 일행과 겹치는지 가는 곳 마다 마주쳤다. 예술 공연 단체라고 말하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화기롭고 자유분방하다. 호기심을 절대로 참고 넘기지 못하는 남편이 “무슨 예술 공연을 하는 단체입니까?”하고 물으니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버킷리스트를 실행하고 있는 중이란다. 이번 임무인 형제, 자매들끼리 기생 옷 입고 제주도 여행하기를 실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면서 어린애들처럼 깔깔깔 웃는다. ‘참 우애있고 재미있는 가족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버킷 리스트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버킷리스트를 작성해보기 시작한 것은 정년퇴임이 들어 있는 작년 정초였다.
Kick the Bucket(발 아래 둔 버킷을 발로 타서 목을 메고 죽다)에서 유래한 그 어원의 뜻이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지만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해보고 싶은 일을 목록으로 만들어 실행해 보는 것도 의미있고 재미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해야 할 일과 해 보고 싶은 일은 조금 다른 무게로 다가 왔지만 두 가지 모두 버킷 리스트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 생애를 마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을 막상 생각해보니 쉽게 떠오르는 건 아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특별한 것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곰곰이 생각하면 이것 저것 대책없이 사소한 것 까지 다 해보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단 사소한 것 까지 모두 목록을 적고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고르고, 더 큰 의미가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골라 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생각 난 일이 정년퇴임까지 무사히 잘 마치기였다. 명퇴를 하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나의 직업을 사랑했던 나는 초임부터 늘 정년퇴임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선배 교사와 원로 교사들의 말씀을 들으면 정년퇴임은 자신이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운이 따라야 하고 건강이 따라줘야 한다는 말씀이다. 요즘은 워낙 학교에서 사고가 많고, 학부모들의 민원이 많아 스트레스로 교단을 떠나거나 병이 들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교단을 떠나는 동료들이 예전보다 많긴 한 걸 보면 그 말씀도 맞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마지막 한 해에 음악 교과를 맡으며, 병가 하루 없이 어느 해 보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흡족한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내 생애 과제는 훌륭하게 끝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일단 퇴임을 하고 난 후,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니 생각이 봇물 터진 듯이 흘러나왔다.
배우다 중도에 그만둔 바이올린을 다시 배워서 친구들이나 가족들 앞에서 콘서트하기, 중 고등학교 때 탁구채도 잡아보지 못한 탁구를 배워 매일 남편과 탁구치며 운동하기,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풀장에서 수영을 배우던 첫날, 물을 꼴깍 삼키며 잠수를 경험한 트라우마로 인해 물을 두려워해 아직 물에 뜰 줄도 모르는 수영부진아의 딱지를 떼기 위해 수영배우기, 20년 전, 부산 이웃에 살며 항상 우리 아이들을 챙겨주고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나누어 주곤 하던 다정한 이웃 언니, 내가 이사를 오면서 소식이 소원해지다가 결국 전화번호가 바뀌면서 소식이 끊어진 언니를 찾아 밀리고 쌓인 회포 풀기, 남편이 젊은 시절 회사의 파견 근무로 잠시 체류했던 이탈리아, 프랑스를 여행하며 그 때 신세졌던 친구도 찾아 인사도 하고, 캐나다에서 도깨비 드라마의 화면처럼 낭만적인 시간보내기, 자전거타고 부산의 낙동강 하구에서 서울의 한강 여의도까지 달기기, 오피스텔을 마련해 친구들을 만나는 아지트로 꾸미고 같이 할 수 있는 취미 생활하기,
지금 친구들과 함께 배우기 시작한 하모니카를 열심히 연습해서 칠순이 되는 해 시월의 어느 멋진 날, 계절에 어울리는 노래를 모아 거리 버스킹하기, 내 자서전을 쓰서 세 권만 출판하기. 아직은 어제처럼 선명한 나의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 그리고 가정생활과 학교에서의 행복하고 즐거웠던, 아쉽고 안타깝고 힘들었던 모든 기억들이, 나이듦과 함께 조금씩 조금씩 빛바래어져 갈 것이다. 컬러 사진이 흑백 사진이 되었다가, 또 안개 속에 묻힌 풍경처럼 보일 듯 말 듯, 생각날 듯 말 듯 아련히 그 형태가 사라지기 전에 아까운 그 기억들을 한 권의 책 속에다 활자로 묶어두고 싶다. “나라는 사람, 여기 이렇게 행복하고 즐겁게, 때로는 아프고 슬프게, 그러나 후회없이 살다 가노라”하는 묘비명과 함께 내 묘비에 선물하고 싶다. 그리고 나머지 두 권은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들에게 남겨 주고 싶다.
