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가 조용하여 자세히 관찰해보니, 이미 전쟁은 끝난 뒤였다.
화분 사이를 즐겁게 날아 다니던, 두 세 종류의 벌레들이 보이지 않았다. 거미줄에 드믄드믄 녀석들의 시체를 확인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아끼던 모기 한 마리의 시체를 거미들이 파 먹고 있었다.
단 한 마리의 모기를 위해 나를 희생하면서 키웠는데, 내 피를 배불리 빨면서 살다가 언젠가 평균 수명이 다 하면 죽겠지 하는 마음으로 용서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거미의 제노사이드를 어쩌란 말이냐.
베란다를 장악한 거미줄은 감히 벌레들이 돌아다닐 수 없는 권력이 되었다.
내가 그토록 우려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경계와 소통의 시간이 되기를 그토록 마음 졸이며 바라보았건만.
그래서 각각의 개체로 남아서 나의 베란다를 즐겁게 해 주기를 기다렸건만.
괴씸한 거미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녀석들의 먹이감이 전부 사라지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혹시, 거미끼리 전쟁을 하지는 않을까.
거미는 어떤 방법으로 전쟁을 할까.
거미줄은 전쟁의 도구가 되지 못한다. 거미는 스스로의 몸에 윤활유가 분비되어 거미줄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녀석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거미줄을 쳐놓고 예전 처럼 한 없이 기다리는 것 뿐이라고 예상이 된다.
장마비가 소리를 지르며 내리는 와 중에 낮부터 막걸리를 마시고 잠이 들었다가, 중간에 잠이 깼다가 다시 잠들어 이제 일어났다.
내가 잠든 사이에 전쟁이 끝난 것이다.
빗소리에 취해 잠들고, 일어나고, 담배 연기에 낭만이 더해지고 ......
아쉬운 것은 내 막걸리 친구였던 녀석들이 전부 사라진 것이다.
난 기다린다. 거미의 새로운 먹이감이 될, 거미 보다 더 힘이 쎈 녀석들이 나타나서 거미를 혼내줄 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