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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76편)
20200908
※♡
천진보살이 미륵궁에서 내려오니 무착보살이 묻되 "경에 말씀하시기를 '인간의 四백년이 그 하늘의 일주야(一晝夜)라, 미륵이 잠깐 동안에 五 백억 천자들을 깨우쳐서 무생법인을 증득하게 한다. " 하셨는데 무슨 법을 말씀하셨는가?" 하였다. 이에 천진이 대답하되 "그저 그런 법을 말씀하십디다. 그저 범음이 맑고 우아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듣기 좋게 합디다." 하였다.
<주석>
1. 이 이야기는 미륵하생경에 있는 이야기
2. 미륵궁 - 도솔천의 내원궁..
3. 무생법인 - 생멸이 없는 실체를 증득하는 지혜.
4. 범음 - 부처님의 음성.
5. 일주야(一晝夜) - 하루, 24시간을 뜻함..
<천진보살>
천진보살(天親菩薩)은 부처님이 열반(涅槃)하시고 약 천년(千年)뒤에 인도(印度)에서 태어나신 분으로 학문(學問)에 아주 뛰어났다 한다.
처음에는 소승(小乘)법(法)을 익히시어 대승법(大乘法)을 믿지아니했지만.
맏형(兄)인 무착보살(無着菩薩)의 권유로 대승법(大乘法)을 믿고 크게 대승법(大乘法)을 펼치게 된다.
둘째형(兄)인 사자각보살(獅子覺菩薩)도 역시 출가(出家)하여 모든 경전(經典)에 박통(博通)하여
그의 지혜(智慧)와 재주는 세상(世上) 사람이 아무도 따라 할 사람이 없을 만큼 크게 뛰어난 분이셨다고 전해진다.
,
여기서 말하는 일주야(一晝夜)란 하루 24시간을 이르는 말이랍니다..
또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四 백 년이 그 하늘의 일주야(一晝夜)라,"라는 내용은
깨닫고 실제로 본성을 관찰해 보면 그 자리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답니다.
여기서 말하는 四 백 년이니.. 일주야(一晝夜)니 하는 내용들은 중생들의 입장에서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방편으로 한 이야기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실제로 그 자리는 과거는 물론이고 미래 또한 없는 오로지 현재 이 순간만 존재하는 곳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러니 四 백 년이니, 하루 24시간이니, 하는 말들도 사실은 맞지가 않는 이야기이지만 중생들에게 표현을 하자니 이렇게라도 표현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인데요..
실제로 보여 줄 수도 없고, 증명하기도 어려운 것이라 이런 것이 좀 일반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이야기일 건데요..
그래서 실제로 깨닫고 보시라는 이야기랍니다..
그러면 본문 내용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ㅡ
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방긋)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방긋)
오늘 본문 내용은 아주 중요한 내용이 나왔네요..
견성과 성불을 아주 명확하게 나열한 내용이기도 하고, 본성의 세계관을 잘 묘사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견성만 말할 뿐 성불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라는 이야기가 얼마나 잘 못 된 이야기인지에 대한 내용이기도 하답니다..
왜냐하면,
"깨우쳐서 무생법인을 증득하게 한다. 가 오늘 이야기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생법인을 증득했다는 내용이 성불을 이루었다는 내용과 같으니까요..
,
따라서 오늘 본문 내용의 핵심은..
(※)
"깨우쳐서 무생법인을 증득하게 한다." 입니다.
,
말 그대로
깨우쳐서, 견성을해서.. 무생법인 즉 생과 사가 없는 불성을 증득하게 한다. 란 뜻이랍니다..
이 두 가지 중에서 우리가 가야 할 최종 목적지는 본문 내용처럼 불성을 증득하는 것에 있답니다..
그러자면 먼저 본성(마음)을 볼 줄 알아야 한답니다..
이 공부는 바로 그 마음자리에서부터 시작을 하시는 것이랍니다..
,
(※)
깨우치려면 현재 이 순간에 깨어 있어야 한답니다.
그리고 마음(본성)을 알아차리셔야 한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란 여러분들이 수시로 느끼고 있는 그 마음을 말한답니다..
그것을 보고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을 해 보십시오.
