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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마음의 양상을 말한다/장미의 모습, 붉은 입술, 날렵한 손발이 아니라/늠름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정열을 말한다//청춘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중략)이상을 잊어버릴 때 비로서 늙는다/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더하지만/정열을 잃으면 마음이 시든다(중략)//사람은 신념과 더불어 젊어지고 의혹과 함께 늙어간다/확신과 더불어 젊어지고 공포와 함께 늙어간다/희망과 더불어 젊어지고 실망과 함께 늙어간다//육십세던 십육세던 사람의 가슴속에는 경이함에 이끌리는 마음/어린이와 같은 미지의 탐구심/인생에의 흥미와 환희가 있다/자연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그리고 신으로부터/아름다움과 희망과 기쁨과 용기/그리고 힘의 영감을 받아들이는 한/그대는 젊은 것이다."
TV 드라마 '태조 왕건', '대조영', '해신' 등에 출연하며 국내 최고 연기자의 입지를 굳힌 최수종은 강연이 시작되자 한 편의 시를 낭송했다. 인생의 지혜와 삶의 기쁨을 노래한 시인이자 학대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사무엘 울만이 78세에 지었다는 이 시의 제목은 '청춘'. 강연회장 앞자리를 차지한 노령의 CEO들을 위한 헌시(獻詩)였다.
"때로는 20세의 청년보다 60세의 노인이 더 청춘에 가까울 수 있다. 청춘의 기준은 나이가 아니라 안이함을 거부하는 모험심이라고 갈파한 시인의 상상력에 따르면 그렇다. 상식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역설적 기준이 오늘의 강연 주제인 '나눔과 배려'인 것 같다. 부친이 생존해 계실 때만 해도 우리 가족은 유복했다. 장남인 나는 미국에서 유학할 기회도 얻었다. 하지만 사업에 실패한 부친이 빚만 잔뜩 남기고 돌아가시자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귀국해 노숙자 생활을 해야 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날 벤치에서 추위에 떨며 자고 있던 어느날 새벽에 누군가 '덮고자면 따뜻해' 하면서 신문지 한 장을 던져주고 갔다. 눈을 뜨고 보니 나보다 더 남루한 어른이었다. 그 순간 나중에 도움을 주며 사는 사람이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10년 동안 뿌려온 나눔의 씨앗
실제로 최수종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GoodNeighbors)의 친선대사를 맡아 지난 10여년 동안 꾸준히 나눔의 씨앗을 뿌려왔다. 1999년 방글라데시를 시작으로 네팔과 캄보디아 등 저개발국가에서 자원봉사를 했으며, 북한을 방문해 동포애를 전하고 오기도 했다. 국내의 결식아동과 화상환자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부도 실천했다.
"따뜻한 사랑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가능한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게 되기까지는 가정적인 아버지의 영향이 매우 컸다. 박정희 정권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아버지는 일요일 아침이 되면 여성인 어머니와 누나는 쉬게 하고 남성인 나와 남동생에게 이불개기와 방청소를 시켰는데, 그 사이에 당신은 주방에 들어가서 식사 준비를 하셨다. 부모님과 관련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아름다운 장면이 있다. 등교하면서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려고 안방 문을 열었더니 어머니가 출근하려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크면 저런 행복한 가정을 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아내(탤런트 하희라)뿐만 아니라 두 아이(아들 민서, 딸 윤서)에게 항상 경어를 쓰는 것도 그 때의 경험과 무관치 않다."
