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하루는 휴가를 내어 큰 아들과 서울 시내를 둘러 보았는데, 아들에게 가고 싶은 곳을 물으니 대학로, 교보문고, 명동을 이야기하여 한꺼번에 이 세군데을 다녀왔습니다.
전철을 타고 나오면 대학로 입구에 있는 조형물
샘터 파랑새 극장
교보문고 입구
아래 사진들은 명동성당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설명>
명동성당은 코스트(Coste) 신부가 설계하였고 파리선교회의 재정지원을 얻어 건립되었다. 본래 순교자 김범우의 집이 있던 곳으로, 블랑주교가 김 가밀로라는 한국인 명의로 사들였다. 그후 1887년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 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1898년 완성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로 쌓은 교회이며, 순수한 고딕식 구조로 지어졌다. 평면은 십자형이며 본당의 높이는 23m, 탑의 높이는 45m이다. 고딕양식의 장식적 요소를 배제하면서 그대로 본떴고, 공간의 고딕적 느낌은 외부보다 내부에서 더 강하게 주어졌다. 건축에 사용한 벽돌은 우리 나라에서 만든 것으로, 그 모양이 20여종에 달할 뿐 아니라 색깔도 붉은 것과 회색 2종류가 있다.
이 소나무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묵묵히 서 있습니다.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 이런 문구가 있네요
초하나 켜는데 1,000원 (아들과 하나씩 켜고 소원을 ...)
성모무염시태(聖母無染始胎)
* 설명 : <가톨릭> [같은 말] 원죄 없는 잉태(성모 마리아는 잉태하는 순간부터 하느님의 은혜와 특권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원죄의 흠이 없이 보존되었다는 교리).
한국 초대신부 김대건 신부
<설명> 성 김대건 안드레아(Andreas)는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 마을에서 태어났다. 1845년 상해로 가서 8월 17일 페레올 고 주교 집전으로 신품을 받았고, 그곳의 만당(萬堂) 소신학교에서 첫 미사를 드림으로써 조선교회의 첫 사제가 되었다.
김 신부는 사제생활 1년 1개월만인 1846년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때 김 신부의 나이는 26세였다. 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큰 아들 용ㅇ 의 인증샷
제목 : 사형선고 받으심, 작가 : 장동호
출입구
큰 출입구는 대부분 닫혀있어 옆문을 통해 출입 함
성당 내부 (어두워 잘 나오지 않았지만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 올림)
명동 거리 - 평일 낮시간이라 붐비지는 않았지만 외국인들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성당을 둘러보고 집으로 오는 길에 본 명동거리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날씨가 쌀쌀하여 커피솦에 들러 따끈한 커피를 사서 마시면서 구경을 하였는데, 길거리에는 중국 관광객들이 많았으며
화장품 가게 앞에는 중국말로 호객행위를 하는 아가씨들이 많았습니다.
첫댓글 컴으로 나마 오랫만에 조카얼굴보니 흐뭇하고. 부자간에 다정한 나들이도 참 행복해 보입니다.근래에 더좋은 소식 기원해 봅니다.성탄절을 10일 앞둔 이곳은 어딜가나 사람들로 붐비네요. 어떨땐 차량이 막혀서 시간낭비도 곱으로 되고...두번째의 대림절을 축하드리면서 많은 안부함께 전합니다. 소포 감사하며 잘 받았습니다.
장남이 많이 자라서 총각? 같습니다~ ㅎ
원하는 대학에 입학을 하는지요?
그리고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
라는 글귀가 너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요? 궁금~~ㅎㅎ
좋은 자료 감사히 보고갑니다.
즐거운 나날이시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