,
이 내용만 보아도 앞전에 말씀드린 "우리는 견성만 말할 뿐 성불은 이야기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얼마나 크게 잘 못된 가르침인지 알 수가 있는데요..
이 글을 보시는 분들 만큼이라도 오늘 본문 내용처럼 성불을 이루는데 그 목표를 가지셔야 한답니다..
그리고
성불을 증득하려면 마음을 비우고 버리셔야 한답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이런 이야기랍니다.♡
쉽게 말해..
(깨우쳐서)가 [견성]을 말하는 내용이고,
(무생법인을 증득) 했다는 내용이 '성불' 즉 '불성을 증득' 했다는 내용이랍니다..
아니라 하시는 분들은 여기까지 가 보지 못하신 분들로 보시면 된답니다..
아주 미미한 차이 같지만 불법에서는 이 미미한 차이가 삼천대천(三千大千) 세계보다 훨씬 더 큰 차이가 있답니다.
그리고 천진보살은 본인의 깨달음만을 추구하던 소승적 관념의 소유자였답니다..
그러나 형인 무착보살의 권유로 성불을 이루고 대승의 길로 들어서게되지요..
깨달음이란 본래 성품을 보고 아는 것을 말한답니다..
이것은 [소승]에 불과하답니다..
작은 마음에 불과하답니다.
이 법은 보고 공이라는 것만 아는 것에서 끝나는 법이 아니랍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그 자리는 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작은 깨우침에 불과하답니다..
이 단계만 되어도 어느 정도 마음의 평화는 이룰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아직은 마음에 쥐고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불성을 증득할 수 없는 것이랍니다..
부처님 말씀처럼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거기서 안주하는 것이지요..
달랑 견성만을 이루고 소승 법에만 얽매여서 작은 마음으로 이 법을 펼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보시면 된답니다.
그 증거는 수도 없이 많답니다..
현재의 모습들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성불이란 해탈 즉 모든 마음을 여인 상태, 즉 모든 마음을 비우고 버려진 상태를 말한답니다..
여기서 큰마음이 비로소 스스로 일어나게 되지요..
이것이 [대승] 이랍니다..
아주 큰마음이지요..
이 마음은 중생들을 먹이고 입히는 마음이랍니다..
지금처럼 중생들의 고혈을 짜 내는 자리가 아니랍니다..
이 마음은 어떻게 하면 중생들의 마음을 평안케 할까.. 하는 마음이랍니다..
부처님의 큰 가르침을 확실히 보고 알아야 한답니다..
이 마음은 중생들의 마음을 챙겨주고, 도반들 마음을 챙겨주고, 제자들 마음뿐만이 아니라. .
죽어가는 날 짐승들 마음까지 알뜰하게 챙겨주는 그런 마음이랍니다..
견성만 이룬 사람들의 마음에서는 도저히 이런 마음이 일어날 수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본문 내용처럼 ..
보고 알고만 있을 뿐 큰마음을 아직 증득 못했기 때문에 큰 마음을 쓸 수가 없는 거랍니다..
아직은 육체의 평안함과 금은보화 즉 돈에 얽매여 있을 수밖에 없답니다..
이 마음은 금은보화 즉 돈을 추구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랍니다.
이런 마음은 [소승]의 마음이랍니다..
대승의 마음이란 금은보화 즉 돈을 중생들에게 풀어서 구제를 하는 마음이랍니다..
대승의 마음이란 중생들의 괴로운 마음을 구제해 주는 마음이랍니다..
대승의 마음이란 중생들에게 무엇이든 더 해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랍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내용의 주인공들의 이야기처럼 깨닫기만 한 소승들과 무생법인을 증득한 대승들과의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답니다..
이것은 비판의 목소리가 아니랍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이랍니다..
(본문 내용은 여기까지 입니다..^^ 오늘 부록 내용은 오늘 본문 내용을 연관 지어 '도인' 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질문이 들어와서 그에 대한 답변을 같이 해 보겠습니다..)
(부록 내용은 보셔도 되고, 안 보셔도 크게 지장이 없답니다..^^♡)
ㅡ♡
(부록)
질문 내용부터 답변드리겠습니다..
이번에 연꽃이 활짝 피신 거사님의 질문인데요..
(질문)
"질문합니다
대행선사말씀중에
나고지고하는것이
한구멍이라했습니다
가령
아픈곳이어깨라면
어깨가 아픈것이
생기고 그자리에서사라지는것이 ...
