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고성=뉴스1) 윤왕근 기자 = 25일 낮 12시 1분쯤 강원 고성군 설악산 미시령휴게소~신선봉 구간을 산행하던 50대 A 씨가 15m 아래로 추락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는 심정지 상태의 A 씨를 원주지역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끝내 숨졌다. 경찰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이 사고 외에도 이날 설악산 곳곳에서 사고가 잇따랐다. 같은 날 오전 9시 53분쯤 속초시 설악산 칠선골 구간을 산행하던 70대 B 씨가 낙상해 어깨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홍천지역 대형병원으로 이송됐다. 또 이날 오전 11시쯤 인제군 설악산 한계령 구간에서도 40대 C 씨가 산행 중 다리 통증을 느껴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해진다. 백두대간 종주 10회차 대야산 정상 바로 수직암벽에서 추락, 갈비뼈 석 대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뒤 집에서 근신 중이라 더욱 그렇다. 26일 아침 내내 미시령휴게소에서 상봉(해발 고도 1244m), 신선봉(1212m) 가는 길이 어떤 곳인지 검색해 봤다. 우리 회원들에게는 2022년 9월 정기산행으로 찾았던 대간령(큰새이봉)이 마산봉과 신선봉 아래 놓여 있어 낯익은 곳이다. 또 상봉에서 신선봉 가는 중간에 화암재가 있는데 지난해 10월 가상이네 고성 별장에서 1박2일 했을 때 화암사에서 수바위 거쳐 선인대에서 직진하면 나오는 곳이다.
2022년 9월 우리는 마장터에서 대간령을 거쳐 마산봉으로 올라 알프스스키장 쪽으로 내려왔다. 마산봉에서 진부령으로 내려선 뒤 올라가는 곳이 향로봉, 바로 백두대간 종주 720km의 마침표를 찍는 곳이다. 사실 마등령에서 금강굴, 비선대 방향으로 하산하지 않고 직진하면 저항령~황철봉(1380m)~미시령~상봉~신선봉~대간령~마산봉~진부령~칠절봉(1171m)~향로봉(1290m)인데 모두 국립공원에 미리 입산 허가를 받아야 산에 들 수 있는 비법정 탐방로다.
그런데 새벽이나 이른 아침 미시령휴게소에 차 대놓고 상봉, 신선봉 올라가는 종주꾼들이 많다. 분명히 입산금지 경고판이 있는데도 못 본 척 들어간다. 산림보호법 위반으로 적발되면 최소 3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고 경고해도 소용 없다.
우리 회원들은 지난해 12월 국내 산악 동호인 가운데 첫 손 꼽히는 산악회 대장이 40대 여성과 하룻새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된 소식을 내가 단톡방에 공유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사고는 상봉에서 신선봉 가기 위해 화암재로 내려서는 암릉 구간에서 일어났다. 한모 대장은 허리 아래를 크게 다쳐 움직일 수가 없었고, 거의 초보 수준이었던 40대 여성은 500m 떨어진 곳에서 한 대장의 도움도 받을 수 없어 저체온증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번에 숨진 50대 A씨도 같은 곳에서 횡액을 당한 것인지 현재로선 모르겠다. 하지만 최고의 산기술을 지녔다는 평가를 들은 한모 대장이 참변을 당한 곳이 조금은 쉬운 길이어서 어이가 없었다는 글도 있었다. 그 때는 한겨울이었고, 이번은 5월 중순인데 이런 비극이 또 빚어졌다.
지금 몸이 성치 않은 상황이라 그런지 몰라도 비법정 탐방로를 굳이 타지 않고 대간 종주를 이어갈 마음을 굳혀간다. 우회하느라 시간도 들고 경비도 들겠지만 예를 들어 미시령 휴게소~상봉~신선봉 암릉 구간을 피하고 마장터에서 편안히 대간령으로 들거나 화암사 쪽에서 올라가는 길을 택할까 생각한다. 물론 그런 방법도 모두 국립공원 규정을 저촉하는 문제가 있긴 하다.
대간 종주를 하면서 비로소 태백산맥이 얼마나 잘못된 개념인지 알게 됐으며 백두대간을 타는 것이 옳은 일임을 알게 됐다. 그런데 대간 종주 길 가운데 마음놓고 갈 수 없는 곳이 200km나 된다는 얘기다. 위험하면 우회로나 안전한 설비를 갖추고 자격을 갖춘 이들을 출입할 수 있게 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국립공원은 준엄한 경고문 세워놓은 뒤 '규정을 어기고 들어가 사망하는 일이 일어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자세다. 내가 사고를 당한 대야산 수직암벽은 설치돼 있던 자일이나 안전 설비마저 공단에서 철거해 버렸다.
대간 종주라도 마음놓고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일이 국내 산악계에 꼭 필요한 일 아니겠는가? 그런데 모두 이런 데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여 안타깝고 속 상하고 화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