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은 직장에서 자주 해외 출장을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해에는 유럽지사로 발령이 났다. 회사 사정상 가족이 함께 나가는 분위기가 아니라며 아들은 어린 아내와 아이들 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합가를 하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내 의사를 물었다. 아들의 부탁을 받고 나니. 집 사주고 장가보내면 부모로서 할 일이 끝난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손주들이 눈에 밟혀 아들이 마음 편히 근무를 못 할까 봐 허락을 했다.
요즘 신세대들은 시택이 싫어서 '시' 자 들어간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데 며느리는 흔쾌히 우리 집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시어머니로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이 깊어졌다. 내 하루의 시작은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나님께 새벽 예배를 드리는 생활이 최우선인데 혹시라도 며느리가 불편해할까 봐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남편은 반대가 심했다. 우리 아이들 셋을 키우느라 고생한 내가 나이들어 손주들 양육까지 도와야 한다는 게 못마땅한 것 같았다. 그러나 한 편으론 남편이 나를 위해주는 것 같아 뿌듯했다. 1층을 새로 단장해서 아들네가 이사 오도록 했다. 생활에 조금은 얽매이고 시간을 빼앗겼지만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며느리는 대학을 졸업하 고 바로 결혼했기에 살림이 서툰 데다 아이 둘 키우기도 힘들어서 직장도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살림은 내가 다 했다. 하지만 손주들의 재롱에 마음을 뺏겨 지내다 보니 나도 웃음이 많아졌다. 아이들이 복다거리니 온 집 안이 꽉 찬것 같고 그냥 보기만 해도 좋았다. 손주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어깨를 주물러 준다고 옆에서 부대끼는데 그 사랑스러움을 어디에 비하겠는가? 모임에 가서 손주 자랑하면 돈 2만원 쥐어주고도 쫓아낸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이 근질근질할 정도였다. 1층을 월세 주면 백만 원은 받을 텐데 오지랖도 넓다며 투덜대던 남편도 손주들만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퇴근 시간도 차츰 빨라졌고 온 집안이 시끌벅적 사람 사는 것 같았다.
남편의 손주 사랑은 유난스러웠다. 손자들 크는 모습을 기록해야 한다며 매일같이 비디오로 촬영한다고 설치는 바람에 집 안이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손주들을 향한 할아버지의 그 짝사랑을 누가 말릴 수있을까?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면서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촬영을 했다. 아이들이 웃을 때마다 자신도 따라 웃어서 5년은 젊어졌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들이 3년간의 해외근무를 마치고 본사로 들어오자 이제 안심이 되어 이사를 내보내려 했다. 하지만 아들 며느리가 계속 우리 곁에서 살기를 원했다. 후에 알게 된 일인데, 손주들을 데리고 가버리면 할아버지가 많이 섭섭해하실 거라며 며느리가 이사를 안 가겠다고 했단다. 며느리의 마음 씀씀이가 시아버지를 감동시켰다. 아들은 출근할 때마다 2층으로 올라와 문안 인사를 하고 출근을 한다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본 손주들도 예전보다 더 자주 2층을 오르내리며 우리 부부의 말벗이 되었다. 옛날 대가족제도를 연상케 하는 손주들이다 남편은 손주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일주일에 두 번씩 한자를 가르쳤다. 가까이 사는 외손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한자 공부를 핑계로 손녀 손자들과 꾸준히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니 사랑이 돈독해져서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남편은 딸네 집에 가면 가끔 손녀들에게 용돈을 준다. 둘째 손녀에게는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문는다. 손녀가 할아버지 전화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라도 할까 봐 내가 잔소리를 하는데도 남편은 꿈쩍도 안 한다. 그런 그가 가끔은 얄밉기도 하다.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웬 손주 욕심이 그리 많은지, 이젠 손주들이 중.고등학생이 되어서 시간이 없는데도 매일같이 보기를 원했다.
그러다가 남편은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내가 보기에 그건 아이디어가 아니라 꼼수(?)에 불과했다. 드디어 남편이 며느리한테 통보를 했다. 손주들이 학교에 갈 때 인사를 하고 가면 올때마다 용돈으로 5천 원을 주겠노라고. "아버님, 아이들이 하루도 안 거를걸요. 호호!" 며느리는 은근히 반기는 눈치였다. 며느리의 예상대로 아이들은 학교 가기 전에 쪼르르 2층으로 올라와 "할머니, 할아버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크게 인사를 하고는 할아버지가 준 용돈을 들고 입이 함박만 하게 벌어져 집을 나선다. 남편은 며느리가 손주들을 믿음으로 잘 키운 것 같다며 칭찬을 한다.
'우리가 애들을 너무 돈에 민감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에이구,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아이들 저러는 거 당연하지. 나도 누가 매일 용돈 준다 하면 하루에 열 번이라도 가겠다." 남편은 수시로 은행에 가서 빳빳한 5천 원짜리 지폐를 찾아다 놓고는 손자들에게 줄 용돈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중학생인 둘째 손자는 참 욕심도 많고 지혜롭다. 늦게 일어나 학교 가는 시간에 쫓겨 인사를 못 하고 갈때면 하교 후에라도 꼭 올라와 인사를 하곤 용돈을 받아 간다.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예금을 한다고 했다. 올해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있는데 손자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드릴 말씀이 있다면서 후다닥 뛰어올라왔다. 할머니, 할아버지! 저 학교 안 가는 날에도 올라와도 될까요?"
조의순 제10회 민들레 수필문학상, 제14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장려상 수상 동인지 목성들의 글자리,참여 rose4931@hanmail.net 하루하루 첫시간을 새벽기도 드릴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