맞는지요
태어나는그자리에죽는것도
그자리에서하는건지요..
맞는다면
그자리에서
관하여보면됩니까?
라는 질문인데요..
(답변)
네 맞습니다.
그 자리에서 관하여 보면 된답니다..
모든 만물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살아진답니다..
대행스님 말씀처럼..
어깨가 아프다면 그 아픈 것이 머리 쪽에서 살아질 순 없겠지요..
태어나고 죽는 것 또한 본성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살아지지요..
이것이 윤회의 참뜻이랍니다..
사실은 일어나고 살아지고도 없답니다..
육체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는 이 육체가 요물단지랍니다..
그 자리는 늘 그 자리에서 여여하니까요..
이것을 잘 관찰해 보십시오..
(끝)^^♡
그 외에 분들도.. 혹시..
공부에 관한 내용이나..
인생에 관한 상담이 필요하신 분들이 있으시면 무료 상담을 받고 있으니 전화 상담이든 문자 상담이든 만남이 되었든 문의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만남은 저도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 일주일에 한 번씩 쉬는 날짜를 맞추어서 서로가 시간을 맞추면 될 것 같고요..
왜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있잖아요..^^♡
편하게 앉아서 서로의 괴로움이나 아픔 등을 서로 나누어서 고민해 보자는 거지요..
상담 내용이 공부에 도움이 되겠다 싶으면 상대의 동의를 구해서 같이 공유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것은 극히 드문 일이고요, 대부분의 상담 내용은 비밀로 하고 있으니 다른 걱정은 안 하셔도 된답니다..
많이 이용 바랍니다..
ㅡ
오늘 부록 이야기는 도인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음...
그동안 저는 [선문염송]을 여러분들과 같이 보면서 느끼는 것은 [선문염송] 내용들이 종류별로 묶여져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요..
[선문염송]의 이야기의 내용 순서가 초기 부분에는 부처님 이야기로 시작으로 해서 뒤로 가면서 여러 제자들의 불성에 관한 이야기들로 이어지다가.. 다음은 바라밀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지다가 지금은 불성을 보고 깨닫는 것과 불성을 증득하는 순서로 이뤄지고 있는데요..
다음 이야기는 또 어떻게 이어나갈지 저도 궁금하답니다,
사실 저도 여러분과 똑같이 하나하나씩 보고 있는데요..
지금 같이 보고 있는 [선문염송]은 총 1462편으로 꾸며진 책인데요..
지금처럼 일주일에 한편씩만 나가도 총 28년 정도가 걸리는 분량이네요..^^
어차피 저는 [법화경]과 [유마경]과 더불어 이 [선문염송]도 죽는 그 순간까지도 저의 수행의 모태로 삼고 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30년이 걸리든 50년이 걸리든 볼 때까지 보다가 가면은 된다.. 라는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크게 상관은 없는데요..
아무튼 어디까지 가든 끝까지 가보는 거지요.. 뭐, ^^♡
여러분들도 마음 자세를 이런 마음으로 서둘지 마시고 천천히 꾸준히 가 보시길 권해드리고 싶고요..
아무튼 오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쓰다 보니까 너무 길어져서 보시는 분들이 식상해 하실까 봐 두 번으로 나누어 보내드려 보겠습니다..^^♡
ㅡ
여러분들은
도(道)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도(道)가 뭐지요..?
도(道)의 한자적 의미를 보면 (길)이란 뜻인데요..
어떤 (길)을 말하는 걸까요..?
ㅡ
(도)란 한 마디로..
[보살들이 가는 길]을 뜻한답니다..
깨달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말한답니다..
넓은 범위에서는 수행자들이 가는 (길)을 말한답니다..
그리고
성불을 증득한 사람들이 가는 길을 말한답니다..
그리고 도인들이 가는 그 (길)은 ..
꼭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고..
꼭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답니다..
그에 대해서는 부처님이 [도성제]에 함축해서 잘 설명해 두셨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 인데요..
이 길도 세상사만큼 많은 길이 있다 보니..
대표적인 것만 골라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ㅡ
도(道)라는 어원을 저는 부처님이 설하신 도성제(道聖諦)에서 그 어원을 찾고 있는데요..
