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책의 정체
2024년 새해가 밝은지 무려 25일이나 지나서,
올해 몇 번째 읽은 책을 이야기해주는구나.
아빠의 게으름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구나.
올해 첫 번째로 읽은 책은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 혁명>이라는 책이란다.
몇 달 전에 이 책이 신간 코너에서 소개되었을 때,
우리가 베르사유 궁전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서
이 책에 더욱 관심을 갖었단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빠가 몇 년 전에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어.
그런데 비슷한 제목의 책이 출간되어 좀 의아했지.
그런데 예전에 읽은 책은 55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고,
이번에 나온 책은 300페이지 남짓 되는 책이었단다.
그리고 예전에 읽은 책은 전기문이나 역사서로 알고 있고,
이번에 나온 책은 ‘소설’이라고 명기되어 있었어.
두 책이 다른 건가?
두 책 간의 관계를 찾아보려고 해도 잘 모르겠더구나.
이번에 읽은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 혁명>가 이전 책의 개간본도 아니고 말이야.
책 소개에도 이전에 출간된 책과 어떤 관계인지 설명이 안되어 있더구나.
그렇다면 츠바이크가 마리 앙투아네트에 관한 책을 두 권을 쓴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
일단 책 디자인도 예쁘고, 아빠가 좋아하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이고 하니 주문을 했지.
책이 도착해서 내용을 좀 봤더니,
아빠가 예전에 읽은 책과 내용이 같더구나.
첫 문장을 비교해 보아도,
예전에 읽은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마치 검사와 변호사가 서로 상반되는 주장으로 팽팽하게 맞서 싸우며 100년이나 끌어온 소송을 속개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라고 되어 있고,
이번에 읽은 <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 혁명>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은 수백 년에 걸쳐 벌여온 재판을 세상 밖으로 다시 꺼내는 일과 같다.”
라고 되어 있단다.
어떠니? 동일한 원본을 번역자가 다르게 번역한 것으로 보이지 않니?
그렇다면, 두 책은 원본이 같을 것 같구나.
번역가가 다르고…
그렇다면 한 책은 페이지가 500페이지가 넘고, 한 책은 300페이지 남짓이며,
300페이지 남짓인 책이 필요 없는 부분은 삭제한 버전으로밖에 생각이 안 되는구나.
그렇다면 아빠가 안 좋아하는 번역 스타일인데…
원본의 일부를 가위질한 번역….
이 책의 정체를 알고 싶구나.
1. 줄거리 베껴쓰기….
그래서 이 책의 줄거리는
아빠가 예전에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를 읽고 쓴 독서 편지를
좀 베껴와야겠구나.
예전에 줄거리를 아주 상세하게 적어 놓은 것 같구나.
그것을 복사해 와서,
이번에 읽으면서 쓴 메모 중 누락되어 있는 것을 조금 보완하는 것으로 대신할게.
……….
오스트리아 여왕이었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막내딸답게 약간은 철부지였다고 하는구나.
영리하기는 하지만, 공부보다 노는 것을 좋아했대.
귀여운 막내딸이니 하고 싶은 것 하게 두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런 마리는 15살 어린 나이에 정략결혼으로
프랑스 루이 16세와 결혼하여 프랑스로 오게 된단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가훈을 다시 한번 증명하게 되었어.
“다른 이들은 전쟁을 하게 두어라.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
마리 앙투아네트가 결혼하여 프랑스에 왔을 때 나이가 15살.
15살이면 무척 어린 나이인데 가족과 떨어져 프랑스와 왔으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것도 남들의 시선을 잔뜩 받는 왕세자비였으니 말이야.
남편인 루이 16세는 한 살 많은 16살이었으니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될 수도 있었으나,
루이 16세는 마리와 함께 하는 것보다 사냥 등 자신의 놀거리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결혼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아이가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루이 16세의 신체적 문제가 좀 있었다고 하는구나.
결혼하고 나서 7년이 지난 다음에야, 외과 시술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빠 요제프 2세의 밤자리 조언을 듣고 나서야 아이를 낳는 것에 성공했단다.
