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前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들은지 1년이 되었습니다. 원래 정치나 사회과학에 예전부터 흥미가 있었고 하필 서거 당시 읽고 있던 자료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기록과 두 전임 대통령의 개인사에 관한 내용이었기에 '정치인 김대중'의 서거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안타까워 했습니다. 군대 휴가기간과 겹쳐서 직접 추모를 하러 분향소에도 가보고 장례식도 지켜보았던 때가 벌써 1년입니다. 저는 김 前 대통령 서거 이후에서야 부대 안에서 관련서적을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사회과학 서적을 봐오던 저였기에 '대통령 김대중'보다는 '민주투사로써의 김대중'의 모습이 조금 더 부각되었고 더욱 알아보고 싶었는데, 오히려 '사상가로써의 김대중', '신앙인으로써의 김대중'이라는 새로운 면모를 만난 후에는 마음 속으로 깊이 존경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아무튼, 역대 대통령 기념관 성격의 건물이 수도권 근교에는 찾기가 어렵고 최근에 들어서야 거제도에 김영삼 대통령 기념관이 세워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진작에 동교동에 있는 김대중 대통령 자택과 그 옆에 붙은 김대중도서관은 몇 번이나 그 앞을 지나가면서 그냥 넘겨버렸었습니다. 이번 추모기간동안 특별히 김대중 前 대통령께서 마지막까지 쓰시던 5층 집무실을 한정 공개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일부러 찾아가보았습니다.
보통 김대중도서관을 찾으면 1층과 2층의 전시관을 둘러보게 되는데 8월 18일 추모기간까지는 안내하시는 분이 '왼쪽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집무실을 먼저 둘러보시라'고 하셨습니다. 대통령 퇴임 후 최후까지 업무를 보셨던 5층 집무실을 직접 눈에 볼 수 있다니, 많이 기대가 되었습니다.
5층에 도착해보니 안내해주시는 직원분들이 많이 계셨고 일부러 찾아오신 추모객들도 몇몇 눈에 띄었습니다. 입구 오른쪽 벽에 붙어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모델로 나온 잡지가 벽에 걸려있었는데, 윗줄 네 번째에 익숙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2002년 퇴임전에 일본 잡지와 촬영한 사진이라는데, 당시 소위 '홍삼게이트' 사건으로 김 대통령의 아들들이 구속되었던 때여서 많이 침울하실 시기때 촬영한 것이라고 하는군요. 나중에 이 사진이 영정사진이 되었습니다.
오른편으로 여러가지 상패와 학위패가 보입니다. 사진에는 잘 안 나왔지만 맨 왼쪽에 기네스 인증서가 있었습니다. 김대중 前 대통령이 한국 기네스 보유자였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었는데요. 국회에서의 최장 연설 기록이라고 합니다. 3공화국때 5시간 19분짜리 필리버스터 (의사진행방해연설) 기록이라는군요.
6. 15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남북관계의 화해의 시작을 의미하는 부조상이 탁자에 놓여있습니다.
북한에서 선물받은 금강보석화라고 합니다.까투리와 장끼가 그려진 그림인데 남북간의 화합의 의미가 담겨있다는군요. 보석을 직접 갈아서 그렸다는데 불빛에 비춰보면 반짝거린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김대중 前 대통령 집무실
최후까지 업무를 보시던 집무실을 들어가기 전에 심호흡을 크게 했습니다. 김 대통령 국장때 영정을 들고 이곳을 마지막으로 들리던 화면을 뉴스로 보았기에, 그러한 역사의 현장에 직접 다가간다는 의미도 있었고, 왠지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아련함이 다가오더랍니다. 뒷쪽에 집무실 책상에는 최후까지 쓰시던 흔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앉으셨던 자리에는 지금은 고인의 사진만 덩그러니 놓여있군요.
참모들과의 회의나 방문객이 오면 앉아서 회의하던 책상에는 몇 가지 물건들이 놓여 있었는데요. 여기서 마지막으로 방문객을 맞았던 때는 2009년 4월 16일 국제 사면 위원회와의 인터뷰 자리였다고 하는군요. 관련 자료가 오른쪽 액자에 놓여있었습니다.