저는 불교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원까지 들먹이는 것은 좀 거시기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부처님이 설해 놓으신 그 참된 뜻이 더 중요하다. 하겠으니 한번 도(道)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
이 도성제(道聖諦)는 살펴보는 것을 뜻하는 내용이랍니다..
그리고
살펴 본 바를 (행) 하는 것을 뜻한답니다..
이 (행)하는 것이 도인들이 가야 할 (길)이랍니다..
도인들의 삶은 대부분 살펴보고 행하는 삶이랍니다..
물론 나머지 수행도 이어나가면서 늘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중생들의 고단한 삶과 괴로움을 살피면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비추어 보고 중생들이 어리석은 길로 빠지지 않고 갈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해 주면서 될 수 있으면 이 법을 전하면서 자신을 희생하고, 아낌없이 중생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바로 모든 도인들이 가야 할 길이라 할 수 있답니다,
왜냐하면 그런 마음이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 진정한 도인의 마음이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도성제 안에 들어 있는 내용들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거나, 행하지 않거나, 비추어 보고 아는 것들을 알려주지 못하는 도인을 어디에다 써먹겠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자를 어떻게 도인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소승을 못 벗어났다. 하는 것이랍니다..
오늘 본문 내용처럼 도인이라 하는 사람들이 대승의 마음을 증득 못 했는데 없는데 어떻게 대승을 펼칠 수 있을까요..
안 그런가요..?
선문답 같은 것들을 잘 푼다고 해서 도인이라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선문답의 본질은 하나의 뜻만 알면 누구나 풀 수 있는 그런 것이랍니다..
선문답이야말로 소승적 관점이랍니다..
선문답이란 그 사람의 공부가 어느 정도 여물었는지 정도는 대략 파악해 볼 수는 있어도 도인이라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이야기랍니다..
대승이란 큰마음을 뜻한답니다..
지금이라도 빨리 종단에서는..
또는 모든 도인들이 나서서..
하다못해 종로 한복판에다..
또는 대도시에..
또는 소도시에..
무료급식소나, 무료 진료소 등을 꾸려서 대승의 면모를 보이셔야 한답니다..
큰마음을 보이셔야 한답니다..
아직도 이 땅에는 음지에서 헐벗고, 괴로워하는 중생들이 많이 있답니다.
그동안 천년을 넘게 이어온 한국 불교가 백 년 정도 된 이웃 종교들에게 침식 당하는 동안 종단이나 도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답니까..
그러고도 지혜를 운운할 수 있으며..
그러고도 도인들이라 자청할 수 있겠습니까..
현재 하고 있는 꼴들을 좀 보십시오..
이것이 제가 현 도인들에게 던지는 화두인데요..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도인들에게 하는 말이지 여러분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랍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글을 보시면 좋답니다..
,
이렇게..
내 마음도 살펴보고,
다른 사람들 마음들도 살펴보고..
각자의 삶도 살펴보고..
전생도 살펴보고..
미래도 살펴보고..
죽은 중생들 마음도 살펴보고..
우주도 살펴보곤 하지요..
도인들도 각자마다 살림살이가 다르답니다..
병원에도 내과, 외과, 안과, 가 있듯이 도인들 세계에서도 자신들이 잘 비추어보고 아는 부류가 조금씩 차이가 있답니다.
부처님은 이런 모든 것들을 종합적으로 비추어보고 아시고 치료해 주시는 종합병원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그래서 부처님을 큰 의원으로 비유하기도 하답니다..
그 이하 도인들은 종합적인 것은 대강 알지만 실제로 행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도력에 따라 몇 개 안 되고요..
이것을 옛 분들은 도인들의 '살림살이'라고 비교해서 말씀하셨는데요..
이 사림살이가 가장 많으신 분이 부처님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병원 안에서도 내과, 외과, 안과 등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각각의 의사들이 전문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인체해부학 등과 같은 기본적으로 익히는 공부는 모두 같듯이..
도의 세계에서도 자신들의 살림살이가 다르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일어나는 마음과 수행은 다를 수가 없답니다..
이 기본적인 것이 바로 [도성제 ] 안에 있는 것들이랍니다..
