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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
아나 크리스티나 에레로스 글, 비올레타 로피스 그림, 정원정·박서영 옮김
고양이 발톱 사이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모든 쥐들에게
–아나 크리스티나 에레로스(글 작가)
이것은 사랑, 학대, 젠더, 사회, 폭력에 관한 이야기다
–비올레타 로피스(그림 작가)
《섬 위의 주먹》, 《할머니의 팡도르》로 인상 깊게 각인된 그림 작가 비올레타 로피스가 구전문학을 연구하는 아나 크리스티나 에레로스와 함께 스페인 민담을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내놓았다. 두 세기 전 ‘잘난 체하는 쥐(여자)’의 운명과 21세기를 사는 ‘깔끔하고 성실한 쥐(여자)’의 운명은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결말은 같다. 아무리 약한 남자와 결혼해도 가정의 구조 안에서는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가보다)
이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책은 ‘스페인 전통 설화가 가정 폭력에 대한 강력한 비유로 변모했다’라는 멘션을 받으며 《뉴욕 타임스》 2021 올해의 그림책으로 선정되었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의 무루(박서영) 작가가 번역에 참여했다.
“21세기 여자들은 불행을 두려워하거나 운명에 순응하는 대신 망가진 집과 무너진 삶 위로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다. 이야기를 다시 써 나간다.”
―무루(박서영), ‘옮긴이의 후기’ 중에서
옛이야기가 21세기 페미니즘 서사로 다시 쓰일 때
예견되는 비극 끝에서 충격과 공포, 그리고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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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옛날에 깔끔하고 성실한 작은 쥐 한 마리가 있었대. 날마다 털을 단정히 빗고 대문 앞을 깨끗이 쓸었던 쥐는 동전 하나를 주웠고, 그걸로 양배추를 사서 튼튼하고 아늑한 집을 만들었대. 조그만 쥐가 집을 만들자 당나귀 오리 고양이들의 구애가 쏟아졌어. “쥐야, 쥐야, 작은 쥐야, 넌 집도 있는데 왜 결혼을 안 하니? 나랑 결혼하지 않을래?”
“나는 저 고양이랑 결혼할래!”
구혼자들 중 제일 작고 약해 보이는 새끼고양이와 결혼한, 성격 깔끔하고 성실한 쥐는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쥐는 그들 중에서 작고 약해 보이는 새끼고양이와 결혼했어. 그런데 결혼식 날 고양이의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는 바람에 침대에 실수한 쥐는 빨래를 하려다가 물에 빠져 버렸어. 새끼고양이가 쥐의 목숨을 구해 아몬드 나무 아래에 눕혔지만 뾰족한 아몬드 껍질이 얼굴에 떨어져 코가 찢어지고 말았대.
쥐의 상처를 꿰매어 주기 위해 실을 구하러 나선 새끼고양이는 재봉사 돼지 제빵사 방앗간 밀 우물 등을 찾아다니며 점점 덩치가 커졌어. 그렇게 새끼 고양이에서 거대고양이가 되었지만 결국 실을 구하지 못했고, 쥐의 곁으로 돌아가 그의 상처를 핥아주었어. 그리고… 예상치 못한 비극을 맞게 되었어.(쥐를 잡아먹고 말았지)
‘잘난 체하던 쥐(신부)가 고양이(남편)와 결혼해 비극적인 운명을 맞는다’는 옛이야기를 두 여성 작가가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용기 있게 밀고 나갔다. 이 스페인 민담은 여러 버전으로 구전되었고, 19세기에는 훌륭한 신부를 육성하고자 설립된 여학교들에서 교재로 읽혔다고도 한다. ‘여자들이여, 늘 겸손해야 한다.’ 이후, 쥐가 기지를 발휘해 비극적인 운명을 벗어나는 여성주의 각색도 등장했다. 그러나 글 작가인 아나 크리스티나 에레로스는 에둘러 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전통으로 회귀한다. 옛이야기의 형식과 서사를 충실히 따르며 다만 묻는다. ‘잘난 체하는 쥐’가 ‘깔끔하고 성실한 쥐’였다면 결말이 달랐을까? 글의 마지막 문장은 충격적이다.(잡혀 먹힌다) 충격은 당연히 여겼던 모든 것에 균열을 일으킨다.
독보적인 그림 스타일과 자기만의 서사로 펼쳐내는 또 하나의 세계
작품을 선보일 때마다 이전의 어느 것과도 닮지 않는 그림으로 매번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이 독보적인 작가는 이번에도 전에 없던 스타일을 보여준다. 쥐의 결혼 과정을 다룬 이야기의 전반부에서는 언뜻 텍스트와 연관성을 찾기 어려워 보이는 사물들을 강렬한 파랑과 함께 프레임 한가득 채워 나간다.(강한 은유).