클린턴 前 미국 대통령의 편지
2009년 5월 24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서한을 김 대통령의 지시로 액자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한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고 난 후의 감사서한으로 노무현 前 대통령 서거에 대한 위로의 내용도 적혀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김대중 前 대통령님이 마지막까지 읽으시던 책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제국의 미래, 오바마 2.0, 만화 조선왕조실록 이렇게 세 권이었다는군요.
마지막까지 읽던 책장
입원 직전까지 마지막으로 보시던 책을 직접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책을 대략 넘겨보니 이렇게 읽은 부분을 표시하고 있는 빨간색 테이프가 나타났습니다. 한참 멈춰섰다가 그 책장을 잡고 몇 장을 더 넘겼습니다. 고인의 평생동안 이어온 독서의 끝에서 넘기지 못한 페이지를 대신 넘기는 순간에 왠지 모르게 슬픈 기분이 들었습니다.
백범 김구선생을 생전에 존경하셨다는 김 전 대통령은 저렇게 백범 선생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는군요. 설명해주시는 분이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셨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집무실 5층 김 전 대통령의 집무실에 걸려있는 이것이 2000년에 수상한 노벨평화상 진본이라고 합니다. 노벨평화상 증서 왼쪽의 그림은 수상자가 결정되면 수상자의 업적에 따라서 그림도 결정된다는데 한반도 모양의 오솔길과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형상화한 나뭇잎들이라고 설명 해 주시는군요. 사진촬영이 가능해서 그런지 방문 기념으로 노벨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집무실을 나오면 이렇게 소접견실이 있습니다. 왼쪽으로는 이희호 여사 집무실과 연결된 문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김 전 대통령 집무실과 연결된 문이 있다는군요.
이희호 여사 집무실
김 전 대통령 집무실과 함께 이희호 여사 집무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두 분 다 집무실에서 자신들의 자서전을 편찬하는 작업을 하셨다는군요. 자서전 '동행'의 원고집필을 여기서 하셨다는 설명입니다. 이희호 여사 집무실은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벽에 걸려있는 여러가지 액자중에 이희호 여사의 서울대학교 졸업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옛날 서울대학교 졸업장은 이렇게 생겼던 것이군요.
책상에는 이희호 여사 자서전인 '동행'과 함께 두 분의 결혼기념일 사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일기나 그간의 저작중에서 아내에 대한 애정과 행복함을 표현한 부분이 유난히 많았었지요.
이희호 여사의 마지막 편지
김대중 前 대통령 서거 후 자신의 자서전에 이렇게 마지막 편지를 써서 관에 넣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편지의 사본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8월 18일 서거 1주기까지 한정적으로 일반에 공개된 5층 집무실에서 김 전 대통령님의 마지막 흔적을 직접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17일에 찾았었는데 mbn에서 촬영도 왔더군요.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역사의 공간이기도 하고 일부러 찾아온 보람을 느꼈습니다.
2층 특별전시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서 2층으로 내려왔습니다. 2층에서는 특별전시실이 있었는데, 대통령 재임 시기의 선물과 의상을 비롯해서 이런저런 문서자료를 공개하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前 대통령의 친필 필적 이희호 여사의 진정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어린 시절의 성적표와 상장부터 시작해서 국회의원 시절의 자필메모와 서신들, 3.1 구국선언으로 구속된 후의 서신들과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한 기록 등의 귀중한 사료를 열람할 수 있었습니다. 몇몇 서신은 '옥중서신'에서 언급된 내용도 있었습니다.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한 정부의 비밀문서
지금이야 비밀이 해제된 문서지만 비밀문서의 사본을 열람해보니 급박했을 당시 정부기관의 상황이 눈에 그려졌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1층 전시관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를 둘러볼 수 있는 전시물들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3. 1 만주구국은동성명서로 구속된 시기에 껌 종이에 못으로 눌러 쓴 편지의 원본이며, 한달에 한 장 주어지는 봉함엽서에 깨알같이 쓴 편지의 실물을 마주하니 대단한 민주투사였음이 실감납니다. 미국과 일본에서 김대중 구명운동을 위한 자료들도 있더군요.
무엇보다도 김대중 내란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면되면서 청주교도소에서 사용하던 수의를 공개하고 있었던 것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수의를 입고 머리를 깎은 1981년의 사진은 민주투사이자 사형수 김대중의 대표적인 사진이겠지요.