이렇게 [도성제] 안에 있는 것들은 도인들이 각자의 살림살이를 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의사들이 공통적으로 알고 있고, 행하고 있는 것처럼, 도인들 또한 공통적으로 만물을 비추어보고 행하고 지켜나가야 하는 거랍니다..
참으로 [도성제] 같은 것을 설하신 것을 보면 부처님도 얼마나 많은 마음을 관찰하시고 설하신 내용인지를 저도 바로 느낄수 있는 대목인데요..
아무튼 부처님이라는 분은 저도 직접 따라 해 보면서 느끼는 점은 감탄을 금한 수가 없는 그런 건데요..
제 경우는 처음 이 대목을 듣고 제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더욱 왕성해졌는데요..
"그래 맞다.. 도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도성제 내용이지만, 우리는 그동안 제대로 지키고 행하지 못하고 살고있지 않았던가..? 이것은 도를 증득한 사람이라면 누구도 빠짐없이 행해야 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도인들의 지침서와 같은 것이다.."
라는 문구가 저의 마음에는 일어났는데요..
예를 들어..
일반 중생들의 삶에서도 "파란불은 건너고 빨간 불은 건너면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지만 누구나 다 치키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도인들도 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답니다..
깨닫고는 알고만 있지, 행할 힘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도인들의 (길)은 이러해서는 안 된답니다..
부처님이 제시해 준 [도성제] 안에 있는 기초들부터 지키면서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성(불성/성령/마음)의 기능은 알아차림이 있답니다..
이 알아차림이 또한 (도)의 길이랍니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도인은 그것은 그 무엇도 아니랍니다..
중생(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들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힘들어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배고픈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병들고 괴로워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병들고 죽어가는 마음 등을 알아차려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평안케 하는 것이 도인들이 가야 할 (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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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알아차림에 대한 이야기를 (앎)이라는 단어로 말씀하시고 계시는 분이 있는데요..^^
김기추 거사라는 분이 있었답니다..
이 분은 우리와 같이 공부하고 계시는 정묵 거사님이 얼마 전에 제게 유튜브를 들어보라고 소개해 준 분인데요.
잊고 있다가 생각나서 엊그저께 두 편 정도 법문을 들어보니 육성이 남아 있는 분들 중에서는 제일 좋았답니다..
이 분은 분명히 그 자리를 보시는 분이고, 그 자리에서 살면서 행하면서 사셨던 분이라고 저는 비추어보고 알 수가 있었는데요..
제 경우는 먼저 마음자리를 알고 뒤늦게 부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인 경우라 불교 쪽으로는 친구들도 없고, 만나본 스님들은 많이 있지만, 알고 지내는 스님들은 거의 없는 경우인데요..
이런 저에게 고맙게도 도반 분들이 이것도 한 번 봐라.. 저것도 한 번 봐라 하면서 가르쳐 주니 저로서는 너무 고맙고 행복하답니다..^^♡
아무튼 김기추 거사의 이력을 찾아보니까..
이 분 또한 죽기 직전에 살아나신 분이시네요..
도인들 삶을 뒤돌아 보면 이런 분들이 아주 많이 있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 직전에 처하게 되면 마음이 많이 부드러워진답니다..
이때 이 법이 뿌리내리기가 좋아진답니다...
왜냐하면 모든 모든 것을 내려놓기가 좋은 마음 상태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 법은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내려놓는 것이 최종 목적지이거든요..
간화선을 하시는 분들은 화두를 완전히 타파를 하셔야만 하고요..
아무튼..
이 분 연세가 저의 아버님보다 열 살이 많으셨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제 경우는 어른들의 언어표현을 비교적 잘 알아듣는 편인데요..
저는 이분의 법문 내용을 들으면서..
저의 아버님처럼 약주를 좋아하셨다 하니 살아 계셨다면 당장이라도 막걸리 한말 들고 내려가서 이 분의 마음 이야기나 실컷 듣고 싶었는데요..
육성이 남아 있는 분들 중에서는 알아차림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 분이셨고, 알아차림이 있으신 분이라면 도인의 길을 잘 걸어가신 분이라고 저는 보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이 마음의 알아차림이 (지혜)의 원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알아차림이 있는 도인들의 (길)은 양심을 속이면서 살아갈 수가 없거든요..