실타래, 지구본, 자, 책, 의자, 가위, 화병, 주전자… 그 속에서 쥐는 여러 포즈를 취한다. 처음엔 편안히 기대 있던 쥐가 화들짝 놀란 듯 뛰어가거나 굴곡과 반영으로 모습이 변형되기도 하는데, 아주 평범하고 유용한 사물들이 순간 위협적이고 기이하게 보임으로써 ‘아늑한 집’에 대한 쥐의 소망이 좌절됨을 몸소 느낄 수 있다. 누군가에겐 아늑한 집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안과 긴장, 절망의 공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책 제목처럼 ‘여자들은 다른 장소를 살아간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이유로 쥐가 새끼 고양이를 선택했
듯이 서로 맞지 않는 남자와 여자가 알 수 없는 끌림에 의해 결혼을 하지만 결국 서로 맞지 않는 두 남녀의 끝은 비극이다.)
작은 쥐의 배우자가 된 새끼고양이가 자신의 아내를 위해 모험을 떠나는 후반부에서 그림은 앞선 그림들보다도 더 단순하고 과감하다. 화면 안에서 검은고양이는 몸집이 점점 불어나고 실은 점점 엉킨다. 마침내 쥐와 고양이가 한 페이지에 있게 된 순간. 암전과 함께 이 우화는 막을 내리고, 충격적인 결말로 접혀 있는 페이지를 열어젖히면 또 하나의 막이 올라간다. “그것은 희망 찬 인생이다. 쥐가 꿈꾸었을 더 나은 자신의 이야기.”(뉴욕 타임스)
‘옮긴이 후기’에서
이 책의 원제는 ‘잘난 체한 적 없던 쥐에게 일어난 실화’다. 스페인 설화 ‘잘난 체하는 쥐’로부터 변주된 여러 버전의 이야기들 중 하나를 다시 쓴 것이다. 잘난 체하던 쥐에서 이번에는 잘난 체 안 하는 쥐로 바뀌었는데도 결말은 바뀌지 않는다. 고양이는 잘난 체와는 상관없이 쥐를 잡아먹으니까. 소름이 돋는다.
이 이야기를 읽고 번역하는 동안 저 멀리 스페인의 옛이야기에서 내 경험과 꼭 닮은 부분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 씁쓸하기도 했지만, 안도하게 되는 지점도 분명 있었다. 글 서사가 끝나고 마지막에 그림 서사가 보여주는 이야기로 이 책은 힘이 아주 세진다. 그림이 글을 부연하는 것이 아닌 글과 그림이 서사를 함께 완성해 나간다는 그림책의 매력이 잘 드러난다. ―정원정
해외 언론 서평
전통 민담을 페미니즘 우화로 재해석했다. ‘매우 깔끔하고 성실한’, 집을 가진 쥐에게 다양한 동물들이 구애를 하고 마침내 그녀는 ‘가장 약해 보이는’ 새끼고양이와 결혼한다. 새끼고양이 남편은 점점 거대해지고, 강력한 엔딩에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들은 폭력적인 소동의 여파 이후를 보여준다. 이전까지 가정용품에 하나하나 초점을 맞췄던 렌즈가 한순간 그것들을 롱숏으로 한 컷에 담아낸다. 놀라울 만큼 단순하고 절제된 미드센추리모던 스타일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인상적이다. 대학 교재로도, 혹은 선물로도 유용할 독특한 그림책. ―《커커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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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신부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작가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책을 읽다 보면 깔끔하고 성실한 쥐에게 왜 이런 비극이 생겼을까 하는 안타까움에 한숨이 절로 나와. 또 집이 없어 쥐에게 구걸하던 새끼에서 거대한 몸집을 갖게 된 고양이와 사고로 누워있는 나약한 쥐의 모습이 대비돼 공포마저 느껴져. 아마 단순하지만 과감한 그림과 색감이 이 둘의 상황을 더 대조되게 보여줬을 거야.
하지만 작가가 마지막에 전하는 메시지는 그런 안타까움을 희망으로 바꿔. 작가가 마지막에 넣은 그림 4장에는 폐허가 된 집을 담담히 정리한 뒤 긴 머리를 자르고 문밖으로 나가는 여성이 등장해. 그 모습에서 운명에 순응하는 대신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작가의 격려를 느낄 수 있어.
아이야, 너에게 정해진 미래는 없단다. 남자여서 여자여서가 아니라 너라서, 너의 삶이기에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가면 된단다. 깔끔하고 성실한 쥐는 비극을 맞았지만 너의 인생은 다를 거라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