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가장자리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대 항해 시대의 막을 열고 대 지진의 풍랑 속에서 꿋꿋하게 되살아나 역사를 이어온 곳, 격랑의 근대화가 남긴 흔적이 아로새겨진 땅, 그리스 신화에서는 이를 가르켜 오디세우스의 도시(오리시포), 현지에서는 Lisboa라 부른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도시는 BC 12세기에 페니키아 인들이 건설했고, 그 후 그리스인, 카르타고인, 로마인, 서고트 족, 이슬람 교도 등이 번갈아 이 도시를 장악하고 지배했다. 그 뒤 알폰소 3세가 국토회복을 완료하고, 1243년 리스본을 수도로 정한 뒤 대 항해시대의 포르트갈 전성기가 이 리스본을 중심으로 꽃을 피웠다.
15세기 중엽부터 해외 식민지에서 흘러 들어오는 재물들로 인해 리스본은 대도시로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서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불렸으며 16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인하여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어 버렸는데 그 후 폼발 후작의 힘으로 부흥을 도모하여 새로운 도시계획에 의한 신시가지가 조성되었다. 현재의 리스본은 지진에서 살아남은 구 시가지와 새로 조성된 신 시가지가 공존하는 차분하고 소박한 멋을 지닌 도시이다.

◆ 코메르시오 광장(Praça do Comércio)
바이샤 지구 남쪽 테주 강에 접한 리스본 최대의 광장으로, 삼면이 오래된 건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곳이다. 광장 중앙에는 1755년 대지진 당시의 왕인 주제 1세(José I)의 기마상이 서 있다. 광장 북쪽에는 폼발 후작과 바스코 다 가마의 조각상이 있는 개선문이 세워져 있고, 남쪽에는 테주 강으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있다.

◆ 성 안토니오(Saint Anthony of Padua) 성인 생가 성당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1195 - 1231)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근위 해군 제독의 아들로 태어났다. 17 세에 코임브라에서 아우구스띠노 참사회에 입회하여 사제 서품을 받았다. 여기서 신학과 성서에 깊은 조예를 쌓았다. 그는 작은 형제회의 베라르도와 동료들이 모로코에서 순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순교의 관을 쓰기 위해서 작은 형제회로 옮겼다. 그의 원에 따라 모로코로 파견되었으나 병으로 시칠리아에 되돌아왔다. 1221년 총회에 참석하여 성 프란치스꼬를 만나게 되고 폴리 근처의 은둔소에서 생활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설교 솜씨와 탁월한 학식 때문에 설교 책임자로 임명되고 프란치스코로 부터 작은 형제회 첫 신학 교수란 칭호를 받게 되며 볼로냐에서 가르치기도 하였다. 곧 알비파에 대항하여 설교하기 위하여 남불 지방으로 파견되었다.
그는 이름 높은 설교가로, 박학한 학자로 또한 뛰어난 덕행가로 일생을 보냈으며 마지막 3년 동안은 관구 봉사자로서 형제들에게 봉사하기도 하였다. 1231년 36세라는 짧은 나이로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의 중재로 생전과 사후에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으며 죽은 지 1년이 채 못된 1232 년 5월 30일 시성되었고, 비오 12 세는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 라 세 대성당 (Sé Catedral)
성 안토니오성인 생가 성당 바로 뒤 길건너에 있다. 알파마 지구 입구에 서 있는 1147년에 건조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다. 1755년 대지진 때도 견딘 견고한 성당으로 정면 입구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답다. 또 이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시가지와 태주 강의 모습이 멋지다.라 세는 리스본의 대성당이며, 이 도시의 추기경의 본거지이다. 성당의 정면에는 아케이드들과 원형 투명창이 있으며, 두 견고한 탑들이 양쪽에 서있다. 간소한 내부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3홀과 이의 교차점, 그리고 선장식의 트리포리오들이 있다. 내부의 좌측의 첫째 경당은 성당 창시자의 석관과 데 카스트로의 작품인 그리스도의 탄생을 상징하는 장식이 있다. 카펠라모르 바로크 양식의 경당에는 알폰소 4세와 왕비의 묘들이 있으며, 고딕식의 상부 반원감의 경당들에는 일련의 와상 조상시대의 석관들이 있다. 홀의 교차점의 우측으로는 바로크 양식의 성기 보존실로 갈 수 있으며, 여기에 설치된 대성당의 보물 박물관인 무세우 도 테소우로 다세에는 종교 미술과 성유물 등이 소장되어 있다. 반원감의 셋째 경당에는 보르고냐 고딕 양식의 아치들과 아랍식의 로마네스크 덧문이 있는 14세기의 회랑으로 들어갈 수 있다.
◆ 예로니모 수도원 성당 (Mosteiro dos Jeronimos)
벨렘의 임페리오 공원에 있는 흰색의 대성당이다.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 발견 기념을 위해 설립됐다. 리스본 시내 테주 강변 벨렘(Belem)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도시의 가장 주요한 건축 중의 하나이며, 마누엘리노 양식의 걸작으로, 1502년에 국왕 마누엘에 의하여 창건되었으며, 보이탘의 설계로 지어졌다. 1517년부터는 조아오 도 카스틸로가 이 공사를 전담하였으며, 프랑스 건축가인 찬테레네가 르네상스식의 장식을 설계하였다. 수도원은 스페인인 디에고 데 토르를바와 프랑스인 잔 데 루앙에 의하여 1572년에 완공되었다. 19세기의 둥근 천정과 작은 탑으로 상부가 장식된 부속교회는 교차지, 견고한 반원감의 성당들과 무치장의 고딕양식 그리고, 마누엘리노 정면을 지니고 있다. 근접 광장에서는 이 성당의 우측 부분을 볼수있으며, 그 중심에는 버팀벽을 치장하고있는 첨탑들과 조각들의 섬세한 사식의 틀에 끼워진 이중문이 있다.
대규모의 내부는 섬세한 장식으로 방문객을 놀라게 한다. 성당의 내부 홀들은 장식 조각들로 치장된 뛰어난 일련의 주석들로 분리되어있다. 고딕식의 둥근 천정에는 별모양의 맥들로 틀이 짜여진 간주들이 있다. 높은 합창대석 아래는 바스코 다 가마와 카모에스의 묘들이, 그리고 카피툴로실에는 작가인 알레산드레 혜르쿨라노 묘가 있다. 1755년의 지진을 견디어 낸 두주석으로 지탱되어진 홀의 교차지는 대표작으로 간주된다. 일련의 아름다운 맥들로 틀이 짜여진 간주들이 있으며, 유일한 한 주석에 의해 지탱된 성기 보관실도 걸작인 건축 작품이다. 성당의 정면의 좌측에는 회랑의 입구가 있으며, 이의 하부에는 이중 창문들이, 그리고 상부에는 단순한 창문들이 있으며, 이 모든 창문들은 뛰어난 독창성을 지닌 도안과 연결들로 엮어져 있다. 회랑 전체는 알칸타라의 돌로 만들어진 가지장식이 달린 촛대, 원형 부조, 짜여진 맥돌의 모타브의 부각 등으로 치장되어 있다. 회랑의 주변에는 17세기의 화장 타일로 치장된 식당과 저명한 인물들의 종묘로 된 회의실이 있다. 사원의 상층의 합창대에는 16세기 중엽의 르네상스식의 의자들을 볼수 있다.