왜냐하면
손오공의 머리띠인 [금고아]처럼 도인들의 마음은 양심을 속이는 그 순간부터 마구마구 조여오는 그 마음의 고통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한 것이 없는 도인들은 모두 가짜 도인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왜냐하면 없을 수가 없거든요..
(도)가 없는데 어떻게 (도의 길을 갈 수가) 있겠습니까..
김기추 거사는 (지혜)를 (슬기)라는 표현으로 말씀하시고 계시는데요..
이러한 표현은 시대마다 표현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랍니다..
이렇듯 100년의 세대 차이에 있어도 이렇게 표현 문화가 다른데 5000년, 2500년 또는 1000년의 세대 차이의 그 당시 사람들의 표현 문화를 이해하려고 할 때에는 그 당시 시대적 배경과 환경을 이해 못 하면 엉뚱하게 해석을 할 염려가 많답니다.
음..
육성이 남아 있는 분들 중에..
김기추 거사 외에도 제가 손으로 꼽는 분이 있다면..
대행스님, 서암스님, 종범스님 정도로 저는 보고 있는데요..
물론 그 외에도 많이 있겠지만..
이분들의 법문을 들어 보면 전혀 꾸밈이 없는 순수한 자신들의 이야기들이 듬뿍 들어 있었기 때문인데요..
이것이 김기추 거사가 말씀하시는 (자기 살림살이)랍니다..
그러나 현자에 있어서는 남의 살림살이로 법문을 하시는 분들도 많고, 모든 법문 내용을 한문으로 도배를 하시면서 법문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분들도 많으신데요..
이러한 형태는 자신의 살림살이가 없기 때문에 남의 것들을 빌려서 쓰기 때문이랍니다..
알고만 있는 것(견성)과 실제로 행하면서 가는 (길)은 그 차원부터가 다릅니다..
실제로 행하면서 가는 도인의 (길)은 괴롭고 험난할 때가 더 많이 있지요..
이렇게 괴롭고 험난한 길을 갈 수 있는 원천의 힘은 불성을 증득한 힘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불성만 보고 아는 것과, 불성을 증득하고 가는 도인들의 (길)은 큰 차이가 있다고 하는 것이고요..
대안선사와 원효대사의 삶을 한 번 들여다보십시오..
당대에 최고의 선지식인들로 손 꼽히던 분들이지만..
이들의 마음은 항상 굶주리고, 배고프고, 병들고, 죽어가는 중생들의 마음에 항상 가 있었던 도인들이랍니다..
히루는 원효대사의 스승인 대안선사가 젖동냥을 하러 다니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를 보고 "저 늙은이가 망령이 나서 어디에서 씨를 뿌렸다."고 하는 말을 듣고 제자인 원효가 "그럴 리가..?"하면서 대안선사의 뒤를 밟았답니다..
그랬더니 어느 작은 토굴로 들어가더랍니다..
자세히 보니 산 짐승들 새끼들에게 동냥해온 젖을 먹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원효는 바로 무릎을 꿁고 자신이 오해를 했다고 용서를 비는 내용이 있는데요..
부모가 죽고 길 잃은 어린 산 짐승들을 동냥을 해서 먹이는 대안선사의 그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실행에 옮기는 그 (힘)..
이것이 진정한 도인들의 (길)이요..
도력의 (힘)이요..
진정한 대승의 참 모습이랍니다.
바로 그 마음이 대승의 마음이요..
바로 그 마음이 도인들이 가야 할 도의 (길)이랍니다..
김기추 거사의 경우도..
뵙지는 않았지만 법문 내용만 들어보아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인데요..
그 이유는 같은 자리를 보고 있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같은 도인들끼리는 그냥 보면 서로가 어느 정도인지 금방 안답니다..
그러나 잠에서 덜 깬 도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가 힘이 들지요..
친한 벗을 만나면 천 잔의 술과 천 마디의 말도 모자라지만..
답답한 벗을 만나면 한 잔의 술과 한 마디의 말도 차고 넘쳐서 감당이 안 되는 것과 같답니다..
왜냐하면 본인들이 보고 알고 있는 것들이 전부인지 착각하고 있거든요..
오늘 들으실 김기추거사의 내용도 이런 이야기랍니다..
도인들끼리도 살림살이가 모두 틀려요..
어떤 도인들의 법문을 들어보면..