아무튼 그것은 나중 이야기이고,
결혼 직후 신혼 시절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생활을 잠시 이야기를 해줄게.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
겉으로는 금슬 좋은 부부로 보였지만,
금슬이 좋다기보다 서로 맞는 것이 없어서 각자 놀다 보니
부부싸움 같은 것이 없었다고 해야 맞지 않을까 싶구나.
지은이 슈테판 츠바이크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의 다른 점을 이야기하면서
그 어떤 소설가도 이런 설정이 어렵다고 이야기했단다.
그러니까 소설 속에서도 이런 부부를 이야기하면
독자들이 억지 설정이라고 했을 것이라는 거지..
그들이 정략결혼이 아니라면 절대 같이 살 수 없는 그런 부부였던 거야.
…
마리 앙투아네트가 결혼했을 때는 루이 16세의 할아버지 루이 15세가 왕이었단다.
루이 16세의 아버지도 있었지만, 얼마 안 있다가 돌아가시고,
루이 16세는 왕위 상속 1순위가 되었단다.
루이 15세에게는 애첩 마담 뒤바리가 있었는데,
루이 15세의 세 딸들과 사이가 안 좋았어.
아버지의 젊은 애첩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
루이 15세의 세 딸들은 조카 며느리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이용하여 마담 뒤바리를 공격했어.
어린 마리는 고모들의 계략이 넘어가서 마담 뒤바리를 헐뜯는데 활약하게 된단다.
이 일은 문제가 크게 났었나 봐.
오스트리아에 있는 마리의 엄마 마리아 테레지아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마리아 테리지아가 손을 써서 이 사태를 수습하게 되었으니 말이야.
…
어느 날 루이 15세는 천연두를 앓다가 갑자기 죽고 말았어.
1774년 5월 10일이었어.
루이 16세가 드디어 왕위에 올랐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비가 되었지.
둘 다 준비가 안 된 왕과 왕비였단다.
루이 15세가 정치를 잘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죽고 나서 많은 백성들이 그의 죽음을 기뻐했고,
새로운, 거기에 젊기까지 한 왕에 대한 기대감으로 루이 16세를 환호했단다.
오래 가지 못했지만 말이야.
그것에는 마리 앙투아네트도 한몫을 했단다.
이제 왕비가 된 마리는 왕비에 걸 맞는 품격을 지켰으면 좋았겠지만,
결혼 전부터, 왕세자비부터 해오던 생활 그대로 노는 것 좋아하고
사치가 잘못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는 듯 생활했단다.
옷에 꾸미기에 정성을 다하고,
머리 치장에 정성을 다하고,
장신구에 정성을 다하는 생활이었지…
궁전 밖에 백성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어.
그런 마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이 은신할 수 있는,
정확히 이야기하면 숨어서 마음껏 놀 수 있는 성을 달라고 루이 16세에게 요청을 했어.
그래서 루이 16세는 크리아농 성을 마리에게 주었고,
마리는 그곳에서 가장무도회를 여는 등 신나게 놀았어.
마리는 트리아농 성에는 밤 늦게까지 놀다가 새벽에 궁전으로 돌아가고 했다는구나.
결혼한지 오래되었는데 제대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해서
더욱 놀이와 사치에 빠져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단다.
이 소문이 오스트리아까지 전해지고,
테레지아는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행동 조심하라고 경고 편지도 보냈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철저한 개인주의자였어.
…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 생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에서 마리의 오빠 요제프2세가 찾아왔단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우호를 다지기 위한 방문으로 알려졌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들이 있었어.
루이 16세의 결혼생활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첫 번째였고,
엄마 마리아 테레지아의 지시에 따라 마리 앙투아네트를 훈육하려는 것이 두 번째였어.
루이 16세와 남자 대 남자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문제점을 알게 되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외과적 시술로
루이 16세의 문제점을 해결하도록 도와주었단다.