그런 최수종을 친구들은 농담으로 '공공의 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다분히 질투(?)가 섞인 그런 시선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가정이 행복해야 만사가 형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던 것과 관련해 감사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여기며 산다. 따라서 아내에게 경어를 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지인의 소개로 생전 처음 방송국에 갔다가 복도에서 지나가던 하희라 씨를 봤다. 당시 여고생 신분으로 이미 청춘스타의 반열에 올라 있던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한 눈에 반한 나는 잠시 말이라도 나눠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드라마 주연을 맡으면서 역시 스타가 된 나는 '젊음의 행진'이라는 쇼 프로그램의 MC 제안을 받고서 고사하다가 여성 MC가 하희라 씨라는 말만 듣고 곧바로 허락했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코너의 DJ를 맡았을 때는 내가 먼저 그녀를 공동 DJ로 추천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 두 사람은 무려 6편의 청춘영화에 함께 출연했고, 그 와중에 사랑을 키웠다. 아이들만 해도 그렇다. 결혼하고 세 번이나 유산한 끝에 출산했기에 너무나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행운과 행복이 쉽게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사실 최수종의 인생은 모죽(毛竹)을 닮았다. 모죽이라는 대나무는 주변의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처음 5년 동안은 겉으로 전혀 자라지 않는다. 다만 땅 속으로 깊이 깊이 뿌리를 내리며 성장을 준비할 뿐이다. 그렇게 5년의 준비를 끝낸 뒤에는 갑자기 하루에 70cm씩 쑥쑥 자라 6주 동안 30m나 성장한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돌아가시자 행복했던 우리 가족에게 가난과 설움의 고통이 엄습했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던 나는 학비는커녕 생활비조차 구할 수 없어서 굶기를 밥먹듯이 했다. 어쩔 수 없이 고국으로 돌아와 길거리를 전전하며 하나님과 부모님을 무던히도 원망했다. 그러다가 한 노숙자가 전해준 신문지 한 장의 온기를 맛본 뒤 새로운 인생을 살 것을 결심했다. 어머니를 단칸방에라도 모시기 위해 용산구청 신축공사 현장에서 벽돌을 나르는 등 안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나에게 과외를 받던 고3 여학생 아버지(방송국 간부)의 소개로 KBS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주연 최재성, 최수지)에 출연하는 행운을 얻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신인으로 출발했지만 우연히 주연을 맡으면서 스타가 됐다."
천국에서 사용하는 7가지 언어
사람들은 대중스타의 화려한 겉모습만 본다. 하지만 최수종은 스타가 된 뒤에도 한동안 지하 단칸방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파라과이에서 거주하던 동생의 생활비를 대는 등 가장의 역할을 담당해야 했던 것이다. 정식으로 연기공부를 하지 못했던 터라 남들보다 많은 노력도 기울여야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 당시 그가 체득한 생활의 진리였다.
"사람들은 나에게 날씬해 보인다고 부러워하지만 드라마에 출연하려면 지금보다 살을 더 빼야 한다. 실제로 '대조영'을 촬영할 때는 평소보다 8kg이나 감량했다. 문제는 그렇게 해도 화면에는 내 얼굴이 동글동글하게 나온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사극에 어울리는 목소리를 내지 못해 녹화 전날이 되면 하루종일 소리를 질러서 목이 쉬게 한 적도 있다. 최근 출연한 연극 '대한국인 안중근'에서 내가 10분 동안 쉬지 않고 독백하는 장면을 보고서 '어떻게 그렇게 긴 대사를 외우느냐'고 놀라는 분들이 있는데, 대사를 완전히 소화할 때까지 수천번이라도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전체 상황과 흐름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그 속에 내가 실제 인물이 되어서 들어가는 나름의 방법을 쓰고 있다. 정말이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
<명심보감>에는 '남자실교 장필완우(男子失敎 長必頑愚) 여자실교 장필추소(女子失敎 長必醜疎)'라는 구절이 있다. 배우지 않으면 남자는 완고하고 어리석어지고, 여자는 거칠고 솜씨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최수종은 이 구절을 직접 소개하고 "나의 배움은 끝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받았던 사랑을 이제는 돌려줄 때가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꼭 하는 말이 있다. 외국의 어떤 학자가 소개했던 '천국에서 사용하는 7가지 언어(The seven languages used in heaven)'가 바로 그것인데 항목은 다음과 같다. (1)미안합니다(I'm sorry) (2)괜찮아요(That's okay) (3)좋아요(Good) (4)잘했어요(Weldone) (5)훌륭해요(Great) (6)고마워요(Thank you) (7)사랑해요(I love you). 나는 '뒤집어 생각하라'는 말도 좋아한다. 실제로 '자살'을 뒤집으면 '살자'가 되고, 'NO'를 뒤집으면 'ON'이 된다. 나아가 '수고했다'는 말을 바꾸면 '고수가 됐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 미덕의 언어와 역발상이 모인다면 세상은 아름답게 바뀔 것이다. 부자가 기부하고 봉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한다면 그것이 바로 나눔과 배려가 아닐까."
정리 = 정지환 lowsaejae@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