이분들처럼 자신들의 이야기는 전혀 없답니다..
전부가 남들 이야기들뿐이에요..
어떤 사람은 육조로 시작해서 육조로 끝나는 사람도 있어요..
장장 두 시간을 말이지요..
본인의 마음 이야기는 언제 나오나 지켜보면 전혀 없어요..
본인들 살림이 전혀 없는 것이지요..
이런 분들 아주 많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도인의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일단은 힘이 없는데..
도인의 (길)이란 마음에 그 어떠한 걸림도 없이 가는 그런 길인데..
이것저것 모두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많으신 분들이 어떻게 도인의 길을 갈수 있느냐는 얘기입니다..
자신의 노후도 돌봐야 되고..
원효나 대안선사처럼 고생길을 가자니 그럴만한 힘이 없는 거예요..
배부르고 등 따스한 곳에서 무슨 도를 편친 다는 겁니까..
중생들은 밖에 있는데..
저도 도인이 있다 그러면 많이 찾아 다니는 편인데요..
찾아가서 법문 내용이나 대화를 나눠보면..
이건 내가 불교 지식을 들으러 온 건지..? 본인의 마음 이야기를 들으러 온 건지..? 헷갈릴 때가 많이 있답니다..
어쩌다가 저의 마음 이야기를 들려주면 통체로 알아듣지를 못해요..
그런 게 어디 있느냐는 거지요..
못 보고 모르니 모를 수밖에요..
이런 도인들 많습니다..
이것은 비판이 아니랍니다..
현실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어떤 도인은 반말로 시작해서 반말로 끝나는 도인들도 있어요..
그것도 어른들 앞에서..
그 자리는 도저히 반말이 나올 수 없는 자리거든요..
왜냐하면..
중생들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것이 또 도인의 (길) 이기도 하답니다..
왜냐 하면
자꾸 중생들이 눈에 밟히거든요..
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한없이 머리가 숙여지고, 중생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뭐라도 하나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는 그런 자리가 바로 그 자리랍니다..
어디서 삼배를 청하고..
어디서 반말로 법문을 합니까..
물론 도인들도 한 번 안되겠다 싶으면 침착함 속에서도 무서움이 있지요..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생들이 당하고 있을 때나 그렇지 평상심에는 그러한 마음은 일어나지를 않는답니다..
이런 의미에서 ..
오늘 동영상은 김기추거사의 동영상을 한 번 같이 들어보시겠습니다..
옛날에 녹음해서 그런지 말소리가 조금 작은 것이 흠인데요..
저는 스피커로 들으니 좋았는데요..
작아도 한 번 조용한 곳에서 들어보십시오..^^
이분의 법문 내용은 본인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답니다..
끝부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답니다..
"일반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는 것들은 모두가 망상이거든요..."
"이놈이 어디서 왔느냐 하면 진심에서 왔거든요.."
"참 마음에서 온 거란 말이에요.."
"이게 참 묘한 겁니다.."
우리 시대와는 좀 차이가 나는 분들이라 표현이 우리완 좀 다르게 들릴 수 있는데요..
이분들 시대에 맞추어서 한 번 들어보십시오..
예를 들어
이 분은 (지혜)를 (슬기)라는 단어로 쓰는 것 등인데요..
다 같은 뜻이랍니다..
수행에 힘쓰시는 분들은 이 분의 동영상 내용을 많이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동시대에 사셨던 분들 중 전강스님도 계시는데요..
저는 이 두 분의 법문 내용을 들어보고 느끼는 것을..
하늘을 나는 새로 비교해 보았는데요..
전강스님을 (까마귀)라 한다면 김기추 거사는 (공작새)로 저는 비교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이 두 분의 마음자리를 비추어보면..
전강스님은 까마귀처럼 지혜는 있으나 아름다움이 부족하고..
김기추 거사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공작새 같은 사람이라고 저는 비추어지기 때문입니다..
또
도인들이 가는 (길) 중에 하나는 비추어보는 것이 있답니다..
세상 만물을 비추어 보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신통력(神通力)이라고도 하고,
불교에서는 이것을 육신통(六神通)이라고 한답니다..
이 말은 "신(神)과 통했다."라는 뜻인데요..
이 내용은 부록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다음편에 다시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