그리고 드디어 마리와 결혼 7년만에 사랑을 나누게 되고,
아이도 갖게 되었단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멀리 있는 엄마로부터 조언과 충고를 받았지만,
그가 좋아하는 사교 모임을 그만둘 수 없었어.
심지어 연극 배우로 연극도 참여했단다.
평범한 연극이라면 모르겠는데,
루이 16세를 조롱하는 희극 <세빌리아의 이발사>라는 연극에서 하녀 역할을 했어.
마리 앙투아네트는 점점 백성들의 눈밖에 났단다.
그리고 그들의 어려운 삶이 모두 오스트리아에서 온 마리 앙투아네트의 탓으로 돌렸어.
국민밉상이 되어 버렸어.
..
국민밉상에 되는데 더 불을 붙인 사건이 있었으니,
일명 목걸이 사건이었단다.
라모트 백작 부인의 사기극으로 판명이 나서,
마리 앙투아네트도 백퍼센트 피해자였지만, 백성들은 마리의 말을 믿지 않았어.
그 사건의 내막을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렇단다.
라모트 백작 부인은 로앙 추기경을 속여 자신이 왕비 마리 앙투어네트의 심부름을 한다고 하면서,
로앙 추기경에게 목걸이를 원한다고 이야기했어.
로앙 추기경이 값비싼 목걸이를 라모트 백작 부인에게 건네주었는데,
그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뇌물로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전혀 모르고 있는 일이었지.
중간에서 라모트 백작 부인이 꿀꺽 한 것이었어.
나중에 이 사건이 드러나면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게 밝혀졌고,
라모트 백작 부인은 종신형을 받게 되었단다.
그런데 라모트 백작 부인은 감옥을 탈출하게 되고,
영국으로 가서 목걸이 사건은 모두 왕비가 시킨 일이라고 거짓 회고록을 썼단다.
그렇게 라모트 백작 부인은 왕비를 중상모략하였고, 민중들은 이 말을 믿게 되었단다.
그래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더욱 미움을 받는 사람이 되었단다.
이때 프랑스는 나라 빚이 엄청나게 많았고,
그로 인해 백성들이 내야 하는 세금은 계속 오르고 있었고,
물가도 가파르게 올라 빵조차 사먹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았단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을 사먹지 못하면 케이크를 사먹으면 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구나.
아무튼 당시 프랑스 국민들은 이 모든 것들이 왕비의 낭비 탓이라고 생각했어.
…
마리도 나라의 사태가 엉망이라는 것을 인식을 했는지,
유능하다고 하는 네케르를 재무부 장관으로 고용했어.
한번 고용을 했다면 그를 믿었어야 했지만,
오래 가지 못해서 그를 다시 해임시켰단다.
네케르가 그나마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사람인데,
그마저 다시 자르니,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격이었지.
민중은 더 이상 참지 않고, 행동을 보여주었단다.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여 프랑스 대혁명의 불꽃을 일으켰단다.
때는 1789년 7월 14일.
이 일이 있고 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왕과 왕비의 곁을 떠났단다.
그 중에 남은 이가 페르센이라는 사람인데,
그가 남은 이유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때문이었단다.
페르센은 스웨덴 귀족이었는데,
오래 전 가장무도회에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세자비 시절에 처음 만났었는데,
사실 그 때 둘은 첫눈에 반했었단다.
서로의 직위 때문에 사랑을 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페르센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잊지 위해 프랑스를 떠났지만,
세 번이나 다시 돌아왔고,
이번에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지키기 위해 다시 프랑스에 왔다고 하는구나.
…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민중은 베르사유 궁전으로 가서 시위를 했어.
마음 약해빠진 왕을 노리면서 시위대 대부분을 여자들 또는 여자로 위장한 남자들로 했어.
루이 16세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단다.
결국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시위대의 요구로 베르사유 궁정전을 떠나 파리의 옛 왕궁인 튈르리 궁으로 왔단다.
그곳에서 몸 사리며 지냈는데, 거의 감금생활이라고 할 수 있었지.
