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積
홍경나
후박나무 그늘이 두어 발 밑자리를 옮기자 그 아래 쪼그려 앉아 깔래 받기 하던 가랑머리 계집아이들 시나브로 자리를 옮겨 앉는다
멍울멍울 멍울 진 꽃눈 패듯 이랑이랑 물이랑 메밀꽃 일듯 떼로 내려앉은 참새 박새 곤줄박이 콕콕콕 청태 낀 그늘을 헤집는다
다저녁 갈쌍갈쌍 새앙 뿔 같은 햇살이 성기게 지나간다
한 되지기 또 한 되지기 너겁지듯 주먹 쥐고 구구 뚝 잘라 아퀴 짓듯
빈 데마다 그늘이 쌓인다
소묘素描
제일 친하다고 생각했던 그이였다 61년 신축생 나이가 같고 고향이 같고 함께 붓던 삼 년짜리 적금을 털어 스페인과 동유럽 여행도 같이한 그이였다 모딜리아니와 베르나르 뷔페를 좋아하고 평양냉면을 즐기는 식성도 빅토리아풍의 엔틱을 모으는 취미까지 같았다 코로나19로 그이를 못 본 지 한참 만에 가진 브런치 자리 뜬금없이 그이가 묻는다 “경나씬 영우씨와 제일 친하지 않았어요?”
…… 도통 글러 먹은 글씨 위에 박박 그은 화이트수정테이프처럼 애먼 그리움이 뭉개졌다 더 이상 통통거릴 필요가 없어진 수사들이 버르적거리며 주춤거리며 허름한 변두리처럼 나가 떨어졌다 우물쭈물 어림치 재미는 더불어 난처해졌고 느닷없이 비밀을 알아차린 중간치 준법은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 빙그르르 중력이 파뜩 개구멍만 해지더니 삐뚜루미 삐뚜루미 겨우 낯짝을 숨겼고 물색없이 샐샐 헤프게 엉너리를 떨던 오늘 치 부침은 뎅겅 끊어졌다 그 사이 돌아온 석양의 무법자 같던 그이도 꽁무니를 실실 어떤 대답을 할까 전전긍긍 어떤 대답을 하기는 해야겠는데 한사코 애면글면 내가 통째로 사라졌다…… 물큰 솟치는 시큼한 홀랜다이즈소스 냄새 때문에 똑 떨어진 입맛 때문에 배부른 강아지
히물쩍 멀찌감치 놓인 커피잔을 당겨 죄다 식어빠진3 커피를 한 입 마시는데 꿀꺼덕! 커피 넘기는 소리가 꼭 무단히 울린 화재경보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