이렇게 열 개의 <남은 생애 하고 싶은 과제 10선>을 목록에 적어 책상 유리판 밑에 넣어 두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수시로 생각나면 과제 목록에 다시 덧붙이기도 하고, 또 과제 목록에 올려 수행하고 있던 과제를 포기하고 X표로 지우기도 한다. 가족들 앞에서 바이올린 콘서트하기가 최근에 X표로 지워진 목록이다. 몇 년에 걸쳐 바쁜 시간을 쪼개어 배우고 있던 바이올린을 올 해 봄에 바이올린 케이스에 집어넣고 지퍼를 채우며, 이제 바이올린과는 영영 이별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날 뻔 했다. 퇴임 전에는 바이올린 배우기를 시작은 했지만 레슨 시간을 못 지킬 때도 많고, 연습을 할 시간도 부족해 진도를 내지 못하고 늘 제자리 걸음이었다. 퇴직을 하고 난 후, 여유로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바이올린을 하고 있던 중에 어깨에 병이 왔다. 제일 먼저 할 수 없게 된 일이 바이올린 활을 섬세하게 움직이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 한달, 두달.연습을 못하니 자연스럽게 흥미가 떨어졌다. “당신, 이제 바이올린은 안되겠다, 하모니카를 차라리 배우지.”하는 남편의 권유인지 빈정거림인지 모를 말에 조금은 서운해 하면서도 수긍을 했다. 몇 년을 두고 씨름을 하고 있는 바이올린 연주 실력이 남편 귀에는 매번 깽깽 거리는 소리로만 들렸을 터이니 무리도 아니다 싶다. 대신 배우기 시작한 것이 하모니카인데 일단 바이올린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연주 방법이 쉽고, 우리가 알고 있는 노래를 빠르고 재미있게 연주할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가족들 앞에서 바이올린 콘써트하기 과제는 목록에서 X표로 지워졌지만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무엇이든 더 어릴 때, 더 젊을 때 배워야 한다는 것을. 내 살아 있는 날 중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니 지금이라도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다면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목록 중에서 지금 과제 수행을 위해 준비와 연습 중에 있는 것도 있고 아직 시작하지 못한 것도 몇 개가 있다. 과제의 결과를 빨리 보고 싶지는 않다, 준비와 연습과정이 더 재미있고 의미있는 것이 많기도 하기 때문이다.
“봉사도 좀 하면서 사는 건 어때?.”하고 남편은 말한다. 마음 속으로는 ‘당신말도 옳지요’ 싶으면서도 나는 “평생을 봉사하고 살았어. 가족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그러니 이제 나한테 봉사할 시간이 좀 필요해”하고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는 어깃장을 놓는다.