그런 와중에 반대 진영에 있던 미라보라는 사람이 접근을 해왔어.
자신이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면서 말이야.
구체적인 계획도 있었어.
하지만, 그가 갑자기 죽는 바람에 무위로 돌아갔단다.
이제 더욱 선택지는 줄어들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몰래 탈출 계획을 세웠단다.
이 일은 가장 믿을만한 사람 파르센을 시켰어.
하지만, 국경을 넘기 직전인 바렌이라는 지역에서 그만 발각이 되어,
다시 파리로 강제소환 되었단다.
그들이 발각될 수 밖에 없던 이유가
화려한 마차를 타고 궁 안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궁 안에서 하던 행동을 하니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킬 수밖에 없었단다.
결국 국경 넘기 직전에 발각되어 다시 파리로 돌아왔어.
…
이런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마리 앙투아네트는 드디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왕비 같은 모습을 보였어.
그녀 몸 속에 숨어 있던 엄마 마리아 테레지아의 피가 흐르는 듯했어.
하지만, 이미 많이 늦었단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비로서 품격을 찾으려고 할 때
더 이상 왕비가 아니었으니까 말이야.
루이 16세도 죽음을 앞두고서는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고 하는구나.
…
그리도 드디어 마리 앙투아네트의 심판일..
여러 가지 혐의가 있었는데,
루이 16세를 타락시켰다거나 백성을 기만했다는 등 입증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국고 낭비, 오스트리아와 결탁 등에 대한 내용도 있었지만,
이런 것들도 그 당시까지만 해도 증거가 없고 심증만 있었다고 하는구나.
다른 사람이 된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의 변호를 직접 했다는구나.
검찰 측에서도 제대로 된 증거를 내놓지 못했지만,
결국 마리 앙투아네트는 유죄 선고를 받고 처형을 당하게 된단다.
마리가 죽기 전 시누이에게 남긴 편지가 있는데,
이 편지를 읽다 보면 남긴 자식들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더구나.
부모의 마음은 시대와 장소를 따지지 않는 것 같구나.
….
프랑스 혁명에 관한 책은 늘 재미가 있구나.
아무래도 부패한 왕권을 민중의 힘으로 무너뜨린 통쾌함 때문이 아닐까 싶구나.
나라의 정권을 민중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가 싶구나.
프랑스 혁명 이후 한동안 혼란기를 겪고,
서로 반대를 죽고 죽이고,
다시 왕정 시대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프랑스 혁명은 민주주의 국가를 마련하는데
디딤돌이 되었다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우리나라도 부패한 정권을 국민의 힘으로 여러 번 바꾼 적이 있잖니.
그런 역사적 교훈이 있어도
정권만 잡으면 또 못된 짓을 하고 국민과 척을 두는 이들이 생기는지 모르겠구나.
또 당해봐야 할겠나.
….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여러 잘못은 했지만,
마지막 순간은 왕비의 위엄도 되찾으려고 했고,
왕비의 잘못이 교수형에 처할 만큼의 죄였나, 싶기도 하구나.
우리가 작년에 베르사유 궁전에 갔을 때,
마리 앙투아네트의 방도 보고 거울의 방도 보고 그랬잖니, 기억나지?
정말 사치스럽긴 한 것 같더구나.
당시는 사치스러워 백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오늘날은 관광 명소가 되어
발 디딜 틈 없는 곳이 되었으니 아이러니하구나.
…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은 수백 년에 걸쳐 벌여온 재판을 세상 밖으로 다시 꺼내는 일과 같다.
책의 끝 문장: 한때는 우아함의 상징이었지만 이 모든 고뇌에 괴로워하도록 선택한 자,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책제목 :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 혁명
지은이 : 슈테판 츠바이크
옮긴이 : 육혜원
펴낸곳 : 이화북스
페이지 : 328 page
책무게 : 438 g
펴낸날 : 2023년 10월 23일
책정가 : 16,500원
읽은날 : 2024.01.01~2024.01.03
글쓴날 : 2024.01.2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