김대중 前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증
민주투사에서 대통령까지 험란한 여정과 대통령으로써의 임기. 87년 민주진영의 후보단일화 실패, 정계 은퇴와 복귀, DJP연합 등의 실책과 비난도 함께 하는 모습이지만, 한국의 민주화와 평화에 대해 기념비적인 거인이었음은 명백할 것입니다.
대통령 집무실을 본딴 공간에서 사진도 찍어볼 수 있도록 조성해 두었습니다. 왠지 뉴스에서나 볼 공간을 여기에 만들어놓으니 신기하네요. 최근에 개장한 김영삼대통령기념관에서는 청와대 기자회견 공간을 재현해 놓았다고 들었습니다.
빌 게이츠로부터 선물받은 휴대전화
대통령 재임시 선물받은 물건중에 넬슨 만델라 前 대통령의 시계, 조수미씨와 서태지씨의 음반과 더불어 빌 게이츠로부터 받은 휴대폰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 휘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자신의 휘호로 삼았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글귀를 휘호로 즐겨 사용하셨지요. 친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 김 전 대통령의 유품이 전시관 끝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작년에 국회의사당 분향소 앞에 이 유품들이 공개되었던 적이 있었지요. 마지막으로 착용했던 의복입니다.
동교동 자택에서 쓰셨던 슬리퍼와 중환자실에서 사용했던 벙어리장갑과 덧양말입니다. 이 두개는 이희호 여사가 직접 뜨개질로 만든거라고 하시는군요.
전시실을 다 둘러보고 다시 입구로 나왔습니다. 얼마 전 출간한 김대중 자서전이 영정앞에 놓여있는 모습. 한국 현대사의 큰 획을 그은 역사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사상가로써, 신앙인으로써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마주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일부러 찾아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역대의 대통령이 그러하듯이 김대중 前 대통령 역시나 상반된 평가로 나뉘고 있습니다.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지역주의를 넘어서, 이러한 상반된 평가는 아무래도 경제성장과 민주화 두 가지의 우선순위에 대한 논란까지 찾아볼 수 있겠지요. 국가경영에 관한 여러 논문에서도, 상반된 이념의 지식인들에게서도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두가지의 중요한 과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에 대해 결론을 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국가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도 필요하고 인권신장과 민주화 또한 당연히 필요한 것인만큼 무엇이 먼저고 옳고 그름을 떠나 지금 우뚝 솟아있는 대한민국의 역사 자체로 바라보는 것이 어떨지요.
평생을 민주주의와 세계평화를 위해 힘쓴 김대중 前 대통령님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면서, 지금의 빛나는 대한민국을 위해 노력한 역대 모든 대통령의 역사는 우리와 함께 계속해서 빛나고 있을 것임을 믿습니다.
아무튼, 역대 대통령 기념관 성격의 건물이 수도권 근교에는 찾기가 어렵고 최근에 들어서야 거제도에 김영삼 대통령 기념관이 세워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진작에 동교동에 있는 김대중 대통령 자택과 그 옆에 붙은 김대중도서관은 몇 번이나 그 앞을 지나가면서 그냥 넘겨버렸었습니다. 이번 추모기간동안 특별히 김대중 前 대통령께서 마지막까지 쓰시던 5층 집무실을 한정 공개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일부러 찾아가보았습니다.
보통 김대중도서관을 찾으면 1층과 2층의 전시관을 둘러보게 되는데 8월 18일 추모기간까지는 안내하시는 분이 '왼쪽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집무실을 먼저 둘러보시라'고 하셨습니다. 대통령 퇴임 후 최후까지 업무를 보셨던 5층 집무실을 직접 눈에 볼 수 있다니, 많이 기대가 되었습니다.
5층에 도착해보니 안내해주시는 직원분들이 많이 계셨고 일부러 찾아오신 추모객들도 몇몇 눈에 띄었습니다. 입구 오른쪽 벽에 붙어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모델로 나온 잡지가 벽에 걸려있었는데, 윗줄 네 번째에 익숙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2002년 퇴임전에 일본 잡지와 촬영한 사진이라는데, 당시 소위 '홍삼게이트' 사건으로 김 대통령의 아들들이 구속되었던 때여서 많이 침울하실 시기때 촬영한 것이라고 하는군요. 나중에 이 사진이 영정사진이 되었습니다.
