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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지역의 가장 큰 효자동공원묘원으로 근세에 전주시가 조성한 묘지공원으로 자연 구릉지에 수많은 무덤이 있다. 이곳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달동네같은 곳으로 무질서하지만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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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자공원 중에서도 구릉지를 잘 다듬어 층단지게 꾸며놓은 묘원지역이다. 이곳은 1980년대에 조성하여 질서가 느껴지는 지역으로 살아있는 사람들로 치면 대단위 아파트지역이다. 무질서한 묘지지역보다 돈을 더내야 묻힐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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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정리된 묘역을 전주시가 "묘지 이전 정책"이라 이유를 들어 묘지 이장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 이장한 무덤의 팻말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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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묘지 인근에는 납골당들이 들어서고 있다. 공원묘지에 묻혀있는 고인들을 다 저곳으로 이전하라는 듯.. 성업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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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시에서 설립한 효자공원묘지 입구에 세운 납골당, 답답한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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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묘지에 안식을 취하는 조상들의 묘를 파묘해 가라는 공지문. |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한민족의 최고명절 한가위가 다가온다.
한가위는 수확의 계절이 문턱에 왔음을 실감나게 하는 우리의 명절이다.
옛날 농경을 위주로 살던 나라에서는 가을 추수철이 되면,
추수한 첫 수확물 중에서도 가장 좋은 곡식과 과일 등을 골라서
먼저 자신을 낳아준 조상님들을 생각하고, 또 자신들의 시조까지도 기리는 행사를 하였다.
그리고 더불어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끼리 그동안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쌓였던 회포도 풀면서
공동체의 우의를 다지는 명절이 한가위다.
그 한가위가 다가오면 우리는 자신들의 부모와 조부모들이 묻혀있는 산소를 찾아
자신을 낳고 길러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또 지금 살고 있는 자신들을 잘 보살펴 주실 것을 바라며, 산소에 문안인사를 드린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게로 찾지 못했던 산소를 찾아서,
수북히 우거진 잡초도 잘라서 말끔하게 다듬어도 주고,
무덤 주변도 살피면서 다시금 부모님의 생전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감사도 드린다.
이런 것이야말로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은 가족이 죽으면 동물처럼 들판에 내팽개쳐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게 하지 않고,
산세 좋고 양지바른 곳을 찾아서 이땅에서 살았듯이 저 세상으로 간 영혼의 안식을 빌면서,
이땅에 남겨놓은 육신도, 다 썩어 없어질 동안 그곳에 편안히 잠들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우리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어떻게든 좋은 곳에 모시고자 묘를 쓰기 전에,
주변 산세를 살피고 햇볕이 잘드는 좋은 곳을 찾는 기법을 오랫동안 추구하여 풍수지리를 발전시켜왔다.
묘의 풍수지리를 본다는 것은 이처럼 부모님을 잘 모심으로써 사람의 도리를 다하자는
인간본연의 효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나,
조선조에는 이를 너무도 추구하다보니 묘지로 인한 많은 폐해도 있었다.
그러나 부모의 산소를 좋은 곳에 모시고자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사람들의 생각이고,
또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갈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이고 보면,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사람도 길어 보았자 100년이면 이세상에 남을 사람 하나도 없을 것임으로,
어쩌면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기대도 함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랫동안 계승되어오던 묘지문화가 최근 긴박하게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옛적에는 그 누구나 죽으면 들판이나 산에 둥근 봉분을 한 무덤에 묻힌다 하여 그 이름도 산소였으나,
요즈음에는 죽어도 산소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납골당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산소에 묻힌다면 그 뼈가 있는 동안만 있다가, 그 산소를 살펴줄 후손이 모두 사라진 뒤에는
그 산소도 자연히 멸실되어 흔적도 없이 다시 자연이 될 것이지만,
묘를 쓰지 않고 납골당으로 들어가는 요즈음의 묘지문화로는
그 납골당을 언제까지 관리할 것이며, 관리가 안되는 납골당에 모셔진 납골들은 또 어찌 할 것인지...
이 또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수목장이라 하지만,...
어떻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묘지문화이다.
기자의 부모님이 묻혀있는 전주에는 효자공원묘원이 있다.
이곳은 옛적부터 있어왔던 효자동 산등성이 공동묘역을
전주시가 1980년대 들어 주변의 산들이 무덤화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능선을 잘 정리하여
공원식 묘원을 조성하여 분양하였었다.
그러나 그도 불과 30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꽉 차게 되었고,
이제는 또 다시 분양했던 묘지들을 없애겠다고 공고하며,
묘지에 묻힌 망자의 자손들은 각자 알아서 파묘하든지,
아니면 공원묘원 인근에 있는 납골당으로 이장할 것을 회유(?)와 강요(?)를 하고 있다.
공원묘원을 조성한 것도 이 시대이고,
공원묘원이라는 우리시대의 묘지문화도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는 이시대를 이해하는 연구의 대상이 될 것인데,
이시대에 만든 우리시대의 묘지문화를, 다시 없애는것을 어찌 이리 서두르는 것인지 이해가 안간다.
고대로부터 있어왔던 문화를 이해하는데 묘지보다 더 훌륭한 유적과 자취는 없다.
묘지를 통하여 그분들이 어떻게 생활했으며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 알 수가 있으며,
그곳에서 나온 부장품들을 통하여 그분들의 생각과 이상까지도 알 수가 있다.
공원묘지라는 새로운 형태의 이시대에 새롭게 만든 우리의 묘지문화를
이 시대도 가기 전에 없애는 것이 과연 옳바른 일인지...
조상을 기리고 생각하는 한가위를 맞이하여
조상님들의 묘가 불안한 현상을 보면서 삶과 죽음을 다시금 깊이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