그런데 이러한 내 남은 생애의 과제 목록을 준비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과제를 선뜻 목록에 올릴 수가 없음이 조금 답답할 노릇이다. 그 과제가 무엇인가 하면 <두 아들 장가보내기>이다. ‘차라리 내가 시집가는 게 더 빠르겠다’하는 옛 속담처럼 내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어떤 노력을 하든 과제를 빨리 마치고 말겠는데, 두 아들의 협조가 없이는 절대 완성할 수 없는 과제이기에 마음이 무겁다. 내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필생의 과제, 목록 번호 0순위, <두 아들 장가보내기>를 수행 완수하는 날, 내 과제의 구할은 끝낸 듯이 마음이 홀가분해질 것만 같다. (끝)
첫댓글 생애의 가장 큰 과제가 빠른 시일내에 이루어지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하나가 끝나면 또 하나가 더해지는 게 우리사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더해지는 과제는 영원히 끝나지 않음을 즐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모양입니다. 자꾸 새것이 생기니까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욕심이 좀 많으신것 같습니다. 하고 싶으신 일들의 목록을 보니, 샘이 납니다. 건강과 열정으로 차근차근 바라는바 소망이 모두 이루어 지리라 생각 됩니다. 그러나 과제 0순위 선생님의 노력만으론 풀기 어려운 숙제 인 것 같습니다. 함께 노력하면 예상외로 쉽게 풀리는 것 또한 숙제 입니다. 숙제 아닌 축제의 그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재미 있는 글 잘 앍었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욕심이 많군요. 아니 포부가 크타고 해야할까. 꿈이 많은 것을 보니 아직도 청춘이란 생각이 듭니다. 좋은 일입니다. 무엇 보다도 아들 장가보내는 일이 우선이겠습니다. 이렇게 터놓고 노래 부르고 있으니 꿈이 곧 이루어 지리라 봅니다. 나머지 일들도 꼭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꿈을 갖고 실천하는 것도 생활에 생동감을 줍니다. 하고 싶은 열 가지가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십니다.버킷리스트는 선생님의 삶에 활력을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두아이 0순위 과제도 그렇고, 손가락이 탈나서 배우던악기 그만둔 것도 그렇고, 저와 비슷한게 많습니다. 화이팅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남은 인생에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으시군요! 하나 하나 이루시기 바랍니다. 우선순위를 정하여 추진하시기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아들 장가보내기 0순위, 고민 1호, 큰 수술을 하고 누워있는데 동생이 결혼한지 7 년이 다 되어가는데 형이 꼼짝 않고 있으니 병문안 오는 사람마다 아들과 마주치면 장가가라고 닥달했답니다. 수술하고 누운 나는 선생님 못 잖게 맘이 쓰이더랍니다 거짓말 같이 수술 한 달도 안되어 나타난 혼처 선을 보자마자 서두는 사돈댁 안가겠다던 아들이 엄마에게 양보하더랍니다.
충격요법도 필요하지만 아들의 뜻을 따르는게 지금 세월에는 맞는 듯 합니다. 너무 조급히 생각 안하셔도 좋은 신붓감을 데리고 올겁니다.지난 나의 고민을 보는 듯 합니다.
하시고 싶은 일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최싱순드림
꿈은 이루어지라고 존재합니다. 꿈구며 노력하시면 반드시 이루어지실 것입니다. 부모로서 인생 최고의 프로젝트도 원만히 성취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소망 목록에 대한 진솔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정년퇴임 전 부터 버킷리스트를 만드시고 하나하나 이루시려는 열정에 박수를 드립니다. 많은 재주를 가지셨습니다. 0순위로 정하신 소원도, 무심히 기다리는 중에 갑자기 이루어지리라 확신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외국에서 파견 근무를 하며 유익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조금은 부럽기도 하구요... 그래도 선생님은 욕심쟁이 입니다. 리스트가 너무 많아요. 그래도 못 이루실건 없어 보입니다.
그래도 좀처럼 안되는 것이 자식 혼사입니다. 하루빨리 좋은 배필 만나 행복한 가정 이루시는 날이 오기를 응원합니다.
늘 떠밀려서 살다보니 어느새 버킷리스트를 작성할 나이가 되었네요. 그 일도 하면서, 지금이라도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 멋집니다. 재청합니다. 저는 오십을 바라보는 자취생 아들 있어요. 멀리 살면서 결혼은 할 수 있을 때 한대요. 결혼에 대한 의식구조가 요즘젊은이들은 아주 달라요. 리디아님의 두 아들도 어느 날 소식이 올 겁니다 '엄마 나 결혼할래요.' 라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하신 선생님의 마음에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제가 현직에 있을때 교사오케스트라 단원 모집이라는 공문을 보고 찾아간 일이 있습니다. 교대에서 연습을 하며 음악과 교수님이 지휘를 하고 1년에 1번 정기연주회를 갖는다고 합니다. 바이얼린은 소리가 작아 많은 사람이 필요한데 단원수가 부족하여 한번 참여한 선생님께 계속 연락이 오는걸 봤습니다. 50견이라 하여 어깨가 심하게 아파 꾸준한 운동으로 나은적이 있습니다. 어깨사정(?)이 괜찮으시다면 바이얼린을 다시 시작해 봄은 어떠신지요? 실버오케스트라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