◆ 벨렘타워 (Torre de Belem)
16C 초, 엠마누엘 1세가 항구를 감시하기 위하여 테주 강변에 세운 요새이다. 5층 건물의 상부에는 창모양의 총구멍이 줄지어 있다. 이 탑에서 바스코 다 가마는 인도를 향해 출범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는 이 탑은 당초 물 속에 세워졌으나, 테주 강의 흐름이 바뀌면서 물에 잠기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1515∼1519년에 건설된 이 탑은 하얀 나비가 물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누엘 양식의 건축물로 3층 구조이다. 대항해 시대에는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는 항해가를 맞이하는 탑이었지만 스페인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감옥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지금은 2층에 포대로 항해의 안전을 수호하는 '벨렘의 마리아상'이 서 있다.

◆ 발견 기념탑(Padrao dos Descobrimentos)
엔리끄(Henrique) 항해 왕자 서거 500주년 기념차 1960년 설립된 발견 기념비, 벨렝탑 옆에 위치한다. 발견탑 앞은 떼주강을 향하고 있으며, 뒷 편에는 조그만한 광장이 있는데 이곳에는 포르투갈인들이 항해하여 도착하였던 세계 각지가 연도별로 표시되어 있어, 포르투갈인들의 발길이 머물렀던 곳들이 방대했음을 보여준다.
하얀 범선의 모양을 한 대리석. 1960년, 포르투갈 해외개척의 선구자 엔리케 왕자의 몰락 후 500년을 기념해서 만들어졌다. 범선의 선두에 서 있는 것이 카라벨선을 손에 든 엔리케 왕자로 이에 계속 이어지는 군상은 대항해 시대에 활약했던 항해가, 학자, 선교자, 예술가들이다.

◆ 4월 25일교와 그리스도 상 (Christo-Rei)
공학 기술의 장엄한 작품인 이교량은 1966년에 개교 되었으며, 도시의 통신에 근원적인 변화를 의미하였다. 강철로 지어진 이 교량은 2킬로메터 이상의 길이로 두 거대한 주석으로 타주강위에 세워졌다.
강의 건너편 연안에는 리오 데 자네이로의 구세주의 모방인 그리스도 레이의 기념 건조물을 건립하였다. 높은 받침판 위에 리스본과 타주강 양쪽 방향으로 두팔을 벌리는 자세로 28메터 높이의 거대한 동상이 서 있다, 이는 1950년대에 두 독재자들, 프랑코와 살라사르, 간에 선물로 건립되었다. 평화를 강복 하듯 두 팔을 들고 있는 이 그 리스도 상은 1959년에 제 2차 세계대전 때 보호해 주신 천주께 감사하 는 뜻으로 세워진 것이다.

■ 리베르다데 대로와 에두아르도 7세 공원
리베르다데 대로는 길이 1500m, 폭 90m로 리스본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길로 중급 호텔과 팡숑이 많다. 신시가지 중심거리인 리베르다데 대로 북쪽 끝에 있고, 폼발 후작 광장과 인접해 있다. 모자이크 모양의 보도를 북쪽으로 올라가면, 로타리 상태의 퐁발후작 광장과 통한다. 광장은 아름다운 에두아르도 7세 공원으로 이어진다. 1902년 영국의 에드워드 7세가 리스본을 방문한 기념으로 만들었다.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프랑스식 공원이다. 여기서부터 보는 리스본 항의 전망이 훌륭하며 이 주변에 고급 호텔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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