오른편으로 여러가지 상패와 학위패가 보입니다. 사진에는 잘 안 나왔지만 맨 왼쪽에 기네스 인증서가 있었습니다. 김대중 前 대통령이 한국 기네스 보유자였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었는데요. 국회에서의 최장 연설 기록이라고 합니다. 3공화국때 5시간 19분짜리 필리버스터 (의사진행방해연설) 기록이라는군요.
6. 15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남북관계의 화해의 시작을 의미하는 부조상이 탁자에 놓여있습니다.
북한에서 선물받은 금강보석화라고 합니다.까투리와 장끼가 그려진 그림인데 남북간의 화합의 의미가 담겨있다는군요. 보석을 직접 갈아서 그렸다는데 불빛에 비춰보면 반짝거린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최후까지 업무를 보시던 집무실을 들어가기 전에 심호흡을 크게 했습니다. 김 대통령 국장때 영정을 들고 이곳을 마지막으로 들리던 화면을 뉴스로 보았기에, 그러한 역사의 현장에 직접 다가간다는 의미도 있었고, 왠지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아련함이 다가오더랍니다. 뒷쪽에 집무실 책상에는 최후까지 쓰시던 흔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앉으셨던 자리에는 지금은 고인의 사진만 덩그러니 놓여있군요.
참모들과의 회의나 방문객이 오면 앉아서 회의하던 책상에는 몇 가지 물건들이 놓여 있었는데요. 여기서 마지막으로 방문객을 맞았던 때는 2009년 4월 16일 국제 사면 위원회와의 인터뷰 자리였다고 하는군요. 관련 자료가 오른쪽 액자에 놓여있었습니다.
2009년 5월 24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서한을 김 대통령의 지시로 액자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한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고 난 후의 감사서한으로 노무현 前 대통령 서거에 대한 위로의 내용도 적혀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김대중 前 대통령님이 마지막까지 읽으시던 책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제국의 미래, 오바마 2.0, 만화 조선왕조실록 이렇게 세 권이었다는군요.
입원 직전까지 마지막으로 보시던 책을 직접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책을 대략 넘겨보니 이렇게 읽은 부분을 표시하고 있는 빨간색 테이프가 나타났습니다. 한참 멈춰섰다가 그 책장을 잡고 몇 장을 더 넘겼습니다. 고인의 평생동안 이어온 독서의 끝에서 넘기지 못한 페이지를 대신 넘기는 순간에 왠지 모르게 슬픈 기분이 들었습니다.
백범 김구선생을 생전에 존경하셨다는 김 전 대통령은 저렇게 백범 선생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는군요. 설명해주시는 분이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셨습니다.
집무실 5층 김 전 대통령의 집무실에 걸려있는 이것이 2000년에 수상한 노벨평화상 진본이라고 합니다. 노벨평화상 증서 왼쪽의 그림은 수상자가 결정되면 수상자의 업적에 따라서 그림도 결정된다는데 한반도 모양의 오솔길과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형상화한 나뭇잎들이라고 설명 해 주시는군요. 사진촬영이 가능해서 그런지 방문 기념으로 노벨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집무실을 나오면 이렇게 소접견실이 있습니다. 왼쪽으로는 이희호 여사 집무실과 연결된 문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김 전 대통령 집무실과 연결된 문이 있다는군요.
김 전 대통령 집무실과 함께 이희호 여사 집무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두 분 다 집무실에서 자신들의 자서전을 편찬하는 작업을 하셨다는군요. 자서전 '동행'의 원고집필을 여기서 하셨다는 설명입니다. 이희호 여사 집무실은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벽에 걸려있는 여러가지 액자중에 이희호 여사의 서울대학교 졸업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옛날 서울대학교 졸업장은 이렇게 생겼던 것이군요.
책상에는 이희호 여사 자서전인 '동행'과 함께 두 분의 결혼기념일 사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일기나 그간의 저작중에서 아내에 대한 애정과 행복함을 표현한 부분이 유난히 많았었지요.
김대중 前 대통령 서거 후 자신의 자서전에 이렇게 마지막 편지를 써서 관에 넣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편지의 사본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8월 18일 서거 1주기까지 한정적으로 일반에 공개된 5층 집무실에서 김 전 대통령님의 마지막 흔적을 직접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17일에 찾았었는데 mbn에서 촬영도 왔더군요.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역사의 공간이기도 하고 일부러 찾아온 보람을 느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서 2층으로 내려왔습니다. 2층에서는 특별전시실이 있었는데, 대통령 재임 시기의 선물과 의상을 비롯해서 이런저런 문서자료를 공개하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어린 시절의 성적표와 상장부터 시작해서 국회의원 시절의 자필메모와 서신들, 3.1 구국선언으로 구속된 후의 서신들과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한 기록 등의 귀중한 사료를 열람할 수 있었습니다. 몇몇 서신은 '옥중서신'에서 언급된 내용도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비밀이 해제된 문서지만 비밀문서의 사본을 열람해보니 급박했을 당시 정부기관의 상황이 눈에 그려졌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1층 전시관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를 둘러볼 수 있는 전시물들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3. 1 만주구국은동성명서로 구속된 시기에 껌 종이에 못으로 눌러 쓴 편지의 원본이며, 한달에 한 장 주어지는 봉함엽서에 깨알같이 쓴 편지의 실물을 마주하니 대단한 민주투사였음이 실감납니다. 미국과 일본에서 김대중 구명운동을 위한 자료들도 있더군요.
무엇보다도 김대중 내란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면되면서 청주교도소에서 사용하던 수의를 공개하고 있었던 것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수의를 입고 머리를 깎은 1981년의 사진은 민주투사이자 사형수 김대중의 대표적인 사진이겠지요.
민주투사에서 대통령까지 험란한 여정과 대통령으로써의 임기. 87년 민주진영의 후보단일화 실패, 정계 은퇴와 복귀, DJP연합 등의 실책과 비난도 함께 하는 모습이지만, 한국의 민주화와 평화에 대해 기념비적인 거인이었음은 명백할 것입니다.
대통령 집무실을 본딴 공간에서 사진도 찍어볼 수 있도록 조성해 두었습니다. 왠지 뉴스에서나 볼 공간을 여기에 만들어놓으니 신기하네요. 최근에 개장한 김영삼대통령기념관에서는 청와대 기자회견 공간을 재현해 놓았다고 들었습니다.
대통령 재임시 선물받은 물건중에 넬슨 만델라 前 대통령의 시계, 조수미씨와 서태지씨의 음반과 더불어 빌 게이츠로부터 받은 휴대폰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자신의 휘호로 삼았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글귀를 휘호로 즐겨 사용하셨지요. 친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 김 전 대통령의 유품이 전시관 끝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작년에 국회의사당 분향소 앞에 이 유품들이 공개되었던 적이 있었지요. 마지막으로 착용했던 의복입니다.
동교동 자택에서 쓰셨던 슬리퍼와 중환자실에서 사용했던 벙어리장갑과 덧양말입니다. 이 두개는 이희호 여사가 직접 뜨개질로 만든거라고 하시는군요.
전시실을 다 둘러보고 다시 입구로 나왔습니다. 얼마 전 출간한 김대중 자서전이 영정앞에 놓여있는 모습. 한국 현대사의 큰 획을 그은 역사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사상가로써, 신앙인으로써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마주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일부러 찾아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역대의 대통령이 그러하듯이 김대중 前 대통령 역시나 상반된 평가로 나뉘고 있습니다.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지역주의를 넘어서, 이러한 상반된 평가는 아무래도 경제성장과 민주화 두 가지의 우선순위에 대한 논란까지 찾아볼 수 있겠지요. 국가경영에 관한 여러 논문에서도, 상반된 이념의 지식인들에게서도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두가지의 중요한 과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에 대해 결론을 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국가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도 필요하고 인권신장과 민주화 또한 당연히 필요한 것인만큼 무엇이 먼저고 옳고 그름을 떠나 지금 우뚝 솟아있는 대한민국의 역사 자체로 바라보는 것이 어떨지요.
평생을 민주주의와 세계평화를 위해 힘쓴 김대중 前 대통령님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면서, 지금의 빛나는 대한민국을 위해 노력한 역대 모든 대통령의 역사는 우리와 함께 계속해서 빛나고 있을 것임을 믿습니다.